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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몇자 끄적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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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안 작성일08-08-06 15:40 조회2,359회 댓글14건

본문

한동안 이런 저런 일로 분주하다 보니 전에부터 생각해오던 몇가지 주제들에 관한 글을 못올렸습니다. 물론 요청은 없었지만....ㅎㅎ

불교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나,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생각 날때마다 글을 올리고는 했는데요, 이러한 이해가 있으면 공부하는 것도 진도가 빠르고 바른 견해를 갖을 수 있을 거라는 나름의 생각입니다. 불교의 역사가 오래 되면서 첨가되고 변형되고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지엽적인 아니면, 방편으로 설한것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 전체의 뜻을 잘못 아는 경우도 있거든요.

오늘은 불교의 수증관에 대해서 살짝 언급해 보겠습니다.
흔히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고 하고, 수행과 공부(학문적인)를 하는 것은 차이가 많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불교와 다른 학문과의 대별점을 간단히 언급해 보겠습니다.

아마도 인문학적인 학문하면 철학이요, 그중에서도 서양철학의 비중이 보편적으로 많이 연구 되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대학의 경우 동양 철학이나 인도철학과 같은 학문 분야는 특정한 몇몇 학교외에 교양과목에서나 선택하는 수준 이지만 서양 철학과는 거의 대부분의 대학에서 개설 되어 있지요.

불교도 처음에 입문하시는 분들은 읽고, 외우고, 사고하고 이런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공부법입니다. 서양 철학이나 다른 인문학의 공부법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구보리, 화화중생”이고, 이를 위해서 수행은 필수 적입니다. 그렇치만 서양철학이나 다른 인문학에서는 수행이란 말을 별로 찾아 볼수가 없지요.

예를 들면 서양철학자중에 가장 대표적인 분이 바로 칸트입니다. 그렇치만 그분이 어떤 수행을 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생활 패턴이나 성격과 관련해서 자신만의 습관과 질서를 가지고 살았지요. 이러한 공부법은 결국 한계를 드러 내는 데요, 바로 그의 후대 철학자들에 의해 그분의 사상이 비판되고 소위 말하면 깨지게 되는 현상이 옵니다. 그는 물론 인문학을 살려 냈다고 할 정도로 당시에 그의 역할은 정말 지대 했고, 후에도 서양철학을 대표할 만한 4인의 철학자중에 하나로 평가 될정도로 인정을 받지만, 사상면에서는 요즘 그의 사상은 아직도 칸트냐고 할정도로 많이 퇴색 되어 있습니다.

그렇치만 불교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2500년전의 부처님과 같이 되려고 수없이 노력하고, 그의 경지에 오른 분들은 모두 부처님의 위대함에 찬탄을 합니다. 중국조사선에서 부처님을 폄하는 듯한 분위기에 사상들이 있지만 그것은 부처님을 비하한 것이 아니고 진리에 세계를 중국식으로 표현한 한 방법이였지 결코 부처님을 비평한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한번 느끼 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불교이론은 수행이나 깨달음을 위한 방편이나 도구이지 이것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절대로 이론 위주의 종교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을 수증관이라고 하는 데요 바로 수행하여 증득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직접적인 체험이나 증득이 없이는 불교의 이론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바른 견해를 바탕으로한 철저한 수행이나 증득의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의 경이나 이론들이 의미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교입선(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간다)이라든가 문사수(듣고, 생각하고, 수행한다.)의 수행법들에서 알수 잇듯이 처음에는 확실한 신심과 이론의 기초위에 정견을 바탕으로 공부를 해나가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팔정도의 첫 번째 항목이 정견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바른 견해 없이는 바른 수행도 기대 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의 사전 단계인 정견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말을 언급하면서 불교의 핵심은 수행과 실천 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 합니다.

