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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과 죽비

초심자를 위한 警覺(경각)의 말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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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혜조 작성일13-12-08 10:24 조회2,0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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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邪見(사견: 간사할 사)을 조심하라


 


근래 삿된 스승들이 있어서, 學人(학인)들에게 '이 일은 工夫(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가르치거나, '古人치고 일부러 工夫를 한 이가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가장 害毒(해독)이 甚()한 말이다. 後學(후학)들을 迷惑(미혹)케 하고 그릇되게 하니, 地獄(지옥)에 들어가기 화살 같으리라.


大義禪師坐禪錄(대의선사좌선록)에 이르기를,


 


(참구)할 필요 없다는 말, 절대로 믿지 말고,


옛 聖人(성인)들이 쉬지 않고 애쓰신 것을 본보기로 삼아라.


비록 낡은 누각의 버려진 밭이라지만,


한번에 영영 황폐시켜서야 되겠는가?


 


만약 '(참구)할 필요 없다' 고 하면서, 문득 '이치를 얻었다' 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타고난 미륵이요 自然(자연) 석가니, 이런 무리를 불쌍한 자라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도 (참구)해 본적이 없다가, 혹 古人(고인)의 一問一答(일문일답)을 보고 문득 깨치기라도 하면 드디어 識情(식정, 알음알이)으로 이해해 가면서 남을 속이지만, 한바탕 熱病(열병)이라도 앓게 되면 연일 괴롭다고 절규하게 되니 평생 동안 안 것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혹은 목숨을 마칠 때 방게가 끓는 냄비 속에 들어간 듯 손발을 바삐 움직이며 발버둥치게 되니, 그때 가서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 있을 것인가?


黃檗禪師(황벽선사)가 이르기를,


 


塵勞(진로, 티끌경계)를 멀리 벗어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니,


고삐를 바짝 조여 잡고 한바탕 애쓸지니라.


한 번 매서운 추위가 뼈를 파고드는 고비 넘기지 않는다면,


어찌 매화가 꽃을 피워 그 향기 코 찌를 일 있으리?


 


하니, 이 말씀이 아주 친절하다. 만약 이 게송으로 때때로 자신을 경책한다면 공부가 자연히 향상될 것이다.


백리 길을 갈 때, 한 걸음을 걸으면 갈 길이 한 걸음 줄어들지만, 가지 않고 길 가운데 서 있기만 하면, 설사 고향 소식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한들 집에는 끝내 도착하지 못하리니, 어느 쪽을 선택해야겠는가?


 


 


18. 懇切(간절)히 공부하라


 


공부에 가장 긴요한 것은 간절이다. 이 간절이 가장 힘이 있는 것이니, 간절하지 않으면 나태해지고 나태심이 생기면 제멋대로 하게 되고 멋대로 굴다 보면 못할 짓이 없게 된다. 만약 마음 씀씀이가 진실하고 간절하면 방일과 나태가 어디서 생기겠는가?


간절할 수만 있다면, 고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고, 생사심을 부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다.


만약 이 간절을 버리고 따로 불법을 구한다면 이는 모두 어리석고 미쳐서 밖으로 달리는 것이니, 어찌 공부한다고 다 공부라 말할 수 있으리오?


간절하면 어찌 그 같은 허물만 여의겠는가, 즉시에 善•惡•無記(선•악•무기) 이 셋을 뛰어 넘어버린다. 한 마디 화두에 대해 마음을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쓰면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무기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화두하는 마음이 간절하면 悼擧(도거)와 昏沈(혼침)이 없어지고 화두가 現前(현전)하면 無記(무기)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간절이란 이 한 마디가 가장 친절한 말이니, 마음씀이 간절하면 공부에 간격이 없으니 魔()가 들어올 수 없고, 마음씀이 간절하면 '있다 없다' 등을 헤아리는 생각이 생기지 않으니 外道(외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19. 話頭(화두)가 現前(현전)할 때


 


공부를 지어가는 사람이 걸으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 있어도 앉아 있는 줄 모르면, 이를 '화두가 현전한다' 고 한다. 疑情(의정)을 부수지 못했으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있는 줄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가고 앉고 하는 것이랴?


