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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10/25<불교문화 7> 강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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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상화 작성일12-11-01 02:17 조회3,16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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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7 강의 요약 보고서

 

강의 제목 : 불교문화 6

강사 : 최영식 교수님

강의일자 : 10월 25일

 

우리나라 전체적인 사찰이 어느 정도 되는구나라고 굵은 선 정도는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함. 뿌리 없이 불교를 믿는 것은 잘못 된 것임. 사찰 건물 뜯어보면 이야기 할 게 많다.

우리나라 건축은 낙랑시대 때 낙랑 건축이 기초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까지 이어짐. 특히 신라~고려 1500년 동안의 역사는 길다. 국교도 불교. 고구려, 신라, 백제 이 3국 이전 시대는 같음. 그 후 고려부터, 조선, 근대는 구획이 다름.

<각 시대별 특징>

낙랑- 사찰 건축 발전의 기초

고구려- 낙랑건축 형식의 계승

백제- 고구려 건축 수법 승계

신라- 불교 건축 중심으로 발전

고려- 신라 건축 수법을 승계

조선- 숭유억불 정책, 불교 건축 축소

근대- 종교 개방으로 불교 건축 위축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종교 자유 많지 않다. 종교 개방 후 더더욱 위축. 지금 현재 시점에서 특히 젊은이들 서울서부터 단풍들어 내려 옴. 불교도 별로 없음. 부산, 경남은 아직까지 불교 잘 자리 잡음. 여기도 언제 단풍들려는지 걱정. 늦기 전 이런 부분 공부하여 전해야 함.

최근의 건축은 비약적으로 발전. 사찰의 대형화. 신도들 많아 법당 좁다고, 공양간 밥 먹을 자리 없으니 키워 달라고 하지만 전통 사찰의 규모 지켜야. 한마디로 전통이 사라짐. 간혹 템플스테이로 대형 콘크리틀 지음. 껍데기만 단청. 고 산사 주변의 자연 경관과 어울리지 않음. 오히려 훼손하게 됨. 전통 사찰은 그대로 지키고 포교당을 도심지에 키워라.

- 사찰 건축의 기초가 된 낙랑 건축

BC75년 약 2,100년 전 평양 땅에 번성한 낙랑. 낙랑 유적지가 남아 있음. 1,700년 전 고구려에 수복될 때 까지.

AD313년. 서방 문화 요소 섭취한 한나라 목조 건축 구조가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사찰 건축 양식 발전의 토대를 이룸.

안동 봉정사 극락전 900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800살, 예산 수덕사 대웅전 700년, 모두 고려 건축이다. 고려 건축의 뿌리는 낙랑. 대동강 남쪽 낙랑 토성지와 고분. 돌로 만든 성. 우리나라는 흙과 돌로 만듦. 언덕처럼 보임. 그것이 성이다. 고분 발굴 작업 시 벽화에 건축에 관계된 그림 발견. 목조 건축물은 1,000년 이상 된 것 없다. 그림 통해서만 엿볼 수 있음. 목조는 다 썩어 없어지지만 기와 파편으로 비교. 낙랑 와당과 고(古) 와편이 산재해 있음. 와당의 문양이 한식, 고사리 문양과 흡사함. 한나라의 건축 특징이 고사리 문양. 대동강 토성지도 같은 문양. 전(벽돌)에도 한식 문양.

고구려 역사(BC37-AD668) 705년, 약 700년.

대한민국 역사 아직 100년도 안됨. 역사 긺.

백제(BC18-AD660) 678년

신라(BC57-AD935) 992년, 약 1,000년 역사

발해(AD668-AD926) 258년

고려(AD935-AD1392) 457년

조선(AD1392-AD1910) 51 8년

- 고구려시대 불교 전래

소수림왕 2년(372), 전진(315-394)의 왕 부견(357-385)이 승려 순도를 보내 불상과 불경 전한 것이 시초. 아도가 들어 와 374년 초문사, 이불란사 생김. 최초의 사찰. 한국 사찰 건축의 시초.

고국양왕 8년(391) 왕이 ‘불법을 믿고 받들어 복을 구하라’라는 교지 내림. 불교는 인도->중국->한국으로 광개토대왕 2년(392) 평양에 9사(寺)를 세움. 1,600년 전.