아! 그리고 제가 글을 올리면서 서로 비교하면서 글을 많이 올리는 것은 하나만 가지고는 확실하게 자체의 특징을 부각 하기가 어렵다는 판단하에서 나름대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서로의 특징을 비교하면서 다른 것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할 때 주제가 더욱 선명해 진다고 할까요. 예를 들면 초기불교와 후대의 불교차이라든가, 중국불교와 인도불교,서양철학과 불교철학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초가 잘 정립되어 있으면 전혀 다른 분위기에 불교 교리를 공부해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하고 혼란 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ㅎㅎ

비록 날씨는 더워도 날마다 공부가 일취월장하기를 기원드리면서 혜안 두손 모읍니다.._()_

댓글목록

법융님의 댓글

법융 작성일

경전 공부를 통해서 이론도 알아야 하고
  수행을 통해 깊이 있는 체험도 해야하는
  수레가 양바퀴를 갖추어야 하듯이
  불교도 그렇게 심취 해 가야만 된다는 말씀이지요 ?
  명심하고 노력해가는 불자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행수님의 댓글

성행수 작성일

배우고 익히면서 좀더 부처님정법을 수행하라는
혜안스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법융님의 말쓰처럼 수레가 양바퀴가 굴러갈수있도록
이론과 수행이 중요하군요.
이렇게 공부를 한다면 지옥행은 면하는지요.?ㅎㅎㅎ
좋은하루 되십시요.

무지몽매님의 댓글

무지몽매 작성일

이론과 실천! 두 가지다 평생 해야 할 공부인지 알면서도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집어 삼키려만 하다보니 포만감만
있을 뿐 실속이라곤...
이전까지의 여러편의 스님의 글을 읽다 보면 불교적인 이론과 실천
모두다 제가 생각 했던 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한,쉽지 않은 공부라는 것을
더 절실하게 느낍니다.
(이렇게 되면 스님의 글이 제같은 나태하고 무지몽매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오는 격이 된 것인가요?^^)

그런데 이제사 느끼는 것이지만 스님께서 몇 자씩 끄적인(스님표현!!)
글들에서 스님의 머릿속에 혼자만 간직하고 계시기에 아까운,영양가 있는
것들을 불법의 배움의 길에 들어선 모든 이들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떠먹여
주고 싶어 하시는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아서 그 정성에 감복하여 좁은 목이라
넘기기 어려운 양식(良識)들이지만 자꾸자꾸 애써 삼키려합니다.
(그렇다고 맨날 끄적(스님표현!!^^)이시라는 말은 아닙니다.목구멍 좁은 사람 막 넘기다 체합니다.ㅎ)

무지몽매한 사람에게 무지몽매를 벗어나고 싶은 "동기부여"를 해 주시는 스님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천천히 꼭꼭 씨버 피가 되고 살이 되도록 하여 실천에 힘쓰겠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공부는 안 하고 딴 생각만 하다가 무지몽매는 언제 벗어 날 수 있을지...^^
성불하세요._()_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두루 다방면에 해박하신 스님의 글속에서 또 하나를 깨우쳐봅니다.
수행하여 증득한다는 "수증관"을 깊이 새겨가며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위해 노력하는 불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스님께서 강조해주신 불교의 핵심인 "수행과 실천" 이 정말 어려워요.  그래도 해야겠지요.
고귀한 법문 감사드립니다.

haein님의 댓글

haein 작성일

스님 질문 하나 해도 되나요
  오래전 부터 품어 온 질문 인데요

  화두 선에 대해서요 ~

  많은 스님들이나 , 조사어록에서 보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길에
  화두를 들고서 깨우친 분은 별로 없으시고
  주로 "언하돈오" 라고 하든가 ?

    하여간, 잘은 모르지만
    주로 스승님들의 설법을 듣고 깨닫지
    화두를 들고 개달았다는 스님은 별로 보지 못했는데

    뭐 저 지식이 짧아서 그런가요
    어리석은 저를 자애롭게 가르쳐 주세요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해인님의 질문을 받으니 여러가지로
생각이 마구 납니다.
가슴이 설레네요.
(아!  제 자랑 할 려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고,
도도한 선의 흐름이라든가, 무명을 타파할수 있는
즉 왜 이런 수행법들이 필요한 가에 관해서 이해하면
정확한 이해가 가능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만약 개인이 혼자서 공부 하려면 좀 어렵습니다.
사실 이러한 부분에 관해서 많이 토론하고 인식의
폭을 넓혀 가고 싶었습니다.)
우선 간략하게 나마 설명 드리고,
거기에 연관된 사상의 흐름이나
수행론 등에 관해서는 생각 나는 데로 올려 드리지요.

