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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에 참가하신 고우 큰스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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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영영 작성일08-05-09 12:18 조회1,91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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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대혜스님을 너무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저번 순례단에도 동참하고 싶었지만 사정상 어려웠고 또 큰스님께서 강의하시는 ‘서장’ 강의도 듣고 싶었지만 역시 여의치 않답니다. 그러나 이번 순례기사를 보고 나서 많은 것을 얻었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데에 놀랐고 또 언젠가는 대혜스님의 행적을 찾아가 보아야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기사를 보고 난 이후 확고한 자신감을 얻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가 애를 쓰지 않아도 쉽게 대혜스님의 행적을 찾을 수 있게끔 미리 개척해 주신 큰스님과 순례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매일 매일 행복 원리 위해 부처님은 세속 행복 등져” 순례단 참가한 고우 스님 
 
 
“선(禪)을 공부하는 이유가 뭔가요?”

대혜 선사 유적지 순례단을 향해 고우스님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물음을 던졌다. 다들 고개를 쭉 내밀었다. 스님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자답했다.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세속의 행복이고, 또 하나는 부처의 행복이죠.”

또 두 ‘행복’은 향하는 곳이 서로 다르다고 했다. “세속의 행복은 밖을 향하죠. 밖에 있는 걸 충족시킬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겁니다.” 반면 ‘부처의 행복’은 안을 향한다고 했다. “부처님은 ‘세속의 행복’에 만족하지 않으셨죠. 행복이 뭔가요. 운문 스님이 말한 ‘날마다 좋은 날’이죠. 밖을 향하는 세속의 행복은 ‘날마다 좋은 날’이 되질 못합니다. 밖에서 얻은 게 채워질 때만 행복한 날이니까요.”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속의 행복’을 등졌다고 했다. 부도, 명예도, 왕자의 지위도 버렸다고 했다. “부처님은 매일매일 행복해질 수 있는 원리를 찾아간 겁니다. 그 원리는 지금에도 유효합니다. 중국에서도 숱한 선사들이 그런 행복의 원리를 찾아 나섰고, 또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스님이 중국을 찾은 이유를 다시 한번 일깨웠다. “여러분이 이 먼 중국 땅까지 찾아온 건 무엇 때문인가요. 부처님이 발견한 세계가 도대체 어떤 세계인지 궁금하기 때문이죠. 그 세계를 살다간 조사들의 흔적을 느껴보기 위함이 아닙니까.”

목숨을 걸고 수행을 했던 역대 조사들의 ‘자리’에 들기란 쉽진 않다. 스님도 그 험난함도 인정했다. “깨치기가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러나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행복의 원리’를 이해만 해도 일상이 바뀝니다. 나를 해치는 일도, 남을 해치는 일도 하지 않게 되죠.”

스님은 팔만대장경이 바로 부처님의 깨침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대인은 바쁘다. 그걸 모두 공부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을 압축하고, 압축하고, 압축하면 한 글자가 된다고 했다. 바로 ‘반야심경’에 나오는 ‘오온개공’의 ‘공(空)’자라고 했다. “불교의 ‘공’을 절대 오해하면 안 됩니다. ‘공’은 아무것도 없고, 허망하고, 허무한 게 아닙니다. ‘공’은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걸 굉장히 지혜롭게 만듭니다. 그걸 ‘마하반야(큰 지혜)’라고 합니다. 마하반야로 살면 ‘날마다 좋은 날’이 되는 겁니다.”

스님은 ‘공’을 이해하면 공동체 의식이 온우주로 확장된다고 했다. “생명 있는 것과 생명 없는 것, 이 모든 우주가 나와 둘이 아님을 알게 되죠. 큰 공동체를 알게 되면 ‘매일 매일 좋은 날’이 안될 수가 없죠. 지구상에는 하루도 전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환경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죠.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대안이 ‘선(禪)’입니다.”


항저우=백성호 기자

댓글목록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큰스님의 안목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흔히 불교를 먼가 버리고, 오욕락을 참고 끊고,
부모와 모든 세속으로 부터 멀어져야 하는 종교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왜그래야만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사실은 궁극의 행복을 위해서 이지요.
위에 언급한것들은 궁극에는 고통으로 변하니까?
바로 쾌락주의 역리 현상에서..
역사상 모든 쾌락주의는 망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아니, 모든 사회의 근저에 깔려있는
도덕성이나 규율에는 금욕주의가 내재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는 대표적으로 오계 십계이지요. 모두 금욕주의라고 할수 있습니다.

필받는 글이 올라와서 또 먼가 말이 길어지지요.ㅎㅎ
제가 불교를 공부하게 된 계기라서..
세상이 너무 고통스럽쟎아요.

다시 한번 강조 합니다.
불교는 궁극의 행복을 처절하게 구하는 종교라는 것.
궁극의 행복을 말이지요.
그래서 날마다 좋은날 되라는 저에 인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