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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영 작성일10-12-17 19:07 조회2,619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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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가 다가오네요.

동지의 불교적 의미와 민간풍습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군요.

예부터 동지에 새해 달력을 나누어 주었다는 내용도 있는데

올해에도 멋진 작품 달력을 만날 수 있기에

더욱 기다려집니다.


동지 잘 지내세요.^^

 

 

‘작은 설’ 동지에 깃든 불교적 의미

 
 
 
동지를 맞아 스님과 불자가 이웃에 나눠줄 동지팔죽을 쑤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팥죽 나누며 어려운 이웃 보살피는 마음내는 날
 
 
 
태양의 주기를 따라 24등분하여 나눈 것을 절기라 한다. 그 절기 중 22번째 절기가 동지(冬至)다. 동양에서는 동지를 지나면서부터 해가 길어지기 때문에 한 해의 시작으로 여겨 ‘작은 설’(까치 설날)이란 뜻의 ‘아세(亞歲)’로도 불렀다. 올해 동지는 오는 22일. 이날을 맞아 전국의 사찰과 불교단체는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며 나눔을 사회적으로 회향하려 분주히 움직인다. 또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도 전달하고 군부대도 방문한다. 하지만 어느 해보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사회에 이러한 훈훈한 도움의 손길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본지는 동지의 연원과 풍속을 살펴보고 여기에 깃든 불교적 의미를 살펴본다.
 
 
신라·고려시대때 축제일… 신년 달력 배포
 
어려운 이웃과 ‘겨울나기 물품’ 나눔의 날
 
 
원측스님이 저술한 <입당구법순례기>에는 “오늘은 동지다. 승려와 속인이 서로 하례(賀禮)를 나누었다…(중략)…승려들도 서로 절을 하고 동지를 축하하는 말을 하면서 인사했다. 중국의 승려가 외국의 승려를 만나면 ‘오늘은 동지입니다. 스님께서도 만복을 받으시고 전등(傳燈)이 끊이지 않으며 하루빨리 본국으로 돌아가 오랫동안 국사(國師)가 되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라는 구절이 전한다.
 
이로보아 당시 중국사회에서 동지는 큰 명절임이 분명하다. 이어 원측스님은 “동짓날이 되면 절이든 속가(俗家)든 모두 사흘동안 동지의 명을 보냈다”고 회고하고 있다. 당시 신라사회도 동짓날은 국가명절로 삼는 축제일이 분명한듯 하다. 이로보아 동짓날이 되면 모든 백성들은 가까운 사찰을 찾아 동지불공을 올리며 한해의 안녕을 부처님께 기원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고려사>에는 “동지를 전후해 팔관회가 베풀어졌다”고 전한다. 또한 <동문선>에 실린 고려 때 문신 이인로의 ‘팔관일호종(八關日扈從)’이란 시에 보면 “오봉루 높은 다락에 보불자리 펴노니, 아름다운 절기는 마침 일양의 하늘일세, 계향은 이미 삼천세계를 두루하였고, 정조(鼎祚)는 응당 팔백년을 넘으리라”라고 읊고 있다. 당시에는 팔관재가 동짓날에도 열렸음을 알 수 있다. 
 
동지가 되면 사찰에서는 민간과 마찬가지고 팥죽을 쑤어 먹었다. 그 풍습은 지금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어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이유는 붉은 색의 팥이 악귀를 쫓아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믿음에서 기인된 듯하다. 붉은 팥은 역귀(疫鬼)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데 이용되어 왔다. 이러한 점은 음양사상(陰陽思想)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즉 팥은 붉은 색으로 양(陽)을 상징함으로써 음(陰)의 속성을 가지는 역귀나 잡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요즘 사찰에서는 팥죽을 쑤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자비보시행’을 펼친다.
 
불교문화연구가 김유신씨는 서양에서도 동지를 태양절이라 하여 크게 기념하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대 로마에서는 동지를 전후하여 태양을 숭배하는 ‘시길라리아(Sigil-lalia)’나 ‘부루말리아(Brumalia)’, 농경신 ‘새턴(Saturn)’을 찬양하는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등의 전통축제를 즐겼으며 12월25일 열렸던 이 축제 전통들을 후대에 기독교가 받아들여 현재의 크리스마스로 삼았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인류에게 동짓날은 크게 기리는 명절임이 분명한 대목이다.
 
