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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아름다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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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4-28 15:43 조회2,8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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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아름다운 마무리

이미현_출판인

 

고맙고 감사합니다

지난 겨울, 한국 카톨릭 교회의 큰 별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다. 평생 구도의 길을 걸어온 수행자들이 그러하듯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은 우리들에게 삶과 죽음에 관해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준다.

카톨릭에서 선종(善終)은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끝마친다’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의미다. 세례를 받은 이가 큰 죄 없이 죽음에 이른 것을 말하는데,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인 칠불통게(七佛通偈)에서 ‘제악막작 중선봉행’하라는 말씀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큰 깨달음을 얻고 열반의 경지’로 나아가신 부처님께서는 단지 ‘죄없이’ 살아낸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셨기에 ‘선서(善逝)’로 불리우신다.

한동안 추기경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씀이 회자되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사실 특별한 말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이 한마디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가슴에 새겨진 것은 추기경의 말에 인격과 실천이 실렸기 때문이다. 그 분의 정치적 행보는 논외로 하더라도 추기경은 종교인으로서 평생 낮은 곳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힘쓰셨다. 세상에 마지막 남긴 선물로 연말 카드와 열쇠고리를 만드느라 그나마 남은 당신 통장의 잔고는 마이너스가 되었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을 필요로 하는가’ 에서 주인공은 해가 저물도록 땅을 돌다가 결국 한 평의 땅도 갖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가진 만큼 나누는 것이 더 많이 갖는 방법임을 그가 알았더라면 무한욕망에 급급하느라 귀한 생명을 잃지는 않았으리라. 욕망이 유달리 강하고 남에게 인색한 사람일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병이나 사고로 죽음의 문턱에 갔다 온 사람들이 그간의 집착을 버리고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추기경은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거울이므로 늘 미소 지어라.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 년이 걸렸다. 화내는 사람은 자신을 죽이고 남도 죽인다.” 라는 평소의 말씀대로 80평생을 살다가셨다. 그리고 그분의 마지막 말씀 “고맙고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 행복했습니다

 

‘현대의 소로우’ ‘서양의 장자’로 불리우며 평생을 수행자처럼 살다간 스코트 니어링의 삶은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고자 하는 후세의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스콧과 그의 동반자 헬렌 니어링의 삶은 두 사람이 말년에 쓴 <조화로운 삶>, 스코트가 세상을 떠난 8년 뒤 헬렌이 87세 되던 해인 1991년에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재기발랄하고 영성이 강했던 헬렌 니어링은 스물 여섯 살에 스물 한 살 위인 스코트를 만났다. 스콧은 반문명적인 사회현상에 반발하여 대학교수 자리를 떨치고 헬렌과 함께 시골 버몬트의 숲으로 들어가 돌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일생을 보냈다.

두 사람은 이후 반 세기에 걸쳐 서로 존경하는 동반자로 살았는데, 평생 그들이 실천한 삶의 철학은 ‘적게 갖되 충만하게 살고 욕구를 줄이는 데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 것’이었다. 단순하고 검약한 생활, 독서와 집필과 여행…… 이것이 두 사람의 삶이었다.

평소 ‘죽음의 방식은 그가 살아온 삶의 반영’이라고 말했던 스콧은 더 이상 자기 몫의 짐을 운반할 수 없고 자신을 돌볼 수 없을 때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스콧은 자신의 죽음의 과정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를 소상하게 밝혀두었다.

‘나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마지막을 맞을 것이며, 어떤 의료 방법에도 의존하지 않겠다. 평생을 충만하게 열심히 살아왔으므로 기쁘게 간다. 죽음은 옮겨감 내지 새로 깨어남이므로 다른 삶의 국면처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다가 백 살이 되던 해 죽기 한 달 전 스콧은 음식섭취를 중단함으로써 서서히, 평화롭게 육신의 옷을 벗고자 했다. 그는 헬렌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곡기를 끊고 명증한 정신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기쁘게 살았으니 기쁘게 죽으리라. 나는 내 의지로 나를 떠난다.”는 바람대로 스콧은 헬렌이 부르는 인디언 노래 소리를 들으며 마치 마른 잎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숨을 멈추었다. 평생 노동과 명상으로 깃털처럼 가벼웠던 그의 몸은 한 줌 가루가 되어 바다가 보이는 나무 아래 뿌려졌다.

스콧과 헬렌은 생애 마지막 날까지 자연 속에서 숨쉬며 이웃들과 함께 손수 먹을 것을 기르고 나누며 살았다. 스콧이 헬렌으로 인하여, 헬렌 역시 스콧으로 인하여 ‘더욱 훌륭한 삶’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전하면서 누구나 현재를 보다 아름다운 삶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봄날은 간다

 

경전에 “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지만 저녁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저녁에 보이던 사람이 다음날 아침에 보이지 않는다. 열매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도자기가 수명이 다하면 깨지듯 사람도 몸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오늘 이 시간만이 살아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내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꽃빛 고운 4월, 발 끝에 밟힐까 살피게 되는 길가의 노란 민들레. 작은 홀씨 하나가 바람을 타고 날라와 겨우내 언 땅 아래서 숨죽이고 있다가 마침내 꽃 피우는 이 녀석이야말로 언제나 기특하다. 이 작은 생명 속에 깃들인 소멸의 이중주를 가만히 듣는다.

얼마전 ‘워낭소리’를 보았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 팔순 할아버지와 마흔 살의 소. 30년을 하루같이 해가 뜨면 논에 가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같이 한 소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자.”고.

봄날은 가는데…… 알뜰한 맹세는 챙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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