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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김교각스님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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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명화 작성일09-04-08 12:29 조회2,502회 댓글1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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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라왕가에 탄생하다.

 

석가세존 열반 1500년 되는 서기 696년 신라왕가에

 한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의 부친은 성덕대왕이고

그의 모친은 성정왕후이다.

아이의 처음 이름은 교각(僑覺)이며 학명은 수충(守忠)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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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가하여 지장(地藏)이란 법호를 받다.

 

당나라에 유학하여 학문과 무예를 익히고

고승대덕을 찾아 불법의 깊은 뜻을 깨달았다.

고국에 돌아온 교각은 신라왕실의

 다툼을 보고 24세 되던 해 불법으로 중생을 구

제하고자 서원하고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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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를 타고 다시 중국에 가다.

 

김지장은 당나라로 가면서 선청이란 삽살개와

황립도라는 볍씨, 금지차라는 차 종자,

신라송이라는 잣 열매와 조 씨앗 등 다섯 가지

 생물자원을 중국 구화산에 전하였다.


4. 중국 4대명산, 구화산에 머물다.
절강성 항주에 도착하여 만불사에서

 김지장은 꿈속에서 본 수려한 풍광을 지닌

 명산을 찾아 안휘성의 구화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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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양화가 땅을 시주하다.

 

모든 이웃을 복되게 할 절을 짓고자 하니

 가사를 덮을 땅을 시주해 달라고 구화산의 주인

민양화에게 말하였다.

민양화가 승낙하자 지장스님이 가사를 벗어던지니

 구화산 99개 봉우리를 모두 덮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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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산신이 샘을 선물하다.

 

지장스님이 구화산의 동굴 속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니

 구화산의 산신이 그를 시험하고자 예쁜 여인을 보내 유혹하였다.

그러나 반석 같은 지장의 신심에 산신이 감동하여

 바위에 구멍을 뚫어 샘물이 솟구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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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49일간 독경삼매에 들다.

 

구화산 천대봉에 오른 지장스님은 49일간

 시간을 잊고  정토삼부경을 독송하였다.

경을 읽던 바위 위에는 지장스님의 두 발자국이

뚜렷이 남아있어 고배경대(古拜經臺)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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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갈절이 절을 세우다.

 

청양현의 장자 제갈절이 구화산을 유람 왔다가

 동굴속의 지장스님이 침식을 잊고 수행하는 모습에

감동받아 시주를 모아 절을 지어 바쳤다.

구화산 최초의 가람 화성사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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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자를 보내며 시詩를 짓다.

 

지장스님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게 된 동자를

구해주고 제자로 삼았다. 그러나 산속의 적막감을

 이기지 못한 동자가 속가로 돌아가니 그를 보내며 시 한수를 남겼다.

그 때의 시는 당시집(唐詩集)에 수록되었으며 한국인 최초의 차시茶詩이다.




10. 제자들과 경작에 힘쓰다.
지장스님은 제자들과 함께 물길을 만들고 논밭을 경작하였다.

개간한 논에는 황립도를 심고 산자락에는 금지차를 재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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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신라스님들이 찾아오다.

 

지장스님의 이름은 고국 신라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소우, 소보라는 지장의 숙부들과 모친이 바다를 건너

 구화산을 찾아왔다. 또한 많은 신라스님들이 찾아와

 지장의 설법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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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99세에 열반에 들다.

 

서기 794년(음) 7월 30일 지장스님은 99세를 맞이하여

대중들에게 유언 법문을 남기고 앉은 채 입적하였다.

그때 산이 울리고 돌이 무너지고 화성사의 종은

 아무리 쳐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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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육신보살이 되다.

 

지장스님의 육신은 기부좌한 채 석함에 안치되었다.

삼년 후 석함을 열었더니 얼굴빛이 생전과 다름이 없었다.

대중들이 스님의 육신에 금분을 입히고 탑에

모셔 받드니 지금의 육신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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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김지장 삼존불과 육신보전

 

누구든지 김지장 삼존불을 참배하고

지장왕 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서원을

 나의 서원으로 실천하는 이는 업장을 소멸하고

 세상을 밝게 비추리라.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 김지장 스님의 서원문 -



 

댓글목록

법융님의 댓글

법융 작성일

佛畵를 감상하면서 우리는 그림의 내용이나
 그리게 된 배경이나 의도는 잘 몰라도
 신심을 굳게 가질때가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노라면 우리 자신이
 신선이 되어가는듯 마음이 맑아 지기도 합니다.
 그림 하나를 그리자면 목욕제계 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고 영감을 받아야만
 비로서 붓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정성이 깃들었다고 하니
 그림이 더욱 소중하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