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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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화심 작성일06-12-28 14:07 조회3,277회 댓글3건본문
산사의 새벽, 사찰, 절에서 올리는 새벽예불의 차례, 도량석 의식의례와 종송 의식의례 그리고 큰종과 법고 목어 운판의 사물, 4물의 의미와 육도윤회하는 중생 제도의 서원 내용
새벽을 깨우는 목탁
장등의 불빛, 아스라이 새벽을 부르는데 홀연 목탁 소리 울린다.
오전 3시 정각, 산사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이렇게 새벽을 깨우는 목탁 소리가 울린다.
이름하여 도량석 (道場釋).
목탁이 울리면 무명을 쫓아내듯, 하나 둘 승방에 불이 켜진다.
강원과 선방 그리고 채공간에서도 맑은 기침 소리와 함께 조용한 하루를 움직이기 위한 시작이 있다.
큰법당 어간의 섬돌에서 시작한 새벽 목탁은 마당을 가로질러 종루 밑을 지나 사천왕문을 한차례 들락이고 다시 계단을 올라 명부전과 관음전을 끼고 돈다.
말없이 목탁만 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천수경」을 외운다. 소임자에 따라 석가모니불 또는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도 한다.
도봉산 망월사에 계시던 춘성 스님은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새벽 목탁 때마다 참선곡을 노래하여 납자들에게 깊은 환희심을 일으키게 하였던 일로 유명하다.
목탁은 도량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법당 어간의 섬돌에서 멎는다.
이때쯤이면 도량의 이곳저곳은 깨어날 대로 깨어나, 여느 때처럼 깨이고 깨어 있으되 조용하디 조용하게 하루가 시작된다.
새벽 목탁은 시작할 때 나직한 소리로부터 점차 큰 소리로, 끝날 때는 큰 소리로부터 나직나직하게 사그라드는 것처럼 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어나는 시간과 목탁 치는 법 그리고 도량을 돌아와 끝나는 시간 등에 매우 엄격한 법도가 있다. 때문에 이 새벽 목탁은 노전(盧殿:큰법당의 소임자로 부처님 시봉하는 이)의 중요한 소임거리다. 노전은 이 밖에도 예불과 대웅전 행사의 집전자로 사찰의 생활이 몸에 익고 신심이 깊으며 염불에 능한 노스님이 맡는 경우가 많다. 세월이 수행으로 영글고, 희로애락의 번뇌를 벗어난 노스님의 부드러운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는 수도 생활의 여울과도 같다.
산사의 하루는 이렇듯 목탁과 염불 소리로 시작된다.
새벽 목탁에 이어 이번에는 작은 종이 울린다. 종성(鐘聲)이라 부르는 이 일 역시 염불과 함께 한다.
번뇌를 끊고 지혜를 얻는 일은 출가 수행자의 본분. 그리고 얻어진 지혜는 모두 이웃의 삶을 위해 회향되어야 할 목표이다.
원하던 부처 되어 뭇 삶을 건진다(願成佛道衆生)는 게송으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그러한 생각과 소원의 결과이다. 번뇌, 지혜, 슬기, 지옥, 삼계, 부처, 중생은 우리들의 삶과 생애의 울타리 안에 심어진 모든 것들을 상징한다.
옛 스님들은 왜 꼭두새벽, 삶의 거창한 문제들을 종소리에 싣고 울리기 시작했을까. 일년 삼백 예순 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새벽 종소리, 똑같은 염불, 그러나 저 깊은 의미.
종소리는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을 위해 을린다. 지옥, 아귀, 축생, 인간, 하늘, 수라에 이르고 다시 곤충이나 새들에게까지 자비의 감로 법문을 들려주기 위해 울린다.
어디 그것뿐이랴. 풀이나 나무, 기와 조각이나 돌멩이에게 까지라도 하는 심경이 되어 종을 친다.
한 생각 오로지 거두어 잡아 거기 평상심으로 나툰 종소리, 그것은 한낱 쇳덩이로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앞서 너무 적막하고 처절한 수행자들의 자기 도야가 실려 있다.
그래서 옛 조사들은 그냥 종소리라 하지 않고 "깨끗하고 완전한 종"이라고 했을까. 종은 종이되 종이 아닌 소리라면 좀 어려운 소리가 되는 것일까 산사든 도심지든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딸랑거리며 경박하지는 않다.
세월에 녹아버린 듯, 풍상에 씻기운 듯, 기쁨과 슬픔의 강물 건너 저편을 향해 일깨우는 듯한 종소리는 그렇게 새벽을 연다. 종성은 염불과 함께 시작되어 염불과 함께 끝난다.
