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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상실

향수 - 박인수,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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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상행 작성일10-08-07 15:44 조회2,07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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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마침내 찾은 우리 시인의 우리 언어”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언어 조탁력 탁월"

시인의 고향에 비가 내린다.
짓다 만 초가집 추녀끝으로 빗방울이 눈물방울처럼 떨어지고
비에 젖은 굴뚝에선 구들장을 말리는 연기가 향불처럼 피어오른다.
빗줄기는 바람을 타고 갈수록 기승을 부린다.천둥소리도 들린다.
오래된 아스팔트 곳곳이 울퉁불퉁 패어난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 집 마당의 감나무가 시인의 생가를 향해 가지를 축 늘어뜨린 채 담을 넘었다.
비를 피해 인부들이 황급히 사라진 시인의 집 마당은
손수레 짚단 삽 비닐조각 등속으로 어지럽다.
청석교 아래 "실개천"은 폭우로 불어난 붉은 황토물로 울어댄다.
납북된 지 33년만 에야 해금된 시인의 장남 구관씨(68)가
오랜 망각에서 깨어난 아버지의 새 시집 서문에 썼던 글이 빗물과 함께 흘러간다.
"혹여나 아버님이 돌아오실까 하여
그 숱한 세월을 가슴 조이시다 가신 어머님의 눈시울에는
이슬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망연히 먼산을 지키시다가 떠나가는 구름을 따라
어머님은 손을 저으며 가셨습니다.
이렇게 애절히 기다리시는 어머님의 마음을
저야 어찌 그 반분인들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 40번지 정지용(1902-?)시인의 생가.
7월말 완공을 목표로 복원 중인 생가는 온통 빗물로 흥건하다.
한국 근대시사에서 그이만큼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여
새로운 시적 경지를 열어 보인 시인도 그리 흔치 않다는 상찬을 들었던 시인은
이곳에서 한약상을 했던 부친 태국씨의 장남으로 1902년 5월 15일음력) 태어났다.
부친은 젊어서 중국 등지를 전전하면서 익힌 한의학으로 약상을 경영하며
여유있는 생활을 영위했으나
어느 해 여름 갑자기 밀어닥친 홍수로 집과 재산을 잃고 곤궁하게 살아갔다.
비록 가난했지만 시인에게 이곳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사랑하는 누이와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아내가
정답게 살던 애틋한 고향이었다.
열일곱살에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돌다가 납북돼
영영 생사조차 알길이 없어진 시인은 혼령으로나마 다시 돌아와
복원되는 자신의 생가를 지켜보고 있을까.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고향" 전문

정지용시인은 이곳에서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 초등학교)를 마치고
4년간 한문을 독학한 뒤 17세에 서울로 올라가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천재로 소문난 그는 재학시절 성적이 매우 우수했고
교지를 만들며 일찍이 뛰어난 문재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 동지사대학에서 영문학 을 전공했다.
이후 다시 귀국,휘문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다가
해방공간에서 이화여대 교수와 경향신문 주간으로 활동하던 중에
전쟁을 만나 납북되고 만 것이다.
일반에 노래로 널리 알려진 「향수」는 시인이 경도 땅에서
이국의 쓸쓸함을 달랠 때 나온 시편이다.

휘문고 교사시절인 1930년대 후반은 시인의 연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4세이던 1935년 그가 박용철 김영랑 시인 등과 더불어 만들었던 시문학사에서
첫시집 「정지용 시집」이 나왔다.
당시 한 평론가는 "온 세계문단을 항하야 「우리도 마츰내 시인을 가졌노라」고
부르짖을 수 있을 만한 시인을 갖게 되고
또 여기 처음 우리 조선말의 무한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당대를 주름 잡던 김기림 시인 또한
『사람들은 이 수려한 장식 속에 쌓인 아름다운 시집에 의해서
시 아닌 것과 참말 시의 경계를 다시 한번 뚜렷하게 분별할 것』이라고 찬사를 퍼부었다.
이러한 상찬에 힙입어 정지용은 일약 대시인으로 부각되었고
30년대 시단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후대의 평론가 김학동 교수(서강대)도
『겨우 한국 근대시의 틀을 잡기 시작할 때,
우리 말의 속성을 파헤쳐 그 하나하나의 기능을 되살려
감각적인 국면을 이만치 개척한 시인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그러나 해방공간에 접어들어 격렬한 이데올로기 싸움의 와중에서 시를 쓰지 못 한다.
좌익단체인 문학가 동맹에 본의와는 다르게 이름이 걸려 있었지만
한 번도 그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6.25를 만났고 녹번리 초당에 찾아온 젊은 청년들과 함께
인민군 정치보위부에 "자수"하러 나갔다가 종적을 감추게 된다.
이후 평양의 감옥에서 그를 만났다는 사람들의 증언과 함께
그는 그곳에서 폭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림이 지적했듯이 이 "한국 최초의 모더니스트"는 참혹한 식민지에서 겨우 벗어나자마자
흔적도 없는 전쟁의 제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또 한 번 죽였다.
"북으로 간 시인"이라는 누명 때문에 1988년 해금되기까지
그는 잊혀진 인물로 남아야 했던 것이다.
이제는 교과서에까지 실릴 정도로 옛 영광을 회복지만
시인을 결과적으로 국민적인 시인으로 후대에 다시 탄생시킨 것은 평론가들의 조명도 아니고,
새로 발간된 시집도 아니었다.그것은 다름 아닌 노래였다.
1989년 세상에 나온 김희갑 작곡의 "향수"야말로 시인 정지용을
초등학생들에까지 널리 알려준 일등공신이었다.
가수 이동원씨(45)는 시인이 해금되던 해에 우연히 여의도의 한 책방에 들렀다가
「향수」를 접했다.
시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그는 서울대 음대 박인수교수를 찾아가
같이 노래할 것을 협의했고,다시 작곡가 김희갑씨를 찾아가 작곡을 의뢰했다 .
김희갑씨는 1년여 동안 두 사람의 음색까지 고려하며
이 곡과 씨름한 끝에 작품을 내놓았고,
전국민의 애창가요가 된 「향수」는 1989년 10월3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정지용 흉상제막식 기념공연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때마침 부산에서 공연을 마치고 옥천에 와 있던 이동원씨는
시인의 시를 두고 『우리 말이 어떻게 그처럼 예쁠 수가 있는가』라며
속삭이듯 노래하는 특유의 음성으로 시인을 기린다.

