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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세속에서 피워내는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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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여심 작성일07-08-10 14:31 조회2,3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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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8시,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광림사 법당. 20평 남짓한 법당에 십 여 명의 불자들이 좌복에 앉아 허리를 곧추세우고 참선중이다. 나도 비어있는 좌복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방선 죽비소리가 났다. 저마다 천천히 가부좌를 풀고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인다. 입승소임을 보고 있던 거사님께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법명은 달마, 이름은 김준영. 현재 거사님이 가지고 있는 직함은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사무국장. 연화원은 청각장애인의 사회적응훈련 및 소외 여성을 위한 호스피스 간병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또 중앙신도회를 대상으로 간화선 입문프로그램 실참지도를 하며 간화선 지도사로도 활동하고 계시다.
내가 축서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8년 전 김준영 거사님을 통해서였다. 통신동호회 ‘부처님나라’의 참선모임 지도법사셨던 거사님은 한 달에 한 번 무여 큰스님을 찾아뵙고 공부점검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었다. 평생토록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지금도 가장 감사하는 일이다.

1997년 거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 일반 재가불자와는 좀 틀리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5년간 출가자로 살았다고 하셨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환속하신 성직자들이 많이 계시다. 효봉스님의 제자인 시인 고은, 불교학과 교수로 세계에 한국불교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계시는 성철스님의 제자 박성배 교수, 불자라면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법공양’을 출판하고 있는 김현준 거사님 등은 환속하여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김준영 거사님도 그런 분들 못지않게 간화선 대중화를 위해 재가불자모임에서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다.

참 조심스럽고 어려운 자리가 스님들과 함께하는 자리일 것이다. 혹 결례가 되지 않을까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것,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게다가 스님들께 질문을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너무 어리석은 질문은 아닐까? 이런 것을 여쭈어 봐도 될 까?” 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나 같은 경우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스님들 대신 김준영 거사님께 질문을 하곤 했었다. “화는 왜 나나요? 꼭 법복을 입어야 하나요? 절을 하면 뭐가 좋아요? 참선을 하면 단순해져서 사회생활하기 어렵지 않나요? ” 등등 사소한 일상사에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거사님은 귀찮은 기색 한번 없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을 해주곤 하셨다. 나한테는 참 좋은 ‘선생님’ 이셨다.

군대를 졸업하고 스물다섯의 어린나이에 출가하셨던 거사님. 불교란 어떤 종교인지 아직 감도 잡지 못한 상태였지만 무작정 절에 들어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 이유뿐이었을까? 다시한번 출가동기를 물어보았다.
“내 마음이 거짓말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봐서 나한테 솔직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계속 나는 아프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질 않았는데, 몸보다 마음이 아파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왜 아플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계속 아파서 그렇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출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출가를 했고 행자생활을 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어느날 은사스님이 마음을 내놓으라며 손바닥을 펴 보이셨다. 그 때 당시에는 그게 화두였는지도 몰랐는데, 은사스님과 마주칠 때마다 매번 답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쳐대시는 바람에 무서워 피해 다녔다고 한다. 결국 본사에서 2시간정도 거리의 산내암자로 도망을 가게 되었는데, 폐허처럼 방치되어 있던 방 한 칸짜리 토굴이었지만 은사스님이 안 보이니 ‘마음이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5년 내내 화두에만 매달려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토굴생활을 접고 환속을 하게 되었다.

“무서운 스승님 밑에서 공부를 해봤다는 것만으로 큰 수확인 것 같아요. 참선은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깨치고 못 깨치고는 제가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문제이겠지만 참선을 포기해야 된다면 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참선에 집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의 불자들 중 출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불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산사로의 출가를 한번쯤은 꿈꾸어 보았을 것이고, 출가를 하면 마음공부에 크게 진척이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난히 사는 일이 힘들어 질 때면 가보지 못한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양쪽 세계를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출가자였을 때와 재가자로 사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다. “깨달음에는 차이가 없다고 봐요. 불자도 사부대중의 일원입니다. 재가자의 일상이 바쁘고 복잡하긴 하지만 공부하는데 장애요소로 볼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자기의 마음을 비워내고 깨어내는데 활용할 수 있다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출가를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발심에 있어서 적지 않은 차이가 있어요.”

현재 거사님이 일하고 있는 연화원은 서울시여성단체기금으로 케어복지사 2급과 호스피스 교육을 3년째 실시하고 있다. 불교계의 간병 및 호스피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라 불자가 기독교인에게 간병을 받는 경우가 많아 정신적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개종을 많이 하신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본인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해 감각으로만 일을 하고 있다며 겸손해 하신다. 부처님의 말씀을 생활속에서 실천하며 재가불자의 모범을 보여주고 계신 김준영 거사님. 오늘도 재가불자들을 연화장 세계로 이끄는 징검다리 역할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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