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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외할아버지의 축복/할아버지의 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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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6-02-06 11:04 조회2,9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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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외할아버지께서는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내게 줄 선물을 가져오시곤 했다.


외할아버지가 주시는 선물은 보통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인형이나 책, 또는 동물 인형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들은 50여 년 전 모두 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주신 선물 중에서 어떤 것들을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어느 날 외할아버지는 내게 작은 종이컵을 선물로 주셨다.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던 나는 종이컵 안을 들여다본 후 실망하고 말았다. 그 속에는 흙이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은 늘 내게 흙을 만지면 안 된다고 타이르셨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께 부모님이 뭐라고 주의를 주셨는지 말씀드렸다. 외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기만 할 뿐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가지고 노는 소꿉장난감 속에서 작은 찻잔을 집으셨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고 부엌으로 가셨다. 외할아버지는 그 작은 찻잔에 물을 가득 담으셨다. 그 찻잔을 들고 다시 내 방으로 가셔서는 조금 전 내게 보여주신 종이컵에 물을 준 후 창가 턱에 올려놓으셨다. 외할아버지는 내 손에 찻잔을 쥐어주시며 말씀하셨다.


“네쉬메레야, 날마다 이 잔으로 종이컵에 물을 줄 수 있겠니?”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쉬메레야, 네가 매일 물을 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된단다.”


그 당시 우리는 맨하튼에 있는 한 아파트의 6층에 살았다. 아파트의 창가에 올려놓은 종이컵에 물을 준다고 한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단 말인가? 네 살배기 어린아이인 나는 외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외할아버지는 나를 안아주시며 말씀하셨다.


“네쉬메레야, 날마다 물을 주어야 한단다. 매일 말이다. 잊지 말아라.”


한동안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호기심에 열심히 물을 주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컵 속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물을 준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외할아버지께 아직도 계속 물을 주어야 하는지 여쭈어 보았다. 외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매일이란다, 네쉬메레야.”


두 번째 주가 되자 물을 주는 일이 무척 따분하게 느껴졌다.


괜한 약속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은근히 짜증이 일었다. 외할아버지가 오셨을 때 나는 컵을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외할아버지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컵을 다시 내 손에 쥐어주셨다.


“잊지 마라, 네쉬메레야, 하루도 물주는 것을 거르면 안 된단다.”


셋째 주가 되면서 나는 물을 주는 것을 자주 잊어먹었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불현듯 생각이 떠올라 침대에서 빠져나와 어둠 속에서 물을 주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물을 주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물을 주려고 하다가 컵 속의 흙에서 움튼 자그마한 연두색 싹을 보게 되었다. 바로 어젯밤 잠이 들기 직전까지만 해도 컵 속에는 흙만 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맛보았다.


두 개의 싹은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나는 이 사실을 빨리 외할아버지께 알려드리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필경 나처럼 깜짝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조금도 놀라지 않으셨다.


“네쉬메레야, 생명은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한단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도 생명은 숨어 있는 법이란다.”


외할아버지는 무릎에 나를 앉혀 놓고 차분한 음성으로 설명해주셨다. 나는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물었다.


“할아버지, 그럼 생명을 자라게 하는 게 물이예요?”


외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말씀하셨다.


“네쉬메레야, 생명을 자라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란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너무 어린 탓에 보살핌이나 봉사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셨다. 다만 우리 주변과 우리 안의 생명을 축복할 수 있어야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세상을 치유하는 힘이 우리 안에 있다. 누군가 우리를 축복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善)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소외시키는 두려움과 무기력함, 불신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축복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고도의 기술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선함을 잊고 기술이나 전문직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세상을 회복시키는 것은 우리의 전문기술이 아니다. 미래는 전문적인 기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얼마나 충실한가, 그리고 그 삶을 얼마나 축복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삶을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가 병들거나 늙는다고 해서 축복의 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 때 축복해 줄 수 있는 힘이 더 생긴다. 삶의 연륜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힘들고 긴 여정을 지나왔다. 그들의 체험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깃든 축복을 준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 역시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벗어나 그 너머의 어딘가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곳이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속하는 장소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삶을 축복하고 있다. 가장 단순하고 일상적인 행동이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한 통의 전화, 가벼운 포옹,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것, 따스한 미소나 눈인사 등이 그네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고 축복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의 작은 행동으로 커다란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떨어진 귀걸이를 찾아주거나 장갑을 집어주는 행동들이 타인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되찾아 줄 수도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며 축복을 보낼 때 세상과 우리 주변과 우리 안의 빛은 더욱 밝아진다. 축복은 단순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다.


축복은 만남의 순간이다. 함께 한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관계 속에서 우리는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우친다.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 우리는 아무런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될 수 있다.


그 순간 상대방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나 진정한 안식을 얻는다. 우리는 축복을 통해 나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깊이 성찰할 수 있다.


- 문예출판사, 할아버지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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