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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지고 싶은 꿈 /박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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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6-02-06 11:12 조회2,7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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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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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의 공덕과 원력 / 일진 스님 운문사 승가대학 학감


| 세계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대승보살의 서원 / 곽만연 동아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 다시 가지고 싶은 꿈 / 박재완 현대불교신문 사진기자







수행의 공덕과 원력


일진 스님 (운문사 승가대학 학감)




『숫타니파타』는 불교의 많은 경전 중에서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이다. 그래서 역사적 인물로서의 불타 석가모니와 초기 불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경에서 부처님은 단순하고 소박한 형식으로 인간이 가야 할 길을 펼쳐 보이고 있다. 따라서 거룩한 부처님에 대한 호칭도 ‘눈 뜬 사람, 눈 있는 분, 거룩한 스승’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살아 움직이고 숨쉬는 불타 석가모니의 육성 그대로를 들을 수 있고 부처님의 인간미가 배어 있는 점이 『숫타니파타』의 특징이다.


이 경의 말씀 한 구절을 마음으로 되새기며 수행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수행의 공덕과 원력은 어떤 것인가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수행을 통하여 공덕이 성취되고 궁극적인 해탈에 이르게 되는데 과연 수행이란 무엇일까. 수행은 갈고 씨 뿌리는 것이다. 수행은 마음의 밭을 갈고 수행의 공덕을 씨 뿌리는 일이다. 예전부터 출가 수행자는 어떤 형태로든 생산직에 종사하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베다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기도 하다. 만일 출가 수행자가 농사를 짓거나 무엇을 만들어 파는 일에 종사한다면 그는 청정한 수행자의 대열 안에 들 수가 없다.



어느 때 바리때를 들고 탁발하러 온 부처님과 그 제자들에게 한 바라문이 “당신들도 갈고 뿌린 다음에 먹으라.”고 핀잔을 하였다. “나도 밭을 갑니다. 나도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라고 대답하신 부처님은 인간의 정신력을 계발하는 일은 감로(甘露)의 과보를 가져오게 된다고 하셨다.


믿음과 지혜와 물러설 줄 모르는 의지를 키우고, 부끄러움을 알고, 음식을 절제하며, 부드러움과 평화를 삶의 지표로 삼는 마음의 농사야말로 온갖 고통에서부터 해탈케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출가자가 생산적인 일에 종사할 수 없고 오직 탁발에 의존해야 했던 인도와는 기후 풍토, 사회·문화적인 환경이 매우 달랐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탁발 걸식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출가 수행자라 할지라도 손수 논밭을 경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장 선사 같은 분은 총림을 개설하여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주창하고 좌선하는 일이나 농사짓는 일이 똑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고 실제로 직접 노동을 하며 수행하는 모범을 보였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는 백장 선사의 가르침은 이런 환경에서 나온 것이다.



“믿음은 종자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내 멍에와 호미


노력, 정진은 내 황소이므로


나를 안온의 경지로 이끌어 줍니다.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말씀은 수행자의 일상적인 생활 규범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실하게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참으로 진실한 수행자는 열반조차도 원하지 않으면서 청빈한 수행자의 생활을 한다. 그는 진리에 귀의하고 사람에게 귀의하지 않는다. 번뇌에서 해탈하는 길을 안에서 구하고 밖으로 찾아 헤매는 일이 없다. 또한 모든 존재의 본성이 열반 상태에 있음을 알아 윤회에 유전하지도 않고 열반에 안주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진실하게 수행하는 사문이다.


진실과 수행에 의해서만 수행자의 덕행이 갖추어지는 것이지 이름만의 수행에 의해서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결국 수행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에 지녀 갈고 닦아 실천하는 일이다. 제대로 된 발심(發心)에서부터 출발해서 갈고 뿌리며 공덕을 거두어 들여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수행자는 지극한 원력을 통해 모든 장애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원력이란 봄에 씨앗을 뿌리는 믿음의 종자와 같은 것이다. 중생의 원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보살의 원은 일체중생의 행복과 평화를 위한 원력이다.


보현보살의 열 가지 위대한 서원이 있다. 그 중에 다른 이의 공덕을 따라 기뻐하는 원이 있다. 각박하고 답답한 이 시대에 ‘끝없이 찬탄하고 타인의 기쁨과 공덕에 대해서 진심으로 기뻐하리라’는 이 원이 가슴 깊이 절실해 진다.



