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pera Express / 키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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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채소영 작성일08-12-02 17:18 조회2,513회 댓글0건본문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김홍희가 키메라 (Kimera) 라는 예명으로 오페라 아리아를 대중적으로 편곡하여 잃어버린 오페라 The Lost Opera 라는 앨범을 출반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적이 있다. 이를 전후로 성악가와 팝 뮤지션들이 앞을 다투어 오페라 아리아를 편곡하여 부른 여러 음반들을 출반하였다.
키메라는 서울 동덕여고 졸업후 프랑스로 유학 1984년에 프랑스 파리 제7대학을 졸업하여 유학중에 만난 레바논의 거부 레이몬드 나카치안씨와 결혼하여 프랑스로 귀화하였다. 부친으로부터 사정 사정하여 얻은 프랑스 유학 자리로 불문학을 전공하였고 그녀의 남편은 당시 아르바이트로 통역을 하다 만나게 된다. 음악 애호가였던 그녀의 남편은 우연히 사무실TV에서 나오는 오페라를 따라부르는 김홍희씨 모습에 반하여 청혼하게 되고 결국은 결혼하게 된다.
키메라(Kimera)라는 이름도 그녀의 이름인 김홍희에서 따온 'Kim'과 '오페라(opera)'를 합성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음악스타일은 비록 시기가 매우 빠르긴 했지만 새로운 음악시장의 가능성을 미리 예측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녀는 1985년에 키메라의 더 로스트 오페라 라는 오페라 아리아 모음앨범이 발매되면서 프랑스 전역을 강타하였고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지가 1면 톱으로 내보낸 헤드라인 기사에 "한국에서 온 팝페라의 여왕" 이라면서 오늘날 팝페라라는 칭호가 가장 먼저 사용되었다.
원래 정통 오페라 집을 녹으말 계획이었으나 남편의 락 애호가였기에 이를 맞춰 편곡했고 그녀는 별로 맘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녹음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당시 거물급의 지휘자와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정통클래식이 아닌 락리듬을 연주했다는 것은 금세 언론의 뉴스거리가 되고 곧이어 밀려드는 상업적 출반 요청에 따라 음반을 내놓고 결과는 말 그대로 대박, 프랑스 음반차트의 톱을 단숨에 거머쥐고 유럽이 온통 락오페라 열풍에 휩싸이게 한다. 그리고 키메라는 계획에도 없던 가수활동을 시작했고 3장의 음반을 내며 연속 대박, 그녀가 음반을 내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어렸을적 성악을 하고 싶었으나 광대짓은 절대 못시킨다는 부친의 완고한 고집으로 접었던 꿈을 실현하고자 하였던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88올림픽 이전 한국이란 나라의 이름도 모르고 알아도 미개한 나라로 인식되던 유럽의 현실에서 그녀는 당당하게 한국이란 이름을 널리 홍보하게 해주었고 실제로 그녀 또한 그녀의 짙은 눈썹 화려한 복식을 우리 엣 벽화 등에서 나오는 문양과 인물에서 따 한국을 널리 알리는데 일조했다.
그녀가 갑작스럽게 우리 기역속에서 사라진것은 남편의 스페인 별장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녀 유명세와 남편의 부를 노린 납치범들에게 딸이 유괴당하는 사건이 발생 당시 그때의 충격으로 그녀는 조용히? 가정으로 돌아가버렸다. 만약 그녀가 한 가정의 아내로 어머니로 조용히 살지 않고 계속해서 활동을 해왔다면 오늘날의 세계 팝페라 시장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 못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키메라의 음반을 국내에서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지만 팝페라의 창시자로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그녀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그녀의 앨범은 총 다섯장이 발매되었고 1집 더 로스트 오페라 2집 오페라 익스프레스 3집 서울올림픽 성공의 염원을 담은 마칭 포 에버 4집 크리스마스 앨범인 칸타 노엘 5집 은퇴 앨범인 어머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