마음의 고향 [축서사]
- 금곡 무여
큰스님 -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셨습니다.
1966년 이후로 상원사,동화사,송광사,해인사,관음사,칠불사,망월사 등 제방 선원에서 20여년 동안 수선 안거하시며 칠불사,망월사 선원장을 역임하셨습니다. 또한 조계종 초대 기초선원 운영위원장 및 전국선원수자회 대표를 역임하셨고 2018년 5월 종단의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하셨습니다.
1988년부터 축서사에서 365일 언제나 문을 열고 불자들을 맞고 계시며 한국선의 가풍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온힘을 쏟고 계십니다.
큰 스님과의 인터뷰
월간 「법회와 설법」은 수행과 교화의 본분사(本分事)에 정진하시는 선지식(善知識)의 수도(修道)와 전법(傳法) 이야기를 인터뷰하여 소개합니다.이 선지식의 치열한 구도 교화기가 제방 스님들의 정진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무여 스님은 문수산 축서사에 주석하십니다. 문수산은 경상북도 봉화 땅에 있지요. 봉화는 우리 나라에 가장 오지 중에 한 곳입니다. 어떤 자료를 보니 봉화군은 재정 자립도 10% 미만으로 꼴지 군에 속하더군요. 그런데 봉화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 둘러싸인 흔히 양간 지역으로 불리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명당으로 통합니다. 그래서 도 닦기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마음 공부하는 이들이 많이 찾아 들고 있답니다. 또한 송이가 가장 많이 나는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그런 봉화에 문수산 축서사가 있고 무여스님이 주석합니다. 무여스님은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오대산 상원사로 입산한 후 20여 년간 선 수행의 길로 매진하시어 칠불사, 망월사 등의 선원장을 지냈고, 1980년대 후반에 문수산 축서사에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계십니다. 후학 양성에도 뜻을 두어 종립 동화사 기본선원 초대 운영위원장을 지내셨습니다.
봉화 읍내에서 축서사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봉화에서 25년째 택시를 몰고 있다는 기사님의 말씀이 “축서사는 큰스님이 오시고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절에 차가 없을 때 가끔 스님을 모셔다 드린 적이 있는데 참 자상하시고 편안하게 해주셨어요. 스님은 정월 초하루 생각이 섣달 그믐날까지 변함없는 그런 분입니다.” “1월 1일 생각이 12월 31일까지 변함이 없는 분” 이 한 마디에 봉화 사람들이 스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도 여느 선지식과 같이 “나는 이런 데에 나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하시며 이 인터뷰를 여러 번 사양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찾아가니 겨우 말씀을 주셨습니다.
먼저 축서사에는 언제부터 주석하셨는지요. 그리고 엄청난 불사를 하셨는데 그 인연도 좀 들려주시죠.
1987년에 왔으니까, 벌써 17년이 됐네요. 한 20여 년간 선원과 토굴에서 화두 공부만 하다가 내 자신을 좀 정리할 필요성를 느꼈어요. 막연한 생각보다는 글로 정리하자. 그럴려면 어느 곳에 정착해야 하니 토굴을 구했는데 마침 고우스님께서 축서사가 비어 있다고 소개해서 이전 주지스님의 양해를 얻고 본사인 고운사를 찾아가서 허락을 얻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 절 살림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혼자서 정리하는 데는 좋았습니다. 특히 축서사는 산중 깊이 있으면서 터가 좋아요.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에 있어 봤는데, 보궁터와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 한 2년 후에 가려고 하니 주변에서 말려요. 불사나 좀 하고 가라고 합디다. 그래서 몇 사람이 사는데 불편하지는 않게 해놓고 내려가자 생각하던 차에 마침 아래 동네에 흙이 좀 있다고 해서 올린 것이 불사의 시작입니다. 불사 이전 축서사는 도량이 좁았어요. 해발 7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한 법당 터는 양명하고 정진하기 좋은 터였지만, 좁았어요. 그래서 이 좋은 터를 잘 활용하는 가람 불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항공 촬영도 하고 측량도 해서 컴퓨터로 터의 지형도를 분석하고 그래픽으로 지금과 같은 설계를 해서 흙을 실어 올렸습니다. 덤프트럭으로 한 6천대분의 흙으로 기초 공사를 해서 지금의 터를 조성하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전에 축서사는 뒷산이나 안대는 좋지만, 먹고 살기가 어려운 도량이었습니다. 지금은 성형수술을 해서 후덕한 터, 정진하기 좋은 터로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원래 경사가 가파르고 좁은 터를 널찍하게 하려니 축대를 잘 쌓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축대를 여러 번 쌓고 허물기를 거듭하여 지금의 축대가 조성되었습니다.
불사는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불사답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동, 한 동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축대도 마찬가지고요.
발심 출가 인연을 좀 들려주시죠. 은사 희섭 스님과의 인연도요.
나는 어려서 성격이 나약하고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청년기가 되어 스스로 좀 다양한 체험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인문학을 물론 음악, 예술에도 관심을 가졌고, 『인생론』 『위인전기』 같은 것을 통해서 훌륭한 분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영화에도 퍽 관심을 가졌더랬지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사는 방법은 없는가?” 그런 생각으로 한창 고민하던 시절에 우연히 가야산 해인사로 여행을 가다가 고령쪽 가야산 기슭 양지 바른 곳에 아담한 절이 눈에 들어 왔어요. 무심코 그 절로 가니 마치 고향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절에서 며칠 쉬고 싶다하니 그러라고 하데요. 그래서 며칠 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흘째 되니 노스님이 “자네가 무엇인가?”하고는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요. “자네가 무엇인가?”그 물음이 가슴에 확 와서는 떠나지 않아요. 그래서 “자네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몇 시간이 지나고, 하루, 이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의문 덩어리가 되어 갔습니다. 하루 일과도 법당과 마당 청소를 간단히 하고는 앉기 시작해서 밥 얻어먹으면 또 앉고 그러다가 밤을 새는 날도 있고, 용맹정진한다는 생각없이 할 때는 밥 한, 두 끼 넘기기도 하고 그렇게 열심히 했습니다. 화두는 아니지만, 거기에 빠져 한 달, 두 달이 후딱 지나고 몇 달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주 고요하고 맑은 경계를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때 “아! 이것이구나!” 하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어요. 그런 체험을 하고는 인생에서 이 이상의 답은 없겠다. 그런 신념이 섰어요. 마냥 앉아 있어도 몸이 아프거나 싫다든가 하는 것이 전혀 없었어요. 믿기 어렵겠지만,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었는데도 1년 동안 마을에 한 번도 내려가 보지 않았어요. 그만큼 몰두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공부를 했지만,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송광사로 갔습니다. 송광사에 가니 그제사 고향 생각도 나고 집 생각, 부모 생각이 나기 시작해요. 양심에 가책도 심하게 생겨요. “아차, 내가 이래서는 안 된다. 출가하더라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떠올라 고향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가니 부모님들이 허락을 하지 않아요. 막무가내예요. 내가 장남이었거든요. 온실 안에 화초처럼 곱게 자랐습니다. 나는 중학생 때까지 집을 떠난 적이 없었어요. 내 손으로 뭘 사먹어 본 적도 없어요. 고등학생 때 하숙한 것이 처음 집을 떠난 때였어요. 그러니 허락은 어림 없었죠. 그래서 3개월 후에 뭘 써놓고 몰래 나왔어요. 집에서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계셨어요.
