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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에서 침묵을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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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상행 작성일11-12-04 00:13 조회2,915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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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에서 침묵을 / 법정스님 겨울철 나무들은 그대로가 침묵의 원형이다. 떨쳐버릴 것들을 죄다 훌훌 떨쳐버리고 알몸으로 의연히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침묵의 실체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저 산마루에 빽빽이 서 있는 나목들은 겨울 산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허공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나무들의 자태가 더욱 정답게 다가선다. 산마루의 나목림 사이로 달이 떠오를 때, 나무와 달은 둘이면서 하나를 이룬 겨울 산의 신비롭고 황홀한 아름다움이다. 겨울 숲을 대하고 있으면 우리 안에서도 침묵이 차오른다. 침묵의 의미를 거듭 챙기게 된다. 평소에 무심히 쏟아버린 말의 가벼움과 침묵의 무게에 따른 그 상관관계를 헤아린다. 추위를 피해 겨울 산을 떠났다가도 침묵의 숲이 그리워 다시 찾아드는 것은 물을 벗어난 어류들이 다시 물을 찾아든 그런 격이다. 요즘 우리들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지그시 참고 기다릴 줄을 모른다. 어떤 사람이 말할 때 긍정할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되면 자신이 생각해낸 말을 덧붙이려는 공명심에서 상대편의 말을 끊어버리기 일쑤다. 이런 일은 남을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이 늘 반성하는 바이다. 될 수 있는 한 상대편으로부터 질문을 받기 전에는 말을 삼가려고 하지만 이 일도 생각대로 잘 안 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번번이 그 덫에 걸린다. 사람들과 어울렸을 때 설교조로 남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이따금 그런 실수를 범한다. 사람을 만날 때는 무엇보다도 명랑한 친절이 따라야 한다. 덕이란 단순히 선행의 수준을 넘어 최선을 다하려는 어떤 성향이다. 덕은 결국 우리 행동을 조절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믿고 의지할 만한 힘, 즉 그 능력이다. 늘 생각한 바이지만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덕행’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옛말에도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한 것이다. 오늘날 종교인들은 어떤 종파를 가릴 것 없이 너무 세속적인 정서에 젖어 있다. 곧잘 시시껄렁한 일에 빠져들고, 소비지향적인 사고에 물들어 영적인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자면 침묵을 익힐 줄을 모른다.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영적인 성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 우레와 같은 침묵을 거치면서 진리가 드러났음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 날 위대한 철인 소크라테스한테 이웃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여보게, 소크라테스! 자네에게 꼭 할 말이 있어 이렇게 뛰어왔네. 자네 친구 놈이 말이야….” 소크라테스는 그 사람에게 자기가 하려는 말을 세 가지 체로 걸렀는지 물어보았다. 즉 진실의 체, 친절의 체, 필연성의 체로 걸렀는지를. 소크라테스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만일 자네가 내게 하려는 말이 진실한 말도 아니고, 친절한 말도 아니고, 꼭 필요한 말도 아니라면 그 말은 그저 땅에 묻어버리게. 그래야 자네나 나나 그것 때문에 공연히 속 썩일 일이 없을 거네.” 겨울 나무를 보고 침묵을 익히고 그 의미를 배우자. - 맑고 향기롭게 / 2008.12 -
 

   마음의 고향 축서사

댓글목록

혜천님의 댓글

혜천 작성일

법정스님의 글들을 보면 법정스님으로 되어있다. 법정큰스님이 아니다.
 당신이 이곳에 계실때 강조하신 것처럼. ' 전 법정큰스님이 아니고, 법정스님입니다. 여러분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아닌것 같은 이 작은 가르침에서도 그 크기를 가늠해 본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자비로 타이르고 꾸짖고 정정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 우리 스님네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수레가 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자비와 지혜가 같이 가야 한다.
 수레의 양 바퀴처럼 자비만 가지고는 앞으로 나아갈수 없다. 분명 지혜가 있어야 한다.
어떤것이 지혜로운 자비인지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나무의 본모습은 겨울이지요.
능히 감내하고 봄을 맞으니
때로는 칭송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마하심님의 댓글

마하심 작성일

쓸데 없는 말 하는 것 보다는 침묵이 낫겠지만...그래도 댓글은 달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