 


 


20. 雜事(잡사)를 일삼지 말라


 


공부를 지을 때는 思惟(사유)로써 時()를 짓거나 偈頌(게송)을 짓는 것을 가장 부끄러워해야 한다. 시나 게송을 짓는데 성취가 있으면 詩僧(시승)이라 하고 文章(문장)이 교묘하면 文字僧(문자승)이라 하는 것이니, 參禪(참선)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무릇 逆順(역순)의 경계를 만나 생각이 움직이면 곧장 알아차리고 화두에 의심을 일으켜서 경계에 의해 마음이 굴려지지 않게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바짝 죄지 말라' 고 하지만 이 말이 가장 사람을 잘못되게 하니 공부인은 마땅히 잘 알아야 한다.


 


 


21. ()에 떨어질까 겁내지 말라


 


공부인들이 흔히 空()에 떨어질까 겁내곤 하는데, 화두가 현전한다면 어찌 비게 될 것이며, 다만 이 '공에 떨어질까 겁내는 생각' 조차 비워 없애지 못했거늘, 하물며 어떻게 화두가 현전하겠는가?


 


 


22. 疑情(의정)을 부수지 못했으면


 


공부를 지을 때, 의정을 부수지 못했으면, 깊은 연못에 다다르거나, 얇은 얼음을 밟을 경우에, 털끝만큼이라도 주의를 게을리 하면 곧장 목숨을 잃게 되는 것과 같이 매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의정을 부수지 못하면 큰 이치를 밝히지 못했기에, 살아서는 평생 中陰(중음)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고, 죽어서는 業識(업식)을 따라가다가 몸뚱이가 바뀌는 줄도 알지 못하게 되는 꼴을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의심에 의심을 더하여 화두를 들어서, 밝히지 못한 것은 결정코 밝히고, 부수지 못한 것은 결정코 부숴야 한다. 비유컨대 도둑을 체포한 뒤엔 모름지기 숨긴 물건을 찾아야 하는 것과 같다.


 


 


23. 깨치기를 기다리지 말고 끊임없이 공부하라


 


공부를 지을 때는, 깨치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길을 가는 사람이 路上(노상)에 멈춰있으면서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면 끝내 집에 도착하지 못하고, 반드시 걸어가야 도착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깨치기를 기다리면 끝내 깨치지 못하며, 다만 반드시 급하게 다그쳐서 깨치게끔 해야 한다.


크게 깨칠 때는 마치 연꽃이 홀연히 피는 것과 같고 큰 꿈에서 홀연히 깨어나는 것과 같아서, 진실로 꿈에서 깨어나길 기다리지 않아도 잠이 깊이 익으면 저절로 깨어나고, 꽃을 피우지 못했어도 시절이 이르면 저절로 피게 되듯, 깨침은 깨치길 기다리지 않아도 인연이 모일 때 저절로 깨치게 된다.


나는 말한다. '인연이 모일 때' 라 하는 것은, 화두하는 마음을 진실하고 간절하게 해서 깨치게끔 급하게 다그치다 보면 인연이 모일 때 깨친다는 말이지, 인연이 모일 때까지 깨치기를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다.


또한 깨칠 때는 구름을 열어젖히고 하늘을 보는 것과 같아서 휑하니 넓어 의지할 것이 없다. 하늘이 돌고 땅이 도는 것은, 또다시 한 번 뒤집어진 경계이다.


 


 


24. 參禪(참선)에 필요한 네 가지 태도


 


공부를 지을 때는 緊張(긴장, 급할 긴/활시위 얹을 장)•바름•綿密(면밀)•融豁(융활)해야 한다.