그리고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깊은 도량이라는 오대산 상원사로 찾아 갔습니다. 은사 희섭스님이 계셨는데 “공부하러 왔습니다”하니 행자실로 안내해서 거기서 다시 행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노스님이 되시는 보문스님 이야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오대산의 대표적인 선승이라고 들었고, ’47년 봉암사 결사에도 초기 멤버로 같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 대구에서 교화하시다 입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보문(普門)스님은 서른 살에 출가하여 쉰에 입적하셨습니다. 저는 직접 뵙지는 못했지요. 그런데 선방을 다니면서 그 연배의 스님들 말씀을 들어보니 청풍납자(淸風衲子)의 표상이라 해요. 또 노스님이 50년대 말에 대구 보현사에 1년 6개월 정도 사셨는데 그때 신도님들이 노스님 제사가 되면 탁발해서 모실 정도로 존경심이 대단했어요. 사람이 잘 살았느냐, 못살았느냐는 죽고 난 다음 평이 정확하다고 하지요.
보문스님은 선지(禪旨)가 밝았고, 계행(戒行)이 청정했답니다.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스님이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누가 감히 뭐라 하질 못했답니다. 저의 은사스님 말씀으로는 한암스님 회상에서 행자 때 한 철 용맹정진을 하다가 겨울에 변소를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견처가 열렸다고 하더군요. 한암스님께서 “선지가 열렸다”고 칭찬하며 좋아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 스님은 두타행을 하셨답니다. 일년 내내 누더기 한 벌로 지내셨고, 꼭 탁발해서 먹을 것을 조달했습니다. 대구에서 탁발을 나가실 때면 주로 시장을 도셨는데, 가사 장삼을 수하시고 왼 손에 발우, 오른 손에 요령을 잡으시고 반야심경을 염송하고 지나가면 가게 상인들이 나와 발우에 돈을 넣어 주었답니다. 그러다 바람이 불어 발우에 담긴 종이돈이 날리면 거지들이 쫓아와 주워갔답니다. 그렇게 몇 골목을 돌아 돈이 모이면 쌀을 사서 절로 돌아 왔는데 여유가 있으면 거지들에게 고루 나눠줬고요.
입적하실 때는 초파일 무렵이었는데 상좌를 불러서 “사흘 뒤에 갈 터이니 아홉 구멍을 막고 시신을 윗목에 덮어 놓았다가 초파일을 마치고 다비를 하거라”고 하시어 사월 육일 입적하시고 초파일을 마치고 사월 구일날 동화사에서 다비를 하였답니다.
보문스님 일대기를 정리하셨다고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노스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 때문에 그러신 모양이죠?
많은 분들이 노스님을 청풍납자의 표상이라는 말을 하시어 후학들에게 귀감이 될 분이라는 생각에 일대기를 한 번 정리해보려고 인연있는 분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료는 꽤 모았는데 결정적으로 오도송이나 법문, 법거량 자료가 없어요. 선사이셨는데 이런 게 아무리 찾아도 구할 수 없어서 마무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도봉산 망월사 선원, 지리산 칠불사 운상선원에서 선원장을 맡기도 하시는 등 출가하시어 스무 해가 넘게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상원사, 묘관음사 등 전국 선방에서 정진하신 걸로 압니다. 이처럼 출가하시어 선에만 뜻을 두고 정진하신 인연을 좀 들려주시죠.
첫 안거를 향곡스님이 계시던 월래 묘관음사 선원에서 났습니다. 그때 입적하신 휴암스님이 같이 한 철 살았어요. 아주 열심히 하셨어요. 다음 철에 도견스님, 근일스님을 모시고 살았죠. 그런데 나는 정작 결제 중에는 별 이익이 없었어요. 오히려 산철에 혼자 공부하는 게 훨씬 잘되었습니다. 산철에도 어디 가지 않고 계속 정진했어요.
그리고 수원 용주사, 상원사, 망월사, 해인사, 통도사, 극락암, 송광사, 칠불사, 봉암사 등등 웬만한 선원은 다 살아봤죠. 나는 도봉산 망월사가 정진하기에 좋았습니다. 특히 칠성각이 양명하고 힘이 나오데요. 땅이 마사토라 그런지 아주 좋았어요. 칠불사도 좋았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중 선원에서 공부할 때는 결제 중에 대중이 많으니 규칙을 지키고 대중 분위기도 살피면서 공부해야 하지요. 이것이 정진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방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한, 두 끼 굶어도 공부를 밀어붙이고 싶은 때나 좀 쉬고 싶은 때는 대중 선원에서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대중 선원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강릉 토굴의 노스님을 친견한 이야기
입산한 지 한 5년 정도가 되니 공부가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대중 선원에서는 별이익이 없는 것 같아서 “잘 사는 노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강릉 대관령 부근 토굴로 찾아 갔습니다. 그 노장님은 60대 중반으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한글로 겨우 이름 석자나 쓸 정도였고, 경전이나 어록을 볼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어쩌다 한 마디 던지는 말씀은 정곡을 찔렀습니다. 하루 종일 하시는 일이라고는 밭에 나가 농사짓고, 나무하셨어요. 나는 공양짓고 빨래하고 청소하였고, 저녁에 앉아서 정진을 같이 했습니다. 잠은 3~4 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루는 저녁에 정진하시다가 무릎을 탁 치시며, “아이쿠 큰일났네, 다 타내 다 타!”그러시면서 혀를 차셔요.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40리 아래 마을에 노스님을 잘 모시는 40대 부부가 살고 있는데 그 집에 불이나 타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어요. 가니까 1시간 전에 불이 나서 거의 다 탔어요. 그때가 12시쯤 되었어요. 돌아오니 노장님이 “어서 오게” 어디 어디에 불이 났지, 하시며 현장을 중계라도 하듯이 구체적으로 말씀하셔요.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어요.
다음 날 노장님을 모시고 가서 불난 집을 둘러 봤어요. 그 노장님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더군요.
얼마 뒤에는 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손님이 좀 많이 올 걸세. 한 열다섯 명분 밥을 하게” 하셔요. 그 전날 밥을 좀 많이 해놓았어요. 그래도 몰라 새로 여유있게 해놓았더니 열 세 분이 와서 열 다섯 명이 딱 맞게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 일 이후로는 노장님이 대단한 분으로 보이데요. 신심이 더 났어요. 그 후 6개월 정도 더 살다가 충청도에 볼 일 보러 가신다고 나가시더니 오시지 않았어요. 2개월 정도 기다려도 오지 않아 마침 오대산 북대가 비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대산으로 갔습니다.