“선남자여, 남의 공덕을 따라 기뻐한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삼세 모든 부처님 세계의 아주 작은 티끌만치 많은 수의 여러 부처님들이 첫 발심한 때로부터 모든 지혜를 위하여 복덕을 부지런히 닦을 적에 모든 보살들이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닦으면서 가장 높은 보리를 구하던 그 넓고 큰 공덕을 내가 모두 따라서 기뻐하나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여도 이 함께 기뻐함은 끝나지 않으리라.”



진정으로 발심한 수행자의 서원은 무엇인가. 소욕지족의 삶을 원칙으로 산다는 것이 그 하나가 아닐까. 먹는 일, 입는 일, 물건을 소유하는 일 등 갖은 것이 간편해야 생각이 흩어지지 않는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생활할 때 정신이 분산되지 않게 된다.


음식과 물건뿐만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도 자기가 소화할 만큼만 받아들여야 자기답게 소화할 수 있다. 정보와 물질의 홍수 시대에 외부세계에 휩쓸려가기 쉬운 현대인들은 특히 이러한 소욕지족의 정신을 잊지 않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소유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지혜롭게 구별하여 불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덜어내야 할 일이다.


물건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물질이든 인간이든 나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길 때는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교훈을 생각하며 철저한 절제로써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수행은 늘 원력과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바른 신심과 바른 수행의 방식을 통할 때만이 철저한 수행의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원력을 굳건히 세울 때만이 무량한 자비심이라는 큰 수확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자비심은 곧 보리심이며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비심을 기르는 일은 수행자의 핵심이다. 자비심은 이웃에게 따뜻하게 전해지는 마음이며 자비심에서 결국 지혜가 싹트게 된다. 자기 자신은 비록 아직 성숙되지 않았더라도 이웃을 행복하게, 이웃을 성숙하게 하겠다는 원력을 지닐 때, 이것이 곧 자비이고 수행자의 원력과 회향이 된다.





세계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대승보살의 서원


곽만연 (동아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우리가 사는 세계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꿈이 없는 자는 살 가치가 없다. 이 세계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 진실되게 가꾸려고 하는 자는 꿈이 있는 자이다. 그가 바로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이다. 우선 먼저 대승불교에 있어서 보살사상의 형성의 배경을 살펴보자.


대승불교운동은 서기 기원전후 무렵부터 일어나서 서기 320년에 성립한 굽타 왕조 시대를 통하여 전성기를 맞이하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대승불교 최초기의 경전이라고 알려지는 것이 반야경전과 법화경전이다.


서기 3세기의 중반경에 활동한 용수(龍樹, Nagarjuna)보살은 대승불교의 집대성자로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용수보살 홀로 대승불교를 완성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 하면 대승불교라는 것은 일종의 불교적 복고(復古)운동이며, 동시에 그것은 광범위한 민중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불교의 전개활동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운동은 ‘아비달마’ 부파불교 시대에 일반대중과 유리되어 있었던 불교가 일반 민중화하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대승이라는 낱말은 범어의 ‘마하야나(Mahayana)’를 번역한 말인데, 그것은 ‘큰 탈 것’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탈 것이란 ‘사람들을 더불어 태워서 종교적 이상의 세계로 옮기는 것’이라는 의미로서, 인도에서는 자주 종교적인 가르침을 탈 것에 비유한다. 대승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낡은 전통적인 상좌부의 부파불교를 소승(小乘)이라고 낮추어 불렀으며, 그것에 대하여 자신들의 불교를 훌륭한 대승이라고 불렀다.


이에 대하여 소승(小乘)이라는 낱말은 범어의 ‘히나야나(Hinayana)’를 번역한 말로서, 그것은 ‘버려진, 또는 보잘 것 없는, 비천한 탈 것’이라는 뜻이 있다.


대승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종교적 이상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것인데 반해 소승은 자기 자신만이 홀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가르침이라고 하여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편, 대승불교의 가장 뚜렷한 특색은 보살도의 실천에 있다. 보살이란 말은 범어의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음역하여 줄인 말인데, 진리의 지혜를 얻으려고 스스로 정진함과 아울러 다른 모든 사람도 그와 같은 지혜를 얻게 함으로써 더불어 이상세계에 이르게 하려고 서원하고 실천,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구도자라는 뜻이다.


