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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이제 ‘마라토너들만의 스포츠’가 아니다. 캐릭터와 브랜드, 가치관까지 덧입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인스타그램 인증샷을 위해 뛰는 사람도 있고, 서울 도심 한복판을 뛰는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달리는 사람도 있다. 덕분에 러닝의 문턱은 낮아졌다.
하지만 대회의 질은 제자리걸음이다. 오히려 늘어나는 대회 수만큼 ‘운영 미흡’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참가자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불편을 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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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싸멜로그’ 운영자는 지난 14일 열린 마블런에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채 대규모 컷오프가 진행되는 장면을 영상에 담았다. /사진=유튜브


 ○페이스메이커도 컷오프?… 황당한 운영
지난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마 dti 완화 블런’. 하프코스를 달리던 참가자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았다. C그룹의 출발 시간이 지연됐지만 차량 교통통제 시간은 유지돼 많은 참가자들이 반도 달리지 않은 상황에서 컷오프 통보를 받은 것이다. 심지어 페이스메이커와 운동 인플루언서들까지 줄줄이 컷오프 되는 장면이 온라인에 퍼지며 공분을 샀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유튜브 ‘요다 주니어’ 아파트매매계약 채널 운영자는 “스파이더맨 복장으로 즐겁게 달리기 위해 지난 두 달 간 퇴근 뒤 주 3~4회, 5~10㎞씩 달리며 준비했지만, 주최측의 운영 미숙 탓에 완주하지 못해 큰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다.
논란이 커지자 주최사 스포맥스코리아는 “내년 상반기 대회 참가권을 보상으로 주겠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같은 대회에 다시 나가고 부영아파트전세자금대출 싶지 않은데 무슨 보상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한 참가자는 “주최사 손실 줄이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수 차례 스포맥스코리아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친환경’을 내세운 서울어스마라톤은 또 다른 황당한 사례다. 배번호를 물에 녹는 소재로 만들어 대회 중간에 찢어지기 쉬웠다. 이에 많은 참가자가 배번호를 대출이자 소득공제 손에 들고 뛰는 모습이 연출됐다. 또 최종 기록이 2분가량 당겨지는 등 오차가 발생해 참가자들은 ‘가짜 개인기록(PB)’을 받아들어야 했다. 짐 보관소 역시 바닥에 짐을 쏟아놓고 참가자들에게 셀프 픽업을 강요해 원성을 샀다.
오타와 코스 오류 사례도 있다. 국제국민마라톤은 하프코스 메달에 ‘HALF’ 대신 ‘HAFE’를 새겼다. 전주마라톤의 10㎞ 코스는 실제로 8.5㎞에 불과했다. 부산마라톤은 왕복 코스임에도 주로 구분이 없어 참가자들이 충돌 사고 위협을 느껴야 했다.
지난해 하남시에서 열린 ‘썸머 나이트 런’은 더 심각했다. 폭염 속 준비 부족으로 참가자 28명이 쓰러졌고, 19명은 병원으로 실려 갔다. 최근 경찰은 안전 관리 소홀로 주최사인 전국마라톤협회의 대표를 검찰에 송치했다.



유튜브 채널 ‘고빵’ 운영자는 지난 21일 열린 ‘2025 서울 어스마라톤’ 현장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참가자들이 길바닥에 널부러진 짐더미 속에서 자신의 짐을 찾는 모습(위)과, 물에 녹는 재질이라 쉽게 찢어진 배번호를 들고 뛰는 모습(아래)./사진=유튜브


 ○대회는 늘고, 경험은 부족하다
한국육상연맹에 따르면 올해만 국내에서 459개 대회가 열린다. 서울에서만 138개로 전국 최다. 이 가운데 연맹이 공동 주최하는 건 고작 12개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마라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업이 운영을 맡는 경우가 많다”며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니 소규모 대회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내 마라톤 대회가 워낙 잦다 보니, 교통 통제와 행정력 지원이 사실상 상시 업무로 굳어졌다. 그만큼 시민 불편과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참가자는 늘어나는데, 통제 시간과 인력은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운영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허가가 떨어진 대회는 시내 중심가 도로 사용, 교통 통제, 코스 관리 등에 필요한 행정력을 추가 비용 없이 지원받는다.
운영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그 이유는 건강 관리, 기록 경쟁, 코스프레, 사진 업로드까지 다채롭다. 다양한 테마의 대회는 러닝 시장이 넓어지고, 달리기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운영 미숙이 반복된다면 대회의 공신력을 잃고 종목의 경쟁력이 낮아진다. 참가자들이 원하는 건 단순하다. 안전하고, 공정하고, 즐겁게 달릴 수 있는 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