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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걱하나 꼬나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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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9-02-10 17:09 조회2,8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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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걱 하나 꼬나쥐고

김종환_자유기고가

 

보도에 의하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새해 해맞이 여행상품 예약률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일출을 바라보며 새로운 각오와 분발을 다짐하려는 소박한 꿈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전문가들은 그 소박한 꿈들이 새해에는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한다. 뉴욕 월가에서 흥청망청 벌어진 돈 잔치, 그리고 그 탐욕스런 돈 잔치가 느닷없이 초래한 경제위기의 그늘이 너무 짙기 때문이란다.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불안과 한숨과 우울이 피어 떠돌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던 선남자선여인들은 궁핍의 덤터기를 고스란히 뒤집어 쓴 채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각종 매체들에 소개되는 별의별 고달픈 사연들은 이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변화와 무관하고 초연하게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종잡을 수 없이 변하는 세상, 우리도 그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지난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 후보의 연단 주변엔 온통 ‘CHANGE’라고 쓰인 표지판이 넘실거렸고, 일본에서는 2008년 ‘올해의 한자’로 ‘變’자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바야흐로 변화란 놈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심상찮은 변화의 물결을 우리는 대관절 어떻게 대처해야만 하는가?

변화의 철학 주역(周易, The I Ching or Book of Changes)은 우리들에게 ‘천지자연과 인간의 일체화’라는 처방을 내려준다. 즉 우리가 천지자연의 변화 법칙을 본받아 처신하면 피흉취길(避凶取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지자연의 현상을 상징하는 부호와 그에 따른 상징언어로 주역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첫째, 현재의 상황은, 좋든 나쁘든, 반드시 변하게 되어 있다. 조그마한 변화의 기미도 놓치지 말고 읽어내고, 다가올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라.

둘째, 치우침이 없어야 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中正).

셋째, 서로 다른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과의 상호협조를 중시하라(應比).

넷째, 모든 일의 초창기에는 근신하는 자세로 임하라. 이를테면, 잠룡물용(潛龍勿用) 즉 물속에 잠긴 용과 같은 처지이니, 결코 가볍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한 단계가 끝나는 시점엔 대개 조그마한 지위를 얻게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칫 게을러지거나 거들먹거리기 쉽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노력하고 또 저녁에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君子終日乾乾 夕若).

여섯째, 과도한 충족 또는 극단적 행위는 피하라. 이를테면, 항룡유회(亢龍有悔)니 차면 머지않아 기우는 법이다.

일곱째, 높은 산이 스스로 낮추어서 대지 아래에 처하는 상을 본받아서, 모든 일에 절제와 겸손으로 임하라. 넘치는 건 덜어내고 부족한 건 채워주는 것, 그것은 천지자연의 이치다(地中有山 謙 君子以 多益寡 稱物平施).

암울한 시절에 변화의 이야기는 희망의 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기미를 읽고 천도(天道)에 맞게 적절히 행동한다면 반드시 좌절과 절망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혁하여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신론(起信論)은 말한다. ‘삼계는 거짓이니,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마음을 여의면 여섯 감각기관의 대상도 사라진다.’ 만약 우리가 눈앞에 펼쳐지는 경계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그저 여섯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현상계의 천변만화를 쫓아가면서 울고 웃고 또는 시비를 논하고 변화와 개혁을 운운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생멸의 일이라, 여우귀신에 홀려 허깨비 놀음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불생불멸의 본래면목은 마음마저 여의어야 볼 수 있는 것, 하물며 눈앞의 천변만화이겠는가.

고덕(古德)은 말한다. ‘범부는 눈앞의 경계를 붙잡고 수행자는 마음을 붙잡지만, 경계를 붙잡는 것은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를 물인 줄 알고 홀려 쫓아가는 것과 같고 마음을 붙잡는 것은 원숭이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경계와 마음은 비록 다르지만 병통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경계와 마음을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참된 법이다.’

자비롭게도 일찍이 무착문희(無著文喜)선사는 경계든 마음이든 일체의 번뇌를 여의게 하는 주걱 하나를 남겼다. 문수보살을 친견하고도 알아보지 못한 채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던 무착, 동자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동자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화현한 문수도 절도 동자도 모두 사라져버리고 다만 텅 빈 골짜기만 남았다. 일설에는 그때 무착은 그곳을 향하여 무수히 절을 하였다고도 한다.

글쎄, 그런데 그게 어디 절을 할 일이던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달마선사는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만약 부처와 보살들의 형상이 홀연히 앞에 나타나더라도 부디 절하지 말라. 우리들의 참마음은 비고 고요하여 본래 이런 형상이 없으니, 형상을 취하면 곧 마구니에 포섭되어 모두 삿된 도에 떨어지게 된다. 만약 허깨비가 마음에서 일어난 줄 알면 절할 필요가 없으니, 절하는 이는 알지 못하고, 아는 이는 절하지 않는다.’

그 뒤 착실히 공부한 무착은 마침내 본래면목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팥죽을 쑤다가, 팥죽 위로 솟아오른 문수와 재회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무착은 죽 젓던 주걱으로 주저 없이 문수를 후려치면서 말했다. ‘문수는 문수고 무착은 무착이다.’ 아, 이 얼마나 기개 있는 주걱질인가.

그때 무착이 휘둘렀던 주걱은 달마선림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어, 뜻있는 이들은 누구나 집어다 쓸 수 있는 화수분이 되었다. 급격한 변화, 불안, 한숨, 우울…. 온갖 종류의 여우귀신이 저자거리를 횡행하는 요즈음, 바다로 산으로 해맞이를 떠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의의가 없지는 않겠지만, 무착(無着)의 주걱 하나 꼬나쥐고 우리의 내면으로 해맞이를 떠나보자. 우리의 내면엔 원단 동녘에 힘차게 떠오르는 저 태양보다도 더 찬란한 진여혜일(眞如慧日)의 무한광명이 있다질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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