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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영 작성일11-01-07 16:32 조회2,2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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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니터 교수 초청 종교간의 대화마당 성료

불교-기독교 갈등 원인 등을 주제로 논의 펼쳐

 

 

 

조계종 총무원이 주최하고 국제선센터가 주관한 폴 니터 교수 초청 종교간의 대화 ‘지금, 여기 깨어 있는 삶’이 오늘(1월5일) 오후7시30분 서울 국제선센터 금차선원에서 열렸다. 대화마당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종교간 평화를 위해 종교인들이 먼저 소통하자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열띤 토론을 펼쳤다.

봉은사, 동화사 ‘땅밟기 기도’ 등 기독교인들의 불교폄훼로 종교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불교, 기독교 지도자 및 종교학자가 만나 종교간 대화와 평화를 모색하는 대화마당을 열었다.

조계종 총무원이 주최하고 국제선센터가 주관한 폴 니터 교수 초청 종교간의 대화 ‘지금, 여기 깨어 있는 삶’이 오늘(1월5일) 오후7시30분 서울 국제선센터 금차선원에서 열렸다. 금차선원장 효담스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대화마당에는 폴 니터 교수를 비롯해 안국선원장 수불스님(불교신문사장), 서울 상도선원장 미산스님, 길희성 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이정배 감리교신학대 교수,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으며, 사부대중 300여 명이 금차선원에 함께 자리해 종교간 화합을 위한 대화마당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이날의 주제는

△한국 불교와 기독교의 갈등의 원인

△부처님과 예수님의 관계성

△종교의 사회참여

△간화선 수행으로부터 배울 점 등

4가지였다. 토론자들은 종교간 평화를 위해 “불교, 기독교 등 종교인들의 소통으로부터 출발하자”는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대화마당을 이어갔다.

다음에서는 이날 대화마다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 한국 불교와 기독교의 갈등의 원인

 

폴 니터 교수 : 봉은사와 동화사에서 행한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자리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불교, 기독교 등 어떤 종교든지 배타적, 우월적인 주장을 하게 되면 그것을 반드시 폭력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역사를 돌아보면 식민주의, 제국주의 등의 폭력이 기독교만이 우월하고 유일하다는 믿음에서 촉발된 것이 많다. 모든 종교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최고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김경재 교수 : 한국 기독교인들이 불교에 대해 왜 배타적, 공격적인가.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 대해서는 관용이나 협력을 금기시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 비관용적 구절이 많이 있으니까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성경을 절대시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이 해방되기 전에는 해결되기 힘들다. 강하고, 크고, 위대한 것이 승리한다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기독교에 내면화면서 발생한 원인도 있다. 마지막으로 불교에 대한 무지 때문에 그렇다. 기독교인들이 불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불교계가 정법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달라.

이정배 교수 : 종교의 문제를 떠나 인간 개개인의 깊은 성찰에서부터 갈등의 원인을 찾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원주의 시대에 맞게 불교와 기독교 모두가 종교의 정체성을 새롭게 세우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정권을 잡은 것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를 과시하고 기독교 세력을 확장하려는 행동에서 무례한 행동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폴 니터 교수 : 진보적이고 열린 기독교인들이 최근의 잘못된 행동을 했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과 대화할 긴박한 필요성이 있다. 만약 동료 기독교인들이 잘못되는 행동을 보게 되었을 때는 불자들보다 먼저 동료 기독교인들이 지적하고 이야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기독교인들이 불자들을 미워한다면 같은 미움으로 그들에게 대하지 말아 달라.

 

△부처님과 예수님의 관계성

수불스님 : 불교와 기독교 입장의 차이를 대화를 통해 나누며 기독교인들의 인식도 많이 변했다.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지고 있더라도 대화해야 한다. 대화하지 않고 화합할 수 있는 길을 없다. 종교간 대화는 인류에게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길이다. 종교인들이 먼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 자리가 앞으로 종교간 대화의 물꼬를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길희성 교수 : 부처님과 예수님 모두 천하의 자유인이었다. 세상적, 세속적 가치로부터, 자기중심적 사고와 종교, 제도,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분들이다. ‘사즉생(死卽生)’, 즉 죽어야 사는 것이라는 가르침에 공통점이 있다. 자유에 바탕에 둔 자비와 사랑, 헌신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부처님과 예수님이 기본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공과 사랑은 둘이 아니다. 사랑은 인격적 개념, 공은 존재론적 개념. 사랑의 존재론적 개념이 공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는 결국 일치한다. 두 종교가 창조적으로 만나야 한다.

미산스님 : 기독교 복음 구절 가운데 불교와 소통할 수 있는 많은 내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종교와 대화하는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이 많아지면 종교간 대화는 쉽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기독교 내에서 대화를 활성화시켜 달라. 진보 기독교인이 대화 마당을 자꾸 만들어진다면 보수적 기독교인들과의 대화 마당도 활성화 될 것으로 생각한다.

 

늦은 시간에도 불자, 기독교 신자 등 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화마당에 참가해 종교간 평화를 이루기 위한 토론자들의 대화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종교의 사회참여

폴 니터 교수 : 불자들은 개인의 변화와 함께 사회 구조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우선적일까. 또 개인의 탐욕과 사회 구조적 탐욕의 차이, 불자들은 개인 탐욕이 없어지는 사회 탐욕도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 원죄에 대한 인식에서 본다면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인간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산스님 : 자비의 실현과 지혜의 완성은 같이 이뤄져야 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대승불교의 모토다. 깨달음이 상위 개념이고 중생구제가 하위 개념이라는 인식이 큰 것 같다. 현대에 맞게 ‘좌구보리 우구중생’으로 바뀌어야 한다. 개인의 깨달음이 먼저고 사회, 중생 구제가 나중이라는 것이 아니다.  

김경재 교수 : 미산스님의 견해에 동의한다. 개인의 변화, 사회의 변화 가운데 어느 한 쪽에 우선을 두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정현경 교수 : 평화를 만드는 방법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왜 다른가 먼저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모든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황금룰이 있다. 신도들에게 그대로 황금룰을 가르치고 그대로 실천하다면 평화가 올 것 같다.

  

△간화선 수행으로부터 배울 점

 

수불스님 : 내면과 바깥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내면의 문제와 현재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평화가 온다. 그 방법으로 새롭게 제시된 것이 자비이며,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을 간화선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다. 해법을 제시하고 그것이 종교가 주는 구원이고 종교가 전해야 할 메시지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운 것을 모두 내려놓고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참선 수행이다.

 

길희성 교수 : 간화선 역시 사즉생이라고 생각한다. 명상을 통해 사즉생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상식적 사고를 완전히 뒤집기 위한 수단이 화두이며, 화두를 탈피하는 순간이 깨달음이다. 하지만 화두 유일주의를 벗어나자. 명상의 방법은 다양하다. 명상의 길은 꼭 하나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안국선원장이자 불교신문사장 수불스님이 폴 니터 교수에게 감사의 뜻으로 향로를 선물하고 있다.

엄태규 기자

2011-01-05 오후 10:53:24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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