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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사찰과 자연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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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ㅣ축서사를 사랑하는 불자ㅣ 작성일06-01-21 16:38 조회2,8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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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해인사에 살던
어떤 스님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 꼭 이리저리 다니면서 말라 죽은
나무만 골라서 한 짐씩 하고 왔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씀은
자연의 질서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이었고, 나 자신도 역시
몇 년전에 축서사에서 기도하면서 산에 나무를 하러가면 응당 그와 같이
했었기 때문에 불자로서의 철저한 자세를 다시 한번 다지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비록 무정물(無情物)이라서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다손
쳐도, 무성히 자라고 싶은 그들의 본능과 그들 나름의 생태적인 질서에
오만한 인간이 무단히 침범하는 듯해서 차마 살아있는 나무를 벨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에 인간 중심의
오만한 사고와 경제적인 가치 기준으로 산과 산림을 판단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이와 같은 임야를 소유했더라면 그것은 아마도 너무도 처참하게
베어져 나갔을 것이고 개발이라는 허명 아래 이미 황폐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리어 진작에 그와 같은 자연의 섭리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으로 이 산을 지켜온 숲속의 수행자들이, 만약 도량을 정리하고
가람다운 균형과 면모를 이루기 위해 부득이 도량의 한 쪽 부분의 일부
나무를 베어내고 정리를 하는 것을 이유로 자연을 훼손한다고 한다면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잘못된 시각일 것이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전통문화도 너무도 소중한 것이다. 말없는 석탑과 석등, 심지어는
굴뚝이나 기와 한 장까지도 가까이 살면 살 수록 더욱 그 깊이를 더해
가는 아름다움과 인간 정신의 고귀한 승화에 경이로움까지 느낄 때가
있다. 이와 같은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고 그것을 깊이 사랑하게 되는
삶의 변화에 감사를 느끼기도 한다. 이 도량 이 가람에 살아온 우리의
선조들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아름다움을 창출해냈고, 그 아름다움을
길러내고 계승하고 일깨워 왔던 것이다.


전에 어디에선가 조선시대
서원과 불교 사찰에 답사를 가서 느낀 전혀 색다른 분위기를 비교해
놓은 글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 의하면 서원에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박제화된 유물전시관 내지는 을씨년스러운 폐가와 같은 귀기가
느껴지고, 사찰에는 사람이 살고 그 안에서 수행과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때문에 왠지 모르는 훈기와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 같은 시각에
공감하였다. 찬란한 불교문화는 거룩하고 고귀한 불교정신에서 움튼
것이다. 지금도 멸실되지 않고 승가내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불교적인
관습과 관점, 견해와 사상은 불교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재 보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전통문화의 진정한 계승은 단순히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보호는 철저히 하되 시대를 반영하고,
표현하고, 혹은 그것을 초월하는 미를 창조해 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갖추어야 하는 균형잡힌 시각이 아닐런지.


애초에 가람의 배치는
이러이러 하다는 문화재적인 교과서는 없었고 지금도 없다. 자연의 섭리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 인간 내면의 번뇌와 고통을 잠재운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들에 의해서 절터가 점지되고, 단을 쌓고 금당과 탑이
안치되어진 것이었는데, 애초에 법당은 여기에 있어야 하고, 탑은 그
앞에 있어야 되고, 요사는 양쪽 옆에 있어야 된다고 계율이나 법에 못박아진
것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요즘 시대에 아쉬운 것은 그와 같은 지혜로운
완성의 안목을 가진 선지식의 부재와 부족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축서사의 불사를 큰스님께서 직접 독려하시고 밤늦게까지 고심하시는
모습에서 더욱 고마움을 느꼈다.


몇 년 전에 축서사
보광전에서 얼마간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마침 삼복중이고 오래도록
장마가 져서 후덥지근 하여 문을 열어놓고 있을 때가 가끔 있었는데,
문을 열어놓으면 이,삼백 년 된 고색창연한 보광전 천정벽화가 색이
바래고 못쓰게 된다고 큰스님께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숨이 차고
옷이 땀에 젖어도 문을 닫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예전에 암자 정도였던
사세에 비해 규모가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축서사의 불사는 요즘 소위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들의 탐욕스러운 발톱에 무방비적으로 파헤쳐지는
여러 산과 자연처럼 그렇게 비상식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제대로 나무가 자라지도 못할 만큼 척박하고 경사가 져서 흉스러울 만큼
미관을 해치는 곳에 흙을 부어서 터를 돋우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땅을 다지고, 터를
만들고, 축대를 쌓고, 집을 짓고, 벽을 바르고, 지붕을 잇는 일에 이르기까지
마치 장려한 하나의 예술품을 만들 듯이 천 년의 세월을 내다 보고 정성을
쏟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하다.


삼 년 전, 이 산간
벽지의 들판에서 거칠어진 손으로 힘들게 일하던 남녀노소 불자들이
모여서 십시일반의 정성어린 시주와 여러가지 장애와 갖은 난관을 이겨내며
드디어 대웅전에 상량을 하게 되었을 때, 또 다시 한 해 뒤 드디어 낙성과
봉불식을 하였을 때, 그 감격과 환희에 북받쳐서 눈물을 흘리던 그 분들의
그날의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모쪼록 이 삼륜청정의
대작불사가 원만히 회향되어서 천 년을 두고 수행의 향기가 면면히 이어지고
, 고난에 허덕이는 중생들에게는 정신적인 귀의처가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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