시인의 생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죽향초등학교 운동장까지
빗줄기는 지치지 않고 따라온다.
옥천공립보통학교의 흔적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목조 강당건물만은 아직도 옛 자취를 그나마 간직하고 있다.
유치원으로 활용되는 강당 너머로 어린아이들이 활달하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나온다.
현관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일행을 보며
사진을 찍어 달라며 환하게 웃는다.
사진 대신 아이들에게 「향수」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기다릴 것도 없이 합창하듯 줄줄 이 시를 외우다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
정지용의 「향수」(다시 읽는 한국시)-이어령

‘소리’에 색입혀… 반짝이는 ‘시각언어’
‘밤바람소리 말달리고…’는 황홀한 운율의 ‘동영상’
시와 산문 서술방식 조화이뤄 오래도록 사랑받아

"빈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이것은 가요 곡으로 널리 알려진 지용의 시 「향수」가운데서도 특히 이름난 구절이다.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라는 크리스티너 로제티의 귀여운 시도 있지만
누구도 보지 못한 바람을 그것도 칠흑 같은 밤,
빈 들판을 지나가는 겨울 바람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시인 정지용이었다.
입체음향의 효과를 시험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흔히 말발굽 소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이용한다.
그 거리감과 속도감 때문에
말이 달리는 소리는 금시 눈으로 보는 것같은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소리가 가까이 다가올 때에는 나부끼는 말 갈기가 보이고
멀리 사라져가는 소리에서는 휘날리는 말꼬리의 잔상이 어린다.
줌인 줌아웃 되는 달리는 말의 이미지는 그것이 사라지고 난 뒤의 텅 빈 공백까지도 보여준다.
지용은 그러한 정적을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영상으로 보여준다.
청각적인 것을 시각의 이미지로 바꿔놓는 공감각의 기법은
「향수」의 첫머리에 나오는 "얼룩 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에서도
발견된다.
지용은 황소의 울음소리를 금빛으로 칠해놓은 것이다.
금빛이라는 시각언어 때문에 우리는 그 울음소리를 무게로 달 수가 있고
느릿 느릿 걷는 황소의 걸음과 몸짓의 내면성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심지어는 금빛이라는 그 말에서
우리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들판을 연상하기까지 한다.
황소의 황과 금빛의 금은 무의식적으로 두 이미지를 연결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더구나 황소도 그냥 황소가 아니라 얼룩백이 황소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황소울음소리는 이중 삼중으로 시각적 장치에 의해서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지용의 「향수」는 눈(시각)으로만 그린 고향풍경은 아니다.
"빈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의 시구는 소리를 동영상으로 보여준
시각적 이미지의 절정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은 다채로운 두운과 모운이 연주하는
황홀한 음악 상자이기도 한 것이다.
"빈밭"과 "밤바람"에 근접되어 있는 두 어휘에는
무려 네 개의「ㅂ」 자음이 중첩되어 있고
"밭," "밤," "바람," "말," 그리고 달리고의 「달」에는
모두 여섯 개의 「ㅏ」 모음(모음)이 반복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를 소리내어 읽으면 깊은 겨울밤 바람소리가 귓전으로 스친다.
자수율에만 의존해 있는 한국시의 층위에서 보면
가히 반란에 가까운 운율 혁명인 것이다.
또 첫째 연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흐르는 실개천"은 시각적 대상을 청각적으로 옮겨
"옛이야기 지줄대는 것"으로 묘사했다.
청각적인 것을 시각적 영상으로 바꿨던 것과는 정반대이다.
이렇게 시각과 청각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이라는
마지막 연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흐릿한 불빛은 시각적인 것이고 도란도란 거리는 것은 청각적인 것이다.
그리고 "돌아앉아"와 "도란도란"의 "도"음의 중첩은 앞에서 본 것처럼
두운 효과를 최대한으로 이용한 것이다.
「향수」의 정서는 낭만적인 시제에 속하는 정서이다.
그것은 도시의 감정도 농촌의 감정도 아니다.
향수는 장소로는 도시와 농촌의 차이,
시간으로는 현재와 과거의 그 차이에서 우러 나오는 감정이다.
그래서 「소리만 들리고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뻐꾹새를 찬양했던
낭만주의 시인들은 「향수」를 노래하는 경우에도 그 차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그 감각의 균형도 깨뜨리는 일이 많다.
그러나 지용의 「향수」는 감각만이 아니라
시의 소재나 구조에서도 고전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시간 축을 이루고 있는 계절도 어느 한 계절에 얽매이지 않고
사계절 전체를 균등하게 재현한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의 2연은 겨울이고
"따거운 햇볕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 곳"의 4연은 여름철 전후이다.
(이삭이 보리 이삭이냐 벼 이삭이냐로
이른 여름일 수도 있고 늦은 여름일 수도 있다).
나머지 연도 확실한 언급은 없으나
대체로 봄과 가을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낮과 밤도 그렇다."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의 2연과
"하늘에는 성근 별"의 마지막 연은 밤 풍경이고 나머지 연들은 낮 풍경이다.
고향에 있는 화자의 연령도 화살을 쏘던 유년 시절에서
"사철 발벗은 아내가…"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성인 시절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다.

