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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과 죽비

성철스님 小參法門 2 -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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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조 작성일13-12-28 09:48 조회2,1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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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부의 필수관문 : 숙면일여(熟眠一如)


 


스님1 : 화두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조사스님 말씀이나, 큰스님 말씀에, 화두를 들어서 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가 되어 가지고 깨친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즉각적인 깨달음)' 라고, 그냥 한마디 듣고는, 바로 들어가시는 분들이 있잖습니까?


 


그래, 바로 들어가는 분이 있는데, 그건 경우가 없다는 것은 아니야. 누구든지 사다리를 올라가듯 한 단계씩 꼭꼭 밟고 올라가라는 말은 아니야, 아닌데, 일초직입여래지한 사람도 말이야, 동정에, 몽중에, 숙면에 一如한 그 단계를 초월해 버려야 되지, 거기에 걸리면 안 된다 그 말이야.


一超直入如來地 했다 해도 熟眠에 一如하지 않다든지 하면 안된다 그 말이야. 이전에 일초직입여래지 했다는 스님들을 보면 모두 다 숙면에서 일여한 그 경계를 지나갔다 그 말이야.


공부의 단계를 자세히 말하자니까 動靜과 夢中과 熟眠을 얘기했는데, 이전 스님들은 대개 뭣을 말했느냐 하면, 제일 끄트머리인 숙면일여만 얘기했거든. 현사(玄沙)스님같은 유명한 대도인(大道人) 스님은 늘 숙면일여만 말씀하셨거든. 숙면일여 밑의 단계같은 건 말할 필요 없는 것 아니가?


“니가 큰소리치고, 니가 조사라 하고, 일초직입여래지 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잠이 꽉 들어서도 네 경계가 그대로 일여하냐?” 하고 묻거든, 알겠어?


그러면 일초직입여래지, 이것이 없는 건 아니야, 있지만 숙면에서 일여한 그 경계에서 반드시 살아나야 되지, 그게 안되면 안된단 말이여. 자기가 아무리 크게 깨쳤더라도, 그래서 일초직입했더라도 숙면일여가 안되면 안돼. 소용없단 말이여.


 


그건 쓸데없는 망상이고 생사의 근본이니 아무 소용없는 거라고 이전의 조사스님들이 다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렇다고 꼭 계단을 밟아 올라가라 그 말은 아니야.


어떻게 했든지 - 단계를 밟아 올라 왔든지, 一超直入, 한 번에 꽉 뛰었든지 - 이랬든 저랬든 간에, 중요한 것은 숙면에 일여한 경계를 반드시 통과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말이여.


그럼 알겠어? 이전에 조사스님들 치고 숙면일여를 통과하지 않은 스님은 없어.


사람도 여러 질이어서 고봉스님처럼 몽중일여된 뒤에 숙면일여를 통과한 스님도 있고, 그만 한 번에 숙면일여를 통과한 스님도 있고, 어떤 스님은 또 공부하다가 몽중일여도 안되가지고 확철했다고 하는 스님도 있고, 그러니 사람이 그 근기에 따라서 3()을 다 밟아 나가는 사람도 있고, 한 번 만에 뛰어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결국 잠이 꽉 들어서도 一如하냐, 그게 근본(根本)이거든. 숙면에서 일여하지 못하면 자기가 아무리 크게 깨쳤다고 해도 소용없어.


또 화두하는 방법에 의문이 있는 사람?


 


 


2)‘이 뭣고?' 화두의 바른 참구법(參究法)


 


스님2 : 저는 ‘이뭣고?’ 를 잡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이것이 무엇인고?” 하면, 이것이 잘못된 데는 없습니까?


 


그런데, 내 ‘이뭣고?’ 하는 사람 참으로 많이 봤는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보고 듣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 아니가?  이 화두한지 몇 해나 됬노?


 


스님2 : 3---


 


 


3년 돼? 어떤 사람은 오래 해도 안되는 사람 봤어.


그러니까 ‘보고 듣고 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이렇게 해서,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러는 것이, 아까 말한 그 처사라는 사람이 ‘이뭣고?’ 를 했어.


