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12곡 ^^ 페이지 정보 작성자 무상행 작성일10-12-20 11:03 조회2,604회 댓글6건 본문 Bob dylan 12곡 * Bob dylan - Can't help falling in love * Bob Dylan -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 Bob Dylan - Blowin' In The Wind * Bob Dylan -Knockin' On Heaven's Door * Bob Dylan - One More Cup of Coffee * Bob Dylan - A Hard Rain Is Gonna Fall - 소낙비 * Bob Dylan - Positively 4th Stree * Bob Dylan - Wedding Song * Bob dylan & Paul Simon & Joan Baez - Sound of silence * Bob Dylan- Like A Rolling Stone * Bob dylan - House of the rising sun Bob Dylan (밥 딜런) 밥 딜런은 팝 음악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빼어난 작사력으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인물. 가수로서, 작사 작곡가로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포크 록과 컨트리 록 등의 장르에 있어 그는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가 포크 뮤직에 전기 기타를 도입한 것은 당시에는 관객들로부터 야유를 받을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또한 1960년대 반전 운동에 있어서도 그의 포크 음악은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심지어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음악적 영향력은 전혀 사그러들줄 모르고 있으며 월플라워스의 아들 제이콥 딜런을 통해서도 그 핏줄은 이어지고 있다. 밥 딜런은 1941년 5월 24일, 미국 미네소타주의 둘루스에서 로버트 알렌 짐머맨(Robert Allen Zimmerman)이라는 본명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인 열 살 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여 고등학교 시절에는 골든 코즈(Golden Chords)라는 로큰롤 그룹을 포함한 여러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1960년, 연주와 노래를 위해 대학을 떠난 그는 바비 비(Bobby Vee)의 연주 그룹인 섀도우스(Shadows)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했는데, 당시 그가 좋아했던 시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의 이름을 차용한 밥 딜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이후 '62년 8월에 법적으로 개명하게 된다). 1961년 2월, 뉴욕에서 친구들의 스튜디오 장비로 ‘San Francisco Bay Blues'를 비롯한 여러 곡들로 녹음 데뷔를 이룬 그는 4월에 그리니치 빌리지의 거즈 포크 시티(Gerde‘s Folk City)에서 존 리 후커(John Lee Hooker)의 오프닝으로 첫 무대를 장식한다. 이 곳은 그가 처음으로 조운 바에즈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그는 곧 프로듀서인 존 해먼드(John Hammond)의 눈에 띄어 <콜럼비아(Columbia)> 레코드와 계약을 이루었고 이듬해인 '62년 3월, 전통 곡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독특하게 해석한 데뷔작 [Bob Dylan]을 발표한다. '60년대 미국 청년들의 저항문화를 상징하는 걸작 [The Freewheelin' Bob Dylan]('63)으로 확고한 위상을 확립한 밥 딜런은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차트 20위에 오른 또 하나의 탁월한 프로테스트 포크 앨범 [The Times They Are A-Changin']('64)과 개인적인 주제를 담은 [Another Side Of Bob Dylan]('64)을 이어 발표하며 높은 평가를 얻었다. 1965년 4월에 가졌던 영국 투어 ‘뒤돌아보지 마라(Don't Look Back)'는 재능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 디에이 펜베이커(D.A. Pennebaker)에 의해 영화로 기록되어 지금까지도 손에 꼽히는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남아 있다. [Bringing It All Back Home]('65)과 [Highway 61 Revisited]('65)는 본격적인 포크 록의 시대를 열어줌으로써 대중음악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작품들이다. 