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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축서사의 새해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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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계법스님 작성일06-01-23 16:05 조회2,5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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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새해가 되면 처음
떠오르는 해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동해 바닷가나 명산의 일출봉으로
길을 떠난다. 새해 첫날에 밝고 둥근 해를 보고서 지혜를 얻어 마음을
새롭게 다지고 한 해를 잘 계획하고자 함일 것이다.


축서사에는 일출의
멋진 광경이 없다. 절이 서쪽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뒷산
너머에서 뜬 해는 10시가 되어야 도량 전체에 밝은 기운을 고루 비추어
준다. 그런 반면 서쪽에 펼쳐지는 풍경은 일출의 장관이 없는 것을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이 날마다 달마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는 이들에게
황홀함을 선사한다.


2004-suel-n1.jpg


여름철 비온 뒷날 아침에
서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구름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발아래에 첩첩이 놓인 산봉우리들 사이사이로 구름바다가
몽실몽실 솜사탕처럼 깔려있고, 그 뒤로 버티고 있는 소백산 능선은
아스라이 봉우리 끝만 살짝 숨죽이며 내놓아 겨우 큰 산의 체면을 유지한다.
그야말로 천상에서 구름을 타고 떠다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그러다
보니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모인 기운을 품고 있는 문수산의 칠부 능선에서
바라보는 소백산맥은 웅장하다기 보다는 차라리 조금 낮아 보일 정도다.


suel-n3.jpg


더구나 저녁에 해 떨어지는
광경은 세상의 어디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괜히 자랑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축서사 대웅전
앞마당 돌사자 옆에 기대어 소나무 사이로 펼쳐지는 일몰의 장관을 본
사람은 심장이 멎는 듯 하여 그만 벌렸던 입을 다물어버린다.


특히 하늘은 푸르고
산에는 눈이라도 덮인 겨울 저녁에는 한층 기분을 돋군다. <관무량수경>의
‘일상관’에서처럼 둥근 자마금빛(약간 자줏빛을 띤 금색) 태양이 소백산
비로봉 위의 짙은 하늘에 큰 북처럼 매달려 있다가 봉우리 너머로 슬며시
내려가 버리곤 한다. 그 넘어가는 모양이 마치 잘 익은 홍시를 통째로
삼키듯 꿀꺽하는 바람에 벼르고 벼르다 찾아온 이방인의 목구멍도 덩달아
꿀꺽 넘어간다.


2004-suel-n3.jpg


그렇듯 푸르거나 붉게
펼쳐지는 석양의 아름다움은 우리 삶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일출은 탄생의 기쁨과 앞으로 펼쳐질 꿈에 대한 기대에 부풀게 하는
반면 일몰은 활활 타오르던 하루의 열정을 잠재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차분히 가라앉았을 때 고요해진 우리의 내면은 ‘마음의 고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번 새해 첫날엔 일몰을
보러 가자. 마음의 고향을 찾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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