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스님 참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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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상행 작성일10-07-09 23:31 조회3,234회 댓글4건본문
선방만 선방이 아니라 참선하는 사람은 각각 자기 육체가 곧 선방이라,
선방에 상주(常住)하는 것이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간단(間斷)없이 정진할 수 있나니라.
선지식을 만나 법문 한 마디 얻어 듣기란 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 일이니,
법문 한 마디를 옳게 알아 듣는다면 참선할 것 없이 곧 나를 깨달을 수 있나니라.
법문 들을 때는 엷은 얼음 밟듯 정신을 모아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야 하느니라.
공부가 잘 되지 않는 것은 전생에 놀고 지낸 탓이니,
그 빚을 어서 갚아야 수입이 있게 되나니라.
공부하는 사람이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먼저 나를 가르쳐 줄 선지식을 택하여야 하고,
나를 완성한 후에 남을 지도할 생각을 해야 하느니라.
참선법은
평범한 언구나 공부가 아니요, 대(對)가 끊어진 참구법,
곧 터럭 끝 하나 얼씬거리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하느니라.
백년의 연구가 일분간의 무념처(無念處)에서 얻은 한 낱 이것만 같지 못하다.
일체 중생은 날 때부터 이성(異姓)의 감응(感應)으로 말미암아
세세 생생에 익히는 것이 음양법(陰陽法)이니,
정신 모으는 데는 이성적 장애가 제일 힘이 센 것이니,
공부하는 사람은 이성(異姓)을 가장 멀리 해야 하나니라.
일체 생각을 쉬고 일념(一念)에 들되,
일념이라는 생각조차 잊어 버린 무념처(無念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나를 발견하나니라.
소아적(小我的) 나는 소멸되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의 성취를 하기 전에는 썩은 그루터기같이 되어
추호도 돌아보지 않을 만큼 나의 존재를 없애야 하나니라.
짚신 한 켤레를 삼는 데도 선생이 있고,
이름 있는 버섯 한 송이도 나는 땅이 있는데,
일체 만물을 총섭(總攝)하는 도를 알려는 사람이 도인의 가르침 없이
어찌 도인이 될 수 있으며,
천하 정기를 다 모아 차지한 도인이 나는 땅이 어찌 특별히 있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도반의 감화력은 선생의 가르침보다도 강한 것이니라.
수도(修道) 중에는 사람 노릇할 것은 아주 단념해 버리고 귀먹고 눈먼 사람 되어,
일체 다른 일에 간섭이 없게 되면 대아(大我)는 저절로 이루어 지나니라.
하나라는 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요,
이 정신 영혼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니,
하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고?
의심을 지어 가되 고양이가 쥐를 노릴 때에 일념에 들 듯,
물이 흘러갈 때에 간단(間斷)이 없듯,
의심을 간절히 하여 가면 반드시 하나를 알게 되나니라.
참선한다고 하면서 조금이라도 다른 데 미련이 남아 있거나,
인간으로서의 자랑거리인 학문이나,
기이한 재주 등 무엇이라도 남은 미련이 있다면 참선하기는 어려운 사람인 것이니,
아주 백지로 돌아가야 하나니라.
참선하려면
먼저 육국(六國) 전란을 평정시켜 마음이 안정되어야 비로소 공부할 준비가 된 것이니라.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일체가 생기고, 한 생각이 멸할 때 일체가 멸하나니라.
내 한 생각의 기멸(起滅)이 곧 우주의 건괴(建壞)요 인생의 생사니라.
공부가 잘 된다고 느낄 때 공부와는 벌써 어긋난 것이니라.
공부인(工夫人)은 공부를 아니하는 공부를 하여야 하는데,
공부 아니하기가 하기보다 더욱 어려우니라.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문제보다는
이 공부밖에 할 일이 없다는 결정적 신심부터 세워야 하나니라.
참선은 모든 업장과 습기를 녹이는 도가니니라
사람을 대할 때는 자비심으로 대하여야 하지만,
공부를 위하여서는 극악 극독심(極惡劇毒心)이 아니면
8만 4천 번뇌마를 쳐부수지 못하나니라.
사형이 집행될 시간 직전에도 오히려 여념(餘念)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진 중에는 털끝만한 어른거림이라도 섞여서는 아니 되나니라.
인신(人身)을 얻기가 극히 어려운 일이니 사람 몸 가졌을 이 때를 놓치지 말고
공부에 힘쓰라. 사람 몸 한 번 놓치게 되면 또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니라.
참선하는 사람의 시간은 지극히 귀중한 것이라,
촌음(寸陰)을 허비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공부가 늦어지는 까닭은 시간 여유가 있거니 하고 항상 미루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자고 나면 오늘은 죽지 않고 살았으니,
살아 있는 오늘에 공부를 마쳐야 하지 내일을 어찌 믿으랴! 하고
매일매일 스스로 격려해 가야 하나니라.
사선을 넘을 때 털끝만큼이라도 사심(私心)의 여유가 있다면
참선하는 기억조차 사라져 없어지느니라.
선학자(禪學者)는 선학자의 행위를 엄숙히 가져서 입을 열지 않고서라도
남을 가르치게 되어야 하느니라.
공부가 완성되기 전에 미리 알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진을 게을리하다가는 불법인연마저 떨어지기 쉬우니라.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 나라라 하더라도 도인이 없으면 빈 나라요,
아무리 빈약한 나라라 하더라도 도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나라는 비지 않은 나라이니라.
— 만공스님의 <나를 찾는 법—참선법> 중에서
댓글목록
무상행님의 댓글
무상행 작성일
이번주 수업중..
참선은 용광로 와 같다고 하신
만공스님의 참선법에 대해 옴겨 봅니다..
금지 단어가 하나 있어...
하나를 사람으로 수정 하였어요...ㅎㅎ
영영님의 댓글
영영 작성일
긴 글도 아닌데 제목처럼 나를 찾는 방법이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군요.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처와 일체시에
간단없이 공부를 지어 가라시는 고구정녕한 말씀에
숙연한 마음으로
그저 고개만 주억거립니다.
첫 구절 선방만 선방이 아니라는 말씀에 힘입어
그럼 오늘부터라도 나를 찾아서 떠나 볼까요?^^
혜안등님의 댓글
혜안등 작성일
전재강교수님께서 만공스님은 "참선은 용광로와 같다. 그래서 모든 업장을 녹여준다." 고 하셨고,
고우스님께서는 "참선은 세탁기와 같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지요.
늘 수업시간중에도 두눈 반짝이며 열심히 공부하고 대답하고 하더니만,
집에가서 다시 복습하고 요점정리하는 무상행님을 보니 배울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모범불교대학생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반성해봅니다.
저는 대충 공부하고 졸업했거던요.
축서사님의 댓글
축서사 작성일
불교대학에서 공부한 내용을 이렇게 다시 올려주시니
우리도 공부할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무상행님의 홈페이지 활략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열심히 행복하게 항상 웃는모습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묘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