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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호및지난호

미국 까지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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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글ㅣ김연정ㆍ삽화ㅣ정동훈 작성일06-01-23 14:37 조회2,5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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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간격으로 배달되어오는
성경구절이 적힌 예쁜 카드. 한두번은 무심코 받아 보았다. 수신인의
주소도 이름도 없는 카드는 회가 거듭될수록 누가 이 카드를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뉴욕에서 조그만
옷가게를 하며 이곳 불교단체에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일을 3년째
한주도 빠지지 않고 해오고 있다. 전화상담과 설법테이프를 원하는 분들에게
보내는 일도 겸하고 있다. 또 스님을 모시고 법회도 보며 경전강의를
정기적으로 실시해 도반들과 함께 불교공부를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나에게 성경구절이 쓰여진 카드를 보내는 것은 내가 불자임을
아는 이의 행동으로 생각되었다. 성경글귀를 적은 예쁜 카드로 누군가의
마음에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싶은 이의 마음이 허술하게 보여지지 않았다.
받은 카드를 잘 모아 두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음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전혀 부담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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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독교 권사는
“자매님은 웬만해선 안될 것 같아 제가 백일기도를 했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 나세요”라며 모진(?) 권고와 회유와 협박(?)을 했다.
꿈에 계시를 받았다며 나를 하나님 곁으로 인도하기로 마음먹고 찾아오신
집사도 있었다. “아니 그 목소리, 그 실력으로 성령의 말씀을 전한다면
명예와 돈이 굴러들어 올텐데, 참 어리석기도 하군요.”라는 어느 교회장로의
안타까워 하는 말씀. “아유, 이렇게 친절한 젊은이가 하나님을 안 믿는다니
이해가 안가우.”라던 성당에 다니시는 어느 할머니. “아깝기도 해라.
아니 무슨 헛고생 하는 거예요.


요즘같은 시대에 인간부처를
믿고 있다니. 젊은 분이 아깝네, 쯧쯧…” “워낙 밝고 한결같이 상냥해서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자매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많은
재능을 주셨잖아요. 교회에 나와 보세요.” 만나는 사람마다 개종을
강권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인내심으로 설득시키면서 여유있게 웃을
수 있었다. 부처님의 무량한 자비심을 가까이 하며 몸소 체득하지 않았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일이다.


내가 운영하는 가게의
손님으로 8년여를 묵묵히 찾아주시며 “언젠가는 하나님 앞으로 오길
기도한다”는 집사, 위협도 서슴지 않는 열성파 신자에 이르기까지 내게
하는 전도 형태는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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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미국에서 한국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전도활동을 나열하자면 정말 끝이 없다. 그 에너지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불자들의 포교는 미미한 상태인 점으로 미뤄볼 때
같은 한국인인데도 그렇게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연구해 볼만한
과제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극도의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황폐해진 현대인들의 정신적 위안처로 불교가
큰 몫을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지성인이나 예술가
연예인 등 상류층이 비폭력적인 평화운동의 선두로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내세우고 있다.


행복의 조건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려온 그들이 물질 만능의 허점을 간파하고 정신적 욕구를 불교의
진리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다툼이 없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종교가
불교라는 점을 깨닫고 보다나은 세상을 위해 창조적인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불교공부에 심취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만여 개가
넘는 대학에서 불교를 가르치고 있고 학문적 연구도 활발하여 불교의
대중화가 확산되어가고 있다. 미국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대에 앞서고 현실적이며 지성인으로써 평화주의사상에 발맞춰 나가는
신세대 감각에 걸맞는 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이민생활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내부에서 얻은 한국적 기독교정신(?)에서
나온 열성적인 믿음으로 두꺼운 벽을 치고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의 정신문화를 깡그리 버리고 기독교 사상으로 무장한 그들이
과연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꽃피우고 있는지 한번쯤 스스로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드는 것은 내가 불자라서만은 아니다.


테레사 수녀님의 보살행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얼마나 고귀하고 성스러운가! 인간의
갈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입는 이가 기독교인이고, 부처님의 말씀과
지혜로써 해결할 수 있는 이는 불교인일 것이다. 나의 믿음만이 최고라는
법은 없을진대….


