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이동원, 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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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채소영 작성일08-12-02 15:48 조회2,415회 댓글0건본문
넓은 벌 동쪽 끝으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를 대중가요 작곡가인 김희갑씨가 노래로 만든 곡입니다. 정지용 시인은 매우 오랫동안 우리의 시에서 금지되어 있었지요.
정지용 시인은 1902년생입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감옥에서 폭사 당했다고 전해져옵니다. 그러니까 한국전쟁 이후 1988년 해금될 때까지 정 시인의 시는 이념의 잣대에 의해 세상에 나오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 향수라는 시는 정 시인이 일본으로 유학가기 전 살았던 고향인 충북 옥천 옥산면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7년 이 시를 지었으니 약관 25세에 쓴 것이지요.
이 시를 읽으면 그저 하나의 영상이 떠오릅니다. 우리 부모의 모습이 떠오르고 궁핍한 시골의 삶, 그러나 따뜻하고 넉넉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게다가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가득하지요. 듣기만 하여도 풍성한 말들, 입가에 솔솔 녹아가는 그런 말들입니다.
누가 그랬듯이 시는 소리 내어 읽는 노래라고 합니다. 이 시 역시 그저 속으로 읽어서는 별 재미가 없습니다.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분들과 함께 곡차라도 하면 이런 시들을 서로 암송하며 한잔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잊혀진 고향도, 아련한 시절도 그리고 아직 끈끈하게 남아있는 희망도 모두 한자리에 다시 보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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