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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둘 깨달음의 현대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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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응철교수 작성일07-02-25 21:57 조회2,7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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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하여 신행활동에 동참하지만 반대로 깨달음에 막혀서 불교를 어렵게 생각하는 불자들도 많다. 부처님께서는 각종 경전에서 깨달음에 대한 문제를 명확하게 설하고 있으나 지혜롭지 못한 중생들은 그 가르침을 잘못 오해하는 경향이 많다.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하여 불교에서는 오랫동안 다양한 수행법들을 연구하고 실천해 왔다. 간화선이나 위빠사나를 비롯하여 염불, 주력, 사경 등도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수행법들이다. 그러나 깨달음에 도달하는 방법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깨달음을 위한 수행법은 그 자체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 깨달음의 문제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 물음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첫째는 ‘무엇을 깨닫는가’ 이며, 둘째는 ‘어떻게 깨달음에 도달 하는가’이다. 이 두 가지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대답할 수 있다면 깨달음은 더 이상 신행생활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아함경을 잘 읽어보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의 내용을 간단하게 종합해 보면 ① ‘오온(五蘊)은 공(空)하다’는 이치, ② ‘모든 존재는 연기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③ 자신의 내면과 세상을 잘 비추어 볼수 있는 사성제의 원리에 대한 이해, ④ ‘세상의 삼라만상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무상(無常)의 원리, 그리고 ⑤ ‘나라고 집착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의 원리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그 세계에 도달한 사람만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운다면 세간적 깨달음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현대적 관점에서 불교의 깨달음은 존재적 측면, 관계적 측면, 행동적 측면의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존재적 깨달음이란 ‘모든 삼라만상의 존재를 연기적 산물’이라고 아는 것을 말한다. 연기적 산물이란 조건이 형성되면 존재하고, 조건이 사라지면 소멸하는 원리 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결과물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내적 외적 조건과 결합된 상태에서 존재할 뿐이다. 모든 조건과 사물은 하나가 존재하면 다른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하나가 소멸하면 다른 것도 소멸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과 존재조차도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연기적 존재라는 원리를 정확하게 깨달은 것이 된다.
관계적 깨달음이란 존재와 존재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원리를 깨우치는 것이다. 관계는 인연의 법칙에 따라서 형성된다. 인연이란 스스로의 의지와 환경적 조건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모든 관계는 그것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반응할 수 있는 의지작용이 있어야만 형성된다. 그러나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환경적 조건이 성숙되지 않으면 관철할 수 없다. 의지작용과 환경적 조건에 의하여 관계가 형성되면 곧 양 주체 사이에 상호작용과 기대감이 조성된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심리가 충족되지 않으면 미움이 쌓이고 분노로 표출되게 된다. 이러한 모든 관계적 현상은 인연법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행위의 법칙은 인과법의 원리로 깨달을 수 있다.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게 되고 그 결과는 다시 또 다른 행위의 원인을 만들어 낸다. 인과법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행동, 선업과 선과를 가져올 수 있는 행동을 실천한다.
연기적 존재, 인연적 관계, 인과적 행위의 세 가지 깨달음의 내용을 부처님께서는 무상과 무아라는 두 가지 조화의 원리와 괴로움이라는 부조화의 원리로 설명하셨다. 연기적 존재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고정불변의 대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무상(無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연법의 관계 속에서 ‘나라고 집착할 만한 고정된 자아가 없다’기 때문에 무아(無我)의 원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무상과 무아라는 두 가지 인식을 수용하지 않으면 부조화로 인한 괴로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내용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에 함축되어 있는 현대적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깨달음의 방법에 대해서도 부처님께서는 이미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근본불교시대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은 청정한 삶을 살아가는 계행(戒行), 마음의 안정을 도모하고 올바른 사유와 숙고를 성취하는 정행(定行), 그리고 내적인 번뇌망상을 완전히 여의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혜행(慧行)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대승불교가 보편적인 불교신행의 원리로 받아들여지면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은 자리이타의 바라밀행으로 전환되었다. 근본불교의 깨달음이 특수한 개인적 체험을 중시하였건 것에 비하여 대승불교의 깨달음은 보편적이고 실천지향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바라밀행은 스스로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베푸는 보시행, 청정한 삶을 실천하는 지계행, 탐욕과 분노를 참는 인욕행, 선업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정진행, 마음의 안정을 닦는 선정행, 사성제의 진리를 바로 이해하는 지혜행 등의 육바라밀행이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실천하는 방편(方便), 원(願), 력(力), 지(智)의 이타행의 네 가지 바라밀행이 강조되었다.
불교의 깨달음은 지식에 근거한 알음알이가 아니라 몸과 마음의 조화 속에서 스스로 체득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때 의미가 있다. 또한 혼자만의 독특한 체험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체득할 수 있는 보편적 방법이 뒷받침될 때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복덕행과 지혜행이 조화를 이루고 그것이 삶 속에서 이타행으로 실천될 때 진정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세계에 도달하려면 바르게 보고, 바르게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하여 노력해야만 한다. 수행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지,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불자들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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