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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영월,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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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채소영 작성일09-01-23 20:55 조회2,8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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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를 안 가보고,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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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청령포(가운데 자갈밭의 우거진 숲)를 서강 물줄기는 오늘도 무심하게 휘감고 돌아나간다.
 
‘봄 실종’은 올해도 여전하다. 4월 중순 한낮 기온이 29도까지 치솟았다. 지난 주 강원 영월 땅이 그랬다. 땡볕이 어찌나 따갑던지 숲 그늘이 그리울 정도였다. 그래서 찾은 곳. 서강의 물도리 동(물이 감싸고 돌아나가는 지형의 땅)인 청령포다.

 청령포 송림을 아직 가보지 못한 분들은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 20∼30m를 훌쩍 넘기는 늠름한 장송도 그렇지만 그 빽빽한 장송으로 이룬 숲 안에 고이 간직된 그늘마당 또한 기막히다. 게다가 숲가로는 이 숲을 동그랗게 감싸며 초록의 강물까지 흐르니 별 세상이 따로 없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천년의 숲’으로 지정된 곳이다.
 녹음(綠陰) 짙은 청령포. 그 숲 그늘이야 말로 그 땅에 담긴 음기의 발산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리고 그 짙고도 짙은 음기 때문에 어린 단종 임금의 유배지로 이곳이 선정됐다. 그렇다. 햇볕에 마음껏 노출되는 이에게 그늘은 도움이지만 햇볕을 빼앗긴 이에게 그늘은 그 자체로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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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호젓한 숲속을 당나귀 등을 타고 거닐 수 있는 '당나귀 타는 원시마을'


청령포 숲 맴도는 단종의 넋 하얀 벚꽃으로 피었어라
 올해는 단종 임금(1441∼1457)이 영월 관풍헌에서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한 지 551년 되는 해다. 그리고 내일(26일)은 승하 후 지난해에 최초로 거행한 단종 임금의 국장을 처음으로 재현하는 날이다. 단종은 조선의 스물일곱 분 임금 가운데 유일하게 승하 직후 국장의 예를 받지 못했던 불행한 군주. 그러나 올해부터는 ‘국장재현’ 행사로 매년 그 죽음을 위로받는 유일한 왕이 됐다. 단종문화제(25∼27일)가 열리는 단종의 땅, 영월로 여행을 떠난다.

영월 주민들 수호신으로 받들어
 영월 주민의 단종 사랑은 특별하다. 먼 길 떠나기 전 혹은 집안 대소사가 걱정스러울 때 장릉(단종 임금을 모신 왕릉)을 찾는다. 단종을 영월의 수호신처럼 받든다. 매년 이맘쯤 열리는 단종문화제는 그런 영월의 단종 사랑을 보여주는 창이다.

 숨진 단종이 왕위에 복위된 때는 승하 241년 후인 1698년(숙종 24년). 조선임금 중 유일하게 왕릉에서 제사를 모시는 ‘단종제향’도 그때 시작됐다. 그러나 제향은 공식행사여서 후손이 아닌 주민은 참가 자격이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단종문화제(1967년)를 만들어 제향일에 즈음해 관련 행사를 치러왔다. 그 하이라이트가 지난해 치른 ‘국장’이었다.

 승하한 지 550년 만에 치른 단종의 국장. 올 국장은 이렇게 재현된다. 25일 견전의(영면을 기원하는 의식)를 필두로 26일에는 관풍헌을 출발해 장릉까지 이어지는 발인행렬에 이어 재궁(관)을 묻기 전에 드리는 천전의, 신주를 모시고 동강둔치까지 돌아오는 반우행렬이 펼쳐진다. 발인행렬에는 군민과 학생 등 1000여명이 참가한다.

 생후 사흘 만에 어머니를 잃고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의 품에서 커 열한 살(1452년)에 왕위(조선 6대 왕)에 오른 단종. 그러나 재위 3년 1개월 23일 만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이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청령포로 유배돼 끝내 사약을 받고 숨진다. 그리고 시신은 버려졌다가 한 의인에 의해 몰래 매장된다. 이런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온 영월사람들. 그들에게 단종은 한 식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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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은 이곳에 유배됐다가 홍수가 나는 바람에 두달만에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겨 거기서 사약을 받았다.


 그런 영월인지라 지금도 곳곳에는 단종의 모습이 남아 있다. 지명을 보자. 청령포로 향한 유배 길. 코스는 원주∼신림∼주천이다. 신림 황둔을 지나 오르던 한 고개에서 임금은 금부도사 왕방연에게 묻는다. 무슨 고개가 이리도 험한가라고. 그러자 왕방연은 이렇게 답한다. “노산군께서 오르시니 이제부터는 군등치(君登峙)라고 하옵지요.” 군등치를 내려서면 신천리. 이곳은 당시 주민들이 몰려나와 대성통곡을 했던 곳인데 ‘명라곡(鳴羅谷)’은 거기서 유래됐다.

