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   종무행정   >   계간지   >   최근호및지난호

최근호및지난호

나를 알아가는 여행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자인 심해경 작성일07-02-25 21:47 조회3,271회 댓글0건

본문


여행은 인생을 닮았다.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살림살이가 대부분이지만 여행은 출발에서 도착까지 일정이 있고 어디를 가고 오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번 유럽 여행은 아주 힘든 일상에서 탈출하는 심정으로 출발했다. 전화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행복한 시간을 갖고 싶었었다. 그리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같이 일행이 되어 다닌 사람들의 업식이 맑고 깨끗해 더욱 행복했었던 것 같다. 긴장한 마음은 며칠 간 지속되었고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몸은 일출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몸은 정직하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습대로 관성적으로 움직인다. 덕분에 아름다운 런던의 일출 사진이 남았다. 마음대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범부의 일상이고 보니 조금만 사는 테두리를 벗어나도 낯설어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섬나라 영국에서 유럽대륙에 들어서는 관문은 보통 벨기에의 브뤼셀이다. 구시가의 그랑빨라스 광장은 여행객들의 눈과 발을 잡아 놓는다. 이번에는 오메강 축제 기간에 가게 되어 그들의 역사와 풍속을 재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축제와의 만남은 여행객임을 실감하게 했고 시야가 막히지 않은 곳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브뤼셀에서 3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간 곳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이었다. 전 세계에서 찾아 온 젊은이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나름대로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었다. 고호 미술관에서 고호의 그림을 관람했다. 일행 중 미술학도가 있어 벅찬 감흥을 나타내고 아는 것을 설명해주어 그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기 마련이니 무엇을 보아도 무덤덤하고 기뻐할 줄 몰랐던 살림살이가 부끄러워졌다. 암스테르담에서 20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풍차 마을이 있다. 아직도 돌아가는 풍차가 있는 한적한 마을이다. 아주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라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 여정을 이어 간다.

월드컵 결승전이 있을 때엔 독일 뮌헨에 있었다. 대도시이지만 고즈넉한 그 곳도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다. 나는 평소 가보고자 했던 노이에 피나코텍에 갔다. 좋은 미술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으나 기억에 남는 것은 평소에 좋아했던 클림트의 작품과 눈에 익숙한 마네, 모네의 작품 등이 고작이다.

야간열차를 타고 체코의 프라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주 건강이 안 좋았을 때 그곳을 갔던 기억이 났다. 잠깐 잠이 들면 악몽을 꾸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곳이라 그랬나하고 잠시 추측해 볼 뿐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잘 자고 새벽녘에 깨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하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카를교 위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성인의 동상은 수많은 여행객들이 만져 닳아서 반질반질 했다. 프라하는 일정의 삼분의 일 정도 되는 지점이다. 구시가가 너무 예쁘고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공예품이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유리로 만든 공예품은 탄성이 절로 나올 만한 아름다운 것이 많다. 인형극을 위한 인형도 이 곳에서 독특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심코 타고 다니던 자동차와 기차 비행기 등은 두발로 걷다가 지쳤을 때 비로소 그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하고 호텔은 졸음이 쏟아질 때 내가 누울 수 있기 때문에 그 진가를 알게 한다. 세상이 물질적으로 너무 풍요로워져서 어느새 조금만 불편해도 많이 불편하게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내게 하심하고 고마움을 알고 사는 넉넉한 사람이 되라는 스님의 법문은 찰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살림살이로 챙겨 두었었다.

올 여름 첫 번째 한 달 간의 여행은 아주 뜨거운 햇빛과 함께 했다. 예전 같으면 덥다고 아우성쳤을 내 마음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렇게 햇빛이 좋으면 덥긴 해도 우울증 같은 병은 없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여행하다 지쳐 조금 짜증이 올라오려면 일행들이 서로를 즐겁게 해주는 인연은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을 영원히 행복하게 하는 깊은 인연인 것 같다.

아플까 두려워 보약 먹고 출발한 여행이었다. 건강하지 못해 조금만 힘들어도 지쳐서 보고 싶어도 못 보았던 것들 마음껏 보고 돌아올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또한 내 마음이 힘들어서 곳곳에 남겨 놓았던 안 좋았던 편견들을 이번 여행으로 지울 수 있어서 좋았다. 각 도시들은 내가 오고 가는 것에 무심한 채 단지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와의 만남은 순간적이었을 뿐인데 내가 많이 안 좋은 경험을 해서 부정적인 업식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라고 참회했다. 건강하고 밝은 자비심이 언제나 내 안에 충만해 있었다면 다시 가고 싶지 않다거나 가기 두렵다거나 하는 도시들을 만들어 놓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여행이 참으로 행복했던 것은 나와 같이 간 사람들의 심신이 모두 건강했기 때문이라고 부처님 전에 감사하는 마음을 공양하며 사는 동안 이번 여행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발원한다.


글쓴이| 자인(慈仁) 심해경

이대 행정학과 졸업, 독일 튜빙엔 (Tuebingen)대학 사회학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롱비치(CSULB) Latin, Public speech를 수료하였으며 대한 불교 조계종 국제포교사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