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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차 한잔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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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한순 작성일06-01-23 14:45 조회2,5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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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은 구수한 향기가 가득한 달입니다.
새순이 올라 올 때부터는 차나무 대신 이런 저런 과실나무에서 어린잎들을
따서 씻고 말리고 찌고 덖고 비비면서 몇가지 대용차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호주의 토질과 기후에 자란 차나무잎은
녹차 맛을 제대로 못 내지만 체리나 레몬, 살구, 배, 감, 뽕나무잎들로
만든 대용차 맛은 훌륭한 듯 합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여러 가지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차를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봉투에 조금씩 담아
넣습니다.


올해의 차는 금방 우러 나오면서도
오래도록 맛이 유지되어서 어느 해 보다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실
때는 달콤해도 마신 후에는 쓰기만 하는 선감후고先甘後苦보다는 처음에는
써도 마실수록 달콤한 선고후감先苦後甘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것은 차의 성질이 신뢰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차를
누군가가 마시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보잘 것 없는 이 마음에
용기를 보태 주는 차가 고마워서 우주의 생명 모든 것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봄을 두 번씩 맞이합니다.
이곳 호주의 봄 구월이 차를 만드는 계절이듯이 한국의 봄 사월에도
차 만들기에 분주하다고 합니다. 제다와 공정과정을 끝내고 상품화된
한국 녹차가 호주까지 배달되어 와서 가을 속에 있는 우리들도 한국의
봄 햇차 맛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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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를
꼽으라 한다면 서슴없이 햇차 봉지를 처음 열었을 때의 향기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 향기는 싱싱한 풀 냄새일 때도 있고 구수한 누룽지 냄새일
때도 있지만 흙 냄새와 바람 냄새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 냄새를 어찌
말이나 글로 표현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새 차는 누군가 있을 때 열어서
그 향을 함께 나누어 맡으면 기쁨이 배가 되기도 합니다.


마음이 즐거울 때만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혼자서 따끈하게 차를 우려서
도자기 찻잔에 따라 놓으면 그 향기와 빚깔에 빠져서 마음은 어디로
가고 없어집니다. 내 마음에 담겨 있던 근심이나 미움 그리고 분노마저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자꾸 마시다 보면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원망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좋을 때는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그 좋은 마음을 나누지만 내 마음이 나쁠 때는 혼자서
차를 마시면서 스스로를 달랩니다.


우리 차는 잔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마신다고 합니다. 차를 마시면서 절차와 예법을 중시하는 일본의
엄격한 다도茶道나, 차를 우릴 때의 예술적인 중국의 다예茶藝는 우리
차 정신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다도나 다예보다도 편안하고
친숙하게 들리는 차생활이나 또는 옛사람들이 부르던 절살림이나 사랑채
살림처럼 차생활 역시 차살림이라고 부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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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과정에서 차 수행과
차 예술을 논하기 전에 차를 재배해서 마시기까지의 전 과정을 통하여
모든 생명을 서로 보살펴서 함께 살아 나가는 생활 사상이 우리 차정신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자연이 베푼 은혜와 수고를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가 있지 않은 우리
차는 아무 의미없는 또 한가지의 음료수뿐일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다도라는 뜻조차 제대로
새기지 못하고 겉멋으로 찻잎과 물로 손가락 장난이나 하면서 기교와
절차에만 얽매여 행여라도 차를 하나의 물건으로 하락시켜 버린 적은
없는지 생각하면 심히 부끄럽습니다. 차를 만드는 손이 차 정신을 따라가야
그 차가 비로소 몸에는 약리적 성분의 도움으로 보약도 될 것이고, 또한
마음으로는 자신을 성찰하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죽는 순간까지 많은
죄를 짓고 산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짓는 죄가 구업口業이라는데,
차를 마실 때마다 스스로 입을 씻어 내는 공부를 해서 그 죄를 조금씩
줄여 나가고자 합니다. 어리석고 못난 이 사람이 그 동안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다 합한다면 남은 인생을 차 마실 때마다 참회해도
다 모자랄 것입니다. 내가 가슴 아팠던 것만큼 남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것이고, 내가 분노했던 것만큼 남을 분노케 했을 것이며, 나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만 생각하고는 남의 고통과 억울함은 헤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부족한 마음의 잔 안에 찻물을 따르면서 남을 비방하거나,
사실과 다른 말을 듣게 되는 귀와 또한 전해 들은 말로 분노하는 사람의
귀까지 찻물로 씻어 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수행자는 수행하는 과정에서 차를
마시겠지만, 일반 차인도 차를 마시다 보면 수행을 하게 됩니다. 혼자서
고요히 차를 마시다 보면 왜 차를 마시는 것인지 그 행위 자체를 잊어버리게
되고, 차 마시는 자기 자신도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차 마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수행자나 차인茶人은 이미 수행자나 차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를 안다는 것과 차를 좋아한다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차를 안다고 해서 차를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차를 좋아한다고
해서 차인이 되는 것도 아닐 것 입니다마는, 차를 즐기면서도 차에 속박되지
아니 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장식을 삼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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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을 위해서 선禪음악이나
명상 음악이 있어도 좋겠지만 없어도 좋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음악 대신 새소리나 빗소리도 좋고 바람소리도 좋답니다. 꽃 한 송이가
있어서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이
없답니다.