중국조사선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가 언하변오라는
것입니다. 언하돈오라는 말은 들어보지는 못했는데 뜻은
크게 다른것 같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겟다 싶고요.^^
이러한 것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역사에 흐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화두라는 것은 송대에 와서 생긴 것이구요,
언하변오라든가 조사선 전통에 중국선은 당나라 시대에 가장 활발하고, 융성 했습니다.
언하변오라든가 여러가지 사상등은 당나라시대에 거의 모든 체계가 잡혔고
그 이후에 사상들은 뛰어난 스님이 나오면 그분에 영향으로 첨가 된것이지
아주 독특한 사상이나 수행법등이 새로 생긴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상으로 혜능스님의 돈오라든가, 평상심시도, 도불용수등을 들수가 있구요,


수행자가 열심히 수행을 하다가 보면 시절 인연이 도래해서
개오의 시기가 옵니다. 그때 스승이 옆에서 어떤 계기를 마련하여 그 깨달음을
돕습니다. 주로 문답으로 많이 하는데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구지 선사는 손가락을
들어서 깨닫게 하거나, 어떤 행동을 통해서 순간 삼매에 들게 하기도 하지요,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찰라 삼매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이것이 있어서 좌선이라든가 선정상태가 아닌
일상에서 생활 하다가도 어떤 계기로 순간 삼매에 들어서 깨달을수 있는 것입니다.
암튼 이런식으로 수행자들이 수행을 하다가 깨닫게 되는데 불교의 역사가 흘러가면서 이러한 일화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겠지요. 그러다보니 후대에 이러한 일화들을 가지고 의문을 삼고 참구하게 되고
소위 화두를 타파했다하는 즉 전에 깨달음을 얻은 계기가 된 사건들을 후대 사람들이 연구해서 그들도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할 까요. 그래서 간화선이 생긴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공안집은 이러한 일화들을 모아 놓은 것이구요.
역사적인 흐름에서 이해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고요,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는 간화선 전통이라 모든 것을 간화선 위주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간화선이라는 것은 불교의 수행법중에 하나 라는 것입니다. 무념선, 묵조선, 위빠사나등 수행 법은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모두 역사적 전통과 효능등이 검증된 수행 법이고요. 이러한 좁은 견해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고요, 선의 황금기라고 하는 당을 지난 이후에 선은 많이 쇠퇘했고, 당나라시대에 활약한 분들보다 선지가 뛰어난 분들이 비교적 적습니다.
근세에 한국에서 화두를 참구하다 깨우치신분들중 대표가 경허스님, 향곡스님등 많이 계십니다. 한국근대에서는 거의 대부분이지요, 고려시대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말에 백운 경한스님은 무념선으로 중국에 청곡(?? 임제종의 후손인데 법명이????)스님한테 공부한스님도 계시구요, 암튼 그렇습니다.

