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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 스님,질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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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하심 작성일08-06-10 09:44 조회2,361회 댓글12건

본문

'부처를 베고,조사를 벤다' 라는 '살불살조'가 어떤 의미로 쓰인 말인지
스님의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공부하다가 의문이 생긴것이 아니고 다른 사이트를 다니다 보니
의문이라고 하긴 뭣 하지만 이해가 좀 어려운 말이고,또 언젠가 스님께서
음악방에서 짧게 한마디 언급하셨던 부분이라 스님의 "길고 딱딱한"글에
길들어져 있어 "혜안 스님표"설명을 듣고 싶어서입니다.

댓글목록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참으로 재밌고 신선한 충격의 질문이군요.
혜안스님의 명쾌한 답변을 기대하겠습니다.

해 삼님의 댓글

해 삼 작성일

ㅎㅎㅎㅎ

  혜안 스님
  마보살님의 " 살불살조' 일구에 침묵이 길어 집니다
  혹여
  유마거사의 침묵은 아닌지 ?  그럼 별론 대요  호호호 죄송!

  하여튼 저 해삼도 기대 됩니다. " 혜안스님표 " 강해를 ...

  * 일일시호일 *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요즘 밭에서 일하느라고 정신 없어요.ㅎㅎ
홈피에 와보니 글이 엄청 올라와서 다시 밭으로 가고 싶네요.
오늘은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따먹었지요. 산딸기도 있지만 뽕나무 열매도
많이 있더라구요.ㅋㅋ


살불살조 하니 먼저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어서 먼저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일본에 유명한 다쿠앙 선사라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날 쯤에 활약하신 선사이지요.
참고로 일본에도 대단한 선사가 많다는것...... 제가 좋아하는 백운 혜학이라는 분도 있고요.(법명도 멋있지 않나요.ㅋㅋㅋ)

다쿠앙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의 단무지와 연관이 있지요. 전에는 다꽝이라고 했던 짜장면 먹을 때 꼭 먹는것, 그것이 다쿠앙 선사로 부터 유래가 되었어요. 어느 장군이 선사를 방문해서 식사를 하는데 산에서 선사가 대접하는 공양이 머가 있었겠어요. 단지 먹던대로 단무지하고, 밥하고 그렇게 접대를 했지요. 그런데 이공양을 대접 받은 장군이 항상 미식에 길들여져 있다가 담백한 단무지를 먹고는 아주 맛잇다고 극찬을 한 겁니다. 그후부터 이 단무지를 선사의 이름을 딴 다쿠앙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물론 선지도 대단해서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만 오늘은 시간 관계상....

그스님한테 어떤분이 기생의 누드화를 그린 그림을 가지고 와서 평을 해달라고 하면서 스님을 시험 합니다. 그때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그분의 무애자제한 경지를 들어 내었지요.

부처는 진리를 팔고, 조사는 부처를 파는데, 그대는 6척(정확한 수치는 기억이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몸을 팔아 일체 중생의 근심을 풀어주누나....  라고 찬을 해서 그를 시험하려고 한 그분을 탄복 시켰다로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다시 부처와 조사를 진리를 파는 장사꾼 정도로 치부를 합니다.
불교의 창시자이고, 진리를 구족하셔서 더 없이 높은 경지에 오른 분을 이렇게 매도 해도 되는 것인지....
심지어 어떤 중국에 선사(단하천연??)는 불상을 패어서 장작불을 지피기도 하고요..
이러한 일이 도덕적으로 아니면 문화적으로(사람이 살아가다보면 공통에 룰이나 보편적인 삶의 형태들이 있지요) 납득 할수 있는 일일까요?

그렇치만 이러한 일들을 중국의 선사들은 거침없이 해내고 잇습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살부살조의 사상 입니다. 즉 부처가 오면 부처를 베고, 조사가 오면 조사를 벤다는..... 그것은 이세상에 걸림없이 살라는 진정자유로운 깨달음의 세계를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깨달은 군상에서 보니 모두가 부처이고,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부처나 조사등에 현혹되어서 자신의 보물을 알아 보지 못하냐는 불성론, 즉 일체중생 실유불성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자신이외의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으면 우리는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진리의 세계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번 중국 불교와 인도 불교의 차이점에 관해서 언급한적이 있는데요, 이러한 사상은 전형적인 중국적인 사상의 발로라고 할 수있습니다. 인도불교는 성스럽고, 거룩한 분위기이지만, 중국 불교는 문화적인 배경에서 일상성의 종교라는 표현을 했었습니다.

