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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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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법융 작성일06-05-28 00:38 조회2,865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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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하면서 마음을 내라...


이는 금강경에서 수보리 존자가 아라한이 되어서 이제 보살도인육바라밀을 수행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었을 때 물음에 대하여 석가세존께서 말씀하신 구절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는 참으로 밝은 생활 수행법입니다.


사실 이 가르침 속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오온사제법과 십이연기를 깨우친 아라한이 이제하회향의 보살도를 수행할 때의 마음자세를 묻는 구절입니다. 이 말은 어려운 말도 아니고, 삶과 동떨어진 교리적인 차원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 현실에서 우리들, 보살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하게 보여주는 참으로 밝은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만 생활한다면 누구나 관세음보살이 되고, 지장보살이 되고, 수보리 보살이 되고, 모두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한 구절을 가슴 속에 가득 품고 살아갑시다.


'머무름 없는 마음' 이 하나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생활들을 모두 벗어던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꽉 붙잡고 살아오던 '나'라는 것을 크게 포기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태껏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학자들은 석가세존의 출가를 "Great Renouncement" "위대한 포기"라고 말합니다. 크나큰 포기가 출가의 진정한 의미였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하나하나에 마음속에 담아두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살이가 너무나 무겁고 버겁습니다. 모든 경계는 한 순간 인연 따라 허망하게 잠시 스쳐갈 뿐인데 그 스치는 허망한 경계를 우린 꽉 붙잡고 살아갑니다.지금까지 수십년, 수 억겁을 살아오며 그렇게만 살아왔으니 어디 힘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힘들다', '힘들다' 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놓아야 할 짐들이 너무 많으니 말입니다.


손바닥과 손바닥을 부딪치면 '짝' 하고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그 '짝' 하는 소리는 고정된 실체가 없는 법입니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마주치는 순간, 그 찰나에 잠시 일어난 것일 뿐이며 찰나의 바로 다음 순간 공(空)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 소리에 집착을 한다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짝' 하는 소리는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손바닥과 손바닥이 서로 마주친다는 인연따라 잠시 왔다가는 것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이 모든 경계 또한 잠시 인연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 하면 사라질 뿐입니다. 어디에도 고정된 '짝' 하는 소리가 없듯 어디에도 고정된 실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상대'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과, 돈이며, 명예, 권력, 지위, 이성, 지식과 같은 우리가 현실에서 추구하는 각종의 경계에서부터, 구체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경계(色), 귀에 들리는 모든 경계(聲),코로 냄새 맡아지는 모든 경계(香), 혀로 맛보는 모든 경계(味界),몸으로 감촉되어지는 모든 경계(觸), 뜻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계(法)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경계는 어느 것 하나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짝' 하는 박수 소리와 같이 인연따라 잠시 나타났다가 나타난 사이도 없이 사라지면 그만입니다.


거기에 그 어떤 고정관념을 지을 수도 없고 집착을 두어 마음을 붙잡아 둘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 앞에 펼쳐지는 모든 대상에 마음을 머물러 집착할 바는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각각의 모든 대상에 제 아상만큼 '착(着)'을 두고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바로 이것입니다. '착심', '머무르는 마음'인 것입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아 머무르지 않는다면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괴로움의 대상이 모두 허망한 것임을 안다면 거기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괴롭고, 화나고, 답답하고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어남' 그 자체는 어쩔 수 없으며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일어난 그 경계에 머물러 '착'을 두는 데에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것, 싫은 것을 보고도 그 대상에 마음이 머물면 안됩니다.칭찬이나 비난을 듣고도 그 소리에 마음이 머물면 안됩니다.


좋은 맛, 싫은 맛에 마음이 머물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생각을 계속 떠올리려 하거나 싫은 생각을 지워버리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화를 내되 '화냄' 그 자체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화냄 그 자체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화내는 그 순간 온전히 알아차릴 수 있어야 휘둘리지 않습니다.


'화'라는 그 비실체적인 마음에 노예가 되어 상대를 질책하고 욕하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다만 이 상황에서는 화내는 마음을 내어야 하기에 화를 내는 것일 뿐입니다.


내 분에 못이겨 화를 내고 질책하고 그러는 것은 화냄에 머무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화를 내고 나면 그 마음이 오래가게 마련입니다. 머물러 있는 마음 때문 입니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 머물러 있지 않는 마음이라야 합니다.


끊임없이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를 되풀이하시기 바랍니다.


포교를 하거나 남을 도와주고도 포교했다, 도와주었다는 상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도 기도했다는 상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내 이름이 세상에 알려질 때에도, 내가 한 일이 크게 칭찬을 받게 되었더라도 함이 없이 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머물러 있지 않음이야말로 생활 속에 있으면서 생활을 초월하고 사는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삶이 고(苦)인 세상 속에서 '삶은 고가 아니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머물지 않으면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머물지 않으면 삶이 여여 합니다. 마음이 어디에도 머물지 않기에 괴로움이든 답답함이든 붙을 사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머물고 나야 거기에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머물지 않음은 그대로 해탈입니다. 그대로 부처님 마음입니다.


모셔온 법문입니다()()()




댓글목록

법융님의 댓글

법융 작성일

우리마음이  어디에도 고정되어 머물지 않고 좋은것 싫은것에 머물러 있지않고 남으로 부터 칭찬이나 비난의 소리에 머물러 있지않게 됨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 것입니다, 해야할 소리 못하고 덮어두고 지내면 남들이 얕잡아 본다고도 하지요, 챙겨야 할것 다 못챙기고 벙어리 처럼, 눈먼사람 처럼, 귀먹은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운일이 아닐테지요, 그러나 우리는 머무는바 없이 살아야 한다네요  어렵더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참다운 불교인이라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저는 하루에 두번씩 이 법문을 꼭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겠다고 원을 세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다움이님의 댓글

다움이 작성일

정말좋은 말씀입니다 버리고 비우고 머무는바없이 살아 가는것내일도읽어보러 와야겠었요^^**.좋은법문감사드립니다 ().

해월화님의 댓글

해월화 작성일

우리의 삶이 다 머무름 없는마음 으로 살고 있다 생각함니다 어린 아기가 엄마의 젖을 먹을때는 잠시라도 두고 어디을 가지 못함니다 .그아이 커서 청년이되면 엄마의 마음은 집착이되어 싫다고하죠  성인이 되어 멀리 떠나면 다라갈수없이 남게됩니다  이제껫 그리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죠 시집가서 귀머거리 3년 봉사3년 벙어리3년을 살아야  한다합니다  내 한몸 참음으로 주위 사람을 편케하는 수행법이겠죠  처사님과 보살님의 삶은 조금 다름니다 이제 자식 다 키워놓고 나니 저또한 머물음 없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욕심없는 마음으로....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머물지 않음으로 해탈의 기쁨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법문 오래 오래 새기며 살도록 노력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