오대산 북대에서 혼자 정진한 이야기
오대산 북대로 가서 1년 6개월 정도 혼자서 정진을 했습니다. 그때 혼자지만, 좀 잘 살았던 것 같아요. 노장님을 모시고 살면서 그런 광경을 보고 신심도 났고요. 북대에는 나무로 지은 집이었는데 방에 부엌이 달린 집이었어요. 그래서 가능하면 토굴을 나가지 말자. 세수나 삭발, 옷갈아 입는 것도 신경 쓰지 말고 공부를 해보자 해서 앉아서 하다가 졸음이 오면 방 안에 나무 의자 하나 두고, 천장에 로프를 만들어 졸음이 오면 의자에 앉아서 정진하다가 다시 또 졸음이 오면 일어서서 로프를 목에 걸고 정진했습니다.
나중에 힘이 들면 다시 앉아서 로프를 목에 걸고 하고, 밥은 매일하는 게 아니라 겨울 같은 때는 10일에서 15일치를 한꺼번에 해서 뒷방에 놓아두면 얼어요. 그것을 추운 곳이라 하루에도 몇 번 불을 지피니 데워서 김치하고 해서 먹었어요. 나중에 쌀과 보리쌀이 떨어져서 강냉이만 먹었고, 김치가 떨어져서 된장, 간장만 먹고 그것도 떨어져 소금에 찍어 먹었습니다. 세수는 물론이고 삭발, 방 청소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식기도 한 번도 안 씻었어요. 북대에서 내려 올 때는 거지 중에 상거지였어요. 북대에 거지중이 산다고 했답니다.
강릉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데 주인이 “나는 스님처럼 때가 많은 사람은 못보았다”고 할 정도였어요. 일체의 가식, 형식을 따지지 말고 정진만 하자. 그렇게 해서 혼자이지만,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가하시어 일념으로 화두 참구를 하셨는데 화두는 누구에게 무엇을 받으셨는지요?
화두는 수계 전에 노장님께 받은 “자네가 무엇인가?” 가 자연스럽게 “이뭣꼬?” 화두가 되어 그걸 계속 참구했어요.
젊은 시절에 공부하신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십시오.
저는 한동안은 보행정진을 많이 했어요. 보행도 일정한 곳을 다니기도 하고, 먼 곳까지 다니면서 하기도 했어요.
언젠가는 오대산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지 오르내리면서 정진한 적도 있었지요. 상원사에서 아침 공양을 하고,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서 간단한 소지품과 함께 조그마한 걸망에 넣고 월정사까지 내려갑니다. 그렇게 가다가 화두가 되면 몇 시간씩 서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개울가 바위 위에서 공부하는 흉내를 내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시장하면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고, 목이 마르면 그 옆에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로 갈증을 식혔습니다. 여름에 더우면 옷을 훌훌 벗어 제치고는 천진한 아이처럼 맑은 개울물에 첨벙 들어가기도 했어요. 옷이 더러울 때면 빨아서 바위 위에 널어두었는데, 한 두 시간만 지나면 햇볕에 바짝 말라서 기분 좋게 입을 정도가 되었지요. 그렇게 공부를 할 때, 망상은 별로 없었고, 세상에 갖고 싶은 것, 부러운 것도 없었어요. 이윽고 월정사에 도착하면 후원에 가서 저녁공양을 얻어먹고 상원사로 밤이슬을 맞아가며 올라가는 거예요. 가다가도 졸리면 아무 곳에나 앉아서 잠시 졸다가 올라가곤 했지요.
어느 날엔가는 밤에 그렇게 밖에서 정진하다가 깜빡 졸았던 가봐요.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옆에서 툭 치는 거예요. 캄캄한 밤이었는데,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무엇인가 시커먼 물체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개의치 않고 그냥 앉아 정진을 계속했지요.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툭 치는 거예요. 그러고는 어슬렁어슬렁 그냥 사라져 갑디다. 짐승이었는데, 상당히 컸어요.
순간 왠지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예감이 퍼뜩 들었어요. 그래서 걸망을 챙겨 서둘러 상원사로 올라갔지요. 상원사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거예요. 그 다음날까지 종일 쏟아지는 억수로 큰비가 왔는데, 오대산 주변에서 곳곳마다 물난리가 났다고 해요.
젊었을 때 정진하면서 생겨난 일화이지요. 그것이 무슨 짐승이었는지 지금도 궁금해요. 정진을 잘 하면 선신이 옹호한다는 말이 있지요.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올바른 수행자는 보호받아요. 그래서 어려운 위기도 비교적 쉽사리 넘기거나 재난도 미리 피할 수 있게 되지요.
선원에 정진하실 때 도반 중에 귀감이 될만한 분이 계셨으면 소개를 좀 해주시죠.
도반 중에는 훌륭한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 두 분만 거론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저는 누구를 보더라도 가급적 장점만 보는 편이에요. 사람의 단점에 대해서는 덮어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생각입니다. 그래서 도반들을 생각해도 그분들이 가진 장점이 먼저, 더 많이 떠올라요.
돌아가신 분으로는 휴암 스님 같은 분 참 잘 사셨지요. 공부도 참 열심히 하셨고, 명석하여 이론도 아주 밝으셨지요. 살아계셨으면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
젊은 수좌 시절 공부 도중에 회의나 좌절감 같은 것을 경험하여 포기하는 분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스님께서는 그런 회의는 없었는지요?
공부 도중에 그런 회의나 좌절감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하근기라 공부 과정에서 남보다 어려움이나 괴로움은 더 많았을 것입니다.
회의를 느끼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공부가 무엇인지 가장 기본적인 상식조차 모르고 시작했지만, 비교적 초기에 공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이것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명확하게 느꼈는데,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큰 힘이 되어 주었지요.
하지만 언제나 스스로가 부족한 점이 많고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늘상 공부를 보다 지혜롭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지혜, 지혜’ 이렇게 속으로 무척 강조했습니다.
손자병법에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말처럼 우선 나를 알고 화두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화두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이기려면 자기를 알아야 해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자신을 낮추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매일 스스로 반성하고 점검했어요. 화두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형성시켜 나갔다고 할 수 있어요.
매일 밤 화두가 성성하고 적적하게 들려 있으면 화두를 밀어붙였지만, 화두가 조금만 만족스럽지 못해도 잠들기 직전에 반드시 점검하고 반성했어요. 어떤 날은 몇 번씩이나 그렇게 했어요. 하루를 살고나면 과연 내가 잘 했는지 못했는지를 점검하고, 잘 했으면 무엇을 잘했는지 살펴서 더 잘하려고 노력했지요. 반대로 못한 점이 드러나면 왜 그랬는지, 과연 내 단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 반드시 고쳐야 할 점은 무엇인지 세밀히 따지고 점검했어요. 그래서 고칠 수 있는 것은 즉각 고치고, 바로 고칠 수 없는 것은 메모라도 해서 잊지 않도록 하며 차근차근 고쳐나갔어요.
