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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 고(故) 찰리 커크 (Charlie Kirk). 사진=flickr
정말 총을 쏜 게 트랜스젠더일까? 미국의 극우 인사 찰리 커크가 암살당한 직후, 극우 세력이 일제히 트랜스젠더를 총격범으로 지목했다. 공화당 의원들, 극우 인플루언서와 마가(MAGA) 지지자들, 심지어 월스트리트 저널마저도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동원해 트랜스젠더를 범인으로 몰아세웠다.
먼저 그들을 자극한 건 탄피에 새겨진 'TRN'이라는 단어. 'Trans 비과세급여 Rights Now'의 축어이자 트랜스 테러리즘의 구호라는 것이다. 하지만 TRN은 그저 Turan이라는 총기 제조사의 이니셜이었다. 이 같은 확증편향의 광란은 실로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여기에 총격 직전, 찰리 커크가 트랜스젠더와 총기 사고와의 관계에 대해 대답하고 있었다는 우연적 상황이 음모론 확산에 기름을 끼얹었다. 찰리 커크는 호박죽 그동안 성소수자 인권을 집요하게 공격했으며, 총기 사건 범인들의 태반이 '트랜스젠더 살인광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온 터였다.
트랜스젠더 총격범에 대한 극우의 신화는 2023년부터 유포되기 시작했다. 성소수자 권리를 침식시키는 과정에서 돌출된 또 하나의 공세다. 지난 10년의 총격 사건 중 트랜스젠더가 벌인 경우는 고작 0.1%에 불 핑크머니 과한데도, 트랜스젠더 테러리스트들이 날뛴다는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양산해 온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트랜스젠더가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보다 더 위험한 집단이라고 공격하고, 법무부는 트랜스젠더 총기 구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그들이 보기에, 트랜스젠더는 총을 난사하는 좌파 테러리스트이자 순수 가정과 민족 정체성을 타락시키는 위 정부학자금대출신청방법 험한 외부세력이다.
사정이 이러니, 정의의 투사 찰리 커크가 트랜스젠더에게 암살당했다는 허구의 드라마가 극우들 머릿속에 자동연상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사건 용의자로 붙잡힌 22세의 타일러 로빈슨이 트랜스젠더가 아니었음에도, 트랜스젠더 룸메이트에게 세뇌당해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등 확인되지 않는 음모론이 또다시 활개를 친다. 어떻 국민은행 카드사 게 해서든지 망상적 신화의 완결을 위해 찰리 커크는 트랜스젠더의 총에 죽은 순교자여야 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혐오 물결이 온통 미국을 익사시킬 기세다. 2023년에만 수십 개의 반트랜스젠더 법안이 통과되었으며 트랜스젠더는 극우의 주적이 됐다. 문제는 이 광풍이 미국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헝가리, 튀르키예 등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부상하며 성소수자가 증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고,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등 전 세계에 걸쳐 극우 포퓰리즘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격을 맹렬히 부추기는 실정이다.
말 그대로, 반트랜스젠더 십자군 운동. 극우 정치가 부상함에 따라 트랜스젠더 혐오가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 1933년 나치가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구를 수행한 성과학 연구소와 도서관을 불태운 이래, 트랜스젠더를 화형대에 세우는 희생양 정치가 극우 정념의 도화선을 따라 재발하는 양상이다. 트럼프 정부는 찰리 커크 암살을 미국 내에서 트랜스젠더와 진보 세력을 쓸어낼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트랜스젠더가 “바이러스와 암” 같은 존재라며 시설 수용을 선동하는 지경이다. 당연히 미국을 떠나는 성소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증오의 광풍을 불게 할까? 바로 트랜스젠더라는 내부의 적을 가공함으로써 불평등과 정치적 부패 등 사회적 문제들로부터 대중의 주의를 쉽게 돌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구조적 모순을 인종 또는 젠더 갈등 문제로 납작하게 환원하며 체제의 작동 방식을 오인하게 만드는 극우적 세계관이 점차 확산되면서 트랜스젠더와 같은 만만한 소수 집단에게 분노의 좌표를 찍어버리는 것이다. 또 정상성의 규범을 재조직하는 과정에서 '가부장 남성'과 '가정적 여성'으로 대변되는 표준적 이성애 양식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라고 여겨 저주를 퍼붓고 배제를 감행하는 파시즘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 9월22일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병적 증상이 남실댄다. 극우 페미니즘 집단과 보수 기독교 세력이 공공연히 혐오의 언어를 앞세워 트랜스젠더 권리를 부단히 질식시키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거울쌍의 증오 정치라 할 수 있는 '중국 혐오'가 어느새 거리마다 스며들어 우리의 이성을 좀먹는 형국이다.
바야흐로 오늘날의 트랜스젠더는 극우 파시즘의 카나리아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 수만 명이 추모식을 열고 생전에 혐오와 차별만을 발산해 온 시답잖은 젊은 극우를 '순교자'로 기리며 지지자들에게 피의 복수를 재촉하는 파시즘의 광기를 목도하면서, 또 성조기를 흔들며 찰리 커크를 연호하는 한국 극우들을 보면서 이성의 끈을 질끈 붙잡을 수밖에 없다. 잠식되기 전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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