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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이 곧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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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벽 단제선사, 전심법요 작성일06-06-11 19:47 조회2,5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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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이 곧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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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처와 일체중생은 오직 한 마음[一心]일 뿐이요, 다시 다른 법은 없다. 이 마음은 비롯함이 없는 먼 옛적부터 생겨난 적도 없고 없어진 적도 없으며, 푸르지도 않고 누렇지도 않으며, 일정한 틀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있고 없음에 속하지도 않으며 새롭거나 낡음을 따질 수도 없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크지도 작지도 않다.

그것은 모든 한계와 분량, 명칭과 언어, 자취와 관계를 뛰어넘어 바로 그 몸 그대로 진실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일으켰다 하면 곧 어긋난다. 그것은 마치 저 허공과 같아서 끝도 없으며 헤아릴 수도 없다. 오직 이 한 마음이 곧 부처이니,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다. 중생은 다만 차별상에 집착하여 밖에서 구하나니 구하면 구할수록 점점 더 잃게 되는 것이다.

부처에게 부처를 찾게 하고 마음으로 마음을 붙잡려 한다면 세월이 끝나고 몸이 다하더라도 끝내 얻을 수 없다. 이것은 망념을 쉬고 사려(思慮)를 잊어버리면 부처가 저절로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곧 부처이며, 부처가 곧 중생이다. 그러므로 중생에 있어서도 이 마음은 줄지 않고, 부처에 있어서도 이 마음은 늘지 않는다. 나아가서는 육도 만행과 갠지스강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공덕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어서, 닦아서 보탤 필요가 없다. 인연을 만나면 곧 베풀고, 인연이 다하면 곧 고요하다. 만약 결정코 이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지 않고 차별상에 집착하여 수행하여 공용(功用)을 구하고자 한다면 모두가 망상일뿐이요, ()와는 서로 어긋난다.

이 마음이 곧 부처요, 다시 다른 부처는 없으며 또한 다른 마음도 없다. 이 마음은 마치 허공과 같이 밝고 깨끗하여 한 점의 형상도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일으켜 생각을 움직이면 곧 법체(法體)와 어긋나고, 동시에 차별상에 집착하게 된다. 비롯함이 없는 먼 옛적부터 차별상에 집착한 부처는 없다. 육도 만행을 닦아서 부처를 이루고자 한다면 이는 곧 점차로 되는 것이니, 비롯함이 없는 먼 옛적부터 점차로 된 부처는 없다. 다만 한마음을 깨달으면 다시는 더 얻을 어떠한 법도 없으니, 이것이 곧 참부처이다.

부처와 중생의 한마음은 차별이 없으니 마치 저 허공과 같아서 섞임도 없으며 무너짐도 없다. 마치 온 누리를 비추는 햇살과도 같아서 해가 떠올라 밝음이 온 천하에 두루하더라도 허공은 일찍이 밝아진 적이 없으며, 해가 져서 어둠이 온 천하를 뒤덮더라도 허공은 일찍이 어두워진 적이 없다. 이렇게 밝은 경계와 어둔 경계가 서로 번갈아 바뀌지만 허공의 성품은 툭 트여 변하지 않나니, 부처와 중생의 마음도 또한 이와 같다.

만약 부처를 보되 깨끗하고 밝으며 속박을 벗어난 모습을 생각한다든가, 중생을 보되 때묻고 어두우며 죽고 사는 모습을 생각한다든가 하면,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은 갠지스강의 모래알같이 수많은 세월이 지나더라도 끝내 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니, 이는 차별상에 집착하였기 때문이다.


- 황벽 단제 선사, 「전심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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