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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법문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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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영 작성일10-04-15 14:50 조회2,675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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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지 3월호에 큰스님 법문이 실렸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수행을 통한 진정한 웰빙과 웰다잉
살아있는 명법문
newsdaybox_top.gif 2010년 03월 통권 425호 무여 스님 btn_sendmail.gif newsdaybox_dn.gif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          
‘웰빙’은 몸과 마음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건강한 심신을 유지함으로써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생활양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서, 인생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영위하고자 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나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웰다잉’은 두려움 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아름답고 품위 있게 잘 죽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고, 확실히 맞이하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누구나 바라는 안락한 죽음, 행복한 죽음인 ‘웰다잉’을 맞이하려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웰다잉’이 ‘웰빙’의 완성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성자 달라이 라마께서는 “우리가 죽음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한 삶, 건강한 삶만이 안락한 죽음, 아름다운 죽음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닦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                                                                      
‘웰빙’과 ‘웰다잉’이 요즘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말하는 안락하고 행복한 삶이고, 누구나 갈망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생활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생활이나 음식 또는 여가를 즐기는 것은 좋으나 마음의 평화를 얻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웰빙’이라는 말을 쓰기는 미흡하고 불만스럽다는 것입니다. ‘웰다잉’도 누구나 바라는 안락한 죽음, 행복한 죽음을 얻기는 어렵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나 괴로움은 다소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웰빙’과 ‘웰다잉’은 바랄 수 없단 말인가? 인간이 그렇게 갈망하고 요구하는 진정한 삶과 죽음은 기대할 수 없단 말인가? ‘웰빙’이나 ‘웰다잉’에 대하여 표현은 다르지만 고구정녕하게 말씀해 놓으신 것이 경전이요, 여러 가지 이적을 보여 생사까지도 자재하는 모범을 보인 기록이 천하선지식(天下善知識)들의 어록입니다. 이들 경전이나 어록의 한결같은 말씀은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가려면 반드시 수행을 해야 하고, 인생대사(人生大事)인 생사를 자재(自在)하고 생사를 해탈하려면 견성성불(見性成佛), 자기의 성품을 보아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웰빙’이나 ‘웰다잉’을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수행을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의식주가 풍요롭고 소비가 미덕이라는 시대에 첨단제품으로 화려하게 산다 해도 마음을 닦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고 만족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닦으려면 선(禪)을 해야 하고, 선 중에서 최상승법은 화두선(話頭禪)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선수행으로 안락한 견처를 체험해야 진정한 ‘웰빙’을 느낄 수 있고, ‘웰다잉’에도 자신만만합니다. 안락한 경지를 체험하지 못하면 참수행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안락이란 수행이 잘 돼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안락한 상태의 극치가 바로 극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두에 진정한 의정(疑情)이 일어나 집중이 되면 일체의 번뇌나 망상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들끓어서 괴롭고 불안하던 온갖 생각들이 사라지면 마음은 아주 고요해 일부러 생각을 하고 기억을 더듬어도 고요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고요해지면 몸과 마음이 맑아져 편안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수행이 더 깊어지면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기쁘다고 할 수도 있고 즐겁다고 할 수도 있는 오묘한 법열(法悅)을 느낍니다. 마음의 평화만 느껴도 온 몸에서 봄기운이 돌 듯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반응이 일어나는데, 즐거움까지 느끼면 인생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사고나 자세나 행동까지 달라집니다. 이때는 화두가 동정(動靜)에도 한결같이 되다가 꿈속에서도 변함없이 들리는 정도가 됩니다.
그런 참선자라면 학생이나 주부나 직장인으로서 보람을 느끼면서도 일하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마음을 상당히 닦을 수 있습니다. 주부는 한 여성으로서 주부로서 수행자로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늘 하는 일인, 밥을 짓거나 빨래나 청소를 해도 좋은 기분을 느끼면서 할 수 있고, 직장인도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만족스러운 근무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도가 되면 어디가 아프다, 괴롭다, 소화가 안 된다, 몸이 찌뿌듯하고 나른하다 등 보통 안 좋다는 건강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당뇨나 암 등 웬만한 중병도 초기단계에는 치료 없이 낫는다는 임상결과가 있습니다. 특히 신경계통의 환자에게 특효가 납니다. 정신분열증이나 정신착란증 또는 요즘 젊은 사람이나 여성에게 급격히 는다는 우울증 같은 정신병 계통에 대단한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정신병 환자는 정신이 집중이 되어 일체 망상이 사라져 마음이 고요하고 안정이 되는 상태가 되면서 서서히 좋아집니다.
이와 같이 화두에 정신이 집중이 돼서 일체 번뇌 망상과 잡스런 생각이 다 사라지면 마음은 고요하고 안정이 됩니다. 그러면 마음은 맑아지고 몸은 가벼워서 몸과 마음이 안락한 상태가 됩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안락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행복한 삶, 즐거운 인생, 진정한 ‘웰빙’이라고 합니다.

