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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 보광전 비로자나불에 대하여/이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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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6-02-06 11:07 조회2,8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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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서사 보광전과 비로자나불에 대하여<?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이광세 (경북불교대학 강사)




축서사의 창건주 의상조사는 8년간 화엄학을 수학하였는데, 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의 약칭이다. 석가세존이 인도 마가다국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신 지 2·7일째에 금강보좌에 그대로 앉아 깨달으신 마음속의 자내증을 여여하게 설하신 근본경전이 화엄경이다. 제법실상과 우주만법을 보신 그대로 설하신 경전이다. 부처님이 되시어 최초로 3·7일 동안 해인삼매에 들어 대광명만을 놓고 계시며 침묵하신 채로 말 한 마디 아니하시고 설법하신 것을 등각보살인 보현, 문수, 법혜, 공덕림, 금강장심왕, 연화장 보살들이 삼매에서 설법을 듣고 나와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하신 것이 화엄경이다.


축서사 보광전에 모셔져 있는 비로자나불은 본래 불성의 진신을 나타내는 존칭이며, 노사나불이라고도 하며 변일체처(遍一切處), 광명변조(光明遍照)라고 번역된다. 부처님의 신광(神光), 지광(智光)이 이사무애의 법계에 두루 비춰 보편타당 원만무애한 것을 뜻하며, 이와 같은 덕성 구족한 법신이요, 대지혜불이시니 태양에 비유하여 대광명편조불이라 하며, 또한 비로자나불은 법성 상주의 청정법신이며 노사나불은 원만보신이고 석가모니불은 천백억 화신이다. 이 세 부처님은 원만무애하여 체(體)는 같고 상(相)은 다르다. 석가모니불이 정각을 이룬 것이 대지혜의 법이며, 그 법 자체가 여래이며 세존이고 비로자나불로 묘사된다.


축서사 보광전의 비로자나 부처님은 1,300여 년 동안 지권인을 말아쥐고 있으면서 유정 무정의 설법을 하고 계신다. 어떠한 형색도 갖지 않는 법신불로서 신통력에 의해 소백산, 태백산을 중심으로 한량없는 불타를 나타내어 항상 법륜을 굴리시며 중생을 위하여 가피력을 펴는 것이 마치 태양이 온갖 것에 햇빛을 비춰 자라나게 하는 것과 같다. 비로자나불은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계신다. 금강계의 대일여래가 만든 인상(印相)이며, 법계의 상(相)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부처님들의 지혜의 법해(法海)를 집지한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바른손은 부처님 세계를 뜻하고 왼손은 중생계를 표(表)한 것이므로 이 결인으로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깨달음과 어리석음이 일체인 깊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을 보광전이라고 한다.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하실 때 몸은 보리좌에 그대로 앉아 있으면서 일곱 곳에서 아홉 번을 설하셨는데 하늘나라에서 네 번이니 도리천궁, 야마천궁, 도솔천궁, 타화자재천이고, 지상에서 세 곳이니 보리장 급고독원 보광명전에서 세 번을 설하셨다. 보광명전에서 설법을 하시어서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전각을 보광전, 보광명전, 적광전, 대적광전, 비로전이라고 한다.


축서사를 세우고 보광전을 건립한 의상조사님은 정토 미타신앙을 가지고 계셨다. 역시 의상대사가 세운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아미타불을 서쪽에 좌정하여 모시도록 한 것은 정토 미타신앙에서 기인된 신앙심이라 할 수 있다. 동쪽에서 서쪽 서방정토를 향하여 예배하도록 하신 것은 장차 서방정토로 가겠다는 모든 수행자들을 극락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깊은 뜻이 있다. 이는 스승 지엄 대사의 신앙을 따른 것이다. 지엄은 일승 아미타불은 열반에 들지 않고 서방정토를 체를 삼아 생멸하는 상(相)이 없으니 이것이 일승의 깊은 뜻이라 일러주었던 것이다.


스승의 뜻에 따라서 의상대사는 소·태백산에 부석사와 축서사를 창건하여 일승법계도를 강의하고 정토신앙을 믿도록 하였다. 또한 백화도량 발원문을 지었는데 조사님의 관음신앙은 철저한 구도적인 신앙이다. 일체중생 모두를 원통삼매 성해(性海)에 들게 하고 정법을 듣고 깨우치는 구도의 자세이며, 이 과보가 다해서 죽을 때 관세음보살의 인도를 받아 그 순간에 백화도량에 왕생하는 신앙이다. 이것은 아미타신앙과 연결될 수 있는 관음신앙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광세 님은 경북불교대학 강사로서 이 글을 특별기고하여 오셨기에 지난 가을호부터 두 차례에 나누어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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