‘이것이 무엇인고?’ 이렇게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면, ‘이것이 무엇이고?’ 하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앉아 있는 식이 돼버렸어, 그만. 이런 식이 되어 가지고는 그만 定에 들어가 버려. 그런 사람 많거든.


이러한 병폐(病廢)가 따르는 수가 있고, 또 ‘보고 듣고 하는 이것이 무엇이냐?’ 이러면, 보고 듣고 하는데 따라서, 경계에 따라서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이냐? 하게 되어 산만해 지는 병폐도 붙게 되거든, 알겠어?


 


그래서 이 병폐 저 병폐를 없애기 위해, 예전 조사스님들은 어떻게 늘 주장했냐 하면,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 하고 ‘이뭣고?’ 를 하려면 이런 식으로 하라 했어!


마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란 말이여, 그럼 이것이 무엇인고?


 


이렇게 하면 경계를 하나 잡아 갖고 이뭣고--? 하면서 들여다 볼 수도 없고, 경계에 따라서 이리저리 따라 갈 수도 없고.


그런데 한 20년 ‘이뭣고?’ 를 하다가 내버리는 사람 더러 봤어. 자꾸만 ‘보고 듣고 하는 이건 무엇인고?--’ 하고 따라 다니다 보니까 자꾸 산만해 지고, 그만 안된다 이거라.


보고 듣고 하는 ‘이것’ 만 바로 알면 그만이야. 이것을 바로 알면 마음이나 물건이나 부처나 이런 걸 바로 알 수가 있는데 말이여. 화두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그런 식으로 하다보면 자꾸 산만해 진단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는 ‘이뭣고?’ 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뭣고를 아주 내버리지는 마라’ 하는 소리는 잘 안하거든. 아까 그 처사처럼 오래도록 해서 病이 깊은 그런 사람한테는 아주 완전히 내버리라고 하고, 완전히 딴 화두를 가르쳐 줬는데,


너는 아직 초학인(初學人)이고 하니, 방법을 바꾸어서 ‘마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해보면, ‘보고 듣고 하는 이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하는 것과는 좀 달라. 그럼 내 말 알겠나?


 


 


3) 호흡과 화두


 


스님3 : 저는 無자를 드는데요, 호흡에 맞춰서, 호흡을 가늘게 하면서 들이 마시고 내쉴 때---,


 


그래, 화두를 하는데 흔히 뭐 호흡을 하느니 단전(丹田)을 관()하는니 하는 그런 사람 있거든? 그런데 丹田을 觀한다는 것은 상기(上氣)가 나서 머리가 아파 공부를 못 할 적에 일이고, 알겠어? 丹田을 觀하면 좀 내려가거든. 하지만 丹田, 그것도 上氣가 심하게 나면 머리가 더 아파 버려.


혹 病과 관련해서 丹田을 觀하라고 그러는데, 본래 호흡하고 화두참구법하고는 관계가 없는 거라. 자기 몸뚱이도 잊어 버려야 되는데, 호흡에 맞추고, 丹田에 맞추고 그러면, 話頭에 전념(專念)이 안돼.


上氣가 되어서 머리 아파 못하는 사람은 할 수 없어서 丹田으로 하는데, 그것도 나중에 上氣가 너무 심해지면, 더 아파 버려! 내 그런 사람 더러 봤어. 그래서 영원히 공부 못하게 되는 사람 쌨거든?


화두 할 때 누구든지 그런 병폐가 없으면, 호흡에 맞출 것도 없고, 단전에 맞출 것도 없고, 다만 화두만 생각해 보란 말야. 어째서 ‘무’ 라 했는지 그것만 생각해야 돼.


어떤 사람은 호흡을 이래할 때 이래하고 저래 할 때 저래하고, 그런 소리 더러 하거든. 그런 거는 본래 선문(禪門)에서는, 조사문중(祖師門中)에서는 배척하는 거라, 호흡이고 그런 거는.


 


화두만 하는 거라 알겠어? 이 생각 저 생각하지 말고 화두만 부지런히 부지런히 해야 되는 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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