생사(生死)는 둘이 아니다                                                                 
참선자는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화두는 더 성성하고 적적하게 참구해가야 합니다. 화두가 꿈속에서도 변함없이 잘 되다가 깊은 잠에서도 한결같이 들리는 정도가 되면 신통한 경계까지 느끼게 됩니다. 신통이란 보통 사람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이 통한다 해서 통(通)이라고 합니다.
이런 경지에서 어느 날, ‘아 생사(生死)가 둘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생(生)이 곧 사(死)요, 사(死)가 곧 생(生)이라는 것을 느끼고, 본성은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고, 본성은 영원하다는 확신까지 서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까지도 죽음에 당당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선에서는 이런 정도가 돼야 ‘웰다잉’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깨달음을 열어 생사까지도 자재(自在)하고 해탈(解脫)해야 진정한 ‘웰다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사를 자재하고 생사를 해탈하는 것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고 선정을 익혀야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수행을 잘하여 생사란 본래 나는 것도 아니며 죽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시고, 생사문제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는 명제이고 극복해야 하는 필수적인 과제인 줄을 아시기 바랍니다.
평생 수행해온 선승들은 입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이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죽음은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법신(法身)의 탄생이며, 열반의 기쁨’이라는 것을 겪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옛 도인들처럼 ‘열반은 최고의 행복이며,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은 ‘웰빙’과 ‘웰다잉’에 대해서 잘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고, 어떻게 죽는 것이 아름다운 죽음인가를 느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인연으로 여러분의 생사관이 확립되어 진정으로 발심할 수 있고, 신앙심을 돈독히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 내 지금 금강(金剛)의 몸이지만 무상하여 변하는 것을 면치 못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속히 생사의 불구덩이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라. 이것이 곧 나의 최후의 가르침이니라.” 하셨습니다. 불자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일체 중생의 성품 청정하여
본래부터 생겨남도 멸함도 가히 없는 것
그대가 만일 한 생각에 허물을 안다면
문득 윤회의 고통 끊고 극락에 태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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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여(無如) 스님 ː 1966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상원사, 묘관음사, 송광사, 통도사, 해인사 등 제방 선원에서 20년 동안 수선 안거했으며, 칠불사와 망월사 선원장을 역임했다. 1987년부터 경북 봉화의 문수산 축서사에서 주석하며, 간화선의 전통 확립과 재가불자들의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조계종 기본선원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축서사 문수선원장을 맡고 있다.

댓글목록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영영님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웰빙과 웰다잉을 바로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애써봅시다.

생사관이 확립되어 진정으로 발심하고 신앙심을 돈독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시기 바란다는 큰스님의 법문을 날마다 가슴에 새기며 살아간다면 후회없는 삶이 되리라 믿습니다.

마하심님의 댓글

마하심 작성일

영영님은 늘 큰스님과 축서사쪽으로 두 눈과 귀를 쫑긋 세우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발빠른 영영님 덕분에 저는 자꾸 몸이 게을러지는 것 같습니다.책임지시와요~~ㅎ

큰스님의 글이 아니라도,사진으로나마 그 모습을 뵙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모두 감사합니다._()_

님영영.님의 댓글

님영영. 작성일

님영영~
안뇽하셔영~
자주 오시와영~
오싱께 조차나영~

남영자님의 댓글

남영자 작성일

큰스님 법문 글 너무뜾 깊습입니다 . 욀빙  ,즉 신토 불이 가 아닌지요 ,자연산
우리들에, 삶, 과학이 앞서가도  우리가 하고있는 컴푸터도  자연에 변화는
따을 수 업다는 스님에 법문 개달음입니다 자연에 순리을 지켜야함을 배움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