- 고구려 사찰 건축

1,600년 전 낙랑 시대 목조 건축 양식을 계승. 절은 남아 있지 않다. 고구려 안악3호 고분, 첨차(檐遮)인 혓바닥 모양 있다. 수산리 벽화 고분에 연꽃 장식을 한 주두 모양. 기둥머리 중간에 연꽃 문양과 양 팔 받치고 있는 아래 쪽 첨차. 1,600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

- 백제불교 전래

고구려보다 12년 후에 들어 옴. 384년 한 10년 정도 늦음. 침류왕 1년(384) 인도승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들어 와 다음 해 한산 승려10명을 양성. 26대 성왕 때 불교가 가장 번성.

성왕은 얼마나 부지런한가. 바다 건너 일본 천황의 시초. 일본 교토 축제 매년 그대로 남아 있음. 성왕 30년(552) 불교를 일본에 전파. 이것이 일본 불교의 시초.

- 백제 사찰 건축

법왕 2년(600) 부여에 왕흥사 창건. 조각 등이 아주 섬세함. 요즘 말하면 김대성은 현장 소장 격. 경주 불국사, 황룡사 기술자는 백제사람 아사달과 아비지. 신라도 있었지만 백제에 가서 데려 옴. 일본도 백제 사람이.

1,400년 전 부여 땅 왕흥사 지음. 일본 1,300년 전 호류지, 법륭사. 670년. 백제 장인이 지은 동양 최고의 목조 건축이다. 2년 먼저 신라서 황룡사 지음. 유감스럽게도 황룡사는 주춧돌만 남음. 다시 복원 위해서는 일본 나라 것 참고해야. 백제 사찰 건축 세부적 수법은 법륭사의 금당, 5층탑, 회랑(복도).

호류우지는 분지로 아주 더움. 사슴이 2만 5천 마리 뛰어 놈. 그 많은 일본 절 다 다른데 우리나라 절과 똑 같다. 중문, 왼쪽 뒤 5층탑, 황룡사 9층탑도 똑같은 백제인이 지음. 이 규모 높이에 2배. 83m, 지금의 아파트27층 높이.

탑은 하나.

불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다섯 번 불이 남. 벼락 등으로. 또 올리고 또 올리고. 여섯 번째 불은 몽고 침략 시에. 복원 위해 30년 전에 설계했음. 그 당시 돈으로 3,200억 들어야. 돈만 있으면 4~5년 만에 지을 수 있다. 황룡사9층탑 복원하면 대한민국 국운이 살아난다고 믿고 있다. 예산 안 나옴.

호류우지 5층탑은 안이 뚫려 있음. 황룡사9층탑은 계단이 매 층마다 잇음. 선덕여왕이 주변 동북아의 9개국 상 결국 통일하게 됨. 유명한 금당. 서까래 모양이 둥글다. 백제인은 서까래를 네모로 만듦. 부여에 가면 경주 게임도 안 됨. 역대 김대통령 백제를 살려 놓음. 그러나 서까래는 백제 것이 아니다.

백제 사찰 건축 유적지로는 익산 미륵사지, 부여 정림사지. 지라는 의미는 땅이다. 땅만 남음. 돌로 만든 탑은 있음. 건물 기단과 주춧돌 있음. 미륵사지의 동탑과 서탑. 동탑은 새로 지음. 서탑은 많이 허물어져 현재 해체, 복원 중. 사리함 있음. 새로 지은 동탑 화강석 안 어울림.

정림사지는 부여 한 복판에 있음. 법당 주춧돌 있음. 정림사지 탑은 예쁘다. 규모가 어마어마함. 신라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 백제 치기 위해 당나라 소정방장군 데려 옴. 그가 탑신에 자기 이름 새겨 놓음. 지워야 하나? 역사니까 그것도 남겨두자. 나중에 김유신이 소정방을 다시 침.

왕흥사지는 절터만 있음. 기와 구운 가마터 있음. 사리함 나옴. 사리4과. 부처님 진신사리.

