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역/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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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하심 작성일09-09-23 09:46 조회2,497회 댓글9건본문
*어머니의 추석*
글 / 이효녕
돌아가는 세월 앞에 높이 떠서
웃음 내미는 한가위 둥근 보름달
가을의 들판은 빈 들판이 아니라서
한가위 날까지 가득 채우는 동안
귀향 열차의 흩날리는 기적소리
송편 빚던 어머니 손길 멈추시고
자식 기다림을 더하신다
따가운 가을 햇살아래
깊이 팬 주름 진 얼굴로
며칠 동안 들판에 나가셔서
돈부 알갱이 햇볕에 고루 말려
푹 고아 떡고물 만드시고
고향 뒷동산 밤나무에서 아람 밤 주워
송편 속을 만들어 솔향기 가득한 송편 쪄내시며
자식을 기다리시는 어머니
마음으로 타오르는 사랑의 불씨로
둥그런 보름달 만드시는가
어쩔 수 없이 흘러간 세월
외로운 삶의 변방에서 자식들 돌아와
고향의 마루에 걸터앉아
넉넉한 마음으로 보름달 바라보며
어머니 가슴속에 진하게 밀려오는
지난 이야기 도란도란 나누면
어머니 사랑은 탐스럽게 익어
애달픈 열매로 맺히고
어머니 손을 살며시 잡으면
가슴에서 익어나는 어머니 사랑
마음 넘치는 넓은 은총으로
징처럼 찌잉 가슴 울리는가
지는 코스모스 못내 아쉬워 여기 저기서 영상과 노래로 아쉬움을 달래는 듯 합니다.
추석도 다가오니 타향에 계시는 님들 고향역이 그립겠지요.
울 아들도 10월 1일 고향의 기차역으로 온답니다.
모두 풍성하고 즐거운 가을 되세요~~
엄니 생각 / 오죽했으면...,
저는 지금의 직장 전에 경북 울진군 어느 산골에서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라, 토요일이면 빨래가지랑, 밑 반찬통 등
1주일 생활에 필요한 가방을 둘러메고 엄니를 찾아뵙곤 했죠,
오지 산골 첩첩산중이라 4륜 구동차를 타고 한참을 나와,
다시 큰길에서 버스를 타고, 그것도 어떨 때는 몇 번씩 갈아타기도 하고,
암튼, 집에 도착하면 저녁시간이 다 되죠...
엄니는 토요일 오후면 항상 저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저녁을 차려 놓고,
대문 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들의 발자국소리를 그리워했죠..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가방을 둘러메고 집에 들어와,
엄니, 나 왔네, 하고 방문을 여는데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꼈습니다.
저녁상은 차려져 밥 부제에 그대로 덥여있고,
아부지는 담배를 물고 연기만 길게 내뿜으며 후~후~하고 계시고..
그 밥상 옆에 뭔가 놓여 있는 게 있었는데,
두 분께서는 그걸 쳐다보고 계시고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무슨 손수건 같은 것에 콘크리트 조각 같은 게 있었죠..
무슨 사연이냐고 물었더니,
우리 엄니, 글쎄..,, 이게 말이다...
사연인즉, 오늘 장날이라 장에 갔는데,,
어떤 젊은이 두 사람이 옆에 오더니
할머니 집에 아들 중 위험한 일을 하는 직업이 있지요..
하며 접근을 하더랍니다. 울 엄니, 맡니더., 그랬대요.
그러자 그 젊은이 지금 양밥을 해야 하는데 물가로 가야 합니다.
아니면 이들이 오늘을 못 넘길 수 도 있어요.., 위험이 닥쳐왔어요..
순간 엄니는 저를 떠올린 것입니다. 저는 그때 광산에 근무 했거든요..
그리고 그날이 저가 집에 오는 날 이였거든요..
하기사, 우리네 젊은 시절 집집마다 5~6남매 다 되는데,
자식 중 위험한 일 안하는 집안이 어디 있었습니까.
우리엄니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뭐라꼬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니껴.. 젊은이들, 따라오세요..
그래서, 옛 우시장 천방 넘어 내성천변에 갔대요,,
이 젊은 사람들 상 같은 것 펴고 그 위 물 한 사발 떠놓고 솔가지 하나하고,
그 옆에 하얀 손수건 펴 놓고,
엄니보고 몸에 있는 금 부치를 모두 여기 손수건에 올리세요.
양밥을 해야 합니다. 했답니다.
울 엄니, 자식 잘된다는 소리에 앞뒤 분간도 없이 회갑 때 자식들이
돈 모아 해준 목걸이, 반지 다 내려놓았다지요.
그 사람들 엄니 보는 앞에서 고무줄로 탱탱 묵고 눈을 감으라 하고,
솔가지로 얼굴에 물을 뿌리며 한참동안 무슨 주문 같은 걸 하더니,
이제 눈뜨고 그걸 가지고 가시라는 겁니다.
대신 모든 화(禍)는 금(金)에서 오니까 집에 가서 풀어보시라고,
중간에 풀어보면 절대 안 된다고.. 효염 떨어진다고..
