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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안하면 자기만 손해, 문수산 축서사를 찾아/인드라망 19차 사찰순례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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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드라망(Daum Cafe) 작성일10-04-27 09:45 조회2,391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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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순례를 다니다 보면 오후에 가게 되는 사찰은 아무래도 좀 더 편하고 자유스런 마음으로 가게 된다. 처음 들른 곳이 대개는 주 순례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순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축서사는 보광전 외에는 모든 전각이 새로이 지어진 가람이라 부석사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사찰임에도 전통사찰이란 느낌을 주기엔 뭔가 허전했다.

 

분명 그랬었다, 큰스님을 뵙기 전 까지는.

무여스님이란 걸출한 선승(禪僧)께서 상주하고 계신 사찰인 줄은 알지만, 뵐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지 못했는데 지현향님의 용기와 돌파력과 간절함에 힘입어 우리 순례단은 큰스님을 친견하고 법을 듣는 참으로 꿈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인드라망 사찰 순례단의 오후 일정을 차례대로 담아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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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려 올라다 본 축서사는 따뜻한 봄볕 속에 참으로 한가로워 보인다. 뒷산은 아직도 겨울색이건만 도량은 참 따스한 질감으로 우릴 맞는다. 저기 잔디밭에 앉아 봄 나물이라도 뜯고싶은 충동이 일고, 내려오는 길에는 실제로 쑥이며 민들레를 몇 포기 뽑은 님들도 있다. 

 

축서사는 경북 봉화군 물야면 문수산 기슭 해발 800미터의 고지에 자리잡고 있다. 축서사(鷲棲寺)라는 이름은 독수리 축(鷲), 깃들 서(棲), 독수리가 사는 절이라는 뜻으로 독수리는 지혜를 상징하며, 바로 큰 지혜를  가진 문수보살을 가르키는 뜻도 된다고 한다. 

 

축서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축서사는 신라 30대 문무왕 13년(서기 673)년에 의상 스님께서 창건한 절이다. 그러니까 오전에 순례한 부석사보다 3년 앞서 세워진 절이다. 축서사에는 문수동자와 관련 있는 창건 연기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지림사라는 절의 스님이 어느 날 밤 지금의 개단초등학교 앞산을 바라보니 휘황찬란한 빛이 있어 그 곳으로 달려가 보니,

한 동자가 아주 잘 조성된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더란다.

그러더니 동자는 자신을 청량산 문수보살이라 하고는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는 불상만 남았다.

훗날 이 야기를 전해들은 의상대사께서 불상 모실 곳을 찾다가 현재의 대웅전 터에 법당을 짓고 불상을 모신 것이 축서사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문수보살이 출현하셨다고 해서 산 이름이 문수산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축서의 독수리와 문수보살 설화, 산 이름과 절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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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수산 축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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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 축서사란 사명이 새겨진 돌을 지나자 보탑성전이 우뚝하니 자리 잡고 있다. 이곳도 산지가람이라 부처님을 뵙기 까지는 몇 개의 단을 올라가야 한다. 보탑성전은 전통 건축물로 치면 절 마당으로 진입하는 문이며 누각이다. 이층 보탑성전은 한 면을 유리로 해서 보탑과  대웅전을 향해 참배를 올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보탑성전 아래를 지나 계단을 오르자 규모가 큰 탑이 서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사리탑으로 불기 2549년(2005)년 9월에 세워졌다고 한다.

탑 모양은 아(亞)자형 석탑이며 높이가 15.5미터라고 하니 규모가 장대하면서도 세부 조각은 섬세하고도 화려하다.  보탑은 대웅전에서 한 단 낮은 곳에 조성되어 있다.

뒤로 보이는 대웅전에 비해 좀 크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만치 웅대한 보탑이다.

 

탑을 만났으니 그냥 갈 수는 없다. 모두 탑을 돌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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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서사 보탑에서의 탑돌이, 사진:디동 지도선생님(부운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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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 보탑에서의 탑돌이, 사진:디동 지도선생님(부운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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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 대웅전

 

탑돌이를 마친 순례단은 말갛게 쓸려진 마당을 지나 대웅전을 찾았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우리가 축서사에 도착했을 때부터 들리던 관음정근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법당에 들어가니 두 분 스님과 신도 몇 분이서 관음정근 중이다.