그렇게 하니까 내가 성장하는 모습이 하루하루 피부로 느껴졌어요. 지혜로운 수행자라면 자기가 그렇게 자라나는 모습을 느끼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훤히 보면서 시골의 비포장도로를 운전하듯이 조심하며 살피면서 자기를 운전해 가야 해요. 그렇게 해서 멋지고 탄탄한 대로(大路)를 닦아가는 것이지요. 또, 자기를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자기도 알아야 하지만 화두의 성격과 참구 정도도 알아야 잘 들 수가 있어요. 그래서 화두를 지혜롭게 들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작가가 작품을 만들 때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붓듯이 화두를 들 때마다 매번 심혈을 기울이고 정성을 다했어요.
이렇게 나를 알고 화두를 알아 참구를 해가되, 가급적 실수가 없어야 해요. 즉 시행착오가 적어야 해요. 그래서 일취월장(日就月將)이 되고 승승장구(乘勝長驅)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참으로 간절하게 애쓰고 애써야 해요.
암자나 토굴 수행에 도움이 될 말씀을 해주십시오.
수행은 가급적이면 대중처소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중이 때로는 공부에 장애가 되기도 하고 지장을 주기도 하지만, 대중처소에서 수행하면 직, 간접적으로 대중의 경책과 도움을 많이 받게 됩니다.
하지만 공부에 진의(眞疑)가 나서 동중(動中)에 공부를 익힐 필요가 있을 때는 토굴이나 큰절의 뒷방을 얻어 마음껏 공부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토굴이나 독방은 오직 공부를 위해서 가야지, 공부 이외의 목적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또 토굴이나 독방을 쓰더라도 반드시 가까운 곳에 선지식이 있는 곳을 택해 지도를 받아가면서 수행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순수한 공부 이외의 이유로 대중을 떠나 수좌가 있는데, 수좌는 오직 공부를 위해서 토굴을 가고 옮기는 것도 공부를 위해서 옮겨야 합니다.
요즘 선원이 늘고 선승들의 숫자도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한편으로는 수행 풍토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보살행을 하지 않고 산중에서만 있다던가, 백장청규나 선농일치의 선종 가풍이 사라지고 좌선과 시주에만 의존하여 수행하는 풍토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이런 비판에 대하여 어떻게 보시는지요?
수행자는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또 무슨 경책을 하든지 받아들여서 조도(助道)가 되게 하고 수행에 이익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장청규와 같은 농경시대의 선농일치 가풍을 시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수행 환경과 수행자들의 근기가 옛날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행 환경과 근기에 맞는 수행 문화를 가꾸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도량 청소, 채전 가꾸기 등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운력을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1980년대 초에 봉암사에서 여름 안거를 났는데 오후 마지막 시간은 꼭 운력을 했습니다. 도량 청소, 풀베기, 채전 김매기 등등 한 철 동안 하루에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는 대중 운력으로 일을 했지요. 일이 끝나면 시원한 계곡에서 간단히 목욕을 하고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조금 있는 불평불만도 해소 되고 운동도 되고, 저녁 밥맛도 아주 좋아요. 그때 “아, 운력이 참 좋은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나더군요. 운력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 동중(動中)공부를 익힐 수 있습니다. 해제철에는 만행을 다니며 분수나 인연에 따라 보살행을 하거나 선행을 하면 발심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저는 젊은 스님들에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공부가 웬만큼 되었거든, 즉 동정(動靜)에 일여한 상태가 되었다면 주지나 원주나 무슨 소임이든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라”고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면 어려움도 있지만, 신심이나 발심의 계기가 되어서 오히려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 스님들은 너무 편해요. 편하면 감복(減福)하기 쉽습니다. 수행자일수록 적당히 노동도 해가면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최근 간화선에 대한 토론에서 어떤 선학을 하시는 분께서 “‘무’자 화두만 진짜 화두이고 ‘이뭣꼬?’등 다른 것은 화두가 아니다”라든가, “화두는 사유하여 깨닫는 것이다” 등등의 주장을 하시어 대중이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한 스님의 견해를 여쭙고 싶습니다.
그것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무’자 화두만 진짜 화두이고, 다른 일천칠백 공안은 공안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것이 과연 말이 됩니까?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 중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분은 없습니다. 체험도 없이 오로지 생각으로만 ‘그럴 것이다’하고 억지논리를 펴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특히 요즘 화두선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비판적인 이야기가 많다고 하는데, 선(禪)은 체험이 없으면 결코 입을 열 수가 없습니다. 체험도 몽중일여(夢中一如) 정도는 되어야 ‘화두가 뭐다, 선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어른들은 몽중일여도 안 되는 사악한 지혜로는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화두를 사유(思惟)하여 깨닫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화두 참구는 사유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의정(疑情)을 일으켜서 타파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타파하려면 반드시 삼매경지에 들어야 합니다. 삼매도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깊은 경지가 되어서 은산철벽이 되어야 드디어 깨치게 됩니다. 화두를 사유하여 깨닫는다는 것은 전혀 체험이 없이 생각으로 하는 말인데, 화두는 체험 없이는 일언반구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 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간화선에서는 화두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방법인가요? 화두 참구법을 좀 자세히 가르쳐 주십시오.
화두 참구자는 먼저 마음을 고요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려면 일체를 쉬고 일체를 놓아야 합니다. 마음이 그렇게 고요한 상태에서 화두를 듭니다.
화두 참구의 요령은 대강 네 가지입니다.
첫째, 화두는 의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공부한다’, ‘화두 참선을 한다’라는 말은 모두 화두에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정입니다. 화두는 오직 의정을 일으켜야 합니다. 화두에 의정이 크면 클수록 크게 깨칠 수 있고, 의정이 없으면 깨치지 못합니다.
둘째, 화두는 간절하게 들어야 합니다. 화두는 간절 간절하게 들어야 합니다. 결단코 안 하면 안 될 것처럼, 필연코 해야 될 것처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참선자는 늘 이마에 화두를 써 붙이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셋째, 간단(間斷)이 없이 해야 합니다. 화두는 끊임이 없이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가급적이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저녁에 잘 때까지 한 순간도 화두를 놓치지 말고 꾸준히 애써 보시기 바랍니다. 의외로 쉽게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넷째,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화두는 한 번 한 번을 예사롭게 들지 말아야 합니다. 예술가가 혼신의 힘을 쏟아서 작품을 만들 듯이 지극한 성심(誠心)으로 들어야 합니다. 이 공부는 어떤 마음 자세로 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러한 네 가지 요령으로 화두를 참구해도 잘 안 된다면, 그때는 ‘특별한 마음’을 내야 합니다.
특별한 마음의 첫째는 분심(憤心)입니다. ‘도대체 왜 나만 안 된단 말인가?’, ‘왜 나만 못한단 말인가?’ 이런 대분심을 내야 합니다.
