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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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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후 스님 작성일06-11-23 17:10 조회2,6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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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기도



기후 스님 (축서사 선덕)


여름 내내 희끄무레하게 바라보이던 매봉산 기슭이 바로 이웃처럼 선명하게 보임도 안개구름을 만들던 음습한 여름기운이 밀려가고 그 자리에 맑고 신선한 가을바람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처럼 상큼한 좋은 느낌으로 변했음에도 우리들 속마음 어느 한구석엔 언제나 터분한 한 뭉치의 기운이 꽈리를 틀고 있음은 시시각각 보여주는 자연의 설법에 색맹이 되어있고 심중에서 일고 있는 노사나의 말씀보다 삼독의 귀울림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그 답답한 가슴을 열고 행복을 찾기 위해 산에 올라 부처님을 찾는 다. 그 방법 중 가장 쉽고 빠른 것이 기도이다. 무슨 기도이건 기도의 근본은 정성이며 목적은 일념의 성취다. 그 과정에서 가없는 희망을 잉태시켜주고 무궁한 용기가 우러나온다. 공경과 감사가 꿀물처럼 솟구치고 참회의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적실 때 삶의 주가는 끝없이 올라간다.
문제는 그렇게 좋은 길을 어떤 방법으로 쉽고도 빠르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이다. 해답은 역설적으로 그 길에 가장 장애요소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간파하는 일이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본인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눈만 뜨면 말이고 어딜 가나 말이다. 그처럼 소중한 것인 만큼 그 피해 또한 작지 않다. 그래서 예부터 ‘말은 바르게 하기도 어렵지만 바르게 듣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그만큼 언어는 찐빵처럼 부풀려져 왜곡되게 전달될 수 있는 특질이 가장 강한 세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천수경 제일 앞머리에 구업을 맑히는 진언을 두고 법회 때마다 많은 이가 외우고 있지만 정작 그 의미와 그것의 허물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는 분이 극소수임은 절절마다 돌아다니는 ‘말 많은 절간’ 이라는 말이 그 사실을 잘 증명해주고 있지 아니한가?
일상적 삶에서 말은 일회적으로 사용되고 그냥 사라지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지만 인생을 좀 더 멋지고 가치 있게 살아가고자 애쓰는 기도인의 입장에선 구업의 세력은 엄청난 무게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 이유인즉, 보통의 언어는 헛된 분별심과 굳어버린 탐착심, 그리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자기애착에 그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그런 허망한 말은 이미 근본을 등지고 허황한 그림자를 뒤쫓고 있기에 말을 많이 할수록 뒤돌아서면 늘 후회스럽고 마음에 찝찝함이 더할 수밖에 없다. 구업은 삼업 중 중간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 첩자의 다리를 끊어버리면 신업과 의업의 세력이 자연이 약화되어 삼업이 청정하게 된다. 본인은 6년의 묵언을 통해서 언어가 수행과 기도에 어떤 영향을 어떻게 미치는 지에 대해서 면밀하게 관찰한 바 있다. 우린 안 해도 되는 말들을 너무나 습관적으로 많이 하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자신의 의사를 다 표현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분별심에서 나온 말은 하면 할수록 그 자리가 더 공허하다. 진실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기도인은 말을 줄이고 삼갈 줄 알아야 기도를 성취할 수 가 있다. 말은 분별심과 자기를 부추겨 끝내 무명을 기르게 하는 도깨비와 같기에 그러하다. 생각하고 하는 말, 진리에 맞는 말 그리고 너그럽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 우리 주변에 넘쳐날 때 우리들의 삶은 가을햇살처럼 따사롭게 우리들 주변을 에워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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