한쪽에서는 삼천배를 하시는 듯, 한 스님께서 절을 하고 계신다. 좌복 옆에는 물과 수건과 계수기가 놓여있다. 백팔배를 한 번 하실 때마다 저걸 한 번 누르시겠구나~

맘이 짠해 온다.

뒤에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십분, 이십분, 삼십분...관음정근은 끝이 나질 않는다. 그러고보니 오후 예불시간은 아닌 것 같다. 아마 특별기도 기간이겠거니...

 

행여 밖에서 기다릴 인드라망 가족들 생각에 아쉽지만 절을 마치고 일어섰다. 일어서는 것을 보고 저쪽 반대편에서 기도 중이던 구야님이 따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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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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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서사 대웅전 꽃살문과 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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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 보광전

 

대웅전을 나오니 보광전과 석등의 안내판이 서 있다. 보광전은 조선 중기에 건립되었지만, 보광전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제995호)과 목조 광배는 신라 문무왕대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을 뵈러 보광전 문을 열었다. 화려한 광배는 특이하게도 목조이다. 부처님 이마엔 백호가 없다.

후불탱화가 없는데다 대좌는 또 화강암이다. 

늘 보아오던 불상과 많이 달라 잠시지만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수미단의 조각이 아름답고 닻집을 받쳐둔 기둥이며 닻집 색깔이 은은하니 품격을 더해 준다. 옛 전각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이 곳 보광전이라니 참 안타깝다.

보광전의 품격으로 보아 다른 전각들도 이와 비슷했을텐데 그 많은 문화재들이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하니 이런 통탄할 일이 또 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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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광전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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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광전 옆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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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광전 앞 뜰, 저 아래는 대웅전

 

보광전 석등 앞에 한 무리의 답사팀이 있고, 그 중 앞에서 설명을 하는 분이 있어 잠시 귀를 기울였더니, 축서사 전각들이 6.25때 불에 탔다고 한다.  '그렇구나~' 하면서 돌아왔는데...

 

미처 챙겨보지 못한 그 부분의 자료를 찾아보니 그게 아니다.

축서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축서사의 역사를 찾아 보면 축서사가 화재로 타게 된 것은, 을사조약이 체결 되는 등 우리 나라가 일본의 속국이 되어가던 과정에 무장한 의병들이 항일 투쟁을 할 때, 의병 토벌을 위한 작전으로 일본군이 방화를 하여 그 많던 전각이 불에 타 버리고 지금의 보광전인 대웅전 한 동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폐사가 되어 있다가 일제 말기에 삼성각을 짓고, 6.25직후에 요사 1동을 신축하면서 사찰의 면모를 유지하다가 1980년 전후하여 요사채와 토굴 2동을 신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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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광전 앞 뜰의 석등, 고려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

 

보물급이라는 석등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모습이다.

저 곳에 불을 켜면 건너편 산 어디쯤에선가 화답하는 불빛이 있을 듯한 위치이다. 해발 800미터라고 하더니 이 곳도 어지간히 높은 위치인가 보다.

멀리 보이는 능선들이 부석사에서 보았던 풍경과 닮아 있다. 역시 소백산 연봉들인가 싶다.

 

석등 근처를 맴돌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받아 보니 소구리님이다. 무여 큰스님을 친견한다며 지금 바로 대웅전 앞으로 모이란다. 이런 행운이 다 있나 싶어 한걸음에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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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스님이 계시는 응향각

 

설레는 마음으로 응향각 계단을 올랐다. 지난번 순례 일로 종무직원과 통화를 할 땐 법문을 들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친견 승인이 났을까?

큰스님을 뵙고 싶었던 지현향님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종무소와 시자스님을 통해 친견 신청을 했고, 큰 스님께서 허락을 하셨다고 한다.

응향각 툇마루를 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모두 모여 앉아 큰스님께서 나오시기를 기다렸다.

 

몇분 뒤 방문이 열리고 스님께서 들어오셨다.

"여기에 좀 앉겠다"며 의자에 앉으시고 우리는 넙죽 큰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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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서사 무여큰스님

 

"여기는 어떻게 오셨느냐?"며 첫 말씀을 떼시는데 온유한 표정만큼이나 부드러운 음성이시다. 나직한 말씀에 방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만치 고요해 진다.

모두의 시선이 빨려들듯 스님을 향하고...

