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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불교8대성지-녹야원과 아소까 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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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암 작성일10-11-30 09:20 조회3,828회 댓글4건

본문

인도로 가기

그리고 부처님 만나기

 

녹야원의 아소까 석주

 

붓다는 자신의 열반 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던 것 같다.

붓다는 생애 마지막 여행에서 자신의 열반 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과 깨달은 곳,

그리고 최초의 설법지와 열반한 곳을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그의 제자 아난다에게 예언한다. 

 

붓다의 말씀대로 붓다의 열반 후에 많은 사람들이 스승 붓다와 관련된 성지를 찾아가

생전의 모습과 가르침을 회상하기 시작했고, 세월은 그럭저럭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날 붓다 열반 후 250년쯤 지나자 인도에는 전쟁의 회오리 바람이 한차례 휩쓸고 갔다.

그리고는 전 인도를 처음으로 통일하는 군주 아소까 왕이 인도의 새주인이 되었다.

민중이 그토록 기다리던 전륜성왕이 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왕은 붓다가 최초로 설법한 이 자리를 찾아와

그것을 기념하여 돌기둥을 세웠다. 이른 바 아소까의 돌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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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마라지크 탑 서쪽에 아소까 왕의 돌기둥이 반토막으로 부러진 채로 서있다.>

 

그리고 돌기둥에 다음과 같이 칙령을 새겨 넣었다.

 

"어떤 누구에 의해서도 승가가 분열되어서는 안된다.

비구든 비구니이든 승가를 분열하는 사람은 누구나 흰옷을 입혀서 승원이 아닌 곳에 살게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명령은 비구 승가와 비구니 승가에 잘 전달되어야 한다.

 

재가 신도들은 바로 이 칙령에 의해 신심을 북돋우기 위해 매달 우뽀사타 날 예식에 참석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칙령에 의해 그대들의 신심을 북돋우고 이 칙령을 그대들이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더욱이 이 칙령의 명령대로 행하도록 그대들의 관할 지역을 순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마하마따(지방장관)들도 요새 지역을 순방하여 이 칙령의 명령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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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당시의 모습, 아소카 돌기둥이 반토막으로 부러져 있고 상부에 있는 사자상은 그 옆에 놓여있었다.>

 

이렇듯 아소카 왕은 이곳을 찾아와 돌기둥을 세우면서 붓다의 승가가 분열될 조짐이 있음을

각별한 심정으로 경고를 하고 있었다. 비구이든, 비구니이든, 또 재가불자이든 승가의 분열을 조장하는 자는

흰옷을 입혀 멀리 보내겠다는 경고문이다.

 

이렇게 아소까왕이 직접 내린 승가 정화에 대한 칙령이 새겨진 각문은

사르나트의 돌기둥, 산찌 대탑의 돌기둥, 꼬삼비의 돌기둥 이렇게 세 개의 돌기둥에 쓰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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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토막이 난 돌기둥에 아소카 칙령이 새겨져 있다.

아소까 대왕의 칙령이 무의미해지기시작하자 돌기둥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반토막이 난채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 >

 

아소까 왕의 아내는이름이 데위(Devi)였는데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신봉한 집안의 딸이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그의 아들 마힌다와 딸 상카밋따도 출가하여 비구와 비구니가 되었으며

특히 이들은 불교를 스리랑카에 전파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었다. 왕의 이복동생도 출가하였고 사위도 출가하였다.

특히 이복동생 니그로다와의 인연은 각별했다.

 

아소까 왕은 왕위를 계승할 때 99명의 이복형제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특히 왕위를 계승해야 하는 큰 형을 죽이고 왕이 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몰래 도망하여

불가촉천민이 사는 곳에 숨어 살았다. 그리고 아들 니그로다를 낳았는데

니그로다가 7살이 되었을 때 출가하였다. 그리고 어느 해 아소까 왕을 만난다.

 

어느 날 니그로다 비구는 파탈리푸트라(지금의 파트나)의 거리로 탁발을 하러 나갔다.

마침 아쇼카 대왕은 탁발을 나온 비구 니그로다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니그로다의 탁발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스님을 왕궁으로 초빙하여

불교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에 감복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왕이 되어있어야 할 이복형의 아들 니그로다 비구와

자신이 왕이 되어있는 현실의 애뜻함을 담아 니그로다 비구에게 많은 보시를 하였는데

스님은 그것을 승가에 그대로 보시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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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사르나트 박물관 -

카메라를 철문 안에 한발짝도 못들여 놓게 한다.>

 

사르나트 박물관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초전법륜상이다.

초전법륜상을 보자 마자 일행들의 눈에 눈물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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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타시대의 불상 초전법륜상>

 

서기 4-6세기경 굽타시대의 아름다운 초전법륜상은 분홍색 사암으로 되어있다.