1965년 6월 25일,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Newport Folk Festival)에서 밥 딜런이 키보디스트 알 쿠퍼(Al Kooper)와 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Paul Butterfield Blues Band)의 멤버들과 함께 출연하여 ’완전한‘ 일렉트릭 사운드를 연주한 사건은 유명하다. 당시 순수한 포크 신봉자들이었던 대다수의 관객들은 심한 야유를 퍼부었지만 결과적으로 밥 딜런의 새로운 시도는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꾸어버리게 된 것이다. 버즈(Byrds)가 부른 딜런의 ’Mr. Tambourine Man'이 미국과 영국에서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대히트를 기록한 이후 터틀스(Turtles), 셰어(Cher), 조운 바에즈, 맨프레드 맨(Manfred Mann) 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딜런의 작품으로 인기를 얻었다. 1966년 7월, 밥 딜런은 뉴욕 근교의 우드스탁에 위치한 자신의 집 근처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중상을 입어 이후 18개월간의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그리고 곧바로 완전한 음악적 성숙을 이룬 더블 앨범 [Blonde On Blonde]가 발매되었다. '68년 1월 카네기 홀에서 행해진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추모 공연을 통해 사고 이후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컨트리적인 성향이 강조된 [John Wesley Harding]('68)과 히트 싱글 ‘Lay Lady Lay'가 수록된 [Nashville Skyline]('69)을 발표했고 '69년 8월에는 영국의 와이트 섬에서 개최된 ‘와이트 섬 페스티벌(Isle Of Wight Festival)’에 참가한다. 더블 앨범 [Self Portrait]('70)와 매체의 큰 주목을 받은 소설 ‘타란튤라(Tarantula)'의 출간, 그리고 또 하나의 히트 앨범 [New Morning]('70)의 발매가 이어진다. 1971년 7월에는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주최가 된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Concert For Bangla Desh)’에 출연하여 멋진 연주와 노래를 들려줬다. 이어 1973년, 샘 페킨파(Sam Peckinpah) 감독이 연출을 맡은 서부영화 [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Pat Garrett And The Billy The Kid)]의 출연과 히트 싱글 'Knockin' On Heaven's Door'가 수록된 사운드트랙의 발매가 이어졌고 같은 해 말에는 [Self Portrait]의 미 수록곡들을 모은 [Dylan]이 발매된다. 이듬해 1월에는 밴드와 39일간의 미국 투어에 들어갔고, 새로이 계약한 데이빗 게펜(David Geffen)의 레이블 [어사일럼(Asylum)]을 통해 [Planet Waves]('74)가 발매되어 (최초로) 미국 차트 1위에 올랐다. 미국 투어의 하이라이트를 담은 더블 라이브 앨범 [Before The Flood]('74)의 발표 이후 다시 <콜럼비아>와 계약을 이룬 딜런의 새 앨범 [Blood On The Tracks]('75)는 다시 한 번 미국 차트 1위를 기록한다. '67년에 그룹 밴드와 함께 녹음한 작품들을 담은 더블 편집 앨범 [The Basement Tapes]('75)가 발표되었고, '75년 10월에는 조운 바에즈, 조니 미첼(Joni Mitchell), 알로 거스리(Arlo Guthrie), 잭 엘리엇(Jack Elliott), 믹 론슨(Mick Ronson), 시인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 등이 참여한 ‘롤링 선더 리뷰(Rolling Thunder Revue)’ 투어가 시작되었다.