 

우리가 걸고 있는 이름표를 보시더니 '인드라망'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으시고는, 그 중 몇몇 회원들의 이름을 불러 보신다.

법명을 달고 있는 분도 많건만 소구리, 마법사 등등 재미있는 닉을 하필이면 읽으신다.^^*

소구리로는 담지만 말고 많이 베풀라고 하시고, 마법사님께는 나쁜 마법은 쓰지 말고 좋은 일에만 마법을 쓰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 모두 반갑다. 불교적인 수행을 꼭 좀 하라. 수행은 해라 마라 할 필요도 사실은 없다. 안 하면 자기 손해이다.

짬이 나면 수행을 하고, 아니면 시간을 억지로 쪼개서라도 해야만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된다.

여러분은 다들 잘 사실테지만 수행을 해야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수행해서 느끼는 행복이 아니면 반쪽 인생도 못 된다. 보람을 느끼고 일생을 잘 살려면 수행이 믹스되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염불을 하는 분은 염불삼매에, 참선을 하는 분은 선정에 꼭 들어봐야 한다. 푹 빠진 상태가 되어 봐야 하는데 염불이나 참선을 하다 보면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여기가 인드라망인지 아파트인지 모를 만큼 시간과 공간, 즉 시공을 초월하여 자기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염불이면 염불 삼매에 들어야 하고, 참선이면 선정에 들어봐야 한다.  그럼 일체 잡스런 생각이 없어진다.

살아보면 '괴롭다' '슬프다' '힘들다' '나를 좀 살려 달라'는 그런 일이 생기는데 그것이 다 잡스런 생각이다. 그것이 번뇌망상인데 수행을 하면 다 사라진다.

번뇌를 일부러 끊기는 참 어렵다. 삼매에 들면 번뇌는 다 사라지게 되고 인생이 맑아진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법정스님이 벌인 캠페인에 '맑고 향기롭게'가 있다. 맑으면 묘한 기쁨을 느낀다. 법열이고 안락이고 희열이다. 기쁘다고 하기도 그렇고, 즐겁다고 하기도 그런,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상태, 그것까지만 느끼게 되면 더 이상은 필요치 않다. 고급 아파트, 고급 가구, 이런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먹는 것도 진수성찬 고기 반찬이 즐겁지가 않다.

한 번 삼매를 맛보면 잊을 수가 없다. 웰빙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던데 웰빙은 삼매의 반의 반 정도이면 감지덕지다.

 

불교적 수행은 안 해본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편안하다면 편안하고, 즐겁다면 즐거운 것이다.

인간이 바라는 전부를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어떤 결과와도 비교가 안된다. 하나일 수밖에 없는데,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평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동리씨의 소설 「등신불(等身佛)」을 모두 읽어보았을 것이다. 일제 말기에 지식인들은 취직을 못했다. 그래서 경주의 최부자집이나 큰절 같은 데서 식객노릇을 하며 몇 달 동안 '고등 룸펜'생활을 했었다.

그 시절 사천 다솔사에서 문인, 학자 등 20 여명이 여름 한 철을 나는데 최범술스님께서 주지를 맡고 계셨다. 그 분은 신학문을 배운 스님이며 화엄경의 대가이며 2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한 스님이셨다. 

그 스님이 소신공양(燒身供養)의 실화를 얘기했는데 그 이야기가 하도 감동적이라 김동리씨가 소설화 한 것이 바로 「등신불(等身佛)」이다. 

이 공부는 자기 몸을 태우는 소신공양(燒身供養)도 아깝지 않은 공부이다.

 

인드라망은 좋은 조직이다. 이런 곳을 다니면서 서로 교류와 교감을 하고, 토론도 하고 불교적인 지식과 인격도 갖춰야 하지만 수행을 꼭 해야 한다. 마지막 코스는 수행이다. 이론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참 실구가 더욱 중요하다.

 종교는 행동이다. 외형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의 수행이 중요하다. 부처님 마음을 읽고 부처님을 바로 봐야 한다.

어려워서 거기까지는 못 가더라도 아까 이야기한 것 까지만이라도 되어 봐야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다.

 

이 모임 회원 모두가 삼매에 다 들어보라. 그럼 대구에서 제일 행복한 모임이 될 것이다. 체험을 안 하고 다니면 바지가랭이만 왔다 갔다 하는 격이다.

서로 격려해 주고, 경책을 해 주면서 수행을 하라.