긴장이란, 사람의 목숨이 呼吸(호흡)에 달려있어서 큰 일을 밝히지 못했으면 한 입의 공기를 들이마시지 못하는 순간, 앞 길이 아득하여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古德(고덕)이 이르시기를, "삼으로 꼰 노끈에 물이 묻으면, 한 걸음 걸으면 한 걸음만큼 조여지는 것과 같이 하라." 고 하니라.


바름이란, 학인이라면 반드시 공부하는 방법을 간택할 수 있는 눈을 갖추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3700 祖師(조사)들에게는 대체로 본보기가 있었으니, 만약 터럭만큼 어긋나도 삿된 길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經()에 이르시기를,


"오직 이 하나만 事實(사실)이요, 나머지 둘은 참된 것이 아니다." 라고 하니라.


면밀이란, 눈썹을 허공에 묶어 놓으면, 눈썹과 허공 사이의 틈새는 가는 바늘로 찌를 수 없고 물로도 그 틈을 적시지 못하듯, 공부에 터럭만큼의 간격을 두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만약 터럭만큼이라도 간격이 있으면 魔()의 경계가 그 틈을 타고 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고덕이 이르시기를,


"화두가 잠시라도 있지 않으면, 죽은 사람과 같다." 고 하니라.


융활이란 세계가 一丈(일장)만큼 넓으면 古鏡(고경)도 一丈만큼 넓고, 古鏡이 一丈만큼 넓으면 火爐(화로)가 一丈만큼 넓으니, 결코 한 곳에 머물기를 집착해서 죽은 뱀 머리를 꽉 잡고 있지 말며, 또한 兩頭(양두)에 떨어져 마음이 어지럽게 하지도 말라.


고덕이 이르기를,


"圓滿(원만)하기가 큰 허공과 같아 부족함도 없고 남음도 없다." 고 하니라.


참으로 융활한 곳에 이르면, 안으로는 身心(신심)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는 세계가 있는지 알지 못하나니, 이렇게 되야 비로소 머리를 들이밀 수 있다.


마음을 바짝 조여서 공부하되 방법이 바르지 못하면 애써도 헛수고 일 뿐이요, 방법이 발라도 조이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다. 들어간 뒤에는 반드시 면밀해야만 相應(상응)할 수 있고, 상응한 뒤에는 반드시 융활해야 비로소 대중을 교화할 수 있다.


 


 


25. 털끝만큼도 딴 생각을 내지 말라


 


공부를 지을 때는 터럭만큼도 딴 생각이 붙게 해서는 안 된다. 行住坐臥(행주좌와)에 본래 (참구)하던 화두만을 들어서 疑情(의정)을 일으켜서 憤然(분연)히 그 落處(낙처)를 찾고자 해야지, 만약 조금이라도 딴 생각이 있게 되면 옛 사람이 이른바 '雜毒(잡독)이 심장에 들어갔다' 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어찌 목숨만 傷()하겠는가, 慧命(혜명)까지 상하기 되니 學人(학인)은 불가불 이를 엄히 경계해야 한다.


나는 말한다.


"世間法(세간법)뿐만 아니라, (참구)하는 마음 이외에는 佛法(불법)중의 일체 좋은 일도 모두 '딴 생각' 이다. 더욱이 어찌 불법중의 일 뿐이겠는가? 心體(심체) 위에서 취하고 버리며, 고정되어 있거나 戀遷(연천, 사모할 연/옮길 천)하는 그 모든 것이 다 딴 생각이다."


 


 


26. 끝까지 쉬지 말라


 


공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말하기를, "공부해도 향상되지 않는다." 고 하는데, 이 공부해도 향상되지 않는 곳이 문득 공부가 되는 것이다. 마치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늘 길을 찾아야지 그렇지 않고 "찾아도 길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고는 쉬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길을 찾았으면 걸어가는 것이 貴()하니 곧바로 집에 이르러야 쉴 수 있는 것이다. 路上(노상)에서 가지 않고 우두커니 서있어서는 끝내 집에 도착할 기약이 없다.


