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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구검 刻舟求劍 뛰어넘는 새해 주인공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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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2-10 17:12 조회3,0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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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구검刻舟求劍 뛰어넘는 새해 주인공 되기

손정현_불교TV 부산지사장

 

2000년 당시 새 밀레니엄이 열린다는 소리에 사람들은 나름대로 경직됐다. 누군, 세상의 종말이 2000년과 함께 시작된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희망의 새천년이 열린다며 가슴 부풀어 했다.

이제 9년이 지났다. 그러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고통은 있고 여전히 극복하고자 하는 주체들의 내뿜는 입김들이 있다. 주관과 객관이 뒤엉켜 누구의 헤게모니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그 질서가 못마땅하다며 혁명하고자 하는 인류사의 과정이 지금도 작게 또는 크게 일어나고 있다.

기축년이 밝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할 것인가?

기껏 살아온 게 100년도 안되는데, 지나온 역사야 살아가는데 적용할 여러 좌표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간의 좌표와 경험들을 가지고 이 한 해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며, 훌륭히 한 해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문제다.

난감할 뿐이다,

이 세상의 좌표가 너무 많다. 그런데 그 좌표를 좌표이게 하는 기준이 없다. 가치도 다르고 질서도 시시각각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변화 속도는 가히 살인적이다. 변화를 인식하는 순간 다시 돌연변이처럼 움직인다.

황당할 것이다. 스스로가 주인공이 아니라 세상에 늘 끌려다니는 희한한 몰골이 되었다.

이에 어떤 선사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흐르는 배위에서 칼을 떨어뜨렸는데 그 칼을 찾기 위해 떨어뜨린 배의 자리에다 금을 긋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마치 세상을 향한 우리의 어리석은 대응에 금을 긋는 일침이라 할만하다.

어떻게 하면 이 변화무쌍하고 정글같은 세상 속에서 주인공으로 살며, ‘각주구검’ 않고 파안대소하며 당당히 맞설 것인가?

수처작주의 가르침처럼 어찌해야 가는 곳마다 주인으로 살아낼 것인가?

이 질문에 많은 인연들이 많은 해답들을 던질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많은 구체적 실천들을 제시할 것이다.

‘한 생각 돌려라’ ‘마음먹기 나름이다’ ‘욕심을 버려라’ ‘내려 놓아라’ ‘바라만 봐라’ ‘주인공에게 맡겨라’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이르고 싶다. 이 모든 해답과 실천들은 여전히 각주구검이며 실천하지 못한 결과처럼 허망하다. 이 훌륭한 가르침이 가치를 가지려면 스스로가 호수의 빈 배처럼 자유롭거나, 연줄을 끊고 날아오르는 연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 생각 돌린 것’은 결과다. ‘주인공에게 맡긴 것’은 결과다. 한 생각 돌린 결과가 다른 결과를 낳으면 그 또한 과정이 되겠지만 한 생각 돌린다는 그 처음의 결과를 내가 처녀생식하듯 애초에 얻긴 힘들다.

어쩌면 그 말들로 인해 반푼수 집안 망치는 수가 생긴다.

기축년 새해, 우리는 반푼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과연 무얼 제일 먼저 해야 할까?

무지막지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단박에 말할 수 있다. ‘스승을 만나는 것’이다. 스승은 도반이며, 반야용선이며, 인생의 보험이며, 무한히 증가하는 펀드다.

스승 없이 공부하는 것은 에고(ego)이다. 세상 속에서 나만의 집을 짓는 허상을 부술 사람은 스승밖에 없다. 스승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등대 없이 표류하는 인생이며 지불해야 할 수고와 상처가 너무 크다.

결단코 이 새해에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또는 그러한 정진의 과정을 흔쾌히 만들지 못한다면 올해도 실패한 한 해가 될 것이며 스승을 만나는 복덕이 열린다면 그대는 하늘이 무너져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쯤에서 궁금할 것이다.

스승? 스승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어디서 어떻게 스승을 찾는단 말이지? 스승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스승이 아니라 판단되면 어쩌지? 하는 등등의 의문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스승 못 만날까 걱정하지 마라. 다만 네가 정진하지 않을까만 걱정하라. 네가 퇴전치 않고 정진한다면 스승은 어느새 옆에 서서 웃고 있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말이다. 나 스스로도 스승 못 만날까 하는 두려움에 떨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 말이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주인공으로 사는 것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행히 모든 존재는 깨달음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으니 너무 두려워 않아도 되겠다. 다만 스승을 만나 짧은 인생에서 비용과 수고로움을 덜어야 할 것이다.

이제 기축년 새해, 스승을 만나 사찰의 심우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존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희유한 인연이 일어나길 기원하며 주인공에게 신발을 찾아 신겨주는 오롯한 한 해를 열어갔으면 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새해 인사,

주인공, 결과에 순응하는가? 그러면 몇 번이고 뒤집어라.

주인공, 그 주인공을 끄는 주인공은 누구인가?

주인공, 그대 또한 허상 아닌가?

주인공, 주인과 주인 아님이 그대에게 있는가?

일출은 서산에서 뜨고 삭풍은 가슴에 머무르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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