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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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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영 작성일10-01-04 15:46 조회2,081회 댓글2건

본문

 

우리 인간사가 그러하군요. !!!

어제는 보내는 해에 대한 아쉬운 말씀과 송구함을 표현하고

오늘은 새해를 맞이하는 희망찬 인사를 드리고 있답니다.

해마다 교차되는 시점에 여러 곳에서 이런 선시가 올라 왔었는데

올해는 잠잠한 듯 하여 가는해에 대한 미안함과 다가오는 새해를 겸허히 그리고 경건히 맞이하고자 늦었지만 올려 보았답니다.


“묵은해니 새해니 구분하지 말게

겨울가고 봄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학명선사

    


아울러 불교신문에 나타난 우리 불교 속의 호랑이해에 관한 기사도 같이 음미하고자 합니다.

 

 

 

 

신년특집/ 불교에 나타난 호랑이이야기

  
 
불기 2554년 경인(庚寅)년 호랑이 해가 밝았다. 특히 올해는 60년마다 돌아온다는 백호(白虎) 해로 알려져 있다. 경인년의 경(庚)은 흰색과 서쪽, 금(金)을 뜻하기 때문이다. 백호는 한국 역사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백호는 용.주작.현무와 함께 사방신(四方神)으로서 서쪽 지킴이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호랑이들이 자주 출몰하자 궁궐 문에 백호를 그려 다른 호랑이들의 접근을 막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백호는 맹수로서의 용맹성에 기대어 주변의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이로운 존재이자 영적이며 행운과 복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인식되어 있다.
 
 
 
 
“白虎의 기상으로 용맹정진 하시길”
  
 
  역사속 자주 등장하는 영물…행운·복 전해
 
  경전서도 수호신·자비심 지닌 동물로 표현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는 산신령 및 산군자(山君子)로 통하는 신앙의 대상이자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호랑이는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치는 용맹스런 영물이며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예의바른 동물에 비유된다. 그래서 호랑이를 백수의 왕으로 불렀으며 중국전설에는 호랑이를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로 보기도 했다. 또 조선시대 무관 관복의 흉배에 수놓아진 호랑이는 당시 관리들이 깔고 앉았던 호랑이 가죽과 함께 부귀와 권세를 상징했다.
 
호랑이의 위협이 끊이지 않았던 과거에는 호랑이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두려운 존재에서 든든한 수호신(산신)으로 바꾸어 놓았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우리민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불교에서도 산신각에 호랑이와 산신을 배경으로 한 탱화를 걸고 그 앞에 부처님을 모실 정도로 친밀감을 보여주고 있다.
 
호랑이는 여러 경전에서 용맹성을 지닌 수호신으로 비유하고 있고 때로는 자비심을 가진 동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비유경> 중 ‘호랑이의 전생이야기’에는 호랑이가 숲을 지키는 수호신에 비유된다. 이 경전에는 “옛날 범여왕이 바라나시에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숲속에 호랑이가 살며 숲을 지켰는데 그 호랑이는 전생에 목건련존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금광명경>에는 호랑이의 자비가 설해져 있다. 왕이 왕자들과 함께 대숲에 놀러와 즐겁게 놀고 있을 때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허기와 목마름에 지친 몸으로 누워 있었다. 이에 세 번째 왕자가 “목숨에 사로잡혀 지혜가 들쑥날쑥하는 몸은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호랑이를 구하고자 자신은 호랑이 앞에 쓰러졌다. 그렇지만 호랑이는 세 번째 왕자의 마음을 알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전하며 자비심을 가진 동물로 비유하고 있다.
 
<중아함경>에는 돼지왕이 500마리의 돼지를 거느리고 험난한 길을 가는 도중에 호랑이를 만나는 내용을 전하고 있는데, 여기서 호랑이는 돼지의 꾀에 속는 어리석은 동물로 비유하고 있다. 호랑이는 “자신의 조부때부터 입어온 갑옷을 입고 싸우겠다”는 돼지왕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러자 돼지왕은 자신의 몸을 분탕에 던져 냄새를 나게 해서 호랑이와 싸우기 위해 맞선다. 그러자 호랑이는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싸움을 피했다. 결국 돼지왕이 승리를 한다는 내용이다.
 
사찰과 인연을 맺는 호랑이 이야기도 있다. <삼국유사>의 김현감 호조에는 호랑이 처녀가 탑돌이를 하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자신의 몸을 바쳐 인간을 구제하자 그 호랑이의 극락왕생을 위해 호원사(虎願寺)를 지었다는 순애보가 나온다. <삼국유사> 혜현구정조에는 백제때 혜현스님이 <법화경>을 평생 염송하며 수행하다가 입적했는데 도반스님들이 법구를 석실에 모셔놓았다. 이때 호랑이가 나타나 법구를 먹지 않은 채 추위와 더위가 세 번 오가자 스님의 혀와 머리는 방광(放光)하는 사리로 변했다고 전하며, 불심깊은 호랑이로 묘사하고 있다.
 
이외에도 갑사 남매탑에 얽힌 호랑이와 조선시대 환적스님이 가야산 백련암에서 수행하며 호랑이 타고 다녔다는 설화가 전한다. 경인년 새해에는 호랑이와 같은 용맹성으로 어려워진 경제한파를 극복해 나가는 용맹정진을 기대해 본다.
 
임나정 기자 muse724@ibulgyo.com
 
 
 
 
■ 호랑이 같은 스님들
 
불가에는 소위 ‘호랑이 스님’이라고 불리웠던 고승이 많다. 수행을 위해서라면 목숨마저 버릴 만큼 서릿발 같은 기상을 보여줬지만, 가슴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자비의 마음으로 출.재가자를 대했던 스님들은 지금도 후학들의 마음 속에 아로 새겨져 있다.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 스님’의 일화를 담아냈다.
 
