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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남은 돌의 쓰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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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7-11-21 15:38 조회3,0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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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돌의 쓰임새

 

                                                                                                      기후 스님

 

내가 사는 도리천 입구 싸리문 곁에 토끼 꼬리만한 텃밭이 생겼다. 음식물 쓰레기를 어디에 버릴까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최종 낙점을 받은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구덩이가 커져서 버린 것이 거름이 될 때쯤 단 호박을 그곳에 심을 속마음을 갖긴 했지만 이정도의 참한 밭이 되리란 생각은 애초엔 없었다.

무엇이건 시작하다보면 차츰 일도 커지고 문제도 복잡하게 되는 것은 늘상 탐욕이 그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땅을 파다보면 흙이 부드럽고 기름져 보여서 양쪽을 야금야금 넓혀서 토마토와 옥수수도 심어 봤으면 하는 앞선 마음에 끌려서 이젠 보리수 잎처럼 모양이 된 갸름한 밭이 만들어졌다.

지난봄에 산에 올라가서 부엽토 거름을 갈고리로 끌어내리고 집 지을 때 생긴 톱밥과 재를 섞어서 밑거름을 많이 한 덕에 돌덩이처럼 야무지게 익은 단 호박 세 개를 거두었고 토마토는 한꺼번에 익어서 혼자서는 감당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옥수수는 추석에 먹는다는 늦종자를 심었더니 집주인을 닮았는지 빼빼로처럼 가녀리게 생겼는데 그래도 꽃도 피고 수염도 있었지만 알맹이는 생기다만 것을 그나마 한 쌍의 다람쥐가 들락거리며 다 갉아먹어 버렸다. 그런데 예쁜 밭 모양에 금이 가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엉크러진 돌담이었다.

이곳은 돌반 흙반이라 밭이 커질수록 돌의 양도 점점 그 무더기가 높아져서 그걸 이용해 길죽하게 돌담을 만들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큰 돌에서 깨져 나온 것들이어서 마치 구석기 시대의 돌칼처럼 뽀족한게 많아서 볼 때 마다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지난 여름에 오가며 가만이 살펴보니 어린 독사들이 그 골속을 살금살금 드나들면서 자신들의 터서리로 정할 눈치였다. 일을 저지름엔 직접적인 계기가 있어야 된다고 했던가?

며칠을 생각한 끝에 이참에 제법 많은 돌들을 몽땅 없애기로 하고 작은 손수레에 실어서 일단 싸리문 밖으로 옮기고 그 자리엔 제법 큰 각재들을 다섯개 나란이 포개서 담장을 만들고 기는 짐승이 숨을만한 공간을 원천 봉쇄했다. 그렇게 하니 남보기에도 좋았고 마음도 놓였다.

그 다음이 돌 처리 문제였다. 멀리 갖다 버리자니 힘에 부쳐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궁리 끝에 그 돌을 이용하여 탑을 만들면 일석이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호미로 땅을 파고 고루어서 그 일을 시작하였는데 혹시나 주말에 누가 와서 없던 돌탑을 보고 잘 만들었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서 서둘다보니 거의 완성단계에서 그만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공들지 않는 것은 쉽게 허물어진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바삐 서두른 탓에 속돌을 빼곡히 잘 채워야 할 것을 겉만 번지르르하게 쌓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번엔 왜 무너졌는가를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뒷 돌을 많이 써가면서 천천히 야무지게 쌓았다. 그것도 양쪽으로 두 개나 말이다. 맨 꼭대기엔 호박엿처럼 생긴 납작한 돌을 놓아 갓을 만들고 그 위엔 주먹만한 돌과 계란과 메추리 알만한 것들 셋을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차례로 올려놓았다. 만일에 차나 사람이 지나다가 그중에 하나라도 떨어지게 되면 그 배상으로 원인 제공자를 압류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을 하늘을 쳐다보며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하마터면 독사들의 소굴로 전락 될 뻔한 도리천의 쓸모없는 칼돌들이 보기에도 그럴듯한 돌탑이 된 것이다.

그것은 흉스럽게 되어 있던 돌담의 모양새에 대한 정확한 현실적 판단과 그 바탕위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적인 에너지가 나타낸 당연한 결과물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내용에서건 지금 보다는 좀 더 나아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을 간직하고 산다.

그래서 참선도 기도도 하면서 부지런히 절을 왕래 하는데도 대부분은 제 자리 걸음이다. 나름대로 목적의식은 분명한데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그저 막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어정쩡한 자세가 그 원인이다. 그렇다보니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은 불문가지다.

희망이 명약이라는 결론을 내린 하버드 의과대학 그루푸먼교수는 19년 동안 척추 때문에 큰 고생을 한 사람이다.

그는 희망의 성취는 그에 걸 맞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선은 현재 무엇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계속해서 재점검해야 된다. 우리불자들은 이 부분에서 좀 더 냉철한 자기 투시와 각성이 필요하다.

고추잠자리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더니 이젠 다 어디로 갔는지 그 모습은 감추었고 어느새 어디 살다 왔는지 귀뚜라미들이 문지방 근처에서 밤새도록 끼룩거린다. 그 뒤를 이어 파란 여치들이 긴 더듬이를 움직이며 그 자리를 지키는 상큼한 이 가을은 때론 우리들의 감정에 기름을 부어 가슴이 저리도록 사랑도 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기도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자신의 쓰임새가 효력을 상실했는가에 갇히게 되어 방콕을 즐기다가 끝내 우울해지는 자기와 만나게 된다. 우린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는 위치에 있다. 푸른 가을 하늘처럼 큰 희망심을 안고 화장을 멋지게 하고 어디론가 나서 볼 일이다. 쓸모없는 돌들이 버젓한 돌탑이 되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듯이 그 어딘가에 내 마음을 털어내어 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이 가을을 만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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