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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운 선사의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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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월화 작성일08-05-16 21:45 조회1,832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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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운선사(時雲禪師)의 참회




묘향산 염선봉 절벽 위의 조그마한 암자 상원암(上元庵)에는 시운선사(時雲禪師)와 혜성(慧成)이라는 어린 동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시운선사와 절친한 친구의 아들인 혜성의 본명은 최치록(崔致祿)으로, 갓난 아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스님을 따라와서 이 암자에 살게 된 것입니다.

시운선사는 "내 아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달라."는 친구의 유언대로 혜성이에게 정성껏 글과 무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혜성이의 나이 스물에 이르자 혜성이의 장원급제를 위한 천일 기도를 남몰래 시작하였고, 천일 기도가 끝나는 날 혜성이를 불렀습니다.
"혜성아. 이제 속세로 내려가서 과거를 보도록 하여라."

"아니되옵니다. 스님. 저는 아직 공부가 미흡할 뿐 아니라 스님을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습니다. 스님. 조금만 더 있게 해주십시오."
"장원급제하여 백성들을 잘 보살피는 것도 부처님과 나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 이제 때가 되었느니라. 더 이상 고집 부리지 말고 내려가도록 하여라."

스님의 단호한 태도에 혜성은 더 이상 보채지 못하고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스님. 부디 만수무강하옵소서."
큰 절을 올리고 떠나가는 혜성의 뒷모습을 보며 시운스님은 끝없이 축원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부디 혜성이가 입신양명하도록 은덕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어느덧 해가 바뀌어 화창한 봄날이 돌아오자, 시운스님은 묘향산 밑의 안주(安州)로 내려가 탁발을 했습니다.

이 집 저 집을 돌면서 적지 않은 공양미를 시주받은 스님은 임자를 향해 발길을 돌리다가 몇 가지 물건을 사기 위해 장터로 갔습니다.
스님이 막 장터로 들어섰을 때, 젊은 거지 하나가 장삼자락을 잡고 애처롭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한푼만 보태 주십시오. 며칠을 굶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시운스님은 엽전 몇 닢을 꺼내어 가엾은 거지의 손에 쥐어 주다가, 문득 거지의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너는 혜성이 아니냐?"
"앗. 시운스님!"
"그렇게도 오랫동안 부처님께 빌었건만, 장원급제는 고사하고 거지 신세라 말이냐?"

시운스님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았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기구한 운명과 처참한 현실에 대한 저주와 분노가 부처님에 대한 증오로 바뀌었습니다.

스님은 몸을 돌려 상원암으로 향했습니다.
백여 리나 되는 험한 산길을 한달음에 뛰어올라온 스님은 칼을 집어 법당으로 달려들어 갔습니다.

"이 허수아비 부처야! 그렇게도 사람을 속일 수 있단 말이냐? 에잇!"
스님의 손에 들린 칼은 쇠로 만든 부처님의 복부로 향했습니다.
"찡-."

칼은 부처님의 배에 깊이 꽂혔고, 실성한 듯 시운스님은 절을 뛰쳐 나왔습니다.
그리고 방방곡곡을 돌면서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저주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어언 3년의 세월이 흘렀고, 시운스님의 발걸음은 묘향산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상원암은 어떻게 변하였을까? 아, 부처님의 배에 꽂은 칼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스님의 발길은 저절로 상원암으로 향했습니다.
마침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암자에 도착하여 법당 문을 열자, 배에 칼을 꽂은 부처님이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깊이 죄의식을 느낀 시운스님은 먼저 부처님의 배에 꽂힌 칼을 뽑아 드리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들어 갈 때는 그토록 쉽게 들어갔던 칼이 아무리 힘을 써도 뽑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꽂힌 칼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포기하고 법당 앞뜰에 앉아 옛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산 아래에서 요란한 풍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귀를 의심하여 아래로 내려다 보았더니, 여러 관속과 하인들을 거느린 행렬이 암자를 향해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 마당이 요란해지더니 젊은 관속 하나가 소리쳤습니다.

"안주 목사 행차시오."
할 수 없이 시운스님은 목사의 행차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가마에서 내린 안주 목사가 스님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안주 목사 최치록이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오. 혜성아! 네가 틀림없는 혜성이렷다?"

스님과 안주 목사가 된 혜성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곧이어 혜성은 그때 암자를 떠난 직후 몹쓸 병에 걸려 고생을 하던 중 시장에서 스님을 만났다는 것과, 그뒤 병이 나아 과거에 급제하고 안주 목사에 제수되어 가장 먼저 스님을 찾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잠시 후 혜성은 시운스님을 모시고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합장 배례한 후, 부처님께로 다가가서 배에 꽂힌 칼을 한 손으로 쉽게 뽑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당돌한 소행을 용서하옵소서. 실은 어젯밤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이 칼을 빼도록 일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뽑은 칼을 시운스님께 건네 주는데, 그 칼에는 뚜렷이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운속죄(時雲續罪)."

시운스님은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1백일 동안 단식을 하면서 행하는 참회좌선(懺悔坐禪)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님 앞에 청수(淸水) 한 그릇과 부처님을 찔렀던 칼을 놓고 깊이 깊이 참회하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21일이 지나자 칼에 새겨졌던 '시운속죄'라는 글씨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시운스님은 참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자기의 죄가 소멸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윽코 단식참회 30일이 되었을 때 탈진한 시운스님은 부처님 앞에 쓰러져 입적하였습니다.

그때가 1459년(세조 5) 8월이었고, 소식을 들은 안주 목사 혜성은 후히 장례를 치르고, 절기에 따라 극진히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합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가피가 빨리 찾아올 때도 있고 늦게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같은 태양이 천하를 비추지만, 봉우리에는 빛이 먼저 찾아 들고 골짜기에는 빛이 나중에 찾아 드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의 가피가 조금 늦게 찾아 든다고 하여 조급증을 낼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큰 애착과 큰 기대는 큰 착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마치 이 시운스님처럼...

댓글목록

법융님의 댓글

법융 작성일

조그마한 기도를 드리고는 금방 태산같은 가피를
 바라는게 무명속의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하데요,
 시운선사처럼 기도의 응답이 금방 없다고
 부처님상에 칼을 꽂는 어리석음을 누구나 다
 범할수가 있을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공덕, 기도의 공덕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
 꾸준히 정성을 드리면 현생이 아니면 내생에 반드시
 응답이 있을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급하게 기도의 가피를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오래 인내하며 열심히 하라고 일러주시는군요.
속세의 어리석은 중생이라 조금만 하면 더 큰 것을 바라는 마음이 앞서는 듯 합니다. 감동적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화는 참지 못하는 데서 온다는
어늘 경구가 생각 납니다.
무슨일을 당했을 때 바로 판단하지 말고,
차분히 생각하고 조급하게 행동 할 일은
아닙니다.

항상 오근을 잘 챙겨서 휘둘리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