도를 아주 흔하고, 일상적인 표현에서 찾습니다. 똥막대기, 뜰앞의 전나무, 여릉의 쌀값, 평상심시도 등등... 이러한 배경하에서 도는 아니면 진리는 현실을 떠난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떠난 그 어디에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부살조의 삶을 살라고 한 것이지요. 그게바로 수처작주 입처개진(처한자리에 주인이 되면 모두가 진리의 세계라는 ..)이라는 말과도 일맥 상통하고요,
어떤 선사는 내가 만약 그때 그자리(부처님이 탄생해서 일곱걸음을 걷고 사자후를 토하신때)에 있었다면 그어린 것을 찢어서 개의 먹이로 주었을 텐데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요. 철저이 지금 현재의 이순간(This is moment)그리고, 자신의 마음자리를 강조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자면 그 어떤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철저한 자신의 삶을 살라는 중국 조사선사들의
사자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믿고 있는 부처에게서 조차도....

조금 정리되지 않은 글을 올려서 죄송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뜻을 이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부분은 보충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질문이 있으시면 올려 주세요..
끝까지 읽어 주시기나 하시려는지...!!

마하심님의 댓글

마하심 작성일

_()_

해 인님의 댓글

해 인 작성일

스님 내친 김에 제 2구 올립니다 .

  제 1구는  마보살님의 "살불살조 "

  제 2구는 부처께서 중생을 다 제도하시고 나선
              "  제도 한 중생이 하나도 없다 " 아니 제도할 중생이 아예 없다 "

  혜안  스님 이 무슨 자다가 " 봉창 뚜두리는 소린지 ?  도통 알수 없네 예
 
                ㅎㅎㅎ  오디는 다른 중생들에게  양보하시고 한수 부탁 드립니다 .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몇자 보충을 하자면,
어떤 글을 읽을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중량감을 가지고 글을 읽으면 핵심 포인트를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은 어떤 주제나 결론에 이르기 위한 설명이나 문장을 이어가기 위한 부사들이 많지요. 따라서 글을 읽는데도 완급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것은 그글을 읽기전에 사전 배경 지식이 있으면 더 쉽고, 아니면 흔히들 행간을 읽는다거나, 함의를 깨달을 정도의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도의 수준에 잇는 사람은 사실 주위에서 흔히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리고 살부살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우리가 진리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현재와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에 관한 불교적인 인간관을 이해 하면 위에 설명보다 더 명확해 집니다.
글을 쓰고 나니 오히려 원론적인 부분에서 시작을 할 것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회가 있으면 정말 불교공부를 위해서 중요한 기본 개론학의 일종으로 언급을 해볼까 합니다.(이미 공부하기로 한 주제들이 너무 많아서 언제다 할지????)

위에서의 핵심 내용은 아마도 "자신이외의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으면 우리는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진리의 세계 이를 수 없다는 것"과, 수처작주, 그리고 불성론(일체중생 실유불성)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사실 위에 내용을 잘 이해하면 불교전체의 줄거리가 통채로 뽑힐수 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근원을 올라가면 연결 되어 있거든요.

일본의 세계적인 대학자가(정말 불교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이고 수행자의 모습도 합께 가지고 있는 분,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 중요한 단어 20개 정도만 철저하게 알고 있으면 그는 대단한 학자라고 할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래서 공부를 하시는 분들 차분하게 기초에서 부터 탄탄하게 공부하실 필요가 잇어요. 그러면 나중에는 공부가 일취월장하게 됩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모든것이 그러하듯이 큰 진전을 이루기는 어렵습니다..팁으로 몇자 언급했구요.ㅋㅋ

시간되는 대로 또 생각나는 대로 위에 주제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사실은 머릿속에서 금강경의 응당 주하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응무소주 이생기심)는 주제로 접근을 할까 하다가 갑자기 뽕나무 이야기 하다가 바뀌었어요..
그리고 해인님의 수준이라면 위에 질문은 이미 알고 계시거나 아니면 스스로 공부 할 수 잇을 거라 생각 합니다.ㅎㅎ 물론 꼭, 반드시 저의 견해을 올리 겠습니다만, 오늘이나 이번주 중에는 시간이 없을것 같아서...밭에 풀은 정말 무섭게 자라고 있거든요..일하고 나면 저는 제가 수행할 시간이 또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이해해 주세요....이런 질문을 해주시니 정말로 기쁘고 감사 합니다.

