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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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게 연재 제1구 - (학인 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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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람지기 작성일24-08-31 16:45 조회68회 댓글0건

본문

法 性 圓 融 無 二 相 第一句

法性圓融하여 두 모습이 없고

 

法性이란 諸法本性, 存在를 존재이게 하는 것, 本性으로 하는 것이 法性이다.

 

華嚴經에서는 法性이란 存在眞實로서 不變하는 本性을 가리키는 것이다. 법성은 有形 無形 모든 存在本性을 이르는 말이다. 그리하여 萬物의 원리를 法性이라 하고, 서로 서로 다르면서 融合하는 도리를 法性이라 한다.

 

왼손과 오른손이 분명 다르지만 왼손과 오른손의 生命線은 한 곳에 있으며, 머리와 발은 각각 다르지만 머리의 生命 발의 生命 根本은 하나에서 기인하고 있다.

 

그래서 은 각기 다르지만 법과 성이 圓融해서 그 根本은 둘이 아니다. 시작이 끝이며 끝이 곧 시작이다.

법성은 圓融無礙해서 통하지 않은 것이 없고 따로따로 存在하지만 그 根本은 하나로 통한다. 그래서 法性圓融無礙하다고 하는 것이다.

形像本質이 하나에서 비롯되고, 하나로부터 始作해서 하나로 돌아온다.

存在性品인 법성은 하나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다. 몸과 마음이 그러하고 너와 내가 그러하다.

 

圓融이란 모든 現相各各의 속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서로 걸림없이 원만함, 즉 큰것과 작은 것이 圓融하고 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圓融하여 막힘없이 서로 통하는 것을 원융이라 한다.

宇宙本質 生命本質이 원융무애하고 그 根本寂靜해서 貧富貴賤을 막론하고 不動한 것이다. 佛像에는 부처가 없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常住說法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圓融 圓融會通 圓通無礙가 다 비슷한 말이다. 宇宙가 충돌하지 않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바로 圓融無礙하기 때문이다.

지구 하나만 보더라고 一年 四季節 한 달 하루 24시간이 정밀하게 움직여나가는 이것을 圓融無礙하다고 하는 것이다.

 

法性眞實하여 두 모습이 없으니 法性淸淨하기 때문이다. 法性은 스스로 淸淨하여 모습이 없으니 虛空과 같다.

淸淨本來 참됨과 속됨 깨끗함과 더러움 등의 모든 相對되는 모양을 떠난 것이다.

또한 두 모습이 없다는 것은 分別이 없다는 것, 있다 없다 옳다 그르다 너다 나다 하는 그 어떤 것에도 執著 分別이 없는 것이다.

 

法性은 원융하여 일정한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無二相이다. 법성이란 一切存在이고 은 그 性品으로서 圓融한 것이다. 그래서 법성은 存在로서 그 성품이 원융한 것, 또는 그 성품이 원융한 존재이다. 그 원융함을 거듭 강조해서 法性圓融이라고 한다. 모든 存在는 이 법성의 원융한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法性性起이며 性起法性이라 할 수 있다.

 

圓融辭典的 說明으로는 모든 이치가 하나로 융화되어 구별 없고 방해됨이 없이 無碍함이다. 그러면 원융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가?

 

法性圓融이라 함은 법계 모든 存在가 다 同等하여 두 모습이 없다는 것인데 하나뿐이기 때문에 둘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모습뿐이기 때문에 두 모습이 없는 것이 아니다. 둘이면서 하나이고 두 모습이면서 한 모습이다. , , 넷 다양하면서도 하나이고 한 모습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의상 스님이 法性偈를 지을 때 依據華嚴經에도 물론 법성이라는 用語가 수 없이 나온다. 一乘法界圖에서 一乘, 法界와 아울러 법성을 중시한 것으로 보아 全體내용이 법성임을 짐작할 수 있거니와 법성이라는 用語가 직접 쓰인 용례 또한 수없이 많다. 특히 부처님은 법성을 了達하신 분이고, 普賢菩薩을 위시한 수많은 청법대중 보살들이 모두 同一 法性이라고 한다.

모든 부처님 眞實하여 二相이 없으니, 법성이 淸淨하기 때문이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 모든 부처님을 분명하게 알고자 한다면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 것이다.

                            - 夜摩宮中揭讚品 -

 

華嚴經 제일게로 회자되고 있는 唯心偈이다. 一切唯心造60권 화엄경에서는 心造諸如來飜譯되어 있다. 마음이 如來를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法界性 즉 법성의 一切 存在는 바로 그 마음이 如來를 만드는 여래이고, 如來性起임을 알 수 있다. 여래성기는 곧 如來出現이다. 여래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다는 것이 곧 부처님 如來出現하시는 것이다.

 

法身頌

嘉州牛喫草 益州馬腹脹 天下覔醫人 炙豬左膊上

 

가주의 소가 풀을 먹으니 익주의 말이 배가 부르다. 天下의 의인을 찾았더니 멧돼지 왼쪽 허벅지에 뜸을 뜨더라.

                            -中國華嚴 初祖 杜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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