가끔 가게에 들러서
물건을 사가는 중년여인. 어느날 그녀는 내가 불자임을 알고서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머머… 미국까지 와서 불교라니!”라고 한마디하며
어이없어하던 그녀는 금방 표정이 심각해지면서 이민생활의 이모저모와
현실에 맞는 믿음을 가지라며 훈계를 한다.


신앙이란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가에 큰 역할을 한다. 아니 전부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종교는 없었지만
내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생활을 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지내온 나의 20대. 22년전 처음 미국에 도착했던 나는 어디를 둘러봐도
생소했던 주위환경 속에서 인간관계의 갈등까지 겹치게 되어 무척 힘들었다.
그때 원불교라는 공동체에서 위로를 받았다. 교무님과의 인간적 교류에서
포근한 모성애를 느꼈다. 나름대로 내 삶의 지표로 삼았던 법칙과 우주
진리의 질서가 그곳 교리에 정리되어 있음을 보았다.


나는 불교를 그렇게
만났다. 이후 부처님과의 깊은 인연에 빠져들게 되었다. 현재의 삶에
이르게 한 과거의 삶을 자주 생각해 본다. 나에게 주어진 어떤 고통도
그냥 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고통이 그대로 머물지
않음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의 온갖 일들이 내 마음에서 비롯됨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사랑으로 맺어졌던 첫남편과는 딸아이 하나를 낳고 헤어졌다.
그 아이는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었다. 생살을 찢는 듯한 아픔으로 5년을
살았다. 오직 부처님만이 삶의 의지처였다.


그후 재혼하여 아이
셋을 낳았다. 12년간의 결혼생활은 순탄했고, 행복했고, 안정되었다.
소위 말하는 밝은 미래도 설계했다. 거의 맨주먹으로 시작한 이민생활의
갖가지 궂은 일거리들을 무난하게 헤치고 현실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는데도
궁색 떨지 않을만큼 저축도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순조롭다는
표현은 어렵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외국에서의 생활이 어찌 힘들지
않으리. 다만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못 느꼈다는 것이다. 우리 가정은
성공한 이민가족의 전형적 가정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던 내가 5년전
이혼을 당했다. 이혼했다는 말은 내 경우에 맞지 않다. 5년전 한국에서
온 시누이, 8년전에 오셔서 3년동안 별 문제없이 함께 지냈던 시어머니,
그리고 애들 아빠는 내가 한가정을 이룰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결정짓고
이혼을 강요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난 비켜 서기로 했다. 비켜서는
일은 이혼장에 사인하는 일이었다.


지치고, 절망하고,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안고 있던 당시의 내가 부처님 인연법을 몰랐다면
어떻게 지냈을까? 아마 살인자가 되었거나, 정신병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쯤 무명 속에 갇힌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혼을 당한 나는 온
밤을 하얗게 지새며 ‘왜?’라는 질문 속에서 눈물만을 흘렸다. 참회.
아스라이 보이는 인연의 끈. 모두 내 과거생의 업으로 돌리며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온통 손가락질을 받는 죄인처럼
느껴져 자꾸 움츠러들었다. 옳고 바른 생활, 결격사유 없는 사회인,
가정, 자녀교육등 어느 한가지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생활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이러한 치욕적인 삶의 기로에서 밤이면 참회의
통곡으로 내 안에 가득찬 원망과 미움의 독기를 뽑아내기 위해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것이 염불인 줄도 모르고…. 미움과 원망을 갖지 않는 인연법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내 감정에 깊숙히 박혀있는 원통함은 쉽게
빠져 나오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 부처님의
자비가 이렇게 절실할 수가 없어요. 내 죄를 사랑으로 감싸줄 수는 없을까요.”


“네가 감히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자격이나 있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뭔지나 알고 말하느냐.
너는 저주받은 X이다.” 교회 다니는 동서한테 했던 하소연을 전해듣고
50년도 넘게 기독교신앙생활을 하신 시어머니는 그렇게 내 귀가 멍할
정도로 크게 답해주셨다.