둘째는 신심(信心)입니다. 그것도 그냥 신심이 아니라 깊은 믿음, 대신심을 내야 합니다. 참선자라면 불법과 심법(心法)과 화두에 대하여 철두철미하게 믿어야 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그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셋째는 발심(發心)입니다. 이것 역시 예사로운 발심으로는 부족합니다. 참으로 지극하게, 진정으로 뼛속 깊이 발심해야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수행하느냐에 따라 성취가 좌우됩니다. 참으로 간절하게 발심하여 밀고 나가면 분명 큰 성취가 있습니다.
넷째는 용맹스럽게, 그리고 지혜롭게 참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용맹심과 지혜로움이 있을 때 그토록 안 되던 화두가 들리게 됩니다.
화두 참선을 처음 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말씀을 좀 해주시죠.
참선을 하려는 사람은 우선 화두를 간택(揀擇)해야 합니다. 그러나 화두는 자기 스스로, 임의로 선택하지 말고 반드시 선지식에게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화두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지기 때문입니다.
참선자는 우선 마음을 고요히, 아주 고요히 해야 합니다. 평소에는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참선을 할 때는 일체 마음을 쉬고, 일체 마음을 비우고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오직 화두만 참구해가야 합니다. 그래야 화두에 의정이 일어나서 집중이 잘 됩니다.
참선은 가급적이면 매일 일정한 시간에 꼭 하시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좌선시간을 정해놓고 그것을 중요한 일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 외의 시간에도 항상 참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화두에 대한 확실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즉 ‘화두 참구는 반드시 해야 되고, 꼭 해야 되는 공부다. 이 공부는 도무지 안 할 수가 없는 공부다’라는 생각을 확고히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열심히 할 마음이 납니다. 그렇게 성심성의껏 해야 합니다. 요즘 수행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고들 하는데, 최상의 수행법은 화두 참선법입니다. 이런 확신이 서면 화두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지금 종단에서 추진하는 간화선 수행지침서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계십니다만, 수년 전부터 개인적인 원력으로 간화선 수행체계를 정리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간화선의 수행체계를 어떻게 세우고 계신지요?
입산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구참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심지어 노장 취급을 받게 됩니다. 무상한 것이 세월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이렇게 나이를 먹으니 여기저기에서 공부에 대해 물어옵니다. 처음에는 외면도 하고 다른 선지식에게 보내기도 하였지만 이 산중에까지 와서 물으니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말로는 부족해서 기초선원에서 강의한 것이나 여기저기에서 법문한 것을 테이프로 제작해서 드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미흡해서 화두 공부에 대해 요긴한 내용을 책으로 정리해 보고 있습니다. 약 400여 페이지가 되는 책입니다.
(그러시면 “스님, 한 번 보여 주시죠” 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호소하니 스님께서는 슬며시 방으로 가시어 두툼하게 제본한 책자를 가져와 보여주셨다. 외양은 이미 책 형태를 갖추어서 깔끔하게 제본까지 되어 있으니 책으로 바로 펴내도 될듯했다. 목차를 보니 1. 선이란 무엇인가? 2. 참선자의 선결 요건 3. 화두 참구법 등등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스님 바로 책으로 내시지요?” 하고 말씀드리니 아직 남에게 내놓을 만큼 정리하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혼자 틈나는 대로 살펴보면서 보완해 나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종단 차원에서 펴내는 ‘간화선 수행 지침서’는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번에 작업하고 있는 지침서는 실참실수 위주로 편찬하고 있기 때문에 참선자들이 뭔가 좀 알고 수행하도록 한 점에서는 매우 좋고 대중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정리된 지침서를 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종단에서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수행이라는 것의 특성상 지침서를 내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공부라는 것은 자기가 실제 경험을 통해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왕 내기로 한 것이니까 요즘 출가 수행자들이나 재가신도들의 근기에 맞도록 좀 자상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화두 참구에 도움이 되도록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어 책이 잘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선 수행을 하는 분 중에 간혹 계행을 방편으로 보고 이것도 초월해야 한다면서 서슴없이 파계하는 경우가 더러 보이는데 여기에 대하여 말씀을 좀 주시죠.
도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계를 지켜야 합니다. 스스로 근기가 약하다, 근기가 하열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일수록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야 합니다.
계(戒)는 수행의 기초가 되며 성스러운 보리(菩提)를 이루는 바탕이 됩니다. 계로 인해서 선정에 들어갈 수 있고 선정으로 인해서 큰 지혜가 나타납니다. 계행이 없이 삼매를 닦는다고 하더라도 번뇌를 벗어날 수 없으며, 청정한 지혜는 바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범망경』에서는 ‘만일 보살이 이 계를 받지 않고, 지키지 않는 자가 있다면 불종자(佛種子)가 아니다’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간혹 파계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수좌일수록 더 계행에 충실하여 여법해야 수행다운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얼마 전에 입적하신 석주 노스님 생각이 납니다. 노스님께서 잘 사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종단에서 석주스님에게 “전계사(傳戒師)로 모시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펄쩍 뛰셨다고 합니다. “나는 안 된다. 전에 건강이 안 좋을 때 신도들이 전복죽을 해주어 먹은 적이 있는데, 어떻게 전계사가 되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며 거절하셔서 주위 사람들이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계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
스님께서는 염불, 간경, 주력, 위빠사나 등 간화선 이외의 수행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사람은 여러 단계의 근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근기에 따라서 적절한 수행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근기가 하열한 수행자나 발심을 하지 못한 수행자일수록 단계적으로 그 사람에게 알맞은 적당한 수행을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수행은 스승을 잘 만나서 적당한 수행법으로 적절한 지도를 받으면 의외로 쉽게 바로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간화선 이외의 이런 수행법으로는 구경처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수행법으로 수행의 기초를 다져간다 해도 결국에는 화두 참선을 해야 확철대오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수행법은 화두 참선으로 가는 기초과정인데, 이런 과정을 밟더라도 역시 선지식의 지도에 따라 해야 합니다.
흔히 간화선을 하시는 분들께서는 간화선이 최상승 수행이라고 강조하고 여타 수행에 대해선 좀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세상에는 여러 가지 수행법이 많습니다. 그 많은 수행법 중에서 으뜸은 간화선 수행법입니다. 간화선을 최상승 수행법, 최고의 수행법입니다. 확철대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화두를 타파하면 구경처인 부처의 경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상정등각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최상승법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간화선 수행자들이 간혹 여타의 수행법을 좀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간화선이 최상승법’이라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그런 느낌을 주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옛 어른들은 한결같이 ‘오직 화두만이 확철대오할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남방에서 공부해 오신 어느 스님께서 얼마 전에“한국불교의 선 수행자들이 불성(佛性)을 뭔가 실체가 있다는 힌두교의 아트만처럼 이해하여 수행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비판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선(禪)에서는 불성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요?
이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아니 윤회니 하는 것은 이론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실제 느껴보지 못하면 입에 담기가 어려운 개념입니다. 그러나 체험을 하면, ‘아,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구나! 윤회가 참으로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그 즉시 느끼게 됩니다.