여러가지 두서가 없는데요,
많은 분들이 이런저런 수행법에 집착하고 우열을 가리는 이유는 왜 우리가 수행을 해야하고,
무엇때문에 인간이 윤회를 하느냐는 불교의 기본적인 사상과 인간관이 제데로 정립되지 않아서 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정립되면 자신에게 맞는 수행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무슨 수행이 수승하고 좋으냐
이러한 의문은 사라 집니다.  다음에 차분히 불교의 인간관과, 유정설법, 무정설법등에 관해서 꼭 글을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감자를 캐야하고 다음주 백중때문에 오늘 까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다시한번 해인님의 질문에 감사드리고 이해가 않되시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언급해 주세요.
다른 분들도......
어!
요즘 영영님은 어디 가셨나?? 왜 않보이는 거지???
머 삐지셨나???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숙련된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공을 쌓는 중 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내용이 많군요.
그동안의 어렴풋한 의문점들이 스님의 글을 통해서 많이 해소되는 것 같습니다.
더운 여름의 시원한 감로수로군요.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정진방에 올리신 불감스님의 글을 읽고 많은 생각에 잠겼답니다.
언젠가도 그런 말을 했었지만 정말 옛 생각이 많이 나면서 그간 오랜 시간을 잊고 지낸듯하여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사실 고귀하신 부처님의 말씀과 역대 큰스님들의 가르침에 무수히 많은 감동을 하고 부러워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의 마음을 흔든 몇 분 스님들 중에 바로 불등수순 스님이 계신답니다. 그래서 불감혜근 스님도 훌륭하시지만 그의 법은 이은 불등수순스님을 저는 더 좋아했답니다.
정진방의 내용이 너무 간략하여 아쉬운 마음에 더 많이 알아볼 양으로 (처음부터 검색을 하는 것은 너무 성의가 없는 것 같아서) 책으로 찾아보았는데 자료 부족 탓인지 역시 미진하여 검색을 해 보았답니다. 그러나 불등수순스님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내용이 없는 탓인지 대개라 책과 비슷한 내용들이 많더군요. 그렇지만 내용이 짧고 간략하다고 하여 감동이 다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선가의 장점은 구구히 장광설이거나 조목조목 따지기 보다는 순간에 번득이는 선기로 그야말로 찰라지간에 모든 것을 꿰뚫는 것이므로 그분들이 하시는 어떤 행이나 딱 한 마디의 말씀일지라도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여운을 남기는 법입니다.
특히 납자들을 담검질하는 그분들의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고나 할까요. 역시 불등수순 선사를 시험하는 원오극근 스님의 모습은 정말 우리 선종에서만 볼 수 있는 (다른 곳에서는 전혀 상상도 안되는) 불후의 명장면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답니다.
또 많은 큰스님들도 더불어 연관어로 등장하시니 그 재미 또한 너무 쏠쏠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감동만하고 느낌으로만 끝난다면 부처님과 역대 큰스님들의 뜻이 너무나 허전하고 외로울 것입니다. 저 역시 진일보하여 그분들의 핵심을 바로 꿰뚫는 벽안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감히 해 봅니다.
스님께서 올려주신 불등수순 선사로 인하여......^^

haein님의 댓글

haein 작성일

혜안 스님

  축서사에 가게 되면
  대웅전에 삼배하고
  보광전에 서 한두시간 참선하곤 하는데요

  그땐 살짝 졸리거 든요
  (축서사 까지 제승용차로 2시간 가까이 걸리니 깐요)

  근데 대웅전에서 들리는
  (죄송합니다) 관세음기도는 수면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데 요  ~호호호 죄송 ~

  염불선 도 하나의 방편 이 되겠네요
  거두 절미하고 , 염불선으로도 깨달음에 이룰수 있는지 요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해인님의 질문에 이런 답을 하고 싶습니다.
염불선으로 깨달을수 있나 없나하는 것보다,
만약 정말 열심히 염불선을 수행 했는데 궁극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정말 열심히 했는데도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면,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러면 그렇게 열심히 한 그것으로 인하여 다른 길이 열릴 것이라는 것

부처님이 죽음직전까지 고행을 하고,
당대 최고의 수행자들로부터 선정 수행을 해서 당시로서는 최고의 경지인
비상비비상처의 경지에 오르지만 나중에는 모두 버립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한 수행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 까요.

결코 그렇치 않습니다. 아시 겠지요.
가고,가고, 가다 보면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는....

우리는 너무 자신의 것만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처님의 수행의 핵심을 사념처 수행이라고 합니다.
신,수,심,법념처 수행이 그것이지요.
부처님은 이사념처 수행을 언급하시면서 왕궁에는 동,서,남,북 네개의
문이 있는데 이수 행법이 이 4대문과, 같다. 어느쪽 문을 통해서도 왕궁에 이를수 있다라고,
마찬 가지로 너무 간화선이나, 좌선의 수행만이 궁극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염불만으로 깨달은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이것을 기초로 참선이나, 화두참구등으로 바꾸어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렇치만 사전의 수행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 결코 나중에 결정적인 계기만이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정말 열심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 느낄수 있을 정도로 다음의 길이 보인다는 것이 저의 지금까지의 경험이고 공부한 것들의 일반적인 패턴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너무 자신의 것만 좋다는 집착을 버리고,
정말 열심히 하다보면 다음에 자신을 이끌어줄 좋은 스승이나 수행법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을  하고싶어요.