 


 


27. 마음 쓸 곳이 없는 곳에 이르러


 


공부를 하다가 공부가 마음 쓸 곳이 없고, ()길 벼랑에 매달린듯한 곳, 물이 다하고 산이 다한 곳, 얇은 비단 무늬가 뿔에 새겨지는 곳에 이르면, 마치 늙은 쥐가 소뿔에 들어간 것과 같이 되어, 저절로 뒤집어져 끊어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28. 약고 민첩한 마음을 조심하라


 


공부할 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약고 민첩한 마음' 이다. 이 영리한 마음은 독약과 같아서, 만약 터럭만큼이라도 먹게 되면 비록 진짜 약이 나타난다 해도 救濟(구제)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참으로 禪()을 제대로 (참구)하는 놈이라면, 눈은 봉사와 같고 귀는 귀머거리와 같으며, 생각이 겨우 일어나려 할 땐 銀山鐵壁(은산철벽)에 부딪친 듯하나니, 이와 같이 해야 비로소 공부가 相應(상응)할 수 있게 된다.


 


 


29. 身心(신심)과 세계가 이겨지면


 


공부를 진실하고 간절하게 하다 보면, 身心(신심)과 세계가 이겨져서 쇠말뚝처럼 요동하지 않게 된다. 그런 뒤엔 다만 그것이 폭발하여 끊어지기만 기다렸다가 마침내 부러지면 다시 모름지기 모아야 된다.


 


 


30. 그른 줄 알면 즉시 버려라


 


공부하다가 잘못될까 겁내지 말고, 다만 그릇된 줄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설사 잘못된 곳으로 갔다 하더라도 만약 한 생각에 그릇된 줄 알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것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기본이자, 生死(생사)를 벗어나는 요긴한 길목이요, 마군의 그물을 부셔버리는 날카로운 무기이다.


석가 큰 스승께서는 外道(외도)의 修行法(수행법)이란 소굴에 앉아 있기만 하셨던 것이 아니라 낱낱이 수행법에 대해 허물을 밝혀내시고는, '그릇된 줄 알면 버린다' 는 이 말로써 凡夫(범부)로부터 大聖人(대성인)의 지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어찌 出世間法(출세간법)에만 의미가 있을 것인가. 세간법 중에서도 바른 생각을 잃었을 때, '그릇된 줄 알면 버린다' 는 이것만 자기 것으로 만들면 깨끗한 好人(호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곳을 꽉 껴안고서 옳다고 여기고서 그릇된 줄 알려 하지 않는다면, 설사 부처가 살아나서 눈앞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救濟(구제)하지 못한다.


 


 


31. 境界(경계)와 因緣(인연) 속에서 힘을 얻어라


 


공부를 지을 때는, 시끄러운 경계를 피해 고요한 곳을 향해서 눈을 감고 귀신 굴처럼 어둠침침한 경계에 앉아있는 것으로 살아갈 방도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는 古人(고인)의 이른바 "黑暗(흑암)의 山밑에 앉았거니 죽음의 물이 스며들면, 무슨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는 것이다. 다만 모름지기 境界(경계)와 因緣(인연) 속에 있으면서 공부를 지어갈 수 있어야 비로소 힘을 얻을 수 있다. 한 마디 화두를 눈썹에 머물게 해서, 길을 가든지 앉아 있든지, 옷을 입거나 밥을 먹든지, 손님을 접대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 모든 와중에서, 다만 한 마디 화두의 落處(낙처)를 밝히고자 해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洗面(세면)할 때 콧구멍을 더듬어 찾아보니 원래부터 대단히 가까운지라, 이것이 힘을 더는 것이다.


 


 


32. 識神(식신, 알 식/귀신 신)을 공부라 여기지 말라


 


공부를 지을 때는 識神(식신)을 佛法(불법) 중의 일로 잘못 알고서, 혹 눈썹을 치켜 뜨거나 눈을 깜박이거나 머리를 흔드는, 여기에 많은 奇特(기특)한 것이 있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무엇보다 부끄러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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