동짓날에는 사찰에서는 달력을 나눠준다. <주역>에는 “동짓날에 처음으로 양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래서 각 달마다 12지를 매길 때 동짓날부터 기산하기도 했다. 이처럼 동지를 한해의 시작으로 여겨 이날 달력을 나눠주는 풍속이 생긴 것으로 유추된다. 이러한 풍습은 요즘도 전국 사찰에서 성행되고 있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동짓날에 궁중의 관상감에서는 달력을 만들어 올렸는데 임금님이 이를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 주고 관원들은 다시 가까운 친지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를 단옷날 부채 나눠주기와 더불어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고 하였는데 달력이 흔해진 오늘날 동짓날 달력 나눠주기 풍속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절집에서는 여전히 그 맥을 잇고 있다고 하겠다.
 
동짓날을 큰 불공일로 정해 어려운 이웃에게 팥죽 한그릇을 나누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따스한 마음을 나누는 게 불교집안의 미덕이었다. 하지만 이번 동지는 지난달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온 불자들이 얼어붙은 마음으로 움츠리는 듯하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마음을 열고 가까운 사찰을 찾아 기도하고 마음을 나누는 불자의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개화사 주지 송강스님은 “동지는 가장 춥고 밤이 길기에 절망적인 날로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지혜롭게 생각하면 바로 희망의 날이 되는 것”이라며 “그래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에 매우 적당한 날이 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송강스님이 주장처럼 이번 동지가 팔팔 끓는 팥죽처럼 얼어붙은 국민들의 마음속을 녹여주는 ‘나눔의 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 동지의 연원과 민간풍습
 
 24절기의 22번째…밤이 가장 긴 날
 
‘동지팥죽 먹어야 한 살 먹는다’ 믿어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冬至)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 곧 황경(黃經)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다. 그래서 대개 양력 12월22일이 동지다. 간혹 21일이나 23일이 동지가 되기도 한다. 
 
양력으로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불렀다. 옛 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겼다. 전통사회에서는 흔히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옛 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 라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당(唐)의 선명력을 그대로 쓴 것으로 볼때 충선왕 이전까지는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짐작된다.
 
<성호사설>에 보면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 하여 새로 출가한 부인들이 동지가 되면 시부모에게 새롭게 버선을 지어 바치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는 점점 길어지는 해길이처럼 오래 사시고 복을 맞이하란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하니 동지의 새로운 의미를 느끼게 하는 풍속이라고 하겠다.
 
동짓날이 되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연못의 수면이 얼어붙어 얼음의 모양이 쟁기로 밭을 갈아놓은 것처럼 된다. 이것을 용갈이(龍耕)라고 한다. 경남 밀양 남지에서도 용이 땅을 갈아 이듬해의 농사일을 징험한다고 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이날은 동지부적(冬至符籍)이라 하여 뱀 ‘사(蛇)’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속신(俗信)이 있으며,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는 속신이 있다. 동짓날 일기(日氣)가 온화하면 이듬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하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여긴다. 또 동짓날이 추우면 해충이 적으며 호랑이가 많다는 믿음이 있다.
 
예부터 동짓날이 되면 백성들은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겼다. 또 일가친척이나 이웃간에는 서로 화합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마음을 열고 풀어 해결하였다.   오늘날 연말이면 불우이웃 돕기를 펼치는 것도 동짓날의 전통이 이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동지에는 동지팥죽을 쑤어 먹었다.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이는데, 단자는 새알만한 크기로 하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불렀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었다.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의 뜻이고 집안 곳곳에 놓는 것은 축귀의 뜻이어서 이로써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낸다고 믿었다. 이것은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동짓날이라도 동지가 음력 11월10일 안에 들면 애동지라 하여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해서 팥죽을 쑤지 않는다. 또 그 집안에 괴질로 죽은 사람이 있어도 팥죽을 쑤어먹지 않는다다.
 
경기도에서는 사당에 팥죽으로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장광 등에 한 그릇씩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었다. 경상도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적셔 집안 대문을 비롯하여 담벼락이나 마당에도 뿌리며 마을 입구에 큰 고목에도 뿌려 잡귀들의 동네 침입을 막았다. 강원도에서는 팥죽의 새알심으로 찹쌀이나 수수쌀로 만든 ‘옹심’을 넣어 나이수대로 먹었다.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불교신문 2690호/ 12월15일자]

댓글목록

남영자님의 댓글

남영자 작성일

팥죽을 맛있게 긇이시네요 많이먹어도 조금을 먹어도 한살 만 먹여주시니 감사한 팥죽이지요

무상행님의 댓글

무상행 작성일

와~~우
무상행이 좋아 하는 팥죽이다..ㅎ
동지때 축서사에 가면 먹을수 있으려나..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