자등명, 법등명





해인님의 질문을 계기로 제가  언급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말하게 됩니다.
너무 환경이나 분위기 탓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행놓으라는 말씀을 드리며 거듭 해인님께 감사 드립니다.^^

해 인님의 댓글

해 인 작성일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 ~

  * 감사 합니다 *

    항상 자애롭고
    깊은 신심과 인내심으로
    응답해 주시는 스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런 대화와 토론의 장을
    마련해 주시는 큰스님과 축서사와
    대중님께 더 없는 복락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바쁜 생활속에서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도록
    자등명 법등명 하겠습니다.

    ~  스님
        지금 이 놈은 어떤 놈입니까 ?
        뭐하는 놈입니까 ?

        밥먹고 , 화장실가고, 술먹고
        노래방가고, 사무실에서 잔소리하고,
        산에가서 약초캐고, 축서사 홈피에 댓글 올리고

        이눔 이눔 이 ........... 눔 ?????????
       
        갈켜 주세요 ?

        " 일일 시호일 "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부처님의 제자 중에 마승스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물론 아시리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날 길에서 위의가 적정하고 걸음걸이가 단정한 마승스님을 만난 사리불 존자는 범상치 않는 모습을 지닌 마승스님에게 다가가 당신은 어떤 분을 스승으로 모시며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있느냐고 물었었는데 그때에 마승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답니다.
“저의 스승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며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사리불이 재차 부처님은 어떤 분이시며 또한 어떤 가르침 내리시는가? 를 물으니 마승스님은
“저는 출가한지가 얼마 안 되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어라고 알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물론 더욱더 감동한 사리불 존자는 그의 친구인 목련 존자와 더불어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저가 생각컨대 바로 이 마승스님을 연상시킵니다.
작년 언제쯤인가 홈에서 수계하셨다고 하셨는데 물론 축서사 신도님들은 미리 다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느날/ 갑자기/홀연히/ 혜성처럼 홈에 나타나셨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저희들에게 부담 없이, 쉽게 많은 가르침을 주십니다.
스님께서는 내외전을 두루 섭렵하고 계시기에 막힘이 없어 감히 상상하건대 변재천이라 사료되옵고 또한 문장도 흐르는 물 같은지라 천의무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우리 불자들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뛰어났으니 정말 그 수승함이란 요즈음 속세에서 흔히 유행하는 훈스님이시자 완소스님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리불 존자가 마승스님을 만나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 났듯이 저도 이 기회에 참다운 불자가 되기를 기원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스님!!!  절대로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가 감히 사리불 존자나 목련존자 같은 그런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옵고, 다만 산자야를 따르던 사리불 존자와 목련 존자가 부처님을 만나 진정한 불제자가 되었고 또한 교단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훌륭한 존자들이 된 이면에는 마승스님과의 귀중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일컫는 것 뿐입니다.

날마다 무더운 날 !!!
날마다 좋은 날 !!!
최잔고목을 꿈꾸며......

혜안님의 댓글

혜안 작성일

님의 글을 보니 마치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습니다.ㅎㅎ
과례는 비례라고 너무 겸양하고 사양하고 그러지는 않겠습니다만, 여기는 지대방이고 또 어쩌면 공부에 작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서, 부끄럽지만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이글을 보시는 분들이 적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마보살이 이글을 보면 쾌재를 부를 것을 상상하면서.....ㅎ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지방에서 아주 명문고 였습니다. 거의 특목고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1학년에 희망 대학을 조사하면 80%정도가 서울대, 연,고대를 희망합니다. 당연히 초, 중고때부터 우등생들에, 수업분위기나 선생님들의 수준은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승려의 길을 가게 되려고 그랬는지, 2학년 여름방학때쯤인가 신비한 체험을 합니다. 나중에 그것이 무상 체험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사춘기라는 시기와 맞물려서 저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사건 이였습니다. 그래서 거의 학업을 전폐하다시피하고, 방황과 방탕의 세월을 보냇지요.(요즘글을 올리는 많은 것은 그때의 방탕에서 온것 입니다.ㅎㅎ) 그래도 재법 괞챦게 방황을 한것은 국,영,수는 포기 했어도 서양철학류와, 시와 문학, 무협지, 만화책,음주, 무술연마와 음악에 심취 했었지요. 