- 신라불교 전래

19대 눌지왕(411-457) 아도가 묵호자라는 이름으로 포교한 것이 시초. 법흥왕 14년(527) 이차돈의 순교 후 국교로 받아들여짐.

진흥완 5년(544) 흥륜사 낙성. 일반인에게도 출가를 허락. 경주 서라벌 현재 공업고등학교 터가 흥륜사 절 터. 운동장에 기왓장 나옴. 흥륜사라 적혀 있음. 후에 진흥왕도 출가, 왕비도 출가 함. 진흥왕은 화랑도 창설.

진흥왕 27년(566) 황룡사 낙성. 짓는 데 90년 걸림. 선덕여왕 황룡사에 있는 9층탑은 3년 만에 27층 아파트 높이 지음. 상상하기 어려움.

신라의 흥륜사, 영흥사.

가장 먼저 건축 흥륜사 유적지의 출토품으로 숫기와 막새. 전형적인 신라 문양. 영묘사지 출토 유물.

첨성대는 신라 왕궁 반월성 동북쪽 위치함. 불교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신라 27대 선덕여왕(632-647) 때 건축. 선덕여왕 시대는 에밀레종, 황룡사9층석탑, 첨성대 등 불심이 굉장한 듯. 조사해 보니 362개의 다듬은 돌로 원통형으로 축조. 365일과 흡사. 이것은 하늘을 관찰하기 위한 것인가?

높이 9m, 9.17m. 두께 30cm, 27단, 화강석. 꼭대기에는 우물 정자 형의 청정 돌로 마감. 28단과 29단은 우물 정자. 중간까지는 속이 꽉 참. 출입구 계단 있음. 시골 우물은 땅 파서 만듦. 토압 때문에 똑바로 못 내려가고 배를 불룩하게 해서 내려가야. 그대로 땅 위에 올림.

첨성대는 우주우물이다. 신라인들은 우물의 근원이 하늘의 은하수와 별에 있다고 믿음. 두껑을 안 덮음. 은하수가 내려와야 하니. 우물은 하늘을 봐야 한다. 은하수가 내려와 맑은 우물이 될 수 있도록. 불교적 세계관이다. 선덕여왕은 우물을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로 생각.

혁거세(BC69-AD4)의 부인인 알영도 우물에서 태어남. 명랑법사도 우물 통해 용궁 드나듦. 저궁, 황천, 구천 등 모두 우물 속 깊은 곳과 통한다. 초혼 풍습(사람이 죽으면 행하는)에 사람이 죽으면 우물로 달려가 머리를 들이민 채 망자의 이름을 부른다. 우물을 ‘통로’로 생각. 우물을 우주의 중심으로 인식. 우주 우물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선덕여왕 2년(633) 조립설이 있다. 황룡사9층 목탑(645) 동시 조립설도 있음. 몰년 647(645-647) 조립설이 가장 가깝다.

첨성대 통해 불교가 세계의 중심 상징. 수미산의 제석신이 어려움을 해결 해주길 고대. 죽은 후 수미산의 정상 도리천으로 환생 위한 통로로 지음. 현실 세계와 천상 세계로 연결하는 통로로 여김.

4단까지 메꿈. 기울어져 있음. 1,300년 동안 지진, 화강석 돌이기 때문에 그냥 맞추어 내려 왔는데 기단 상단부 갑석에 균열이 감. 누적된 힘에 의해 금이 감.

석굴암도 1913년 일본인에 의해 복원. 원형 훼손. 90cm 두께 철근 콘크리트 붙임. 1963년 동해풍이 자연스럽게 들어 와 부처님 조각들에 이끼, 청태가 낌. 이끼에 작은 뿌리가 있어 곰보가 생김. 뜨거운 증기 청소 깨끗해지지만 구멍이 남. 그 안 부처님은 우리 피부 같다. 너무 아름답다. 유럽이나 인도는 사암, 모래로 된 돌, 우리는 화강석, 짱돌.