끝으로 마보살님 제가 홈피에서 언급하기로 한 글들이 머가 있는지 말하고도 잊어 먹었어요.
시간 있으시면 정리해서 목록으로 알려 주셨으면 좋겠네요.ㅋㅋ 인터넷에서도 매일 빚에 쫓기고 사는 기분 입니다. ㅎㅎ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모두 행복한 오후 되세요..^^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정말 쉽게 잘 풀어서 설명해 주셨군요.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고 재미가 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아예 프린트로 뽑아서 다시 읽어보았답니다.
마치 ‘쉽게 읽는 선서’ 같군요.

아 ~ 정말 글 속에 무궁무진한 보배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하나씩 찾아내어 음미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 같습니다.
정말 날씨도 너무 좋고 스님 덕분에 행복한 오후가 되었답니다.^^
앞으로도 많은 고견을 기대하겠습니다.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아!!
드디어 제 글을 이해해 주시는 분을 만났습니다.ㅎㅎ
저는 영영님 덕분에 행복한 오후가 되고 있습니다.ㅋㅋ

다음에는 단무지스님(저의 글을 읽으신 분들은 이해 할겁니다.^^)의
일화를 몇가지 올려 드릴께요?

절대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으로다가......
이건 팁이라고 할수 있지요.ㅎㅎ

날마다 좋은날 되세요~~^^

해 인님의 댓글

해 인 작성일

호호호

  마태복음 22장 14절 : " 부름을 받는 사람은 많치만 , 선택된 사람은 적다 "

  스님 " 일본의 세계적인 대학자 하면
  혹여 스스키 다이세스 박사 아닝교
  하도 오래전에 기억이라 가물가물 하지만

  서구에서 선의 고전이라 불리는 는 책을 쓴(책 재목이 갑자기 생각나 지 않내요  선 000 )

  이 냥반 때문에 서구에서 '선을 일본식 발음 '잰으로 하게되었다나 어쩄다나
  전설이 있는 ㅎㅎㅎ  .........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사실은 저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그냥 얼버무린건데.ㅋㅋ
그런데 스즈키 다이세스 박사는 아니구요, 돌아가신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요. 일본에는 정말 세계적인 대학자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나카무라 하지메 교수가 있구요, 다이세스 교수도 있습니다.

지금 얼핏 제기억으로는 선을 젠으로 발음하게 만든 장본인은 하지메 교수같구요,
이분이 처음으로 서양에서 강연을 하는데 연단에 올라가서 가부좌하고 30(??)분인가를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내려 왓답니다. 그랬더니 무슨말을 할까 잔뜩기대하고 있던 서양에 학자들이
극찬을 하면서 다음날 신문에 "이것이 선이다"(This is zen)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어설픈 기억에 의지한 것이니 이런 일화가 있었다는 것만 아시기를... 이러한 일화가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선의 황금시대라는 책이 있구요, 가름침의 현상학(?)이란 책도 기억이 나는데 위에
두분의 어느분 것인지 좀 헷갈리네요. 가르침의 현상학이 다이세스 교수님 것같구요(아님말구요,너무
무책임해서 죄송 합니다. 이것이 학술회장은 아니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ㅋㅋ)

한때 일본인 학자의 책을 많이 보았었는데(사실 한국불교학의 대부분 기본에는 일본불교학의 차용이 있어요. 한국의 불교학은 정말 열악해서, 이쪽분야는 일본이 거의 주도를 하고 잇지요. 요즘에는 한국불교학도 많이 활성화 되고 있습니다만...최근의 일이지요)워낙 암기력이 떨어져서 읽고는 그때뿐이네요.^^:;

혹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인터넷에서 찾아 보시기를...
이정도 자료면 아주 쉽게 찾을수 잇을 거라 생각 합니다.(전 하기싫어요!! 누군가 해주시면 전 그냥 보기만 하겠습니다. 얼마나 현명한지.....내가 생각해도...ㅋㅋ)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젠을 세계에 알린 분은 다이세스 교수님이
맞습니다.ㅋㅋ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네 ~ 정말 재미있군요
마치 아고라를 연상시킵니다.
감히 여쭙고 대답하고....... 정말 신이 납니다.
그리고 부처님 재세시도 생각나는군요.(물론 무문자설도 있지만요)
살아있는 법석 같아서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