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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습을 통한 진정한 파종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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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가람지기 작성일15-02-20 20:29 조회4,6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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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두 가지 언어란 "나를 얼마나 사랑해?" 라는 말과 "누가 대장이야?" 라는 말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결국 사랑과 권력으로 함축되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필요한 언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엄동설한, 난 아이러니 하게도 잠시 엉뚱한 발상을 집어들었다."불교를 얼마나 사랑해?" 라는 말과 "누가 최고의 불교대장이지?" 라는 예기치 못할 스스로에게의 질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불자의  바른 모습이란 언제나 변하지 않을 불교적 신념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단견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게 원칙이다. 그러니 1차적 동기도, 후차적 결과도 불교로 귀결되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그것은 어느날 이유없이 생겼다. 사라지는 일회성 믿음이 아닌 것이다. 어떤 외부적 반격에도 끄떡하지 않을 심지와 골수에 사무치도록 불성의 종자가 낱낱이 스며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승가의 볼썽 사나운 파행을 마치 조회수 올리기에 급급한 사람처럼 올려놓고 제 살 깍아먹는 일을 하는 이들을 보게 되면 대체 어떤 생각으로 불교 안에 머물고 있는지를 먼저 묻고 싶어진다. 

그렇다. 삼학에서 이탈한 행위,혹은 율법을 거스르는 행동을 보고도 관대하기를 바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잘못을 저지런 이에게는 일벌백계를 내림이 마땅한 법이다.

소위 "노란신문" 이란 표현을 써가며 무용담을 들려주곤 하던 장년 이상의 어른 세대들에게도 오래전의 일화들은 좋건 싫건 기억이고 추억이다. 한시절 가열차게 공부에 매달리다 지금은 비록 "종이 호랑이" 가 되어 산을 지키고 있다 할지라도 기운 성성하게 살아냈던 그 시절이 있어 그 힘으로 후학을 맞이하고 불자들을 제접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더러는 농을 던져도 진리를 받아 챙길줄 아는 혜안의 불자이어야 하고 또 더러는 웃음으로 걷어 넘기는 말에도 거량이 녹아 있음을 알아 챌 줄 아는 명색의 불자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걸림이 없고 경계를 뛰어넘기까지는 어떤 신앙심이 고취되어야 하며, 어떤 모습의 신행이 병행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그야말로 올올이 불자이어야 한다. 훈습이 잘 된 불자 한 사람이 열 사람의 또 다른 불자를 양산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다 보면 새싹이 되기 이전의 우수한 종자 파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얘기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바로 생각과 사고 품행에서 선별된 특별한 종자가 안착을 하게되고 곧이어 태동을 하게 되는 순서이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고 낳는 과정이라면 응당 출산이라고 말 할 일이지만 글렇다고 형태를 갖춘 사람의 모습에서 불종자를 불어넣고 그 불종자를 발아시키는 일이 또 다르다고는 할 수 없는 셈이다.

나는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에도 원고 쓰는 일과 책을 만드는 일은 쉬지 않았다. 매달 만들어 지는 월간 간행물들에서 손을 뗄 처지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나의 글을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컴퓨터를 통한 글쓰기와 육필로의 원고를 쉴새 없이 쓰고 또 썼다. 물론 글의 행간 마다에는 불법이 주가 되었고 불교 주변의 이야기가 스며있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가 태어났고 세 살이 된 아이는 불교어린이집을 거쳐 불교유치원을 다녔다. 요즘처럼 확산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부처님 도량에서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했다. 그런 아이가 스스로 글을 쓰고 자유자재로 필치를 구사하는 초등학생이 되는데 아이는 틈만 나면 글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때 한 번도 글을 쓰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엄마처럼의 직업을 갖기를 권유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수시로 글을 쓰고 무시로 부처님 얘기를 한다. 그리고는 어쩌다 엄마의 어투가 조금이라도 퉁명스럽게 들리는 날이면 즉각 반응을 보인다. "보살님 고운말을 쓰세요~스님들께 가도 그렇게 하세요!" 라며 일침을 가한다. 할말이 쑥 들어가는 광경이다. 그 말을 대략 두 번쯤 들은 기억이 있는데 아이에게 듣는 경책치고는 가장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는 최고 수위의 죽비인 셈이다. 

아이는 이제 4학년이 되었다. 그날도 학교 숙제를 다 마친 아이는 여느날과 같이 습작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는 어른들과 대화에 무리가 없는 아이인지라 기억을 더듬어야 할 이야기를 건넸다.

"그 안경 쓰신 스님 기억나지?! 그 스님께서 인하 요즘도 글 열심히 쓰느냐고 물으셨어." 라고.

"어구, 엄마가 아는 안경 쓰신 스님이 한 두 분이셔?!" 하며 까르르 웃는다.

나 또한 덩달아 웃어버린 그날,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 준 안내자는 불교였구나.' 라는 생각으로 감사함이 올올이 이는 것을 느꼈다.

관념적이지 말 것, 행동으로 보여 줄것, 바래고 퇴색되지 않을 것,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스스로에게 주문하는 불교 안의 진정한 '대장' 으로 살아가기 위한 약속임을 밝히는 바이다.


                                                                          맑은소리 맑은나라     대표 :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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