학문을 하시는 분은 반드시 체험의 바탕에서 하셔야 올바른 학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론으로, 또 생각으로는 아무리 궁구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나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은 체험 없이는 입을 열지 않는 것이 학자의 양심일 것입니다.
불교 수행과 외도 수행의 차이가 무엇인지요?
잘은 모르지만, 단전 호흡을 위주로 하는 단학, 국선도 등등 소위 ‘제3 수련’이라 하는 것은 수행법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간화선은 진리를 깨달아 생사를 해탈하는 순수한 수행법입니다. 건강을 위해 수련하는 것하고 생사를 해탈하는 수행은 차원이 다르지요.
간화선을 참으로 제대로 해서 동정(動靜)에 일여한 상태가 되면 마음이 그렇게 고요하고, 고요하면 편안해져요. 편안하면 맑아져 성성적적(惺惺寂寂), 적적성성(寂寂惺惺)한 경지에 이르게 되지요. 그러면 법열(法悅)을 느낍니다. 오묘하고도 미묘하여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런 법열을 느끼는 정도가 되면 웬만한 병은 저절로 나아요. 수행만 잘 하면 건강은 저절로 좋아지니까 건강에 따로 신경 쓸 필요가 없지요.
그렇지만 간화선 수행은 발심이 되지 않으면 바로 공부의 효과를 체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보자가 간화선을 하려면 공부가 좀 필요하지요. 그런데 단전호흡 같은 소위 제3수련은 초기에 바로 효과를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하지만, 간화선을 공부해서 화두 공부의 재미를 직접 느껴보세요. 건강은 저절로 좋아지고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며 매사에 주체적이고 당당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건강만을 위주로 하는 수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요즘 일반대중들도 출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서른 명 가까운 상좌를 두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출가하러 오는 분을 어떻게 지도하시는지요?
절에 와서 출가하겠다고 하면 한 사흘 정도는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하죠. ‘참으로 출가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요? 출가란 도피가 아니에요. 바로 인천(人天)의 사표(師表)가 되는 길입니다. 대단한 결심이 없으면 안돼요. 그래서 거듭거듭 심사숙고해서 뜻이 확고하면, 출가하라고 합니다. 그 후엔 사람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고 하지요. 출가할 사람이 불교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발심이 되었는지, 수행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특별한 것이 뭔지, 성격이나 개인적인 흠이 있는지, 그런 것을 잘 점검해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결정하는 거예요. 그 사람에 맞는 지도, 적절하고도 특별한 지도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수행하는데 방해되는 점은 고쳐 훗날 공부 잘하는 바탕을 만들도록 지도하는 것이지요.
불교는 최상의 길이고 무상심심미묘법(無上深甚微妙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내가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빛이 나기도 하고 반대가 되기도 합니다. 불교의 원론적인 이해와 이에 상응하는 발심과 신심이 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축서사는 아직 불사가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다만, 선원(禪院)은 언제 개원할 예정인가요? 또 축서사에 선원을 여시는 특별한 뜻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해주시죠.
흔히 선원의 문화가 지대방의 역사라고 합니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대화와 경책, 상호 가르침이 오고가는 동안에 배우는 것이 많아요. 신심, 발심, 분심이 그 과정에서 탁마됩니다. 그런데 참 아쉬워요. 요즘 들어서는 전통적인 지대방 문화가 사라지는 감이 있거든요. 대중방에서 정진하더라도 방은 각자 따로 쓰는 곳이 늘어나기 때문인 듯해요. 선원의 독특한 지대방 문화가 강화되고 활성화되어야 해요. 물론 개인 위주의 선방이 장점은 있지요. 그렇지만 오히려 단점이 되어 공부 분위기가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지대방 문화가 위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대중처소는 어디까지나 대중의 힘으로 생활하는 곳입니다. 대중이 운력할 때는 안 따를 수 없지요. 그렇게 대중을 따르면서 대중과 함께 공부하도록 서로서로 탁마해 가는 겁니다. 그게 좋아요. 대중처소라도 독방이 필요는 하지요. 그러나 독방은 어른이나 나이 많은 스님들에게는 드려야죠. 그 외 보통 스님들은 큰 방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렵고 괴롭더라도 대중방 생활을 해야 돼요. 그 자체가 수행이 되는 겁니다.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이죠.
사실 요즘은 수행자들이 너무 잘 먹어요. 그리고 너무 편하지요. 수행자가 잘 먹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옛 어른 말씀에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이라고 했습니다. 춥고 배고파야 도를 닦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수행자는 적당하게 춥고 배고프게 공부하는 게 좋아요. 요즘 다들 그런 것을 싫어하고 풍족한 것만 좋아하는데, 사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공부에는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먹는 것은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먹으면 됩니다.
공양도 하루에 두 끼만 하는 게 좋아요. 차담은 낮에 간단히 한 번만 하고 일체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일은 수도자 스스로 자연스럽게 해야지요. 도량 청소니, 풀뽑기니, 채전 가꾸기니 절집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 이런 일들은 알아서 하는 분위기가 돼야 해요. 그래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는 그런 선방이 되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산중에서 공부하면 쌓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번뇌망상도 생겨나지요. 세속에 얼른 나가고 싶기도 하고, 해제나 방선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고 활동하지 않으면 이런 것들이 더 쌓이기 쉽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이나 몇 시간 정도 일하고 샤워하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번뇌망상이 저절로 없어지고 건강도 좋아집니다. 일하면서 수행하는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참선이 이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요?
요즘 세상이 점점 복잡다단해지고 있지요? 다들 괴롭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경제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옛날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나는 매스컴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 경제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경제가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에요. 필요 이상 많이 가지려고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요. 물질을 과도하게 지향하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으로 빈약하다는 얘기예요.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밖으로 추구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되지요. 그러면 괴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거예요.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데 스스로 불행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수행은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 헐떡거리는 마음을 고요하고 안정되게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이것이 꼭 필요하지요. 수행하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번뇌 망상을 없애어 마음을 고요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게 수행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행복해집니다.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바른 방법은 수행뿐이에요. 고요하고 맑은 기분을 느끼면 오묘하고,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보통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 권세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하지요? 그러나 그건 무상(無常)합니다. 그런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지요. 그러나 수행은 다르거든요. 수행에서 느끼는 아무리 조그마한 것이라도 두고두고 잊지 않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수행에서만 느낄 수 있어요. 진정한 수행이 행복의 길입니다. 화두를 들어 진의가 나고 행복을 느끼면 웬만한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화두 공부를 열심히 하면 병이 저절로 치유되고 그러면 건강 장수하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제일로 칩니까? ‘건강ㆍ장수’를 제일로 여기지요? 그런데 수행을 하면 건강과 장수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어요. 그러니 수행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요즘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화두 공부, 즉 간화선 수행이라는 거예요.
