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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티아고-혼자이면서 함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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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암 작성일10-02-01 12:01 조회2,114회 댓글4건

본문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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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봄 쯤이었다.


동아일보 기자 한 분이 다녀가셨다. 인생의 이모작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또는 인생의 이모작이 뭐가 대단하다구 매스콤에서 이렇게 다루나 싶었지만 내가 직업을 바꾸어야만 했을 때 고민을 깊이 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나의 직업 전환방법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같은 주제로 계속 취재가 오더라도 이리저리 빼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취재는 기사화 되지 못했다. 곧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언제 그런 사건이 우리에게 일어났었나 싶게 우리의 고질병인 망각의 늪으로 돌아가 버린 지 아주 오래된 일이 되었지만 당시는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기자분이 나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동아일보를 그즈음 그만 두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터닝포인트가 주제인 단행본 출간을 위해 마무리 취재가 필요해서 나를 다시 찾았다고 했다. (나중에 그 분이 이미 기사에 쓴 터닝포인트의 주인공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분들은 모두 대단한 분들이었다. 나는 별 것 아닌 존재가 확실한데...이것 참...게다가 기자분 자체도 대단한 터닝포인트의 주인공이 아닌가)

나는 무려 약속 시간에서 40분이나 늦었다. 나는 슈베르트나 에디슨 같은 천재도 아니면서 이상하게 뭣에 몰두하면 시간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너무 잦다.(미친다) 책을 읽고 정리하다 시간을 보니 거의 다섯 시가 다 되었다. 사실 기자분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전화를 주지 않았으면 그것조차 잊어버릴 뻔 했다. 나는 ‘원효를 찾아서’라는 책을 들고 지하철에 올라탔는데 그만 책을 읽다가 내려야할 안국역까지도 지나치고 말았다.

이렇게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경복궁역이라니...(진짜 이럴 때 머리를 쥐어박아야 한다.) 그녀는 취재를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그녀의 책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내게 주고 떠났다. 나에게 산티아고는 매우 낯설다. 유럽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더구나 스페인은 더욱 그렇다. 그녀는 산티아고까지 카미노라고 불리는 길을 따라 걸었지만 나는 책을 따라 그녀가 걸은 카미노를 걸었다. 그녀는 34일 동안 약 800킬로미터를 걸었지만 나는 일주일 동안 그녀가 간 길을 따라 서울에서 800킬로미터를 걸었다. 마치 내가 직접 걸은 듯 다리가 노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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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에서는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삶을 살다온 젊은이를 비롯하여 육순 칠순의 노인들까지 함께 걷고 함께 먹고 함께 자야한다. 그 가운데는 그림 같이 아름다운 길도 있었지만 하루종일 황무지와 같은 길도 걸어야했다. 저자는 깨달음은 처음부터 바라지 않았다고 했다. 무작정 혼자 있고 싶었고 어리로라도, 어디로라도, 이 세상 바깥이기만 한다면 좋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아무 것도 볼 것이 없는 황무지가 아름다운 길보다 오히려 더 자신과 자주 만나는 기회를 줄 것이었다.  볼 것이 많은 곳은 생각만 분주할 뿐 자신과는 점점 멀어지는 경험을 나는 자주 하곤 한다. 그래서 황무지가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고 하는 것이겠지?

산티아고는 카톨릭의 성지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가운데 야고보 성인의 시신이 모셔진 곳이다. 산티아고가 카톨릭 성지가 된 것에는 몇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아름다운 전설 하나가 이 책에 이슬람 여행자에 의해 진솔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 길을 처음 걸은 사람은 8세기경 서유럽을 통일했던 샤를마뉴 대제(Charlemagne, 742-814)라고 한다. 그렇게 높은 분이 이 길을 처음 걸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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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길을 하루에 약 20킬로미터 내외를 걸어야만 하는 일정으로 산티아고를 향한다. 매일 같이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올림픽 공원 평화의 문에 이르는 길까지 걸어야하는 것이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걷기, 냄새나는 알베르게(숙소), 여러 사람이 함께 써야하는 화장실, 물이 안 빠지는 샤워장, 사방에서 코를 고는 사람들 속에서 저자는 계속 자신을 찾아나간다.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야기들도 쏟아내면서 길을 걸어가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따라 걷는다.  나에게도 한동안 길이 있었다. 비오는 날에 서울거리를 수 시간씩 걸은 적도 있었고 아주 어렸을 적에는 금호동부터 지금의 화양동 넘어 광장동까지 걸어갔다가 어머니한테 죽도록 맞은 적도 있었다.

나는 걷는 것이 좋았다. 학교 시절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충남 합덕의 어느 이름 모를 마을을 걸은 적도 있었고, 강화도의 한적한 오솔길을 밥을 해먹으면서 하루종일 걸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 들어가고 부터는 걷는 여행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더구나 이렇게 날을 잡아 멀고 먼 거리를 걸어보겠다는 생각은 지금까지도 못했다.

