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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축서사 철야참선법회 큰스님 법문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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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길상화 작성일13-04-23 00:29 조회3,012회 댓글2건

본문

 
45. 이보문 무가에게 답함
 
전번에 편지를 받아보니, 근성이 미련하여 힘써 닦아 지니되 끝내 깨달아 초월하는 자리를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옛날 쌍경雙經에서 부계신이 질문했던 것과 이 질문이 꼭 같습니다. 능히 미련함을 아는 사람은 결단코 미련하지 않으니, 다시 어디를 향하여 깨달아 초월할 곳을 구합니까? 사대부는 이 도를 배우되, 도리어 미련함을 빌려야 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미련함에 집착하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고 한다면, 미련의 마군에 잡힐 것입니다.
 
대개 평소에 식견이 많아서 증득하여 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앞에서 장애하기 때문에  자기의 바른 식견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장애도 또한 밖에서 온 것이 아니며, 또한 별다른 일이 아닙니다. 다만 능히 미련함을 아는 주인공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서암화상이 평소 방장실 안에서 스스로 부르기를 "주인공아!"하고, 스스로 대답하기를 "예."라고 했습니다. "깨어있어라."하고, 또 스스로 대답하기를 "예."라고 했으며, "남의 속임을 받지 말라."하고 또 스스로 대답하기를, "예, 예."라고 했습니다.
 
예부터 이와 같은 모범이 있어 왔으니, 어쨌든 이 속을 향하여 이것이 무엇인가를 잡아 보십시오. 또한 잡는 사람도 다른 사람이 아니고, 다만 이 미련함을 아는 사람일 뿐입니다. 능히 혼돈함을 아는 사람도 또한 별다른 사람이 아니라, 문득 이보문李寶文의 본래 그 자리입니다. 이것이 묘희가 그 병에 맞게 주는 약입니다. 부득이하여 대략 거사를 위하여 집에 돌아가 편안히 앉을 수 있는 길을 가르칠 뿐입니다.
 
만약 문득 결단코 죽은 언어를 가지고 참으로 본래자리라고 부른다면 이는 분별심을 자기로 여기는 것이라 더욱 교섭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사화상이 이르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만 종전의 분별심만 알기 때문이다. (분별심이) 무량겁의 긴 세월에 생사의 근본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본래인本來人이다."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미련함을 빌려 들어간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단지 이 미련함을 능히 아는 사람은 필경이 누군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 속을 향하여 볼지언정 깨달아 초월하기를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아 오고 보아 감에 홀연히 웃을 것입니다. 이 밖에 말할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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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심자재님의 댓글

심자재 작성일

부지런하신 보살님~
고맙습니다.

성지 순례 관계로
참석치 못했었는데....

잘 읽었습니다.
성불 하세요.()_

묘광명님의 댓글

묘광명 작성일

길상화보살님

못올라가신 분들을 위해서
글까지 올려주시고
너무 고마워요

성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