인도 불상의 백미라고 일컬어질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이 불상은

손은 설법인을 하고 있으며, 하단에는 최초의 다섯비구와 최초로 삼보에 귀의한

야사의 어머니와 그 여동생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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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까 석주의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는 사자상이 사르나트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사르나트 박물관에 들어서면 인도의 국가 국장으로도 사용하고 있는

네마리의 사자상을 정 중앙에서 만난다. 인도의 지폐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사자상은

녹야원에 서있었던 돌기둥의 상부를 이루고 있었던 바로 그 사자상이다.

 

우리는 최고 선지식의 법문을 사자후라고 부르고 스님들을 초청하여 법문을 들을 때

우리는 청법가를 부른다. 우리는 합장하여 사자후를 청하고 감로법을 들을 준비를 한다.

붓다의 설법을 사자의 소리로 비유하기 시작한 인도의 오랜 전통을

오늘날에 우리는 이렇게 이어오고 있다.

 

사자상 아래에는 24개의 바퀴살을 가진 법륜을 조각하여 넣고

힘이 센 코끼리, 농사를 상징하는 소, 빠름을 뜻하는 말,

자연의 질서를 뜻하는 사자를 새겨넣었고

그 아래는 땅을 향하고 있는 연꽃받침을 아름답게 조각해 놓았다.

 

서암합장

 

 

댓글목록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아소카왕이라 !!!
각가지 전설과 얘기를 몰고 다니는 인도 역사상
빼 놓을 수 없는 임금이 되겠지요.
그리고 우리 불교에서도 ..... 
오늘날 불교가 이만큼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 내었다고 평가받는 불교 외호자이기에
서암님이 표현하신 것처럼 전륜성왕이라 칭하는 것도
나름 이유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소카왕하면 늘 생각하는 것이 왕의 여러 업적도 훌륭하지만
그 당시 스님들의 활약상입니다.
그리고 우리 불교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새삼 깨닫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답니다.
무지막지하고 왕좌에 눈이 먼 아소카왕을
무력이나 어떤 물리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귀의케 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저절로 자발적으로
감화되어 귀의하도록 하신 스님들의 법력에
그저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랍니다.

또, 하나는 현재 인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힌두 국가이고
이슬람도교도도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그래도 인도 국장에
우리 불교의 상징물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보면 그만큼 인도인들의
정신세계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저는 왠지 그들의 정신세계가 부러워지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귀 기울이다 보니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백을 짚어 주시는 서암님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옛 선인의 말씀에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고 하셨으니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요즈음 저는 이 말을 자주자주 생각한답니다.)

네 ~ 매사가 저가 아는 만큼 보이겠지요.^^

불교의 완전정복 그날까지 ......
너무 전투적인가요?^^

읽다가 ..님의 댓글

읽다가 .. 작성일

P  좋은 사진 글 감사 ㅎ~


    P  으흐흐 먼저 웃고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

        도입부
        낙장불입 1

        주인 할머니가 시키지도 않은 막거리 한병을 들고
      " 선상님 인자 그만하면 공부 많이 하신것 같은디, 손금 좀 봐주셔 "
      ..............
      " 선상님 도가 너무 높으셔서 아무한테나 말씀을 안해주시는 모양인디
        그라문 우리 아들놈 사람 좀 만들어 주씨요 잉. "
      ..............

      남편도 없이 아들 하나만 믿고 살아온 할머니는 시인 주려고 내온 막거리를 당신이 꿀떡꿀덕 마시며
      울었다.
      ..............
      " 그럼 우리 아들 놈 한글이라도 갈켜주씨요 잉. 한글이라도 알아야 사람 구실을 허지 않겄소"

      버젓이 운전면허 따서 운전까지하고 다니는 그가 어떻게 문맹 ?

      다음날 낙장불입 시인은 그 아들을 길에서 만났다.
      그냥 눈에 띄는 대로  전 봇 대 에 붙은 " 불 조 심 "이라고 쓴 표어를 가리키며
      " 여기 뭐라고 쓰여 있는지 한번 읽어 볼래 "

      그러자 서른이 다된 아들 은 거만한 표정으로 " 전 , 봇 , 대 ! "

 
    P 꽁지 작가와
              버들치와
                      낙장불입 시인을 보려거던

      지리산으로 가라
              아니 섬진강으로 가라
                      아니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펼쳐 보라
     
      해인은 이미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이니

      굳이 그들은 만나고 싶거던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가라
       
      행여 견딜만 하거던
              제발 가지 마시라

      해인은 이미 그들을 사랑하고 있음이니


  P  행복했습니다 
      ~아  듀 ~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멋진 사진 만큼이나 더 멋진 글들....
감사합니다.
2010년도 이제 한장의 달력만이 남았네요.
올해의 계획들은 얼마나 추진되었을까요???
알찬 마무리를 위해 마지막스퍼트를 합시다!!

서암님의 댓글

서암 댓글의 댓글 작성일

알찬 마무리를 위해 매일 알코로 소독하고 있슴다....
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