그러나 내가 길을 인식하게 된 것은 붓다를 알고 난 이후였다. 붓다는 자신의 왕국에서 벗어나 출가의 길을 걸을 때부터 지금의 인도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줄곧 맨발이었다. 그리고 그는 80살까지 그 맨발로 인도를 걸었다. 그 분의 삶은 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분이 걸은 길을 일러 붓다의 옛길이라고 불렀다. 그 옛길은 다만 눈에 보이는 길만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가르침이 그분이 걸은 길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저자는 카미노를 걸으면서 서서히 자신과 만나고 있었다. 저자는 혼자가 되는 데 대한 두려움과 맞서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들이마시는 즐거움도 느끼고,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서둘지 않는 것도 배운다. 그리고 오늘 주어진 것에 충분히 만족하는 법도 배우고, 빨리 걷는 사람은 혼자 걷고, 멀리 걷는 사람은 친구와 함께 걷는다는 사실도 자각한다.

돌이 제자리에 떨어지는 반복이 무한히 거듭되더라도 던지기를 멈추지 아니하고, 낯설고 가혹한 고통 앞에서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운명이 달라지기를 지금도 앞으로도 바라지 않으며 그것이 다시 한 번 반복되기를 흔쾌히 소망하는 일에 머리를 끄덕인다.

저자는 그 길을 걷다가 어느 날 산티아고의 팻말을 무덤덤하게 지나쳤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라. 와버렸네!”

저자의 말처럼 우리 삶의 종착역은 이렇게 끝나버릴지 모른다.


“어라. 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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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발 이 삶을 살다가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저자는 책의 맨 마지막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이렇게 끝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세상엔 나 한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누구도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완벽해 보이는 운명을 흉내 내려 안달하지 않고 나 자신의 불완전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카미노를 걸었다고 해서, 어떤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달라지진 않는다.

우리는 다만 변화하기로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대개의 변화는 늘 느리게 알아차리기 힘들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속도였다. 내 속도에 맞지 않을 다른 지름길을 꿈꾸던 백일몽에서 빠져나와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한 걸음씩 내디뎌야 했다.

사족 : 하루 하루를 정말 바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 책은 느긋하게 살아가야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삶을 살다가 어느 날 자신이 살아온 자취를 돌아보는 일은 추억을 돌아보는 일과는 사뭇 다른 일이다. 지나온 삶은 나의 궤적이다. 그 궤적을 지금이라도 돌아보지 않으면 나의 미래는 어둠 속에 있을 뿐이다. 나의 갈 길이 결코 어둡지 않은 것은 내가 산 궤적 위에 내가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만나야 하는 것이다. 

                                                                                 서암합장

댓글목록

법융님의 댓글

법융 작성일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읽어 보겠습니다.
 언제나 축서사를 사랑하시고
 큰스님을 잘 보필하시는 서암 거사님께 항상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승하시고 뜻하시는 일들이
 모두 잘 이루어 지기를 기원 합니다.
 성불 하십시요 ()

마하심님의 댓글

마하심 작성일

글이 무척 편안하게 와 닿습니다.
그런데 서암님이 쓰신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ㅎㅎ
"어라,죽었네?"참으로 강한 말 같은데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또 뭘까요??^^

날마다 좋은 날이소서_()_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감사합니다. 좋은 책 소개를 해주셔서~~
낼 교보문고 들어가서 살겁니다요.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저는 또 서암님의 새로운 역작이라고 생각되어 요즈음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신조어처럼
‘.....’ 정말 열심히 단숨에 읽었답니다. ^^
왜냐면 당연히 붓다에 심취해 계실 서암님께서 의외의 곳을 선택하여 순례하신 곳이기에
늘 고정관념에 빠져 한곳에서만 헤매고 있을 우리들의 허를 찌른 것이라고 생각되어
‘아 역시 서암님이시로구나.‘하고 무릎을 치면서
’이번에는 또 무슨 메시지를 던져 주시려나.‘
‘나는 또 무슨 충격에 빠지려나.’ 하면서 기대하고 기뻐하면서 읽었는데 아쉽게도 서암님 작품은 아니군요.
그렇지만 저도 주문은 하였답니다.
며칠 전부터 포인트 사용기간이 소멸해 온다는 친절한 인터넷 쇼핑몰의 안내도 받았는지라
아까운 포인트도 살릴 겸하여 그동안 등한시 했던 다른 종교에 관심도 가져보는 계기로 삼고자
또 내가 나에게 그 어떤 신선함을 한껏 부어보고자 하는 소박한 욕심에......
그리곤 곧바로 검색에 들어가 산티아고에 대하여 찾아본 결과 우리 부처님 10대 제자 반열에
오른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가 생각나더군요.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포악하기로 소문난 수루나국으로 목숨을 걸고 포교의 길을 떠났든 존자의
당당한 모습이 생각나 왠지 혼자서 감동하였답니다.
우리 불교에도 어느 종교 못지않은 훌륭하신 분들이 많으시건만 후손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알려주지
않은 그 무책임함과 방일함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송구함을 같이 아울러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