알맹이 있는 수행을 해서 인드라망의 취지에 맞는 결실을 이루기를 소원한다.

전부 다 도인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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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서사 무여큰스님

 

무여 큰스님은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하셨다.

1966년 이후 상원사, 동화사, 송광사, 해인사, 관음사, 칠불사, 망월사 등 제방 선원에서 20여년 동안 수선안거 하시며 칠불사, 망월사 선원장을 역임하셨고,

1988년 이후부터 축서사에서 365일 언제나 문을 열고 불자들을 맞고 계시다.

또한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 기초선원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셨고,

현재 운영위원으로서 禪의 가풍르 새롭게 정립하는 데에 힘을 쏟고 계시다.

-축서사 홈페이지 '큰스님의 행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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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님 말씀에 활짝 웃는 인드라망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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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툇마루에 올려진 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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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하신 표정과 고요한 몸짓, 부드러운 음성, 그리고 나직하나 정확하게 전달해 주시던 확고한 메시지, '수행하여 참 행복을 맛보라',

스님을 기억하게 되면 떠오를 이미지들이다.

 

모두 삼배를 드리고 물러 나오는데 툇마루 한 켠 상자 속에 스님의 털신이 담겨 있다. 이곳은 높고 깊은 산중이라 아직도 쌀쌀한 날씨이다. 밖에서는 털신을 신어야 하고 법당에서는 덧양말, 덧신을 신어야만 될 정도의 날씨이다.

그리고 신발이 마루위에 올라와 있다는 건 그만큼 외출이 드물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스님의 시간을 우리가 뺏은 거나 아닌지 일면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그 시간을 더욱 보람있게 만들려면 큰스님 말씀대로 열심히 수행하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다.

 

툇마루까지 배웅을 나오신 스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표현이...죄송합니다.) 눈물이 핑 돈다. 질문이 있다며 무주님이 남고, 우리는 다시 합장 인사를 올리고 응향각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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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서사 보탑앞에서, 단체사진: 디동 지도선생님(부운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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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수산 축서사 사리탑(보탑)앞에서

 

룰루랄라~ ♪ 모처럼 감로법을 흠뻑 맞은 순례단은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순례를 다니다 보면 일정에도 없던 뜻 밖의 법문을 듣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땐 천금 만금을 얻은 것보다 더 기쁘다.

착한 불자들께 내려지는 부처님의 가피임에 분명하다.

 

"스님, 부디 법체 건안하시어, 오래도록 많은 불자들의 의지처가 되어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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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수산 축서사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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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돌, 작은돌, 하얀 돌, 노란 돌, 둥근돌, 네모난 돌, 생긴대로 모양대로 다 동원되어 완성된 축대,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을 지키는 사자, 귀한 손님 앞에서 까부는 철부지 아이를 지그시 눌러 앉히는 모습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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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서사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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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수각, 보현선원, 재가자들의 정진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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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의 인라인님

 

부석사와 축서사 순례는 또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 인천에서 오신 인라인님과도 작별할 시간이다.

인사 대신 노래 한 곡 부르시라니까 딱 두 소절을 부르며 나머지는 다음 달에 하시겠단다.

대구로 돌아가는 차 안의 맛을 아주 쬐금만 보여드린다며 노래를 청했는데, 사실 대구로 오는 차 속에는 노래가 없다.

아, 있기는 하다.

사홍서원, 인드라망 찬가, 산회가...^^*

 

돌아 오는 차 속에서 '대구디카 동우회'의 회장이신 범심님과 지도선생님이신 뜬구름님의 깜짝 디카 강좌가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를 든 팔을 몸에 딱 붙여 흔들리지 않게 하라는 주문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셔터를 누를 때 호흡을 멈추는 것도 설명을 하신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지키지 않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며 카메라를 들고 시범을 보이셨다.

인드라망의 사찰순례는 이렇게 팁까지 풍부하다.

 

다음달은 부처님 오신날과 날짜가 거의 겹쳐지게 되어 사찰 순례를 쉬게 된다. 대신 6월 순례는 마지막 주가 아닌 둘째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 1박2일로 잡혀 있다.

자세한 공지가 곧 올라가겠지만 6월 순례 예정지는 설악산 봉정암이다.