그것은 가슴 에이는
아픈 말이었지만, 나에게서 원망과 미움의 굴레를 벗기는 예리한 칼이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며칠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던 나에게
그 소리는 오히려 위로의 말이 되었다. ‘감히 하나님의 사랑이 뭔지도
모른다는 것, 나는 저주 받은 사람이라는 것.’ 나는 그말의 화두에
걸려 몇날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그 생각에 집중되어 밤을 밝히던 어느날
새벽 어스름을 맞으며 내 육신의 무게를 느낄 수 없는 이상한 상태를
경험했다. 깃털보다 더 가벼워진 육신. 내가 없는 것 같은 상태의 나.
그리고 맑게 벗기워진 원망과 미움의 찌꺼기들. 그들은 미움의 대상이
아님을 알았다. 나를 아프게 했지만 그 아픔으로 원망과 미움을 치유할
수 있는 부처님 법을 만났다. 모두가 불성을 지닌 인간들이지만, 탐·진·치
삼독에 가려서 바른 견해와 바른 사고를 가지지 못하고 바른 언어를
쓰지 못하고, 바른 행동을 할 수 없다면, 그들은 오직 가엾게 여길 중생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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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을 밝히는 빛을
따라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맑은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볼 위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그렇게 눈물이 흐르게 두었다. 비참하거나 슬프지 않은 어쩌면
환희의 눈물인지도 모를 울음을 오래도록 울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느낌을 받으며 눈물을 닦았다. 나는 나 혼자가 아님을 알았다.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님을 감지하며 이 세상의 온갖 것 속에 속해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제는 희로애락의
감정에도 그렇게 휘둘릴 것 같지 않았다.


그후.


늘 자신의 예기치못했던
처지에 왜소해지던 마음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나는 단지
일반적인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 독특함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부처님법이 아니었다면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깊은 뜻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이 세상 그 어느 것도(가정, 자식,
재산) 내 소유물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소유욕에서 비롯된 욕심의
고통도 그래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부처님 법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그리고 자유스럽게 생각이 이어질 수 있었을까? 눈물겹도록
고마운 불법이다. 수승한 부처님 법을 만났기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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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니의 권고에
따라 가끔 교회도 가보고 부흥회도 가 봤다. 아멘을 외치고 통성기도를
하는 이들을 보면서 나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세계임을 절감했다. 그렇지만
난 그들을 이해했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 그것에 마음을 걸고 살아가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일체가 유심조 아닌가!


나는 천상 부처님 제자이다.
부처님 법 속에 내 마음이 열려지고 있으니까. 괴로움도 슬픈 일도,
즐겁고 환희에 찬 느낌도 변화하는 과정임을 알았다. 그러한 진리를
부처님께서 정리정돈해 주셨다. 그러니 어디에 매달리거나 끄달릴 필요가
없다.


어느 곳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는 생활. 마음의 자유로움은 자신감에서
비롯되고, 자신감은 모든 일에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을 체험했다. 적극적인 생활은 그 생활의 순간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삼매력이 있고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에너지를 발생케 하기 때문이다.


부처님 법을 만나 위로받고
즐거움과 평안을 얻게 된 것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곳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몰라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알리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매주 부처님 법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을 계기로
이곳 뉴욕의 많은 불자님들과 소중하고 고마운 인연을 맺고 있다.


나의 서원을 이루는
길목, 미국에 유학오신 H스님과 인연이 닿아 97년 10월 경전학습, 수행정진,
사회봉사의 3대강령을 교육목적으로 법사양성교육원을 뉴욕 최초로 설립하여
경전공부를 하게 되었다. 20여명의 동참 도반들께서 한결같이 경전공부가
행복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수료식에서 소감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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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법사 수료식을 마치고
처음으로 오계를 받았다. 정식 불자가 되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불자로서의
의무감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마음으로 했다. 불자가 지켜야
할 기본덕목인 팔정도를 행함으로써 수행의 본을 삼으리라. “이 세상에
기독교교리 하나만 가지고도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불교경전
하나만 가지고도 극락정토와 인류사회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말씀이 없어서 이 현실 세계가 갈등과 전쟁 반목을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 실행이 없기 때문입니다”는 스님의 법문이 마음에 절실하게
와 닿았다. 행여 불자간의 불협화음이 있다면 보살행에 대한 불자로서의
실행을 올곧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한 상황이 있을 경우엔
상대를 탓하기 전에 늘 자아성찰의 계기를 삼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불교인구가
적은 이곳에서 불자의 단합된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겠는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거듭남으로써 스스로 성숙한 신앙인으로 역할을 하게 되는 것.
더 나아가 한국불교의 면모를 세계의 중심도시 뉴욕에 알려 인종을 초월한
모든 이들에게 정신적 위안처를 마련했으면 한다.