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Desire]('76)로 밥 딜런의 실질적인 음악적 전성기는 끝이 났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포트 워스(Fort Worth)와 포트 콜린스(Fort Collins)에서의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Hard Rain]('76)의 발표 후 그는 '76년 11월, 샌프란시스코의 윈터랜드 볼룸에서 행해진 밴드의 고별 콘서트 ‘마지막 왈츠(The Last Waltz)’에 참가한다. 이 공연은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Street Legal](’78)과 더블 라이브 앨범 [At Budokan]('79)의 발표 이후 기독교적인 성찰이 담긴 일련의 앨범들인 [Slow Train Coming]('79)과 [Saved]('80), [Shot Of Love]('81)가 발매되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는 [Infidels]('83), [Real Live]('84), [Empire Burlesque]('85), [Knocked Out Loaded]('86), [Down In The Groove]('88), [Dylan And The Dead]('89), 그리고 [Oh Mercy]('89)로 '80년대를 마감한다. 이 기간 동안에도 역시 여러 공연을 비롯한 주목할만한 활동을 해왔는데, '86년에는 영화 ‘하츠 오브 파이어(Hearts Of Fire)'의 출연이 있었고 '88년 10월에는 조지 해리슨, 제프 린(Jeff Lynne), 로이 오비슨(Roy Orbison), 탐 페티(Tom Petty)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트래블링 윌베리스(Travelling Wilburys)를 결성하여 화제를 모았으며 '89년 1월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 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90년대의 포문을 연 작품은 [Under The Red Sky]('90)이다. 이듬해인 ‘91년 개최된 33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수상한 그의 영향력은 1992년 10월 16일,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수많은 록 스타들이 참가한 가운데 펼쳐진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통해 다시금 확인되었다. 이공연은 더블 앨범 [A 30th Anniversary Celebration Concert]('93)에 담겨진다. [Good As I Been To You]('92)와 [World Gone Wrong]('93), [Unplugged]('95)가 이어졌고, 참된 거장의 면모를 보여준 [Time Out Of Mind]('97)와 [Love And Theft](2001]로 위대한 전설을 이어오고 있다. 흔히들 딜런의 음악은 크게 세 시기로 구별될 수 있다고 한다. 첫째로 61년부터 64년까지의 순수포크음악으로서의 시기이고, 둘째로 64년부터 75년까지의 포크락으로서의 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후 81년까지의 크리스찬 가스펠로서의 포크시기로 구별될 수 있겠다. 이러한 개괄적인 구별은 다시 두 번째 시기에서 73년 이후의 어사일럼으로 이적한 이후 발표한 앨범들의 시기와 75년부터 79년까지의 창작활동의 중단 시기,그리고 79년부터 81년까지의 몰락시기로 세부적으로 구별될 수 있다. 최초의 딜런의 음악은 당시의 지배적인 카운터 컬처로서 서서히 그 위세를 발휘하고 있던 프로테스트 히피 컬처의 또 하나의 뛰어난 작품들로서는 손색이 없었지만, 이 시기의 딜런처럼 스스로가 하나의 문화를 창조하고 그 문화의 범형으로서 끊임없이 역동하던 '거인의 완전한 현전'에 미치는 정도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남들이 정치적인 만큼 정치적인 노래를 만들었고, 남들이 독창적인 그만큼만 독창적이었다. 그러나 65년을 기점으로 발표되기 시작한 그의 노래들은 이전의 그의 노래들과는 완연히 그 형식에서나 내용에 있어서 다른 것이었다. 아직 맹아적인 형태로만 있었던 다양한 시도들이 완전히 성숙한 형태로 승화되었고, 노래의 골간을 이루는 시들의 내용은 단지 교훈적이거나 현실비판적인 정치적 저항의 경계를 넘어서서 자유롭고도 다양한 삶의 진정성에 대한 경의와 탐험을 거침없이 보여 주고 있다.