모든 불자들이 가고 싶어 하는 그곳, 봉정암 가는 길에도 서로의 길동무가 되어 주리라 믿으며 인드라망 제19차 사찰순례기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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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촬영의 간단한 기법을 설명해 주시는 '대구디카동우회' 지도선생님(뜬구름님)

댓글목록

인드라망(연보리)님의 댓글

인드라망(연보리) 작성일

4월 25일 오후, 축서사를 참배했던 불교 카페 [인드라망]의 카페지기 연보리입니다.
불현듯 큰스님을 뵙고 감로법을 들을 수 있어 참으로 큰 행복을 맛 보았습니다.
즐겁고, 편안한 희열을 우리 모두는 그 자리에서 당장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베풀어 주신 자비에 깊은 예경 올립니다.
법체 건안하시어 오래도록 저희들의 귀의처가 되어 주십시오. ()()()

보현수님의 댓글

보현수 작성일

인드라망님의 사찰순례기 너무나 감명깊게 잘 보았습니다.
작품이라고 해야 할 만큼의 훌륭한 사진으로 탄생된
우리절 모습을 보니
정말 마음 한가득 행복이 충만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상세하고 자상한 인드라망님의 글을 보니
정말 우리는 복이 많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늘 간직하고 있는 보배의 진가를 몰라 보는 우매함을 느끼며
가까이서 선지식 큰 스님을 모시고
이렇게 좋은 도량에 언제든 몸을 담을 수 있으매 더욱 감사 함을 느낍니다.
앞으로 수행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 봅니다.

법융님의 댓글

법융 작성일

성지를 다녀가신 여러분들께 축하와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인드라망"의 참 뜻은 잘 모르지만 대단하신 조직인듯 합니다
전국의 유명한 곳을 순례하시며 좋은 체험과 아름다운 자취를 남겨주심이
너무나 감명 깊게 닥아옵니다
축서사, 그리고 훌륭하신 선지식 님을 친견하신 소중하신 인연을
다시한번 축하드리며 귀 단체와 여러 회원님들의 발전, 건승을 기원합니다.
축서사 신도된 불자의 한사람으로서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인드라망(연보리)님의 댓글

인드라망(연보리) 작성일

보현수님, 법융님,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직(?) 인드라망은 포털사이트 Daum에 있는 불교카페 입니다. ^^*

법융님께서 '인드라망'이란 용어를 잘 모르시는 듯 해서 잠시 설명 올릴까 함니다.

'인드라網' 이라는 용어는 화엄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인드라는 제석천을, 망은 그물을 뜻하는 말로
그 둘을 조합해서 인드라망(Indra-net)이라고 합니다.

그물코마다 보배 여의주가 달려 있어서 이 구슬은 저 구슬을 비추고,
저 구슬은 이 구슬을 비추지요.
아래 구슬은 위의 구슬을 비추고, 위의 구슬은 아래의 구슬을 되비추고,
중중첩첩 서로서로 비추니 아름답기 그지없다지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하나의 구슬코가 풀리면 그물이 풀려버리지요.
네가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는 이치...
그래서 한 구슬 한 구슬이 모두 소중하고,
한 구슬이 곧 전체 그물과 다름 없지요.

흔히 화엄경의 우주관, 법계관을 설명할 때 이 '인드라망'을 인용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지는 연기의 법칙과 같지요.

인드라망과 인터넷 불교동호회와는 뜻이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아 카페 이름으로 쓰고 있습니다.
인터넷 역시 셀 수 없는 무수한 망으로 짜여져 있지요.
클릭 몇 번이면 인터넷에 등록되어 있는 모든 조직,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나 역시 인터넷 그물의 한 코이기도 하고요.

설명이 길어졌습니다.(큰스님 친견시 인드라망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으셨는데 저희 회원들은 모두 뜻을 알고 있답니다. ^^*

축서사의 발전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요석공주님의 댓글

요석공주 작성일

대단한 까페 인드라망입니다.
그간 많은 순례단체들이 천년고찰이자 적멸보궁인 축서사를 방문하셨는데
이토록 대단한 순례후기를 본적은 드물었던듯 합니다.

돈오돈수
돈오점수
저절로 되는 법이 없이
지극한 신심으로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불심을 심어주시는 님.
선재선재 견성오도 이루소서...()...
동정일여 금강연보리님...^^*

아울러 청정법심 인드라망 회원여러분들
대적평안하옵시길 발원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