이 굴에 기계실에서 공기 정화, 실내 온도 20도, 습도 50%. 이것이 맞는 건지 모른다. 토함산 450m 고지. 스님이 새벽 예불하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다 들릴 건데 밖에 365일 기계 돌아가면 마치 탱크소리처럼 들린다. 공명소리. 75cm, 75cm 구멍의 쇠판, 실내공기 빠져 나가면 풍속이 초속 2m 바람소리와 쇠 마찰 소리 남. 웅 하고 울림. 소리 과장.

피사의 사탑도 기울어있지만 그대로이다. 여론 못 이겨 완전 해체, 복원하기로 함. 가슴이 아프다. 지금 기술로는 안 된다. 더 후대에 연구 더 해서 그때해도 늦지 않다. 해결 방법이 없다. 다른 돌은 안 됨. 역사적 손상 반대함.

<탑(스투파)>

무덤. 부처님 무덤이다. 사리 신앙을 바탕으로 함. 불사리 안치를 위해 만듦. 큰스님이라도 탑 못 함. 큰스님 사리는 부도에 앉힘. 인도 간다라 지방 시작, 중국, 한국으로.

-스투우파 : 사리 봉안. 부처님 신골 봉안하는 불묘. 불사리 봉안처.

-차이티야 : 사리 없음. 신령스런 탑.

인도- 복발형 불탑.

중국- 중층탑, 목탑

신라- 2층 기단 위에 중층의 층탑이 신라 고유의 독특한 모양

한국의 탑은 산하 도처에 화강석. 다보탑은 상단과 하단의 기단 위 탑신 사이에 균열이 감. 옥개석이 3개, 3층석탑. 노반 안에 사리함, 사리함 안에 사리병. 드물게 탑신 있지만 노반에 복반 올림.

탑의 종류- 흙, 나무, 쇠, 돌, 벽돌 등으로 만듦.

인도는 흙, 벽돌로 만듦.

속리산 5층 목조탑, 예천5층 석탑, 대구 송림사5층 전탑. 남아있는 것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완벽.

목탑은 집과 유사하다. 전형적인 건축 구조를 보임. 단층기단, 내부 공간 활용. 석탑은 백제 땅의 양식. 미륵사지탑, 부여 정림사지탑 등

신라는 옥개석 추녀가 짧음. 분황사 모전석탑. 실상사 석탑 실측 모방.

옥개석과 옥개 받침, 주름 개수에 따라 3층, 5층. 원형은 목조 건축에서 본떠옴. 많을수록 오래됨. 초창기에는 5, 신라4, 고려 3 등으로. 귀마루 부분 옥개탑이 살짝 올라갈수록, 가파를수록 나이 적음. 전각 두께와 옥개석 두께가 초창기에는 아주 약함. 두꺼울수록 오래되지 않음. 낙수면, 경사면 초창기에는 경사 완만. 고려시대 경사 심함.

- 석탑의 체감률

옥개석의 비례치를 체감률이라고 한다. 옥개석 작아지는 비율이 급할수록 고려시대 탑. 밑 부분 층이 넓고 위로 급격하게 올라갈 때 나지막한 삼각형, 체감률이 심하다고 함. 탑 위에서 보면 정사각형, 정방형 평면. 기단->탑신->상륜부로 이루어짐.

- 신라 이형석탑(異形石塔)

특수형 석탑이다. 8C 1,300년 전. 불국사 다보탑, 화엄사 4사자석탑.

석가탑 보수공사 때 발판 놔 둠. 일반인에게 공개 때 꼭 올라가 보시라. 8세기 중엽 연기조사가 어머니를 위해 만듦. 일대를 ‘효대’라 부름. 네 마리의 사자가 머리로 탑을 받치고 있음. 숫사자도 있고 암사자도 있음. 가운데 어머니가 합장하고 있음. 앞에 연기조사가 차공양하려는 모습. 다보탑도 비슷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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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과 삼국시대를 거쳐 현대까지의 불교 건축물의 깊은 역사와 소중함에 고개가 숙여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장시간 많은 양의 강의에 감사드립니다._()_

 

 

 

 

댓글목록

묘광명님의 댓글

묘광명 작성일

도반님들과 가까운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돌아보는것도
의미 있을것 같습니다

예전에 그냥 지나치면서 봤던 사찰이
이제는 눈에 쏙 들어오지 않을까요

길상화보살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