몇 가지만 더 생각해 봅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일수록 남보다 앞서고 잘 살기를 바라고 성공을 바라지요. 바로 이런 사람들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수행은 근본 지혜를 개발해 주거든요. 법열(法悅)을 느낄 정도의 수행을 한번 해보세요. 자기도 모르게 근본 지혜가 서서히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 화두 공부가 된다는 것은 화두에 집중력이 생겨났다는 얘기인데, 집중력이 생겨나면 일을 잘 하겠지요? 그러면 생산력이 월등히 높아지는 효과가 따라 오는 거예요. 수행을 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며, 건강해져서 무병장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혜로워지고 집중력이 생겨나는 등 많은 좋은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렇게 해서 남보다 앞서 가게 되고, 잘 살게 되며, 아주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간화선에서 깨달음, 견성, 구경각을 너무나 강조해온 나머지 간화선 수행 과정에서의 좋은 점은 이야기를 안 했어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깨달음, 견성은 너무 거창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일반인들은 “화두 공부를 하면 어떤 이익이나 효과가 있느냐?”를 따지거든요. 이런 사람들은 위해 방편을 시설해야겠어요.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했어요. 마땅히 병에 따라 알맞은 약을 주어야지요. 이제는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수행 과정에서 얻는 좋은 점도 많다는 것을 이야기해 줄 때가 되었습니다.
과거 스님들께서 견성, 깨달음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해주셨으니 이제는 화두 수행을 초보 단계, 낮은 경지부터 자상하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참선을 하겠다는 마음을 낼 수 해 주어야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간화선 수행 지침서?? 같은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옛날 어른 스님들의 말씀 위주로 되어 있어요. 좀 아쉽습니다. 참선 수행 과정의 효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참선을 하면 얼마나 좋은 효과를 느낄 수 있는지 하는 것도 알게 해주면 다들 참선하고 싶어 할 거 아녜요?
재가불자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화두를 잘 들 수 있는 방법이 있으시면 좀 가르쳐 주십시오.
화두 참구의 요체는 간절하게 성심성의껏 간단(間斷)없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심, 대분심, 대의정을 이야기 하는 것이죠. 일반 재가자들이 화두를 드는 것도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재가 공부인이 스님들처럼 선방에서 정진하기란 쉽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할 수 있을 때 화끈하게, 열심히, 바짝 하도록 밀어붙이면 의외로 잘 될 수가 있어요. 일을 하든지, 시장을 보든지, 오고가는 데 꾸준히 지속적으로 화두를 드는 것이 좋습니다.
일을 해야 하는 재가인들은 스님들처럼 전적으로 공부만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잖아요. 그래도 토ㆍ일요일, 공휴일 쉬는 날에 집이나 절에서 화두를 하루나 이틀 집중적으로 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의외로 좋습니다.
흔히 재가 생활인은 참선을 스님들이나 하는 공부로 치부하고 해보면 좋다고 권유해도 어려워하여 “나는 근기가 낮아 …”하면서 마음 내기를 두려워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게 한 말씀해주십시오.
화두 공부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의외로 쉽게 할 수도 있어요. 육조 혜능 대사가 “법에는 남북이 따로 없다”고 말씀하셨듯이 선은 남녀, 노소, 출재가를 막론하고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요는 해보겠다는 첫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지요.
또 화두를 들기 전에 마음을 쉬어 고요하고 아늑하게 해야 돼요. 그렇게 하고 “이뭣꼬”화두만 분명하게 들면 의외로 화두가 진하게 다가올 수 있어요.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좋습니다. 규칙적으로 화두에만 집중해 보세요. 그러면 화두 공부의 재미를 알 수 있어요. 화두 공부에 재미가 붙으면 몇 십 분, 한 두 시간이 금방 갑니다.
불교를 이론적으로 배운 이들은 참선을 해야 합니다. 선을 몰라서는 불교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가 없지요. 화두 공부에 대한 성격과 이론을 좀 공부한 다음 직접 체험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선은 마음을 고요하게 밝게 하는 것인데, 화두 이상의 방법이 없습니다.
선에서 돈점 논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 정리가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간화선 수행이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십니다. 선 수행을 전문적으로 실참실구(實參實究)하시는 분들은 돈오돈수로 주장하시고, 선학을 하시는 분들은 돈오점수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깨달아 보지 않으면 확실하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거든요. 돈오돈수냐, 점수냐를 이론적인 생각으로 따지지 말고, 깨쳐 보고 확실하게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론적인 생각으로 이야기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깨달음입니다.
요사이 이 봉화 지역에 조용히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이 모여 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여기 봉화는 태백산을 중심으로 왼쪽 좌청룡에 해당하는 소백산맥과 오른 쪽 우백호에 해당하는 태백산맥에 둘러싸여 있어요. 아주 청정한 천혜의 자연 지리를 갖추고 있지요. 그래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어느 골짜기에는 스님들이 30여 명이나 여기저기 토굴을 지어 공부하고 있을 정도예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스님들 토굴이 많기로는 지리산 다음으로 많을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1994년 개혁회의 기간에 입법화되고 1997년에 개원한 종립 동화사 기본선원 초대 운영위원장을 맡으시어 기본선원의 개원과 정착에 노력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기본선원을 설립하게 된 인연 이야기를 좀 들려주십시오.
1990년대 초반일 거예요. 그 무렵에 ‘수좌계가 이래서는 안된다’하고 휴암 스님, 인각 스님, 혜국 스님 등 구참 스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수좌들의 정진 분위기와 신심, 발심 정도가 좀 이완되어 있었지요. ‘뭔가 분위기를 쇄신할 수는 없겠는가?’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수좌 사관학교’ 같은 교육과정을 개설해서 신심, 발심을 철저히 다진 인재를 키워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종단개혁 사태를 맞았지요. 마침 개혁 종단에서도 승가교육체계를 세우면서 강원, 동국대, 중앙승가대를 기본교육기관으로 지정하여 승려가 되려면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고 제도화 논의를 시작했어요. 이때에 수좌계에서 이론(異論)이 제기됐어요. 선을 하려고 발심 출가한 이들을 강원이나 불교대학으로 4년간 묶어 놓으면 안 된다는 거였지요. 그래서 길을 터주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 기본교육기관으로서 기초선원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름이 기본선원으로 바뀌었고,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997년 개원 당시에는 어려운 여건에서 출발했습니다. 교과목이나 교재도 수좌들이 모여 의논해서 선정했어요. 작년부터는 수계 기마다 한 도량에 상주하면서 결사하듯이 공부하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평가가 좋고 정착되었다고들 긍정적으로 평합니다. 좋은 현상입니다.
1994년 개혁회의 개혁불사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지금 중앙 차원에서 승가교육 제도 개혁이 다시 공론화되고 있습니다. 지금 교육원에서 승가교육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양한 개혁안을 논의 중에 있습니다만, 스님께서는 이 승가교육 개혁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신지요?
승가교육은 대폭 개선이 필요해요. 특히 행자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지금은 각 절에서 알아서 가르치고 20여일 간 집체교육해서 마치거든요. 1 ~ 2년간 한 곳에 모아 행자 기초과정을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출가한 직후는 발심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가르치기도 아주 쉽습니다.