부처님 법 만난 즐거움과
그로 인해 자신감있는 삶을 살고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의 불자이고 싶다.
부처님 법은 정법이기에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인과응보의 법칙을
깨닫고 자업자득의 진리를 안다면 억지로 선한 일을 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억지로 자비를 베풀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런 흐름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어떠한 회유로써 개종권고를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아니, 흔들릴 수 없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려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금방 도움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해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 제행무상의 길을 알고 나의
주인공은 자신임을 부처님께서 일깨워 주셨기에, 곧 내가 나를 만들었음을
뚜렷하게 알았기에.


하루는 고급스런 의상을
입은 깔끔한 인상의 중년여성이 찾아왔다. 가게 손님인줄 알았는데 그녀가
인사를 하며 묻는다. 아무개를 아느냐고. 몇주 전에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 이름이었다.


난 금방 눈물이 앞을
가렸다. 기독교인이지만 나를 이해해줘서 늘 많은 대화를 나누던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한 그녀의 죽음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죽기 이틀
전에도 가게에 찾아와 안부를 물으며 얘기를 나눴던 친구였기에.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며 감싸주고 격려해주던 친구를 잃었다는 것은 예삿
사람의 죽음보다 더 큰 슬픔이었다.


친구의 죽음으로 마음
아프겠다며 위로하던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그 친구가
유언을 했어요, 자매님을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그녀의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아니 이분이 무슨 말씀을’ 나오려던 말을 꿀꺽 삼키고
“친구는 저를 이해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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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매님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 못하면 죽어서 친구 볼 면목이 없어요. 그러니 친구를 봐서라도
꼭 하나님 앞으로 오세요.”라는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심장판막에 이상이
있었던 친구는 의사의 수술 권고를 미루다가 수술결정을 내린후 심장수술을
하루 앞두고 집안을 치우다가 쓰러져 그대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채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친구의 형님을 통해 들었다. 워낙 깔끔하던
친구는 자신의 병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자신이 입원하면 주부가 없어
흐트러질 집안을 구석구석 치우는등 무리를 하다가 쓰러졌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어떻게 유언을 했단 말인가, 더구나 나에게 개종하라는
말을. 같은 교회 다닌다는 이분은 언제 그 유언을 들었단 말인가.


이런 저런 그녀의 말꼬리를
따질 필요없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여 하나님께 인도하고픈 마음에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임을 안다. 나는 그분께 친구와 나의 우정과 친구의
나에 대한 마음씀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친구에 대한 나의 애틋함이
그녀의 개종권고에 한가닥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었는지 이번 부활절
기념예배에 꼭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드릴
수는 없잖아요. 죄송합니다.” 단호한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는 자신이
한동안 카드를 보냈노라고 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카드를 보이면서
“이것 말이죠” 물으니 그렇단다. “누군가 저를 생각해준 분이 계시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반갑다”고 했다.


그틈에 다시 교회 나올
것을 권유한다. 난 정중하게 거절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집사님께서는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부처님 말씀이 적힌 카드를 받았을 때 어떻게
했겠느냐”고. 가만히 미소만 짓고 있는 그녀. “한 두 장도 아니고
몇 개월을 걸쳐 보내온 카드를 찢어버리지 않았겠느냐”고 물으니 “아마
그랬을 거예요”라고 솔직한 대답을 한다. “집사님, 저는 이렇게 모아
두었어요. 보내주신 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부처님 법을 믿는
저는 타종교인에게 개종하라는 강요를 하지 않아요. 인연의 법칙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예요. 저에게 더 이상 권유하지 마세요.”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교회에 나올 것을 얘기하다 “자매님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 집사님이 가신 뒤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의 신앙을 그토록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힘에 대해. 어쩌면 부처님의 말씀을 펴고 전하는데
나도 그만한 에너지가 내 마음에 있음을 안다면 그녀의 행위를 존경해야하지
않을까 하면서 미소지었다. 인연없는 중생은 부처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말과 행동과 원력으로 부처님 인연을 맺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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