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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과 나누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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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4-28 15:24 조회2,8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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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과 나누는 삶

정일태_대구

2월 어느 날 저녁 축서사 도감스님인 혜준스님의 전화를 받았다. 예정된 축서사 방생법회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축서사와 인연을 맺은 지는 4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큰스님을 친견하고 참선법회에 참가해서 법문을 듣는 것, 그리고 부처님오신날 봉축법회에 참여한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나로서는 뜻밖의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어머님과 안사람까지도 함께 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뒤 나는 일종의 전율을 느꼈다. 존재하는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소극적인 생명존중이 아니라 미물의 생명일지라도 똑같이 중하게 여기고, 그들과 삶을 나눠 갖는 적극적인 생명존중 활동인 방생에 참여하게 됐다는 생각에서 일종의 흥분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무여 큰스님을 뵈면서 철학적 연구 대상에 머물렀던 불교와 부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마음의 스승으로 받아들였지만 윤회 사상까지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자신의 수행공덕에 따라 다음 생에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고, 더 나쁜 세상에서 인간이 아닌 미물로 환생할 수도 있다는 사상을 수용하기에는 지금까지 내가 받은 교육이 너무나 실증적이고 논리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참된 수행이 나를 부처로 이끈다고 믿는다면, 내가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경우 인간 이하의 존재로 태어날 수 있다는 전제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회를 믿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윤회를 받아 들인다면 현재에 삶을 영위하는 모든 존재는 수없이 펼쳐졌던 전생의 어느 시기에 우리와 인연을 맺었던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의 생명을 존중해 그들에게 다시 부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최고의 보시이자 보살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혜준스님의 전화를 받고 ‘수중 생태계 파괴와 오염을 일으키고 무의미하다고 여겨왔던 방생’에 선뜻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윤회에 대한 이 같은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밤의 흥분을 간직한 채 다음날 아침 곧바로 KBS내부 인터넷망에 축서사 방생법회를 알리고 불교회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때마침 이날 축서사 대구신도회 회원들도 방생 차편을 물어와 우리 회원들이 가는 차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드디어 방생하는 날 이른 새벽, 나는 안사람과 어머님을 태우고 버스 출발지인 KBS대구총국으로 갔다. 이날따라 겨울 날씨 뺨치는 추위가 엄습했지만 우리 버스는 새벽 이른 시간 20여명의 참가자를 싣고 방생장소인 충주호 월악 나루터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참가자가 적어 약간의 실망감이 생겼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부처님이 득도한 후 처음으로 법을 전할 때 참가한 제자는 5명에 지나지 않았다. 부처님은 이른 바 이 초전법륜을 시작으로 법을 설파해 지금은 세계 최대의 종교로 키우지 않았던가? 비록 오늘 방생 참가자가 기대보다 적지만 이들만이라도 ‘방생이 생명 나눔이자 생명 존중으로, 최고의 보시요, 보살행이라는 것’을 깨닫고 일상생활에서 보시 바라밀을 실천한다면 참가자의 많고 적음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 주듯 방생 참가자 대부분은 불심이 강한 보살과 처사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3시간여를 달린 끝에 방생장소인 충주호 월악 나루터에 도착했다. 방생법회는 이미 시작이 돼 한창 진행 중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큰스님을 비롯한 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우리가 여러 생애를 살아오면서 지은 살생중죄를 참회하고 살생으로 지은 악업을 소멸해 줄 것을 부처님께 기원하고 있었다.

법회가 끝난 뒤 몇몇 처사들과 함께 미꾸라지를 충주호에 풀어 주었다. 비닐봉지에서 풀려나온 미꾸라지는 처음에는 멈칫거리더니 방생에 참여한 우리들의 염원을 알기라도 하듯 이내 충주호의 푸른 물속으로 힘차게 헤엄쳐 갔다. 나는 오늘 풀어 준 미꾸라지들이 열심히 수행 공덕을 쌓아 다음 생에는 더 좋은 동물로 환생하고, 또 억겁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인간을 거쳐 윤회의 고리를 끊게 되기를 기원했다.

방생이 끝난 뒤 우리버스는 영주와 안동에서 온 버스를 따라 성지순례에 나섰다. 먼저 간 곳은 신계사, 풍광 좋은 곳에 우뚝 솟은 약사여래불이 인자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았다. 중생의 병고를 치유해 주시는 서원력을 갖고 계시는 부처님이 나에게 묻고 있는 듯하여 주저 없이 ‘나의 병고는 윤회요, 나의 아픔은 윤회의 병고를 치유하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부처님은 나에게 ‘그대의 병고를 고치려면 방생을 열심히 하고, 방생이 어려울 경우 방생에 버금가는 보시를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여겨졌다.

우리는 다시 순례에 나서 속리산 법주사와 상주 남장사를 방문했다. 나는 두 곳의 부처님께도 오늘 방생법회에 참가한 모든 축서사 신도들이 일상생활에서도 방생을 충실히 실행해 윤회의 고리를 끊고 열반의 세계로 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기원했다. 우리는 상주 남장사에서 큰스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곧장 대구로 향했다.

새벽에 출발해 방생과 성지순례로 이어진 여정이 다소 힘들었지만 모든 참가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생명 나눔과 생명 존중을 실천했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한 모습이었다.

올해 52살, 무여 큰스님께 법명을 받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 지는 4년, 적지 않은 나이에 접어든 이즈음에서야 방생을 경험하고 그 의미를 새겨본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부터라도 방생에 적극 참여하고 보시 활동을 앞장서 실천한다면 부처님의 가피가 있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초저녁에 우리 버스는 출발지인 KBS대구총국에 도착했다.

추위는 더욱 매서워졌지만 방생 참가자에게 인사를 하고 어머님과 안사람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몸은 온기로 가득했고 나의 마음은 너무나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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