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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하게 하는길(고우 큰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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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법융 작성일06-06-11 22:01 조회2,419회 댓글3건

본문


범어사 설선 대법회(가장행복하게 하는길,참선수행)/고우스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여기 들어오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신도님들이 모이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정말로 많은 분들께서 오신 것 같습니다.


작년에 제가 서울에 갔을 때 보다 더 많이 오신 것 같아요.


불교에 대해 알고 싶은 열망이 부산에는 전국적으로


특별한 곳이라는 것을 그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서 불교를 이해하고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신 점을


저는 정말 오늘 들어오면서 놀랄 정도로 느꼈습니다.




작년에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현대불교에


이 자리를 다시 마련해주시고 범어사 주지 스님 이하


소임 스님들께서 불교를 어쨌든 많은 사람에게


알려가지고 생활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시겠다고


마음을 써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 불교가 불교라는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소린데요,


사실은 간단치는 않습니다.


모두들 어렵다고 얘기를 하지만


우리가 노력하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한몫에 다 알기는 어렵지만 조금 조금씩 이해하면서


그것을 생활에 적용을 해 나가다 보면


뭔가 얻어지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을 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많은 도움은 못 드리더라도


불교에 대한 이해,


저는 그것을 정견이라고 합니다.


정견을 세우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자고


여기에 앉아 있습니다만


그것이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대로 열심히 몇 마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불교를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얘기하는 사람이 있고


얘기를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불교를 우리가 얘기를 한다면


이것은 선적으로 표현을 한다면 사슴을 놓고 말이라고,


제 입장에서 보면 거짓말하는 꼴이 됩니다.


얘기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입장에서 불교를 정확하게 표현을 한다면


사슴을 놓고 말이라고 거짓말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또 우리가 고귀한 신분인데 하천한 신분으로


전락하려고 노력하는 것 밖에 안 된다고 표현을 합니다.


왜 이렇게 표현을 하는가 하면


그 자리는 본래 완성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또 그 자리는


말로나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해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는 부처라 해도 거짓말이고


중생이라고 해도 거짓말이고


번뇌라 해도 거짓말이고


지혜라 해도 거짓말이고


구속되어 있다고 해도 해탈돼 있다 해도 거짓말입니다.




왜 제가 서두에 이런 말을 드리는가 하면


이런 말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으키고 있는 생각을


멈추게 해야만 불교를 바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것을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흔히 우리는 마음을 비운다고 그럽니다.


그런 마음에서 제 얘기를 들으시면 제가 별 실력은 없지만


듣는 효과가 배나 상승되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서두에 드립니다.




다시 말해서, 불교는


설하는 사람이 있고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얘기하면


거짓말하러 이 자리에 올라와 잇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거짓말을 통해서


우리 존재원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제 지금부터 거짓말에 조금 더 부연을 드린다면,


그렇다면 불교는 무엇인가,


그러면 불교는 우리 생활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무엇인데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은 분은 어떤 사람인가?


깨달은 분하고 우리하고 어떤 차이가 있기에


우리가 그 가르침을 배우려 하고


생활하려고 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것인가?


깨달은 분의 가르침은 우리하고 어떤 차이가 있느냐?


여러분들도 굉장히 궁금하실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은 부분은 우리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느냐?


그런데 실제는 차이가 없습니다.


꼭 같습니다.


꼭 같지만 우리는 그 효능을 제대로


발휘를 못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차이를 이해하면


부처님 가르침이 뭐다하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리부터 얘기를 한다면,


우리가 나를 쳐다보고 밖의 세상을 한번 쳐다보는데


쉽게 얘기하면 나를 쳐다보는 것은 인생관이고


바깥을 쳐다보는 것은 세계관이라고 얘기해도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를 쳐다보고 세상을 쳐다보는 그 시각이


부처님하고 어떤 차이가 있느냐?


부처님은 당신 스스로 쳐다보는 것 하고


이 바깥세상을 쳐다보는 것하고,


내가 내 자신을 쳐다보는 것과


바깥을 쳐다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잠깐 설명해 드리면,


우리는 모든 것을 형상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수 천 명이 모여 있습니다만


전부다 우리는 현상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어떤 물건 어떤 것도 좋습니다.


그 형상만 쳐다보고 그 형상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이것은 우수한 거다, 열등한 거다


이것은 귀한 거다 천한 것이다


이렇게 현상만 쳐다보고 계속 분별을 합니다.




심지어 암연 같은 데서는 그 형상만 쳐다보는 사람을


부처님은 장님에다 비유를 합니다.


부처님은 장님이 아니고 눈뜬 사람입니다.


이 장님이 길을 걸을 때 부딪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상처를 많이 입습니다.


상처를 입은 단계에서 그 상처가 곪아 터지고


우리는 몹시 고통을 느끼면서 그렇게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만 장님이냐 하면 코, 입도 장님하고 같아서져서


모든 것을 취사선택하고 비교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길을 걸어간다 말입니다.


이 길이 인생의 길이죠.




그래서 끝없이 귀, 눈, 입이 나를 학대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만 학대하면 괜찮은데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도 함께 학대를 한다 말입니다.


제가 이런 예를 드니까 아까 강주 스님이


스님 법문할 때 마다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하는데,


앞집은 그랜저인데 우리는 왜 티코냐?


옆집 애는 서울대를 다니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냐?


그러면서 자기도 학대하고 주변도 괴롭힙니다.


제가 좀 심하게 말씀을 드린 겁니까?


절대 심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그런 식으로 비교하고,


우열을 따지고 취사선택하면서 국가는 국가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세계는 세계대로 계속 주변 사람을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역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또 우리 가정만 해도 한국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시듯이


이혼율이 세계에서 두 번째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 학대하고 남을 학대하고 끝없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하고 중생하고 다른 얘기입니다.




제가 좀 심하게 비교해서 얘기 드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심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번 조계사에서 신도 교양과정을 마치고


신도님들이 몇 분 토굴에 오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어떤 젊은 보살이 가슴을 치더군요.


스님 말씀 듣고 나니 너무 억울하다는 거예요.


자신은 자신이 스스로를 학대하는 줄 몰랐다는 겁니다.


우리는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 같은 경우는 이런 말씀을 합니다.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자신의 허물을 봐라.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학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밖에서 동기유발을 하더라도 자기가 자기를 보호하면


절대로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남이 나를 화나게 만들더라도


내가 화내는 것은 결국 내 몫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은 남이 나를 화나게 만들더라도


자기가 화를 안내고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인데,


남이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고 해서


내가 화를 내면 그것은 내 몫이잖아요.


그래서 남이 나를 화나게 하는 그 허물을 보지 말고


자기가 화를 내는 자기 허물을 보라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부처님하고 다른 면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부처님은 자기를 어떻게 보고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제가 비교를 해드리는 겁니다.


댓글목록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고우스님의 법문을 다시 이곳을 통해 읽어보니 더 새롭습니다. 좋은 법문 감사드립니다.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학대하지 말고 남의 허물을 보지 말고 자기 허물을 보며 살아가겠습니다.

일로행님의 댓글

일로행 작성일

설선 대법회에서 고우 큰스님 법문 듣고 이곳에서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법융님 감사드립니다. 축서사 큰스님 법문도 감사드립니다. 성불하십시요._()_

보덕행님의 댓글

보덕행 작성일

늘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법문해주시는 고우큰스님이시지요. 잘 읽었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