그래서 시장 다보고 집에 와서 저녁 때 아부지하고 낮에 있었던 일 이야기하며,
그것을 풀었는데 글쎄 거기서 콘크리트 조각이 나왔다 아이꼬..
이 젊은이들이 울 엄니 눈감고 있는 사이 미리 만들어 놓은,
콘크리트 조각으로 바꿔치기 한겁니다.
금 목걸이, 반지 보고 울 엄니한테 접근 한거고요..
저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저녁을 먹고 있었죠,
순간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제, 이러고 있으면 어예노.
큰소리로, 자식들이 돈 모아 해 준건데..., 어째 그래노, 아이참...
화를 내며, 엄마는 분하지도 안는가,
거기다 복채도 만원씩이나 주고..말이야.., 허이구...
우리엄니, 연신 오죽했으면...,, 오죽했으면.....,
저는 밥 묵다 말고 뭐가 오죽했으면 인고,
에이 나쁜 놈들 하며 씩씩 됐죠..
울 엄니,
야~야, 그게 이이고, 그 젊은 것들이 오죽했으면,
이 늙은이한테 그런 짓을 했겠노, 니도 한번 생각 해봐라.....,
저는 순간, 왈 콱 눈물이 쏟아져 내려 밥숟가락을 더 이상 뜨지 못하고,
밖으로 슬머시 나와 까만 하늘을 쳐다보며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집어넣고,
다시 들어가 밥숟가락을 뜨는데,
아부지 눈치채고, 흠, 흠, 흠, 아 밥 먹는데..., 그만 됐다.
그렇게 이해심 많고, 당신보다 항상 자식걱정, 이웃걱정,
자식 잘된다면, 앞뒤 안돌아보던 울 엄니,
저는 그 금 부치는 아까웠지만, 더 소중한 엄니의 마음을 알았기에,
엄니!, 서울 형들한테는 얘기하지 말게, 내가 알아서 똑같은 걸로 사줄게, 알았제..
그 때 두어 달 봉급은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은 아직도 나와 울 엄니밖에 아무도 모르죠..
이렇게 한 평생을 자나 깨나 자식걱정 신령님께 빌고 빌며
살아오신 우리엄니,
그 목걸이와 반지, 우리 집사람에게 주며, 그래 니가 고생 했데이..하며,
훌훌털고 가신 울 엄니..
당신의 마지막 보습 보이기 싫어 아침 일찍 나 서울 출장 보내고
잘 갔다 온네이.., 하며 눈물만 글썽이며 눈으로 말씀하시던 울 엄니...
서울 도착하자마자, 찬이 아빠 천천히 오세요..,, 한통의 전화..
도착하여, 머리에서 말끝까지 덮혀 있는 흰 가운을 떨리는 손으로 들치우며,
그때도 오죽했으면..., 오죽했으면..., 하고 주문을 외웠죠..
저는 지금도 남들과 다툼이 있을 때, 나를 이해 못해줄 때,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오죽했으면 하고 배려하는 마음 연습을 하곤 하죠..
처음에는 잘 안되지만, 그러면서 차츰 저가 저에게 마법을 거는 것 같은
느낌으로 받아 들여 지더라고요,.
지금도 저는 어느 경전 한 구절보다 더,
어느 큰스님 법문 한 구절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울 엄니의 『오죽했으면..』을.......,
오늘도 『오죽했으면....』을 되 뇌이면서...
禹~CC, 쪼~위, 엄니의 추억 보이 오늘따라 엄니 무지하게 보고잡네..
거그서는 모든시름 내려놓고 잘 지내고 계시는 동...
또 한번 엄니 얘기뽀따리 풀어 놓을 줄은 알았는데
禹~cc 이렇게 울릴 줄은 미처 몰랐니더~잉잉
오죽했으면....』
고이 고이 간직하셨던 얘기 보따리를 끌러 놓으셨구려~~
서울 형이 보시면 얼매나 가슴이 아프실꼬..
오죽했으면....』
새댁시절 동네에서 제일곱던 울엄니
육남매 키워내려 죽쟁이가 다되어
아직도 자식걱정 하루해가 짧고나
벽에걸린 손주들을 목놓아 불러보매
정성어린 안부모여 눈속에 고여있네
그우물 구름되어 오늘은 비내리다.
고향하늘 바라보며 울엄니 안부묻다
목언저리 머무르고 입밖차마 못나오니
이우물 검은벽에 두레박이 출렁이네
뚜벅이님,해인님이 요즘 안보이시니 왠지 님의 발자욱이 쓸쓸해 보입니다.^^
해인님이 들어오시면 님의 글을 아주 멋진 한시로 읊어 주실 것 같은데...
무작정 기다려 보십시다요~~
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오._()_
풍경이 있는 여행에서 위의 기차 그림이 똑같이 나왔습니다.
경남 하동역이라 하는군요~ 흠~ 늦은 정보에 누가 관심이나 있을 라나~~~
올갈게는 저거타고,
화개장터에 한번 가볼까나..
저 꼬시모시 다 지기전에..
전라도와 경상도가 어울리는 화개장터..
화동사람, 구례사람 함께하는 화개장터..
무지랭이 이중생은 언제나 어울리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