심장 질환으로 쓰러져 생명이 위독하기도 했던 밥 딜런은 한 마디로 미국 대중 음악계의 살아있는 신화로 '반전, 저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1990년대 들어서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했고 아들 제이콥 딜런과 함께 나란히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던 그는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Knockin' On Heaven's Door- Bob Dylan Bob Dylan은 1941년 미국 Minnesota주에서 Robert Allen Zimmerman이란 이름으로 유태-러시아계 혈통의 태어났다. 6세부터 이미 기타와 하모니카를 다루기 시작하였고, 고등학교에서는 록큰롤 밴드를 조직해서 Hank Williams, Woody Guthrie 같은 컨츄리, 포크 가수들의 음악에 심취했었는데 이는 이후 그의 음악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1959년에 Minnesota 대학에 진학하면서 시인 Dylan Thomas의 이름을 따 Bob Dylan으로 이름을 바꾸고 커피하우스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으며. 우리에게 언제나 낡은 청바지를 입고 부시시한 머리에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의 그런 모습은 이후 포크가수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저음의 탁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들은 시대와 세대를 떠나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가수로 그의 노래에 담겨있는 정치적인 메시지로 인해 그는 혼란스러웠던 60년대 시대의 양심이 되었고, 그의 시적인 가사는 지금도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포크음악을 록음악과 접목시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으로 발전시켰던 가수다. 때문에 그는 록음악의 역사에서 비틀즈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로 오늘날까지 추앙받고 있는 몇 안 되는 뮤지션 중의 한명이다. 마음의 고향 축서사 댓글목록 무상행님의 댓글 무상행 작성일 10-12-20 11:12 한묶음 내려두고 갑니다.. 마하심 보살님 접근불가 월담하여 훔쳐(?) 왔으요..ㅠㅠ 신고 하지 마소서^^ 한묶음 내려두고 갑니다.. 마하심 보살님 접근불가 월담하여 훔쳐(?) 왔으요..ㅠㅠ 신고 하지 마소서^^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10-12-20 11:28 재주도 좋습니다. 접근불가 하면 무조건 안되는줄 알았는데 월담까지 해서 용감하게 가져오시니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욱 행복하고요. 재주도 좋습니다. 접근불가 하면 무조건 안되는줄 알았는데 월담까지 해서 용감하게 가져오시니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욱 행복하고요. 무상행님의 댓글 무상행 작성일 10-12-20 11:41 ㅋㅋ훔치다 오류가 걸렸는지..ㅎㅎ 바로 위 노래 사랑의 기도가 쓰기.. 수정... 삭제가 안되요..ㅋㅋㅋ 그냥 노래만 들을 만 있어요..ㅎㅎ 이제 잠을 좀 자야겠어요.. 넘 졸려요~~ ㅋㅋ훔치다 오류가 걸렸는지..ㅎㅎ 바로 위 노래 사랑의 기도가 쓰기.. 수정... 삭제가 안되요..ㅋㅋㅋ 그냥 노래만 들을 만 있어요..ㅎㅎ 이제 잠을 좀 자야겠어요.. 넘 졸려요~~ 마하심님의 댓글 마하심 작성일 10-12-20 16:48 월담을 하려면 과감하게 해야 하는데, 겁쟁이 급한 마음에 발만 자작자작했으니 큰걸 못 건졌어요~~ㅎㅎ 밥 아자씨가 한심하게 쳐다보는 저 표정!! 으으~~ 월담을 하려면 과감하게 해야 하는데, 겁쟁이 급한 마음에 발만 자작자작했으니 큰걸 못 건졌어요~~ㅎㅎ 밥 아자씨가 한심하게 쳐다보는 저 표정!! 으으~~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10-12-23 01:34 밥 딜런을 검색하다 보니 있더군요. 그런데 어쩌나!!! 사연이 있는 노래를 들었으니 범생이인데..... 큰일났네요. 오, 마이 마이!!! 밥 딜런을 검색하다 보니 있더군요. 그런데 어쩌나!!! 사연이 있는 노래를 들었으니 범생이인데..... 큰일났네요. 오, 마이 마이!!! 설송님의 댓글 설송 작성일 10-12-26 22:13 보잘것없는 이사람의 하릴없는 욕심으로 보살님들의 지계가 흔들렸네요 이 업보를 어이 할꺼나. 나무아미타불~~ 허나 중생의 바람을 가벼이넘기지않는 님들의 마음은 감동입니다. 보잘것없는 이사람의 하릴없는 욕심으로 보살님들의 지계가 흔들렸네요 이 업보를 어이 할꺼나. 나무아미타불~~ 허나 중생의 바람을 가벼이넘기지않는 님들의 마음은 감동입니다. 이전글 다음글 수정 삭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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