여러가지로 생각과 번민이 많은 시기였는데, 그 중에 가장 저를 괴롭게 한것 중에 하나는 나는 지금 정규적인 학과 공부를 해야하는데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은 것들도 있었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몇몇의 친구들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절망감 이였습니다. 그리고 한가지에만 집중할수 없게하는 스스로의 번민 이였구요. 아마 이것이 가장 컸겠지만.....
다른 사람은 다 속일 수 있어도, 제 자신은 속일 수 없쟎아요.
당시에 제가 찝적거렸던 서양철학자들은 키에로 케고르, 쇼펜하우어, 톨스토이,등등 이였는데 공부법을 잘 몰라서 체계없이 닥치는 데로 공부한 것도 있지만 사실 그렇게 치열하게도 하지 못했었거든요.
제자신의 번민과, 주위에 공부만 하는 친구들한테서 도피처로서 다른 것들에 천착한 면도 많이 있습니다. 졸업이후 저에 가슴 한켠에 컴플렉스처럼 저를 괴롭히는 것중에 하나가 그때 당당하게 승부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도망간 것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것이였습니다. 그냥 듣는 분들은 별느낌이 없을 수도 잇지만 저에게는 엄청난 컴플렉스로 자리 잡았지요.
당시에 저는 정말 멋진 친구들을 가지고 잇었다는 것을, 제가 놀아야 하는 물은 그들과의 경쟁이였다는 것을, 그러나 이제는 그런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렵다는 천추에 한 같은 것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분이 올린 글중에 잃어버린 기회,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말을 햇더라구요.
그말은 바로 저의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표현 입니다.  이기고,지고를 떠나서 그들과 당당하게 즐기듯이 미친듯이 공부했어야 했는데, 저는 도망을 쳤고, 다시는 기회가 없네요..
사회에서 외국 회사도 다녀보고, 무역회사도 다녀보고, 그후에 고등학교친구들을 만나 보았지만, 당시에 친구들처럼 수준 높고, 열심히 살아가는 집단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없다는 것은 아니고요. 제가 만난 사람들중에서,,,

그래서 앞으로는 다시 이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 지금 이순간을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합니다.
아마 좋은 스님으로 살 자신은 없지만, 정말 좋은 수행자로 살 자신은 있습니다.
그렇게 제가 할 것들을 다 해놓고 나머지는 정말 하늘의 뜻에 맡긴다고나 할 까요.

말로 옮기자니 저의 감정이 잘 전달 되지 않습니다.
이 경험으로 저는10여년동안을 열등감으로 살았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출가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제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지금 이순간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일 겁니다. 사실 그 외에 다른 아무것도 없기도 하고.....

영영님이 너무 과찬에 글을 올려주셔서 제 양심상 속일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주저리주저리 글을 올립니다. 챙피한 것도 모르고.......
도반으로서 앞으로 저의 모습을 지켜 봐 달라는 부탁을 드리면서,
지금 이순간을 치열하게 불태우고 싶습니다. 타다만 재처럼 연기난 풀풀 날리는 그런 삶은 이제는
그만 하고 싶습니다..    (왜제가 슬램덩크를 좋아 하는지 감이 오시나요!!)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네~ 정말 감동스럽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스님의 글에 댓글을 올리고 싶어지는 모양입니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묘한 그 무엇의 원인이 바로 스님께서 철저히 고민하고 나름대로는 몸소 체험한 내용들 이었군요.
그래서 이른바 살아있는 글!
활구가 되어서 보는 저로 하여금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청소년 시절에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고민을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청소년 시절에 많은 고민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철저히 고민하신 분이 바로 우리 부처님이실 것입니다.
결국은 그 난제들을 해결하고자 출가의 길을 선택하셨다고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 세상 누구든 다 자신에게서 혹은 그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다 아는 내용입니다만 문제는 얼마나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력하는 자에게는 늘 기회가 찾아오는 법입니다.
왜냐면, 그 기회는 자신이 스스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그래서 다시는 실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생각나는 좋은 말씀이 있군요.
그러나 이 말씀은 스님께서도 다 아시는 내용이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추신 : 언젠가 슬램덩크에 대해서도 한참은 설명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저는 그런 내용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스님께서 좋아하신다니 또한 깊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