창밖에 흘러가는 구름 한 점을 방안에
들여오고 정원에 보이는 나무나 꽃을 방안 풍경으로 잠시 끌어 들여도
좋습니다. 앞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앉아 있어도 좋겠지만 누군가
없어도 또한 좋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느끼는 무엇이건 찻잔 앞에 자유로이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차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께는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우리 집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둔탁하게 들리는 기와 지붕에
비해서 맑고 섬세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목소리도 고함을 지르면
깨어져 버리듯이, 양철 지붕 위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퍼붓는 빗소리는
귀를 얼얼하게 만들어 마치 스테레오의 볼륨을 최대한 올린 듯 했습니다.


하루 일과를 끝낸 피곤한 몸이 짜증을
내고 정신마저 산란해서 차를 끓였습니다. 참선방에 홀로 앉아 계시는
부처님 곁에다 찻자리를 펴고 차향으로 부처님의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곤지랑거리며 이런 저런 세상 일을 털어놓다가 목 마르시다는 부처님의
눈짓을 보고는 몸가짐을 바로 하고 차 우리는 일에 열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부처님이 보고 계시는지라
조심스럽고 긴장이 되어서 차 만드는 행위에만 신경이 쓰였습니다. 공손히
부처님께 차를 한 잔 먼저 올린 후에는 그만 부처님을 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빗소리를 계속 따라 가다가 어느새 그 소리마저
놓치고 말았습니다.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는 마음이 다시 찻잔으로
기울어 졌습니다. 차를 계속 마시다 보니 그 마음은 또 어디로 가고
없었습니다. 마음도 잃어버리고 빗소리도 잃어버리고 나니, 부처님도
나도 없는 그 방엔 빈 찻잔만이 놓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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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람이 많이 붑니다. 바람
불어서 또 좋은 이 날에 햇차를 직접 시음해 볼 수 없는 분들을 위하여
더욱 정성들여 차를 우려 봅니다. 찻물을 따르는 이 소리가 귀에 들리도록,
고운 이 빛깔이 눈에 보이도록 이 좋은 향이 코에 스며들도록, 이 구수한
맛이 입에 닿도록, 그리고 찻잔을 잡는 이 촉감과 느낌이 손에 잡힐
수 있도록 이 모두를 오늘의 바람이 다 실어가서 좋은 벗님들에게 전해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차를 만드는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 모두가 차가 지닌 향기를 닮아 간다면 서로의 그 향기로 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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