스스로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구제받지 못하는 한이 있을지라도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을 깨치게 하여 이상의 피안(彼岸)에 인도하려는 것이 대승보살의 서원이며, 보살도 실천의 궁극적 목적이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수행하며 매일의 생활 속에서 나와 남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보살이다. 우리들은 모두가 보살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라도 구제되지 못한 중생이 있는 한 보살의 서원은 성취되지 않은 것이 된다.


보살에는 출가의 보살도 있으며 재가의 보살도 있기 때문에 출가자만이 불교의 진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대승불교의 기본입장이다. 재가 보살은 세간에 있어서 모든 생산활동, 모든 직업세계에 종사한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의 생산활동이나 기술, 일, 학문 등에 관해서도 설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技術)이라는 낱말은 대승불교에서는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되고 있다. 기술에 내재한 철학성, 또는 기술에 부여된 종교성 등에 의해 기술은 단순한 물리적, 과학적 테크닉이 아니라 보살행을 실천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대승불교에 의하면 모든 생산활동은 보살행(菩薩行)이다. 보살은 원래 성불하기를 궁극의 이상으로 하여 스스로 정진함과 아울러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인도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현실에 살며 생산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야만 한다.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 스스로도 같은 일을 하는 자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대승불교의 이상세계를 실현할 수 없다.


이처럼 생산활동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태도로 같이 일하는 것을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의 동사(同事)’라고 하여 매우 중요시한다. 대승보살의 사상이 이렇기 때문에 세간의 일에 동참하거나 전념하며 적극적으로 일하는 것에 큰 의의가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생산활동이나 기술이나 일의 모든 것은 불교적 진리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된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가장 뚜렷한 특색이다. 이른바 세간세속(世間世俗)의 업무가 그대로 절대적 불법(佛法)으로 가치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사람들의‘보살됨의 자각(自覺)과 실천(實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승경전 『법화경』의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에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설하는 모든 법(法)은 그 뜻에 따라 모두가 실상(實相)과 다르지 않다.


만약 세간의 경서(經書), 치세(治世), 언어(言語), 자생업(資生業) 등을


설한다면 모두가 정법에 따르느니라.’




이것을 줄여서 ‘자생산업즉시불법(資生産業卽是佛法)’이라고 한다. 즉 모든 생산활동은 그대로가 불법(佛法)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생산활동을 모조리 긍정한 명제는 아니다. 그에 앞서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도에 따른 정신적 가치의 전환과 실천이 필요함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영양가 있고 맛있는 쌀을 생산하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원(願)을 품으면 그 농부는 이미 보살이다.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 가장 편하고 튼튼하되 동시에 값이 싼 구두를 만들겠다는 서원을 가진다면 그 역시 보살이고 그의 생산활동은 보살행이 된다.


주부가 가족을 위하여 정성들여 좋은 음식을 맛있게 만든다면 그 사람도 보살이다. 땅에 떨어져 있는 깨진 유리조각을 보고는 아이들이 다칠까 싶어 줍는 사람이 있다면 그 원이 고귀하므로 그는 고귀한 사람이고 보살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서원을 품는다면 우리도 보살이 될 수 있고 보살행을 할 수 있다.



다시 가지고 싶은 꿈


박재완 (현대불교신문 사진기자)




프리미어리거 한국인 1호 ‘박지성’. 요즘 나의 검색어 순위 1위다. 그의 출전 경기가 있는 날이면 잠을 설쳐가며 경기를 보곤 한다. 그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내가 축구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꿈을 이룬 사람’으로서 존경스럽고 한 편 부럽기 때문이다.



축구 종가 영국에서 최고의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여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하루하루 성공일기를 써가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 꿈을 이룬 자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그의 위대함을 보다 보면 한 편으로 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 영영 잊혀진 것 같은 나의 모습. 언제부터인가 ‘꿈’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 그런 ‘나’를 보게 된다.