 신천을 지나 남면 북쌍리로 가는 도중에 배일치(拜日峙)라는 고개가 있다. 단종이 땅에 엎드려 서산에 지는 해를 향해 절을 했다는 곳이다. 소나기재는 단종제향이 시작된 후 제물을 나르던 사람들이 단종의 원망처럼 퍼붓던 소나기를 오를 때마다 만났던 곳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뒤로는 첩첩산중, 앞에는 강물 막혀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남면 광천리)는 알려졌다시피 천혜의 감옥이다. 뒤로는 톱날 같은 뾰족 봉이 줄지은 육육산이 버티고 있고 그 앞과 좌우는 강물에 가로막힌 형국이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나룻배 없이는 오갈 수 없는 섬 같은 땅이다. 강물에도 냉수대와 소용돌이가 있어 헤엄도 용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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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령도는 단종 유배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나룻배를 타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천혜의 유배지다. 관광객들이 배에서 내려 단종어가를 향해 청령포의 자갈밭을 걸어가고 있다.

 그 청령포를 찾았다. 단종애사(哀史)를 들려주는 유적을 찾아서다. 송림에 들어서니 담장 너머로 기와집이 보인다. 단종이 기거했다는 어가인데 최근에 지은 것이다. 이 안에서 있는 ‘단묘재본부유지비’는 이곳에 어가가 있었음을 알리는 비석(1763년·영조 39년)이다. 오른쪽 숲으로 나가면 ‘금표비’가 있다. 동서로 삼백 척, 남북으로 사백구십 척 공간에는 어떤 이도 접근을 엄금하는 내용인데 1726년(영조 2년)에 유배지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600년 된 관음송 당시 비극 말해주는 듯
 어가 뒤편의 숲 속에 키가 30m에 이르는 수령 600년의 소나무 ‘관음송(觀音松)’이 있다. 그 이름은 당시 여기서 피눈물을 흘리던 단종을 보고(觀) 그의 시름에 찬 소리(音)를 들었다는 뜻이다. 관음송 뒤로 가파른 바위벽이 숲과 강 사이에 놓여 있다. 양방향으로 나뉜 나무 계단으로 오른 바위꼭대기에는 각각 망향탑과 노산대가 있다.

 망향탑은 단종이 직접 쌓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돌탑, 노산대는 동대문밖에서 시녀들의 구걸양식과 염색일로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던 부인 정순왕후 송씨를 그리며 도성을 바라다보던 곳이다. 절벽 아래로 서강과 주변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단종의 시신은 동강에 버려진다. 그러나 세조의 엄명 때문에 어느 누구도 수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 와중에 용감한 이가 나선다. 당시 영월호장(戶長) 엄홍도다. 그는 세 아들과 함께 시신을 건져 지게에 지고 영월 서북쪽 산줄기의 높은 곳에 암장하고는 그 길로 자취를 감춘다. 이곳은 영월 엄씨 가문의 선산. 이후 가문은 영월 땅을 떠나 봉화 등지로 이주했다. 장릉에는 엄홍도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는 유적이 있다.

단종 쉬었던 곳에 지은 ‘유어캐슬’ 핀란드식 나무집으로 각광
 영월에는 강이 많다. 동강 서강 그리고 주천강. 그 주천강에도 단종애사가 흐른다. 쌍섶다리와 요선정이 그것이다. 쌍섶다리는 장릉을 찾는 관찰사의 가마꾼이 건널 수 있도록 임시가설하던 다리다. 요선정은 물살에 탁마된 멋진 바위(요선암) 물가의 정자로 청령포로 유배 길에 오른 단종이 잠시 쉬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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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요선암 바로 앞에 멋진 나무집으로 이뤄진 펜션 ‘유어캐슬’이 있다. 본채와 손님채(4동), 사우나(1동)와 휴게실(1동), 그릴(실내에서 바비큐 할 수 있도록 화로시설을 갖춘 자그만 나무집)이 모두 정통 핀란드 스타일인 나무집이다. 주인 황종현 씨가 핀란드회사에 주문해 핀란드산 홍송(紅松)으로 장만해 보내온 목재 킷을 조립해 건축한 오리지널 핀란드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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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에서 사우나는 나무집 독에서 땀을 흘린 뒤 호수 물에 몸을 담그거나 샤워장에서 몸을 씻고 독 옆의 휴게실에서 맥주나 주스를 마시며 담소하는 방식으로 즐긴다. 유어캐슬 역시 같다. 호수 대신 야외수영장이 있는 것만 빼고. 홍송의 은은한 향기 속에서 즐기는 나무집 펜션의 숙면은 보너스다. 잔디마당, 팔각정 등 시설도 다양하다. 황 씨와 부인 홍옥경 씨가 가족과 함께 살면서 운영하는 ‘진짜 펜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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