또 승려도 엄선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백, 천 사람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을 바르게 정확하게 키워내야 합니다. 종단 차원에서 행자교육장을 상설 운영해야 합니다. 아예 행자 교육을 대학 3 ~ 4년 과정 정도로 되면 좋겠어요. 또 사미 과정을 행자 과정으로 연계시켜도 되겠지요. 아니면 지금 강원을 대학원 과정으로 승격시켜도 좋지요. 흔히들 ‘중물 들인다’고 해서 스승 밑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집체교육을 놓치면 안 됩니다. 행자는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행자 교육 도량이 마땅치 않다면 중앙승가대학교를 그렇게 할 수도 있잖아요? 행자 때가 교육하기가 가장 좋습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조금 더 말해봅시다. 나는 지금 정부의 새 교육부총리(김진표 부총리)가 취임할 때 한 “기업에 맡는 인재교육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학교를 나와도 현장에 가서 다시 배워야 한다면 학교 교육의 효용성이 없는 것입니다. 회사나 공장에 가면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스님으로서, 인간으로서 인격을 갖추고 현장에서 즉각 포교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강원 교육은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요. 졸업하면 몇 년 지나야 설법을 할 수 있지요. 바로 할 수 있어야죠. 신도회 지도도 바로 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게 안 되면 죽은 교육인 것이죠. 그만큼 멀어지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입니다. 한국사회도 늦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불교가 더 뒤떨어져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종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사회에서 지도자, 리더, 선봉에 서야 합니다. 현실에 맞는, 현실을 아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신문을 보신다고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선납자는 신문을 멀리 한다고 알고 있는데…
수행자일수록 공부를 할수록 세속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공부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법문을 하더라도 세속의 삶에 도움이 되어야 공감을 얻을 수 있어요. 상당법문을 보면 내용은 참 좋지요. 그렇지만 생활인들에게 얼마나 직접적인 도움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볼 때는 아쉬움이 많아요. 아무리 좋은 법문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인들에게 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문이 좋은 법문이고 효과도 좋습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고 봐요.
스님께서 평소 생각하시는 조계종 포교의 방향이 있으시다면 좀 말씀 해주시죠.
불교는 반드시 수행 차원에서 포교를 해야 해요. 스님이라면, 누구든 포교사입니다. 주지, 교수, 강사 등등 뭘 하든 수행이 밑바탕이 되어 자기 소임을 보아야 제대로 소임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뭘 하더라도 체험이 없으면 안돼요. 이론, 지식만으로 바르게 계도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체험을 바탕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포교도 수행의 바탕에서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불교도 어렵게 될 것입니다. 불교가 수행에 바탕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살 길도 수행을 떠나서는 앞으로 장담할 수 없을 거예요. 만약 이론적으로 학문적으로 한다면 살 길이 점점 막혀갈 것입니다. 이론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에요. 이론도 중요하지만 행정이든 포교든 불교는 모두 수행 위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곳 축서사는 산중 깊은 곳에 위치했지만, 읍내에 포교당과 불교교양대학을 개설하는 등 지역 교화에서도 모범적인 도량으로 평가합니다. 앞으로 구상하고 계신 것이 있으시다면…
외부에서는 그런 평들을 하신다니 고마운 말씀이긴 하지만, 아직 초보 단계라고 생각해요. 나는 산중에 있지만, “스님이라면 누구나 포교를 해서 신도를 늘리고 지역사회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또 “봉화든 나라 전체든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진정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교적 가르침 이상이 없잖아요? 그런 가르침이 있으면 그만큼 잘 살아야지요. 이런 마음으로 하다 보니 안정 되어 가고 있습니다.
금년 봄에는 읍내 불교교양대학의 강사도 보강할 겁니다. 마침 비구니스님 중에 좋은 분이 계세요. 봉녕사 강원을 나오시고 대학원을 졸업하여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인데 이번에 강사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또 절 불사가 마무리 되면 일요법회도 정기적으로 열려고 해요. 전국에 젊은이들이 호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해야지요. 산사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도록 기회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법회도 일반 법회와 참선 법회를 나누고, 참선 법회는 참선 정진 위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끝으로 불자들에게 한 말씀을 해주십시오.
불자 여러분! 여러분은 대단히 복이 많은 분들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기 때문이지요. 이 말은 어디에 가서든 누구에게든 떳떳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불교는 예사스런 종교가 아닙니다. 아침 저녁으로 천수경을 독송하시는 분이 많지요? 천수경 처음에 “무상심심미묘법(無上深甚微妙法)”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위 없는 깊고 깊은 미묘한 법이라는 뜻이지요.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불법은 지금까지 인간이 발견한 최상의 진리예요. 여러분이 수행을 해서 직접 체험해 보면 알게 되요.
“아, 이것이구나! 오직 이 길 뿐이구나!”
이런 느낌을 받을 거예요. 불교 수행은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고,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것이고, 누구든 안할 수는 없습니다.
수행을 깊게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과 보람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슬기롭게 사는 길
불자야,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며 즐겁고 명랑하게 살아라. 비록 생활이 어렵고 괴롭더라도 행복의 그림을 그려라. 그린 것처럼 현실로 다가오리라. 인생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곤란은 그림자 같이 따르는 것, 참고 견디면 복이 되리라.오늘 네가 가난하거든 베풀지 않았음을 알며, 네가 병들었거든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음을 알며, 네가 외롭거든 덕행이 없었음을 알며, 너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이가 있거든 업신여기고 괴로움을 주었음을 알며, 지금 이 고통은 네가 스스로 지어서 받는 것,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랴. 밝은 내일을 바라거든 좋은 씨앗을 심어라.
입은 화의 문이니 지극히 조심하여, 몸으론 바른 행동만 하라. 사람은 모름지기 계율을 생명처럼 여기고 부정한 것은 원수처럼 대하고 청렴하고 결백하여 대쪽같이 살아야 하느니라. 품행은 방정하고 인격은 고상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느니라. 애욕보다 더한 불길이 없고 성냄보다 더한 독이 없으며 어리석음보다 더한 파멸이 없느니라. 사람을 대하되 자비와 친절로 예의를 갖추고 신의와 겸손을 잃지 말라. 생활은 검소와 절약을 신조로 삼고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인색하지만 남에게는 희생과 봉사의 미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보시하는 만큼 즐거움이 없으며 기쁨을 주는 만큼 보람된 일이 없으며 용서하는 만큼 아름다움이 없는 줄 알라. 미물이라도 내 몸처럼 보호하며 어질고 착하게 살아가면 정토가 가까우리라.
성공을 바라거든 근면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일하라. 어떤 환경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일념으로 살아가라. 인생은 노력한 만큼 가치가 있느니라.
생애의 진정한 행복은 도에서만 느낄 수 있고 도를 떠나 인생을 논할 수 없음을 알라. 청춘을 불사르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도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으리라. 무상은 신속하고 오늘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 백년을 부끄럽게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이 살아라.
-인터뷰 : 박희승 | 조계종 불학연구소 연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