지용의 「향수」가 건축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첫째 연과 마지막 연을 비교해보면 자명해진다.
첫 연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흐르는 실개천"의 공간구성은 수평적이며 확산적이다.
그리고 실개천이 흐르는 들판은 열려진 바깥 공간이다.
그러므로 소의 울음소리도 벌판으로 퍼져가는 수평성 확산성
그리고 바깥공간의 개방성을 지니게 된다.
(황소의 울음소리는 종달새 같은 수직성이나
귀뚜라미 같은 내부공간의 폐쇄성과는 다르다).
그런데 끝 연을 보면 그 공간구성이 정반대로 되어 있다.
즉 하늘의 성근 별에서 시작하여 서리 까마귀로,
서리 까마귀에서 지붕으로 그리고 그 지붕에서 흐릿한 불빛으로
점차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수직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연은 실개천이 동쪽 끝으로 흘러갔지만
마지막 연은 하늘의 별빛이 방안의 불빛으로 귀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개천이 흘러가는 벌판이 확산적인 외부공간이라면,
마지막 연의 등불 밑에 돌아앉아 도란거리는 그 방안은
응축적인 내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지용의 「향수」는 햇빛 아래 밝고 넓은 벌판을 향해 우는
금빛 황소 울음으로 시작하여
희미한 불빛 아래 방안 구석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인간의 속삭임으로 끝나있는 것이다.
수평과 수직,밝은 태양과 희미한 등불,
벌판의 확산과 방안의 응축,
그리고 황소 울음과 속삭임소리….
정지용이 건축한 향수의 공간은 이렇게
바깥과 안의 대칭적 언어에 의해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정지용의 「향수」는 그의 다른 시에 비해서
결코 그 격조가 높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부분을 보면 시적 이미지와 은유로 넘쳐나 있지만
그 전체의 내용은 수필의 한 대목처럼 설명적이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같은 시구는
수식에 수식을 첨가해 가는 과다한 시적 수사로 되어 있으면서도
연마다 반복되는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의 구절은
직설적이고도 상투적인 산문형태의 글로 되어 있다.
감각이나 시간과 공간의 구성이 그랬듯이
서술의 양식에 있어서도 시와 산문의 이질적인 두 특성을
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 지용의 시 「향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된
「향수」의 비밀이기도 한 것이다.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화살은 끝내는 땅으로 추락하고 만다.
잃어버린 화살을 찾아 풀섶의 이슬에 온 몸을 적시고 돌아오는 아이처럼
우리는 고향도 시도 그렇게 잃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들은
잃어버린 화살조차 쏜 적이 없다.
그래서 아직은 가요곡의 가사로나마 불리어지고 있는
정지용의 「향수」는 바로 잃어버린 시에 대한 향수이기도 한 것이다.



   마음의 고향 축서사

댓글목록

무상행님의 댓글

무상행 작성일

서창으로 비춰진 산사의 푸르름..
폭염도 물러서 있는 ..
산사의 고즈넉함 ...
귀에 익은
노래 한곡의 여유로움..

이모두를 가슴으로 담아..
한박자 천천히 평안함을 가져 보소서^^

법융님의 댓글

법융 작성일

무상행보살님은 정말 재주가 좋으신 선녀같으신 분입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음악세계를 어슬렁 거리련만
안타깝습니다 내가 좋은노래 몇곡 감상하고 나갑니다
다음 또 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