최초의 게송으로 지옥을 깨뜨리는 진언이 있고 다시 아미타불의 마흔여덟가지 원력과 장엄 염불에 이르러 종소리는 숨가쁘게 빨라져 내림과 오름의 여섯 망치로 마무리되고 한 호흡 걸러 다섯 번의 소리를 끝으로 종성은 끝난다.
큰 종(梵鐘)
종성이 끝나면 큰 종이 장엄하게 울린다.
서른세 번. 하늘의 도솔천은 서른세번째의 천상 세계, 그것을 상징하여 서른세번 울린다. 그러므로 범종이라 부르는 큰 종은 하늘의 소리다.
욕심에 물들지 않는 세계, 먹을 것 탐하지 않고, 색욕에 주리지 않고, 기쁨으로 가득한 세계.
도솔천은 그래서 아름답고 청정하고 기쁨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이상향이다. 거기 깊숙한 곳에 내원궁이 있다.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 부인도 일찍 죽어 거기로 갔다. 이승의 아들 부처님은 그 어머니와 어머니의 극락 친구들을 위해 그곳으로 올라가 설법을 했다.
부처님은 3일 동안 계셨다. 그러나 천상의 3일은 이곳에서 3개월, 땅의 인간들은 부처님을 뵙고 싶어 안달이 났다.
신통 제일이던 목련존자를 대표로 파견, 부처님을 모시고 내려오게 했다.
올라갔던 곳은 기원정사였지만 내려온 곳은 저 야무나의 지류로 흐르는 작은 시냇가 상카시아였다.
한역의 [잡아함]에도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 얘기이다. 그러나 천상은 삶의 끝이 있는 세계이다.
기쁨을 받을 만큼 받으면 그들의 생명은 끝나 지은 업대로 다시 윤회의 여행을 떠나야 한다 윤회는 물론 지옥에도 있다.
큰종은 기쁨에 취한 천상세계에 깨달음을 일깨우기 위한 경책의 자리라고나 할까. 뒤탈이 없는 세계, 번뇌가 되풀이되지 않는 세계는 오직 깨달음의 세계, 부처의 나라뿐이기에.
산사의 새벽 범종 소리만큼 마음의 거문고 줄을 적시듯 고르는 일이 또 있을까. 교하지 않으면서 엄숙하고, 둔하지 않으면서 깊은 지혜 울림은 어디서 오는가.
뜨락을 쓸되 먼지 일어나지 않고 연못 밑을 비추되 적시지 않는 달빛이어서 그런가. 정녕 청정하고 엄숙한 자비로 늘 깨어 있는 청정 수행자의 손길이어서 그런가 저 범종소리는.
이 범종은 하루에 세 번 울린다. 아침 예불, 재식(점심 마지) 저녁 예불 때이다. 그러나 예외의 경우가 있다.
산중에 불이 나거나 외적의 침입 등 긴급한 일로 대중의 운집이 필요할 때는 간격을 두지 않는 타종법을 사용한다. 중환자나 죽은 송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곧바로 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수행자가 입적했을 때 임종과 동시에 백여덟 번 울린다. 이때는 일정한 간격의 매우 느린 속도로 종을 친다. 절에서는 이것을 열반의 종소리라 부른다.
한 생의 마감을 뜻하는 장중한 뜻이 담겨 있어 이 열반의 종소리는 순식간에 산중을 섭섭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젖어들게 한다.
출가한 이는 너 나 없이 이 백여덟번의 열반 종소리를 들으며 육신의 삶을 떠난다. 황흔의 숲길에 떨어진 낙엽 위로 감겨 내리는 열반의 종소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깊게 반조하는 생사 해탈의 소리이기도 하다.
법고와 목어와 운판
법고는 일명 큰 북이라고도 불린다. 축생고를 받는 생명들에게 감로의 법을 들려주기 위해 울린다.
목어는 물에 사는 고기들을 위해 울린다. 운판은 날아다니는 새들을 위해 울린다.
범종과 법고와 목어와 운판은 사물(四物)이라 하여 규모가 큰 사원에서는 반드시 갖추고 있는 법물(法物)이기도 하다.
범종은 하루에 세 번 울리지만 법고와 목어와 운판은 아침과 저녁의 예불 때만 울린다
예배와 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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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자재님의 댓글
심자재 작성일잠도 설친김에 차근히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일이라도 걸치면 이렇게 새하얗게 밤을 지센답니다. 어제가 되었네요 큰스님 법문이.. 많은 분들이 동참하셨었는데 자주 들르시는 송천님도 연화심님도.. 못오셔서 아쉬웠겠습니다.(그 맘 접수했습니다.)
송천님의 댓글
송천 작성일정말 아쉽습니다. 다음주는 지각이지만 참석은 할 수 있네요.
송천님의 댓글
송천 작성일사진도 찍으셨다는데 이쁜 사진 많이 올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