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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발밑이나 잘 살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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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축서사 작성일08-08-09 17:44 조회2,6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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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발밑이나 잘 살피게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의 참된 자아를 상실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잠시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서 살아가도록 주의시키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선어(禪語)가 있다.

즉 우리들이 자기 주위의 경계나 어떤 분위기, 혹은 남의 일에 끄달려 괜히 신경 쓰고 걱정하지 말고, 먼저 자네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죽을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자네 눈앞이나 코앞의 일이나 잘 살피고, 자네 일이나 정신 차려 잘 하게 라는 의미가 담긴 경책의 말이다. 이는 선불교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강조하는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비판의 자각적인 교훈이다.

이처럼 선불교는 고상하고 고차원적이며 어려운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 종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멋지고 진실 되고 보람되게 살아갈 수 있는 생활의 지혜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자네 정신 차리게. 주위에 일어나는 잡다한 인연과 현상 등 쓸데없는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자네 자신이 지금 여기서 이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네 할 일이나 정신 차려 잘 하게나.”

말은 쉽지만 실행은 사실 어렵다. 우리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금방 자기 자신이 주위의 어떤 일이나 분위기에 사로잡혀 자기의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일상생활 속에 자기가 매몰되어 버리고 만다. 이처럼 자기의 자아를 상실하고 정신없이 멍청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아. 뭘 하고 있는가? 위험해. 정신 차려!”라고 주의시켜 주는 말이 바로 “자네 발밑이나 잘 살피게.(照顧脚下)”이다.

즉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하거나 주위의 경계나 생활 그 자체 속에 매몰되도록 하지 말고, 순간순간 자각하고 반성하면서 살아야 한다.

사실 우리들은 남의 허물이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비판하는 일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중세 일본의 무주 스님이 쓴 ‘사석집’이라는 책에 말을 하지 않는 묵언(默言)을 결심한 수행승들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어느 산사에 네 사람의 수행승들이 도량을 장엄하고 모든 잡다한 인연을 끊고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맑히며 7일간 입을 다물고 일체 말을 하지 않는 무언(無言)의 수행에 들어갔다.

어느 날 한밤중에 등불의 기름이 떨어져 등불이 꺼지자 주위가 갑자기 어둡게 되었다. 그때 등불 옆에 앉아 참선하고 있던 스님이 “어이, 시자야. 등불이 꺼졌으니 기름 좀 가져오너라.”라고 고함쳤다. 그러자 옆에 앉은 스님이 “여보게. 자네도 역시 입을 열고 있구만.” 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노스님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그래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군.”이라고 하면서 자만에 찬 표정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시사하고 있다. 즉 남의 허물은 잘 보여도 실제 자기가 어떤 상황과 위험한 처지에 처해 있는지를 보지 못하는 인간의 실태를 반성케 하고 있으며, 가장 비근하면서도 보기 어려운 인간 사고의 절대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더군다나 묵언의 수행을 하기로 결심한 수행승들이 참선수도를 하고 있으면서 등불이 꺼지면서 주위의 생활이 갑자기 바뀌니까 순식간에 자기의 평상심을 잃어버리고 주위의 분위기와 경계에 끄달리고 있다. 또한 옆에 앉아 있는 스님들 역시 지금 자기의 하는 행동은 보지 못하고 옆 사람의 허물만 눈에 띄고 있기 때문에 남의 잘못된 과오만 핀잔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눈은 주위의 모든 사물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밖을 향하여 뚫려 있다. 그래서 우리들 인간은 밖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잘 보고 관찰할 수가 있으나 자기 자신의 내부를 살펴볼 수가 없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들은 모두 각자가 자기의 얼굴을 직접 볼 수가 없다. 이 점은 눈을 가진 모든 중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은 평생 자기 얼굴을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하고 눈앞에 스치는 주위의 온갖 사물이나 남의 얼굴만 쳐다보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거울을 통해서 우리들은 매일 몇 차례씩 자기의 얼굴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거울에 나타난 자기의 얼굴은 자기 얼굴이 비추어진 영상의 모습이며 그림자 같은 것이지, 진짜 자기 얼굴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인생과 삶도 이와 비슷한 모습인 가짜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는 자기가 진짜의 자기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선불교에서는 거울에 비추어진 비슷한 모양의 자기에서 벗어나 참된 자기의 모습을 바로 찾아내어 진짜 자기의 얼굴을 잃어버리지 않고 주인이 된 자기가 진실 된 자기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 각자가 마음의 눈으로, 지혜의 눈으로 자기의 참된 본래의 얼굴인 마음을 찾도록 하는 좌선이다. 좌선은 각자의 본래심을 되찾는 가장 좋은 수행이며 선의 생활이다.

 

-성본스님의 ‘선불교의 이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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