나에게 꿈이란 게 원래부터 없었던가. 그렇지 않다. 나에게도 꿈이란 게 분명 있었다. 나의 꿈은 세계 사진사(寫眞史)에 나의 이름 한 줄을 올리는 것이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세계적인 사진가들의 작품을 보며 공부하면서 지금의 박지성을 보듯 세계적인 사진가가 되겠다고 가슴 벅차게 나를 격려했고 미래의 ‘나’를 꿈꿨었다. 축구 선수 박지성과 같은 수많은 사진가의 이름이 밤하늘의 별처럼 나의 가슴 가득히 살고 있었고, 이제 겨우 먼지가 먼지를 끌어안았지만 나의 작은 별은 태양이 빛나는 우주를 기다렸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는 내내 미술을 하고 싶어 했지만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해야 할 고등학교에 와서는 아버님의 반대로 정작 미술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당시 교내 사진반 지도교사였던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사진을 권유하였고 그것이 사진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결국 대학도 사진과를 가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사진이 우리나라에선 아직 미진한 분야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세계적인 사진가의 이름 속에 한국인의 이름이 아직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진에 대한 흥미와 열정은 나를 살게 하는 건전지였고 충전기였다. 5남매의 학비로 허리가 휠대로 휜 아버지의 그늘과, 그 그늘 속에 힘겹게 서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늘 마음에 걸리면서도 꿈이 있다는 이유로 나는 뻔뻔스럽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마흔의 나이를 먹는 동안 그 뻔뻔함의 면죄부였던 그 원대한 꿈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졸업 후 줄곧 ‘사진기자’라는 일을 하고 있고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왔으면서도 나는 그 가슴 벅찬 꿈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어깨엔 늘 카메라를 메고 살았지만 가슴 뛰는 사진 한 장을 만들어 놓지 못했다. 사실 먹고 사는 현실에 파묻혀서 살다보면 다소 현실과는 멀리 있는 ‘꿈’이라는 것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 비겁한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 ‘꿈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어느 시인은 남자 나이 마흔을 ‘벼랑 끝에 선 나이’라고 했다. 나이 마흔에 접어든 대한민국 ‘아빠’들은 모두 저마다의 ‘벼랑’이 있다. 그 벼랑 끝에서 나는 그 옛날 꿈을 생각해보았다. 언제 접었는지도 모르는 ‘아빠’들의 꿈. 나 역시 아홉 살 딸아이의 아빠다. 나의 꿈보다는 딸아이의 꿈을 위해 살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꿈을 가지고 살고 싶다. 이제 와서 세계적인 사진가가 되겠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루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꿈을 가지고 사는 삶과 꿈 없이 살아가는 삶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안다. 꿈을 가지고 사는 삶, 그것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삶에 축복을 주는 일이다. 최초의 사색을 잊지 않았던 고타마 싯다르타, 그는 마침내 부처가 되었다.



얼마 전 박지성은 모두가 갈망하던 소중한 데뷔 골을 쏘아 올렸다.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며 너무나 기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고국의 팬들과 영국의 팬들이 환호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기쁜 사람은 영국 현지에 있었던 박지성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박지성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주위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야말로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특히 자신의 부모를 기쁘게 하는 일은 이 세상 어떤 일보다도 값진 성공이다.



이제는 빛바랜 세월만 남아버린 부모님을 대할 때면 나는 한없이 죄스러워진다. 이제는 나도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있다. 아홉 살 난 딸아이가 작은 상장이라도 하나 받아오는 날은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 자식의 작은 성공 하나 하나가 부모에게 이렇게 큰 행복인지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 행복을 느낄 때마다 나의 마음 한 편은 후회스러운 과거와 현재를 기억해낸다. 내가 언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는지…. 그저 후회스러운 과거만 불꽃놀이처럼 어둠속에서 튀어나올 뿐이다. 꿈을 가지는 일, 꿈을 가지고 사는 일, 꿈을 이루는 일. 그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인 동시에 길러준 부모에게 보답하고 자신을 지탱하게 해주는 주위에 대한 보답인 것을 알았다.



나는 다시 꿈을 가지고 살 것이다. 그 옛날 그 꿈을 다시 생각하던 날, 이 세상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나에겐 늘 독방(獨房) 같았던 시방(十方)이었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고 나의 힘으론 도저히 풀 수 없었던 그 짙고 짙은 마음의 어둠도 이제는 태워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추운 것도 더운 것도 모르고 살았던 열일곱, 열여덟. 가슴에 하늘을 담고 살았던 스무 살 십 년. 6월 나무보다 자신 있었던 서른 길. 이제 내 나이 마흔. 미혹을 걷어내는 나이에 서서히 나의 꺼졌던 가슴은 다시 한 번 고립무원의 수두를 앓는다. 무사히 수두를 앓고, 이제 다시 퇴적을 시작한 나의 작은 별이 태양빛 가득한 우주를 만나는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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