 
  
 
호된 경책 뒤 ‘온화한 미소’
 
 
금오 · 성철스님 등 서릿발 같은 기상 유명
 
 
혜월스님의 상좌 도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금오태전(金烏太田, 1896~1968)스님은 사리판단이 정확하고 성품은 불(火) 같아 스님 앞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고 많은 수좌들은 기억한다. 용맹정진 기간에 수마(睡魔)로 인해 졸음을 참지 못한 제자를 본 금오스님은 “네, 이놈 내생에 짐승이 되려고 수마에게 지느냐. 그러려면 차라리 목숨을 버려라”며 야단을 치곤 했다. 그러나 금오스님은 생전에 “마치 자부(慈父)의 너그러움이 큰 바다와 같아야 한다”며 포용력을 후학들에게 강조하기도 했다.
 
일생 선방을 벗어나지 않고 정진하던 명허동근(明虛東根, 1897년~1970년)스님은 정진하다 졸고 있는 수좌의 모습을 보면 “시주밥만 축내고, 내생에는 축생계에 빠지고 말지”하면서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도록 경책했다. 잘못된 것을 보면 바로 잡았던 스님은 상좌들에게 커다란 주장자를 회초리 삼아 야단을 친 후 사탕을 내밀며 마치 할아버지가 친손자를 대하듯이 다독거리는 따스함을 지니기도 했다.
 
강주를 제외한 일체 소임을 맡지 않고 오로지 도제양성에 혼신을 다했던 고봉태수(高峰泰秀, 1900~1968)스님은 왠만한 마음가짐으로는 스님을 대하기 어려웠지만, 특히 상좌들에게는 더욱 엄격해 회초리를 드는 일이 적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 때마다 스님은 “이 뭣고”라며 화두를 점검하고, “승려 보고는 승려 생활을 못한다. 부처님 법을 봐라.… 개가 전봇대에 오줌 싸듯 집착하지 말라”며 ‘수행자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도록 경책하고 훈육(訓育)했다.
 
충무 용화사 조실 이후 소임 맡지 않고 오직 수행정진에 몰두했던 향봉향눌(香峰香訥, 1901~1983)스님의 성품은 강직했다. 수좌들도 향봉스님의 수행원칙을 꺾을 수 없었을 정도였다. 간혹 승려의 위의를 떨어트리는 복장을 한 스님을 보게 되면, 누구든지 바로 그 자리에서 야단을 치고 바로 잡았다. 제자들에게는 찬바람이 불 정도로 엄격한 스님이었지만, 재가불자에게는 자비심으로 대했다.
 
평생 ‘가야산 호랑이’로 살다간 퇴옹성철(退翁性撤, 1912~1993)스님. 특히 봉암사 결사 당시 스님은 납자들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호랑이로 유명했다. 항상 엄격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왕왕 대중들은 봉암사 계곡의 시린 물속으로 향해야 했다. 선방에서도 조는 수좌들에게 가차 없는 경책(警策)이 주어졌다. 그래도 성철스님은 뒤돌아서서는 “부처님 혜명을 잇겠다고 좌복 위에 앉아있는 수좌들이 없으면 나도 없다”며 흐뭇한 미소를 흘리곤 했다.
 
 
 
 
■ 호랑이해 세시풍속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하여 일반민가에서는 호랑이의 그림을 대문에 붙여 나쁜 귀신의 침입을 막았다.” 조선초에 쓰여진 <용제총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쁜 귀신의 침입 막기 위해
 
정초되면 ‘범 그림’ 대문 붙여
 
음력 정월의 범날은 특히 여자들의 출입을 삼간다. 남의 집에 가서 대소변을 보면 그 집사람이 호환을 당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모든 범날은 남의 집에서 소변보는 일, 잠자는 일을 좋지 않게 생각했고 그날은 신발을 감추어 두기도 했다.
 
그리고 단오날 궁중에서는 비단에 쑥을 입힌 애호(艾虎)를 나눠주었다. 이것을 비빈이나 부인은 머리위에 꽂았고 일반서민들은 문호에 매달아 액땜을 하기도 했다.
 
음력 정월 열나흘날 황해도 봉산에는 범몰이라는 민속놀이를 즐겼다. 이 지역은 산골이라 범에게 피해를 입는 일이 잦아 범의 피해를 막고자 산신제를 지내 지내면 범들이 떼지어 춤판을 벌였고 농군들이 종자심기소리를 부르며 흥겨운 마당을 열었다.
 
충남 청양지역에서는 마을 동제의 형태로 전승되고 있는 범놀이가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주위 사람의 허리를 구부리게 하고 그 등 위에 멍석을 뒤집어 씌운 다음 흰 헝겊을 만들어 작대기 끝에 잡아맨다.
 
그리고 머리는 멍석 앞의 앞사람이, 꼬리는 멍석 뒤의 뒷사람이 잡게 하여 호랑이를 만들어 집집마다 들르면서 “산신령 문안이오”라고 소리치면 주인이 나와 영접했다.
 
 
[불교신문 2588호/ 1월1일자]

 

댓글목록

마하심님의 댓글

마하심 작성일

"묵은해니 새해니 구분하지 말게
겨울가고 봄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그렇네요.늘 그러한데...
괜한 분위기에 젖기보다는 겸허하게 맞아들이는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낼모레면 또 봄이 올 것이고...^^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오._()_

법융님의 댓글

법융 작성일

좋은글 올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축서사 홈페이지에 자주자주 들르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십시요
 정말 감사합니다
 성불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